연쇄 구직자 -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 다소 시리즈 5
정수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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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구직자뿐인 세상에서 들리는 침묵의 아우성‘(모순)

: 정수정 소설, 연쇄 구직자(다산시리즈)


 

이 소설을 읽게 되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읽으면서 한숨을 쉬지 않았던 페이지가 없다. 안타깝고 짜증나고, 화나고 답답하고. 그 이상일 때는 우울하기까지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최지수가 세상 곳곳에서 있고, 나 또한 최지수이기도 하니까. 우리 모두는 연쇄 구직자 최지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며 최지수로 살고 있다.


어렸을 때 2020년이 넘어가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생기고, 우주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시대라고 생각했다. 정말 어리고, 어린 만큼 무지했다. 과학의 날을 맞아 그린 과학 상상 그림 대회의 주제는 대부분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이 주를 이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상상하며 즐거워했을 테니까. 현실을 너무 잘 알아버린 지금은 당장 오늘을 살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내일이 고민이다. 매일매일 사는 게 가장 큰 문제고, 고민이다. 매일 하는 고민이 덜어지는커녕 계속 몸집을 키우고, 나를 괴롭힌다. 근데 나만 이런 게 아니라서 어디에 하소연 할 수도 없다. 다 다르지만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어린 날 했던 철없던 상상에 더해 한 번 얻은 일자리로 평생을 일할 거라는 확신도 참 어리석다. 고등학교 때 진로 수업을 들으면 이젠 일자리가 고정적이지 않고, 지금 있는 일자리도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길 거라고 했다. 물론 사라진 일자리도 있고 생긴 일자리도 있지만 눈에 띄게 큰 변화는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그 세상에 빨리 발을 담그고 오래 있던 이글을 새로운 것을 원하면서도 경력을 들먹이며, 오래된 것을 찾았다. 얼마나 모순적이고, 불편한 일인가. 그런 이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긴장되는 마음과 떨어질 거라는 마음에 드는 95%의 불안, 혹시나 하는 5%의 설렘을 품은 이력서들은 언제나 가면을 쓴 웃음과 냉정함, 건성으로 버려진다. 그렇게 마음도 준비한 시간과 비용도 길거리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보다 더 쓸모 없게 버려진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면서 동시에 정직적인 것을 요구하니 요구 당하는 을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갑을 꿈꿔본 적 없지만, 그런 갑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보면 나는 그런 갑이 되지 않을 거라며, 내가 갑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근데 그것도 잠시 갑도 을도 진절머리가 나서 갑과 을이 없는 세상을, 일자리에 목매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어릴 때는 무지하기 때문에 용감하게 꿈꿨던 것들이 어른이 되고 나니 모든 게 시간 낭비고 당장 가치가 없어서 모든 게 낭비가 되고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최지수의 삶이 꼭 최지수 것만이 아니라서 다행이면서 참 안타깝다.


