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김성은 지음, 양양 그림 / 문학동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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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알아서 찾아오는 미래
: 김성은 글•양양 그림, 『대현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미래 시제로 이어지는 짧은 문장들이 이리도 다정할 일인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생각이 많아졌다. 도대체 지금을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오늘이 미래에 도움이 되기나 할지 등등. 대현 씨에게 일어날 일을 미래 시제로 표현한 의도는 잘 알겠다. 그리고 표현을 그렇게 한 덕분에 깨달은 것도 여럿 있다.
대현 씨가 열흘 뒤면 지영 씨와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남편, 아빠로 결혼 전까지 살아오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는 소방관을 직업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불길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누군가의 삶을 구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대현 씨가 결혼 전후로 차이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지지해줄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 대현 씨가 그리는 미래에 이제 평생을 약속한 아내와 아이가 있는 것이다.

미래 시제가 반복되는 이 그림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과거에 발목을 붙잡힌 채 현재를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는 감히 계획하고 떠올려볼 엄두조차 내지 못 한다. 매일 어제를 흘려 보내지 못하고 곱씹으며 지금 이 순간을 어제에 베어 물리는 데 보내고, 현재에 집중하지 못 함으로써 갖는 외로움, 공허함 등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설렘을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바라봐야 할 것을 알면서도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아직 오지도 않은 아주 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스트레스와 걱정, 불안, 짜증으로만 보내고 있다. 재미없고 안타까운 삶이다. 지나간 과거를 놓지 못하는 것과 오지 않은 미래를 끌고 와서 제멋대로 소설 여러 번 써버리는 것은 내가 과거와 미래를 대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힌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몰라서 구석에 처박아두었지만, 이제는 공간도 자리가 없다며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리듯이 내가 놓지 못한 과거와 내가 억지로 끌고 온 망상에 불과한 미래를 게워낸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내 안은 진짜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안 보이는 척 하고 있다. 내가 언제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해서 존재해야 할 곳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이 과거가 되고, 미래로 향하는 걸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주 잊는다. 가끔은 무엇을 위해 오늘을 사는지, 숨만 붙어 있다고 하루하루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 의문은 꼬리가 아주 길어서 내가 어딜가든 쫓아와서 답을 하라고 강요하다. 그 답을 피하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답이 답이 아닌 것 같아서, 답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워서. 솔직히 이 의문에 수학문제 답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은 없다. 나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딱 맞는 답을 요구하고 있다. 나조차도 나에게 빈틈 대신 딱 맞는 퍼즐 조각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뭔가에 쫓기듯 바쁘게 살아도 자꾸 뭔가 비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채우고 있지만 밑빠진 독에서 물이 빠지는 것처럼 채운 것들이 빠진다.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빈 손인지도 모른다.
나는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사소한 행동에서 의미를 집요하게 찾는 것이다. 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면 내 주변에 있는 뭔가를 보거나 멍하니 시선을 고정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나를 보는 거지? 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혼자 바쁘게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25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그래서 일상이 되었고, 일상이 된 만큼 피로가 엄청나게 누적된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행위는 즐겁고 특별한 일이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그렇지만 나는 의미의 긍정이 아닌 부정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그 경험을 만드는 것도 하는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개입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일까지 의미 찾는 것에 집착하는 나에게 하루에 있는 일이 전혀 사소하지 않다. 모든 일이 큰일이다. 매일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파악해야 하고,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한 의미를 집요하게 찾기 위해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스스로 철창이 빼곡한 감옥에 가뒀다. 감옥에서 밖을 바라보는 여유와 자유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을 잃고 있다. 본래의 모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중간에 다시 제 발로 감옥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고.
대훈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는 말에 확신이 느껴져서 좋다. 처음에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계속 제목을 곱씹어 보니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대훈 씨의 태도가 지금을,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대훈 씨는 소방관으로서 할 일을 하며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금에 존재하는 대훈 씨는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 모여 미래를 이루는 것이니까.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살안가는 대훈 씨에게는 지금만 존재할 뿐, 미래는 때가 되면 알아서 대훈 씨한테 다가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미래에 닿을 수 없다. 현재 곧 과거이자 미래인 것이다. 미래를 아무리 계획하고, 미리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시간 낭비하는 일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대훈 씨가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대훈 씨의 앞날이 미래 시제로 반복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지금도 몇 시간 후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은 상황을 상상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는 지금이 아닌 몇 시간 후라는 내가 만든 가상의 시공간에 가 있다. 그러니 지금 존재해야 하는 나의 시공간에 내가 부재하니 과거와 현재, 미래 어느 한 곳에서도 온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쉽지 않겠지만 지금은 지금,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봐야겠다.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하며 나의 부재로 인한 공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대훈 씨는 계속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금을 살 것이다.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이다. 과거와 미래에 얽히지 않고 그냥 현재를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집중하여 사는 것인데 과거와 미래에 대해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하니 내게 주어진 삶이 탁해지고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자주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느라 자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잃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훈 씨는 지금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를 떠올리며 지금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 미래가 알아서 제 발로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좋겠다. 세상 곳곳에서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지금 이 순간’을 부지런히 살고 있을 모든 대훈 씨와 지영 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가끔은 과거와 미래에 닿아도 좋지만 오래 있기에는 현재가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나에게 하고 싶은 말!).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고, 간절히 그러길 원한