최지수는 직장을 제발로 나오고, 일을 다시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2023~2024년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불편하고 속상하고, 짜증났다. 지수가 그만두겠다고 나오는 장면이 통쾌하지만은 않았다. 그 뒤가 어떨지 알고, 내가 생각한 대로 상황은 이어질 테니까. 역시나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현실적인 지수의 일상은 괴로웠다. 알고 보면 좀 나을 거라던 누군가의 말은 틀렸다. 알고 보니 더 잔인하고, 괴로운 게 아니라 고통스럽다. 일자리를 그만둔 것까지는 일단 나쁘지 않았다. 지수가 스스로 선택했고, 참고 일했다면 더 최악의 상황이 지수를 괴롭혔을 것이다. 그때 지수가 감정적으로 한 선택인지를 생각했다. 감정적일 때 마음을 먹고 선택하면 분명 후회할 거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지수의 마음과 감정이 그때 격했던 것 같지 않다. 모든 걸 집어 삼킬 듯이 거칠게 타오르던 불길이 겨우 진정해서 재와 연기가 뒤섞인 상태였던 것 같다. 너무 지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솔직히 그때 지수의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쉽게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에 힘들어하고, 직장이 없을 때 확실히 더 거친 세상으로부터 매번 불합격 도장을 받는 지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까? 금방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여기 그만두고 조금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하면 구해질 거라고, 일하던 것보다 더 좋은 곳으로. 근데 그건 착각이었다. 내 희망사항이었다. 쉽게 구해지지 않고, 구직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별일 아닌 것들이 별일이 되고 생각지 못한 상황들이 들이닥쳤다. 특히, 돈에 그렇게 짜게 굴지 않았는데 돈에 짜게 굴게 되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매일 누워서 영상만 보던 나와 다르게 지수는 계속 구직 활동을 했다. 대단했다. 이력서를 몇 십통을 넣고, 뭔가를 배워보겠다고 주민센터에 방문해서 듣고자 하는 강습을 신청하는 등 계속 움직이는 지수였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지수의 능력을 알아주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게 현실이었다.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짰다. 짠 현실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었다. 무너져서라도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력서를 보고 면접 보러 오라던 곳도, 출근하고 나니 내일부터 그만 나와 달라던 곳도 최지수의 삶에서는 볼품 없이 쌓이는 경력처럼 보였다. 1일에 몇 시간을 일했듯 그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경력으로 보였다. 그 경력이 쌓이면 정말 만능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는 하나같이 잘하고 내 일처럼 일하길 원하는 곳뿐이다. 급여는 쥐똥만큼도 안 되면서 바라는 건 엄청 많다. 조건도 많이 따지고. 지수가 일을 오래 하지 않고 자꾸 그만둘 때는 뭐 그럴 수 있지, 계속 일했으면 호구에 등신, 나중에는 육체적심적으로 많이 다쳤을 거야, 등등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반복되니 지수가 일할 생각이 있기나 한지, 이렇게 일일이 따지면 일할 곳이 있기나 한지 묻고 싶었다. 지수가 생각하고 바라는 조건이 얼토당토않는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지수가 바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지 않다. 그래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그리고 들어가야 한다. 부려 먹는 사람과 수그리고 들어간 사람의 차이는 돈의 주는 입장, 받는 입장이다. 그 차이는 동전 앞뒤만큼 간단한데, 간단해서 가장 잔인하고 냉정하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 있는 최지수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만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 위로가 되지 않냐고. 세상이 자신한테만 지랄맞게 구는 것 같다면 옆을 보라고, 옆 사람도 부글부글 끓는 냄비처럼 속이 시끄러울 거라고. 경력만 따지고 내 일처럼 몸이 부서져라 일하기를 원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또 나를 써주면 금세 고마워지는 게 세상 아니냐고 덧붙여서.


일하고 있는데도 최지수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하고 있는데도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안 해도, 하고 있어도 문제는 언제나 발생한다. 곳곳에서 연쇄 구직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적나라한 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서 이어폰 뒤로 숨는다. 이어폰을 잠시나마 현실 소음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잠깐의 해방 뒤에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의 해방의 단맛을 놓질 못하겠다. 퇴근길이 울적하다. 얼마 되지 않는 시급을 받아가며, 사람들한테 시달린 오늘이, 내가 참 짠하다. 뭐 나만 짠하겠나. 버스 타고 멍하니 창밖으로 보는 최지수, 초점 없는 눈은 폰 화면에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빠르게 화면을 넘기는 최지수, 쩌억- 하품을 하며 피곤함을 드러내는 버스 기사 최지수, 아주 많다. 언제쯤 연쇄 구직자 없는 세상이 올까?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연쇄 구직자, 참 잘 지은 별명이다. 오늘도 누구는 연쇄 구직자가 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가 될 뻔한 위기를 겨우 면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누구는 연쇄 구직자에게 자신의 일자리에 대해 떠들어대며 같잖은 위로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최지수의 오늘 무게를 감히 추측해볼 뿐이다. 나도 최지수면서. 모두가 최지수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지수의 삶을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 같다. 그냥 최지수임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쇄 구직자 활동을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연쇄 구직자로 활동하는 기간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모르겠지만. 연쇄 구직자 활동은 꽤 오래 할 수 있지만, 계속 하지는 못한다. 언젠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리다. 나를 써주는 곳, 나의 능력을 알아봐주는 곳은 분명 있다. 서로 운이 좋다면 낭비하는 시간없이 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좋게 생각하자. 연쇄 구직자로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구직을 포기하거나 일을 하지 않아도 뭐 괜찮다. 이 말을 적는 순간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남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걸로 보일까봐. 구직을 열심히 하고, 일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근데 지수가 최지수에 적응한다고 말하던 장면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꾸 뭘하려고 애쓸수록 되는 게 없다고, 그러다보니 힘들고 괴로운 거라고. 그냥 나대로, 나 자신에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금은 나에게 적응할 시간을 건너는 중이라고.


제목이 뭔가 호기심을 끌어서 펼친 책에서 만난 너무 현실적인 최지수의 이야기가 자주 생각날 것 같다. 생활하다가 내게서 최지수를 자주 볼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안타깝거나 답답한 마음이 들어 괴롭겠지만, 아주 가끔씩 웃어주고 싶다. 그 마음 안다고, 연쇄 구직자로 사는 게 많이 힘들지만 잘하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제목이 연쇄 구직자이지, 한 사람의 삶을 하루하루 기록한 일기장 같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다가 다른 직장을 구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많은 크고 작은 일들. 남편, 시댁, 도련님, 아버지, 서나, 미옥언니, 미진선배, 원 선배, 다솜이 등등. 그 중 돈과 관계에 대한 지수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에피소드와 문장들에 눈길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남은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지수가 하던 일, 하던 생각 등 모든 게 덧없게 느껴졌다. 지수는 가벼워보였다. 왜 일을 구하겠다고 아등바등 매달렸는지 이유조차 사라졌다. 그냥 최지수로 있는 게 어색해서 최지수를 꾸밀 수 있는 수식어를 갖기 위해 스스로 괴롭혔다. 지수는 천천히 수식을 하지 않은 본인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연쇄 구직자 최지수의 침묵의 아우성이었지만 이제는 최지수의 소리다. 어렵게 찾기 시작한 소리를 잃어버리지 않길 바란다. 세상 곳곳에 있는 모든 지수가.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에서 받았습니다:)

 

다산 : 서평 등록이 늦어진 점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아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참 힘들었는데 연쇄 구직자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위로됩니다. 그 시기를 내 시간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기로 꼽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최지수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적이어서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공감했습니다. 종종 지수가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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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최지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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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 비교와 강박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을 되찾는 마음의 기술
전미경 지음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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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일 때, 진정한 ( )를 만날 수 있다.

: 전미경, 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비교와 강박을 내려놓고 삶의 중심을 되찾는 마음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갤리온)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발견한 것은 없었다. ‘받아들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이 배움은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이며, 이 배움을 실천하지 못해서 지나온 과거가 힘들었고 지나는 중인 현재가 힘든 것이다.


당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라는 제목만 봤을 땐 조금 불쾌하고, 외로웠다.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나인 걸 아는데 제목마저 내게 그러니 진짜 나는 특별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 직관적으로 읽히지 않고 그 안의 의미를 파악했을 때는 위로의 말로 읽혔다.


우리는 늘 특별함을 쫓는다. 남들과 끊임 없이 비교하며,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하거나 치켜세워주는 무언가를 갖길 원하고 하길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 갖거나 함으로써 그걸 증명하듯 sns에 올려 좋아요와 조회수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 만족감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더를 외치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본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받아들이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 즉 슬픔과 우울, 고통, 힘듦 등 진짜 모습을 숨기거나 거리를 두고 행복과 웃음, 여유 등 거짓으로 꾸며진 일상을 매일 수십 개의 피드를 올림으로써 누군가가 누른 좋아요와 써준 댓글에 만족한다. 숨기거나 피함으로써 사라지거나 넘겼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우리가 회피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반드시 더 크고 깊게 찾아온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되찾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관계 속에 놓인 우리는 진정한 관계를 꿈꾸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진정한 관계가 손에 꼽을 정도거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요나 목적이 있는 수단으로 맺어진 관계뿐인 현대사회에서는 놀랍지 않다. 진정한 관계는 타인을 완전히 인정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맺을 수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매번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빨리 친해지길 원하고, 아낌없이 주는 편이다. 상대는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경우에서 혼자 상처 받고,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많다면 자책한다. 상대를 거의 알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 결과였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관계에 진저리를 치고, 목적이 없다면 관계를 맺지 않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타인은 우주와 바다보다 더 미지의 존재라는 것을 까먹는다. 타인을 미지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매번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상대와 있었던 일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혼자 분석하고 의미 부여하며, 스토리를 만들고 결국 스스로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괴롭지만, 멈추는 것이 두렵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받아들임이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관계, 진정한 삶을 가져다주는 것을 이 책에서 여러 번 말한다. 핵심이 받아들임이다. 내가 가장 못하고, 어려운 것이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뭔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능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 착각이다.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넘기는 것이다. 변화를 줄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아서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까. 한계상황처럼 말이다. 당연히 마음과 머리에 계속 남아 되감기를 하고, 진실과 멀어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쓰는 건 금방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좇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정말 고단하고 외롭다. 근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깨닫는다. 영원히 곁에 있어줄 것 같던 가족들이 떠나거나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을 때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서야 말이다. 우리는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현재를 산다. 당장은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현재에 집중 못 한 결과물은 현재를 받친 미래에서 잔인한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미래가 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안다. 하지만 그 이론을 적용하여 현재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사는 이들은 드물다. 이론이 바탕이 되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듯 부딪치듯 산 삶은 돈과 명예, 지위로 완전함을 손에 쥘 것 같았지만 결과는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완전함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고, 수준 맞는 사람(이 수준이라는 것이 뭘 말하는지 모르지만)과 결혼하고 모두가 그런 것처럼 아이를 낳고, 자녀를 좋은 대학을 보내고 대기업에 취업하도록 지원하는 등 뻔한 스토리 말이다. 언제부터 이런 진부한 흐름이 완전함의 기준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틀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만든 삶이 완전하다고 믿는다. 대부분 완전함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품고 살아서 나중에 환상이 깨지는 순간에 처절히 무너진다. 애초에 환상 같은 건 깨부숴야 한다. 완전한 것은 없다. 이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미완전함 안에서 이미 완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완전함을 꿈꾸고 좇는 것이 덧없다는 것을 일찍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환상 속에 사는 것이 고단한 현재를 위로할지 모르지만 잠깐이다. 그 환상 속에서 시들고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보바리 부인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은 유한하다. 알고 있지만 죽음은 나에게 너무 멀고 희미한 세계라서 유한성이 와닿지 않는다. 유한한 삶이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처음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한하니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나만의 삶을 살자? 유한한 삶이 눈앞에 다가온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살기 시작하고 그동안 놓쳤던 일상의 순간들을 소중히 느낀다. 인간은 참 어리석고 찌질한 존재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왜 뒤늦게서야 후회하고 반성하고, 깨닫는 걸까? 뒤늦게라도 후회와 반성, 깨달음을 얻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삶이 유한하다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자유와 선택이 있다. 자유와 선택을 온전히 누리며, 타인이나 세상에 맞춰진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자신에게 가치 있고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이 유한한 이유는 고통과 불행에도 끝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끝에서 만날 달콤함이 얼마나 황홀할지 기대가 되는 것도 같다.


유한한 삶. 문득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니 제 수명을 다하고 길거리로 떨어져 바람과 사람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쉽게 치이는 나뭇잎, 갈색 옷을 입고 겨울바람에도 단단히 서 있는 나무,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리는 차들, 바깥 풍경을 가득 채운 것이 덧없이 느껴진다. 진짜 인생은 춘몽이다.


삶은 고통이다. 불행과 고통이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니까, 부정적인 것과 거리를 두려고 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삶은 애초에 고통과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고, 우리는 각자 주어진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라는 것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이런 선물을 원한 적 없으나, 불행과 고통을 준 대신 삶이라는 거대한 도화지를 줬다. 네 것이니 마음대로 그리고 지우고, 칠하라며. 우리는 각자 도화지가 있음에도 남들을 따라하고, 더 좋은 것을 좇다가 신이 준 도화지를 버리고 자신을 잃어버린다. 신은 버려진 도화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신은 이마저도 예상했을지 모른다. 신은 혀를 차거나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신은 우리에게 여러 번 기회를 준다. 유한한 삶, 고통과 불행으로 굴러가는 삶의 단맛을 맛보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받아들임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발견을 내 몫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 받아들임을 경험하고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유롭다고 느낄 때,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오를 것이다. “, 받아들임이 비로소 내 것이 되었구나.”


특별하지 않다’,가 아니라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고 있는 그대로 특별하다고 말해준 이 책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여정에 있는 이들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갤리온’(웅진지식하우스)에서 받았습니다:)


 

#당신은결코특별하지않다 #전미경 #갤리온 #웅진지식하우스 #받아들임 #인정 ##고통과불행 #타인 #관계 #가치 #선택 #자유 #완전함 #특별함 #책로그 #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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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증전문 삼신병원 푸른숲 어린이 문학 48
이재문 지음, 모루토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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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소년 시기는 어땠지?’

: 이재문, 환상통증전문 삼산병원(푸른숲주니어)

 


4명의 아이들 에피소드를 통해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성장통과 내면의 상처를 판타지적으로 형상화한 환상통증이라니. 네 아이의 에피소드를 읽고 공감했고, 청소년을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위로 받았다. 굳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잘하고 있어.‘와 같은 말을 해주지 않아도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일이나 감정 등을 알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된다. 말보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더더욱.


이재문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데 다른 독자들 리뷰를 읽어보니 이 작품 말고도 전에 작품에서부터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듯 보인다. <환상통증전문 삼산병원>만 읽고도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은 청소년 소설를 만났다!‘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재문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고 찾아 읽을 것 같다. 나랑 비슷한 마음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 비슷한 마음을 형상화할 수 있도록 찾는 건 내 몫이다, 푸른숲주니어에서 계기를 만들어줬으니까! 청소년 시기, 소설 덕분에 덜 외로웠고 자연스럽게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게 됐고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쓰기와 멀어지고 꿈을 사치라고 여기며 흐릿해졌는데 뭔가 펜을 들고 싶다는 느낌이 아주 조금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나의 청소년기는 어땠지?’ 준희였고 다윤이었고 태민이었고, 유림이었다. 네 아이가 모두 있었다. 그중 두드러진 건 태민과 유림이었다. 매일 내 안에는 태민과 유림이 오고 가고, 준희와 다윤이가 종종 찾아오면서 하루라도 나 자신으로 존재했던 때가 없었다. 그래서 늘 피곤했고 불편했고, 마음에 정리가 되지 않은 감정들이나 상황들이 뒤섞여 쌓인 채 어른이 된 지금도 비우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비워야 할지 모르고, 비우고 나면 내가 아예 사라질 것 같아서 겁이 난다. 다시 채워야 하는 게 가장 두렵다, 지금 나를 채우고 있는 게 나를 힘들고 두렵게 하는 걸 알면서도 이미 내 것으로 있었던 시간이 길어졌고 굳어져서 떼어내거나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창 시절을 졸업했다고 해서 준희와 다윤이, 태민이와 유림이가 없어진 건 아니다.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한다. 학창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른의 삶이라는 걸 알아차릴 때마다 현타가 세게 오고,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외로움에 빠지곤 한다. 그때 환상통증전문 삼신 병원이 있었다면, 길거리에서 간호사 백이와 만났더라면 그렇게 삼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결국 제 의지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문제를 꿰뚫어보고 마음을 알아보고, 부담스럽지 않게 해결 방법의 힌트를 주며 응원해주는 삼신 선생님의 존재는 더더욱. 학창시절 때 삼신 선생님과 같은 어른을 난나지 못해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가끔 고개를 들어 어른이 된 나를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자신을 벗어나기에는 내가 불안정하고 약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듯이. 뒤늦게야 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삼신 선생님이 그때의 나에게 사과를 하고 도움을 주는 느낌이라서 읽는 내내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준희는 싫은 소리를 못하고 늘 엄마가 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 애쓰며 뭐든지 완벽하려고 한다. 다윤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이 서툴다. 태민이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자신을 답답해 하며 다른 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유림이는 뭐든 완벽해야 하며, 타인에게도 그 완벽함을 강요하고 예민해서 뭐든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네 아이의 특징을 보면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그냥 그 시기에 겪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네 아이의 일상, 더 넓게는 삶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다행히 네 아이는 본인이 가장 혼란스러울 때 삼신 선생님을 만났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 네 아이와 삼신 병원의 만남은 현실에도 이루어져야 할 만남이라고 계속 생각한다. 삼신 선생님의 부드럽지만 정확한 진료와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세상 곳곳에 아주 많으니까.


준희와 다윤이, 태민이와 유림이의 문제는 성장과 경험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문제는 긍정이다. 문제가 계속 문제로만 남는다면 그건 긍정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네 아이 모두 경험하면서-준희는 개구리 인간이 되고 다윤이는 날카로운 덧니로 고통을 경험하고, 태민이는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유림이는 친구와 다툼 중에 생긴 본인 눈에만 보이는 친구 상처에 걱정하면서-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했다. 아이들이 경험 안에서 겪어야 할 불안이나 다툼, 복합적인 감정들은 훗날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이 어른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말이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네 아이들이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것들을 마주하면서 본인들 스스로 느낄 것이다. 전과 달라진 자신을, 마음이 단단해진 자신을, 비로소 가벼워진 자신을.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뱉어야 하고 인정해야 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근데 쉽지 않다. 뱉은 말은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칼이 되어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그렇다고 쌓기만 하면 마음이 건조해져 피부가 가려워지고 개구리가 될지도 모른다. 인정하면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타인에게 인정하는 것인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타인을 배려하는 거라서 힘든 일이다. 수학의 정석을 담은 바이블처럼 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 등을 주제로 하여 낸 책이 많아도 그것을 따라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처럼 시간 낭비인 경우가 많다. 그저 직접 경험하고, 배우고 깨닫는 수밖에.


<환상통증전문 삼신 병원>을 방문한 아이들이라면 건강하게 앓고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진 병, 몸집을 부푼 병을 건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치료할 수 있다. 치료하는 건 선생님의 개입은 2%이고, 환자 본인의 개입이 98%이다. 아이들 모두 삼신 선생님과 백이 간호사님 덕분에 건강하고 한결 가벼운 일상을 전과 다른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믿고 가보는 것이다, 의심하면서도 가보는 것이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고 가벼워지고 싶다는 마음과 의지가 있다면 <환상통증전문 삼신병원>로 망설임 없이 오면 된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한다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사건이 생길 것이다.


문득 삼신이 내 주변에서 나를 돌보고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크게 다치거나 힘들지 않고, 잘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늘에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니니 말이다. 삼신이 고심 끝에 지금의 부모 첫 딸로 점지했고, 내가 잘 크고 있는지 성장하는 내내 지켜봤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며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변신의 귀재 백이처럼 사물이든 사람이든 바람에 힘없이 나부끼는 가을 낙엽 등으로 변해서 말이다. 지금도 내 주변에 있을 삼신에게 고맙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 작품을 잘 쓰는 작가님은 작가의 말마저 명쾌하게 잘 쓰는구나.’ 생각했다. 이 작품에 대한 애정, 아이들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앞으로도 작가님이 백이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독자들을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번 만남으로 작가님의 작품 소식을 기다리는 독자가 한 명 더 늘었다는 걸 작가님한테 전해졌으면 좋겠다. 외국 신화만큼 우리나라 신화도 재밌을 것 같다고 처음 생각했다. 우리나라 신화를 찾아 읽어봐야겠다. 삼신에 대해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달까? 작가님이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를 정말 애정한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루이스 작가님의 그 시리즈를 어릴 때부터 돌려서 보고, 어른이 된 지금도 방금 본 것처럼 내용이 술술~ 머릿속에 재생된다. 어릴 때 본 작품이 어른이 된 지금도 생각나는 건 그 작품이 정말 좋거나 오랜 시간이 기억될 만큼 특별했다는 거다. 그런 작품이 내게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재문 작가님 작품 또한 나를 포함하여 많은 독자에게 그러길 바란다.


환상통증은 작가님이 만든 설정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환상통과 다르지만, 그 고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마음 편하지 않는 하루를 보낸 아이들, 환상통증이 심해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든 닿길 바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보내고 있는 시간이 자연스러움을 알고, 점점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환상통증을 앓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릴 땐 어른아이로, 어른이 되었을 땐 아이어른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환상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삼신 병원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나의 삼신 병원은 혼자 책 읽는 시간이다). 각자만의 삼신 병원에서 환상통증의 원인과 증상을 제대로 자세히 알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환상통증은 누구나 앓을 수 있고, 치료를 받는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며 언제든 다시 치료가 필요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치료의 시작일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신과 두루미 백이의 캐릭터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하다. 평범한 인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특별하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삼신이 점지한 우리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한다, 삼신이 우리를 위해 쏟은 사랑을 위해서라도.

 

이재문 작가님을 알게 되어 반갑고,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청소년 소설이라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주니어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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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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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에 마주앉아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삶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 에이모 토울스, 테이블 포 투(현대문학)(*프리뷰북 서평단 선정)

 


짧은 소설이지만 뭔가 장편소설을 읽은 느낌이었다. 스토리가 특별하거나 몰입력을 올리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새 이 책에 빠져 있다. 시작은 따분하게 느껴졌지만, 뒤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몰입하여 빠르게 읽었다.


카네기홀에서 불법으로 녹음기를 틀어 콘서트 연주를 한 노인과의 실랑이를 다룬 이야기라고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소개할 수 있다. 간단한 소개지만, 곱씹을수록 느껴지는 아쉬움과 찝찝함은 무엇일까?


토미(토머스 하크니스)라는 캐릭터 때문에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왜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콘서트 연주를 몰래 녹음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일단 앞뒤 상황 재지 않고 저지르고 보는 토미의 행동에 눈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토미는 자신의 생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생활에 대한 예를 들면 하루를 정해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행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투자 은행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와 잘 어울리는 모습 같다. 토미의 행동으로 불편함을 느낀 건 나뿐만 아니다. 카네기홀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그에 따른 예의 등이 있겠지만, 그 공간에 대한 분위기와 예의와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건 토미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몰래 녹음하고 있는 노인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의 태도는 흔히 말하는 우아함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어설프게 흉내내며 자신의 서툰 모습은 아예 보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인물이랄까. 장소나 위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예외인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서 파인 씨는 토미와의 소란을 겪고, 코넬의 말대로 카네기홀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그를 찾는 토미의 모습은 정말 숨이 막혔다. 찾는 이유가 사과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말이다. 파인 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집요하게 구상하고 지도까지 만들어 제 발로 많은 도어맨을 만나 결국 파인 씨를 찾아냈다.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것이 익숙한 것처럼 보이는 토미는 파인 씨가 혼자 산다는 도어맨의 말을 듣고, 약국을 다녀오는 파인 씨를 몰아세운다. 파인 씨를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그런 토미를 침착하게 대한다. 파인 씨는 토미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토미는 파인 씨로부터 아내가 죽은 후로부터 혼자 산다는 답을 듣고, 그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삶을 마주한다, 아주 얕고 일부인 그의 삶을. 그의 삶을 통해 토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토미는 아무래도 움직이는 제 삶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토미는 파인 씨에게 사과를 여러 번 하고, 파인 씨는 토미의 사과를 받지 않는다. 사과하지 말라고 한다. 파인 씨는 오히려 토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내가 병을 앓고 나서 카네기홀에 두 번 다시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파인 씨에게 그의 아내 바바라는 간호사처럼 있지 말고 연주회에 가길 원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말을 따라 연주회를 갔고, 연주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그에게 연주가 어땠는지 물었지만, 그는 연주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녹음해서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듣기 시작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녹음을 그만했어야 했는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소란이 있었던 날, 녹음해서 정성들여 라벨을 붙이고 알파벳 순서대로 정리한 테이프도 모두 내다 버렸다고 했다. 연주 녹음은 그에게 아마 아내를 위한 일로 시작한 것이지만 어쩌다 삶 이상이 되었다. 음악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에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한 그의 아내 바바라는 삶을 사랑했고, 파인 씨는 뒤늦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제 삶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은 신을 용서하고,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오래 살고 있는 자신을 용서하게 된 것이다. 어느 새 음악은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 들릴 때, 그가 느낀 벅참은 얼마나 저릿하고 찌릿했을까.


토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토미에게 했던 말, 파인 씨의 딸 바람대로 토미가 마음이 불편했던 장면 모두 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부분이라서 머릿속에 반복재생된다. 파인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부딪치고 깎이고 닳아진 거라서 더 와닿았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보냈어야 할 시간들을 그에 대해 정보로만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듣는 것뿐. 누군가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교통사고와 같은 충격이다. 파인 씨의 이야기를 듣고 토미는 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토미가 살면서 두고두고 녹음기와 파인 씨, 파인 씨의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날 것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들이받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짐작도 못하고 그대로 몰려오는 파도를 맞아야 하는 일은 아프고, 외로운 일이다. 카네기홀에서 시작된 작은 소란이 거대한 폭풍을 가져오다니, 어쩌다 마주앉은 테이블에서 직면한 현실. 그리고 시작된 삶. 토미의 삶은 이제 시작되었다.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던 삶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삶을 만나는 날, 파인 씨의 녹음 행위에 대한 강한 수치심이 아닌 그 너머의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라고 불리는 작가라는데, 단편소설 밀조업자(테이블 포 투) 읽으니까 알 것도 같다. 에이모 토울스 작가님 작품을 처음 읽는데, ‘파인 씨가 꼭 작가님 같다고 생각했다.

 

이 프리뷰북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현대문학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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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에게 가는 길 위픽
전삼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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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애도 중, 가장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 전삼혜, 나름에게 가는 길(위픽시리즈/위즈덤하우스)

 


어째서 이 글을 이제야 만난 걸까. 두고두고 꺼내볼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조금 더 일찍 만나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지.’와 같은 생각들이 충돌한다. 충돌 후, 부서진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헤집는다.


나름이 무엇이기에 없애야 하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그대로 두어도 언젠가 사라질 것인데도 말이다. ‘나름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름을 애초에 이해하려는 게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은 이해될 수 없는 무언가로 그냥 나름인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호흡을 다듬고 <작가의 말>을 읽기 전에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우주의 쓰레기 청소부와 애도에서 출발된 나름에게 가는 길은 내가 만난 애도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았다(애도를 다룬 방식을 평범하면서도 색다르게 느꼈다. 우주라는 공간이 더 이상 미지의 세계거나 특별하지 않음이 한몫 한 것이다). 좋았다는 표현말고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애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많은 방식 중, 전삼혜 작가가 들려주는 애도의 이야기는 내가 바라던 애도 방식과 비슷했다. 애도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 목적, 그러나 슬퍼하는 방식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듯이 정말 많다. 어떤 방식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처음으로 나의 애도방식을 떠올렸다. 솔직히 애도 방식을 떠올리는 게 낯설고, 처음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죽음의 경험은 키우던 강아지들의 죽음이다. 내 일상을 공유하고, 나와 추억이 많았기에 그들이 숨을 거뒀을 때 눈물이 흐르고 후회를 하긴 했으나 며칠뿐이었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내 마음대로-내 마음이 편하고자-강아지별에 가서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애도는 짧고 굵은 것 같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잘 모르겠다. 애도 할 일을 만나고 싶지 않다.


여기서 가 하는 일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따분하게 느껴진다. 없애는 일을 하는 것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외로움마저 치우는 게 가 해야 할 일이라서 생각했다. 없애면서 는 처리하는 존재로 남는 것 같달까. ‘는 본인의 생활에 만족도, 불만족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인다. ’의 동생 아영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아영이의 이야기는 애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의 부모가 하는 애도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멈추길 바랐다. ‘가 아영이에게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더 이상 자신의 부모 역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그때의 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그리워하고,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지만 아영의 부모가 택한 방식은 죽은 아영이를 힘들게 하고, ‘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 힘듦을 끝내러 가 결국 찾으러 없애러 가니까. 아빠는 차라리 없애주길 바라서 에게 좌표를 남긴 걸까.


그리움이 짙으면 삶이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의 삶이 흔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 동생이 그립다. 부모와 의 애도 방식이 다르다. ‘는 현실적이다. 부모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좌표를 입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있으면 싶다가도 없으면 싶고. 두 마음이 충돌하는 는 찾고 없애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함으로써 알려줘야 하니까. 솔직히 의미 없다고, 그저 쓰레기만 더 만드는 것이라고. 어차피 내가 다 찾아서 없앤다고, 내가 없애지 않아도 사라진다고. 마음을 비우라고.

는 동생을 어떻게 애도했을까. 애도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나는 이번 한 달여간에 시간이 애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제대로 떠나보내고, 부모님한테 아영이는 이미 떠나고 없음을 알려줄 기회이고 부모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딸의 죽음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가 해야 할 일은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난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은 사람은 아주 무겁고 시간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밝혀질 게 많은 바다가 아니라 닿을 수 있는 우주와 같다. 비워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시기를 놓치면 비워야 할 것들과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뒤섞여 마음은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애도의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건강한 애도를 하는 것이 우리가 살면서 적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애도하는 방식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거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주한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애도를 찾아가는 거랄까. 애도는 각자 방식이 존재한다. 틀리거나 맞다고 할 수 없기에 애도는 조심스럽고 특별하다.


작가님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고 잊었던 사실을 잊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글 자체가 위로면서 동시에 애도가 아닐까. ‘잊어야 한다와 잊지 말아야 한다를 타인이 재단하기는 어렵다, 작가님 말대로. 근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애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만으로도 위로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잊으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였다.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쓰레기 꼴이었다. ‘가 필요하다. 나의 우주 쓰레기 청소를 부탁하고 싶다. 미련이나 그리움은 계속 생겨난다. 그래서 계속 비워야 한다. 미련이나 그리움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청소라고 불러야겠다. 청소된 나의 우주라면 정말 잊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 삶이 계속 굴러가려면 마음 다잡고 대청소가 필요할 듯 보인다.


가방에 챙겨 외로울 때마다 뭔가 놓치거나 잊은 것 같을 때, ‘도망은 때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 꺼내 읽어야겠다. 서툴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바퀴에 이것저것 다 달라붙어 무겁지만 그럼에도 굴러가는 이유가 있겠지?

 

위픽시리즈 중, 처음으로 읽은 시리즈인데 너무 좋다. 위픽시리즈 한 권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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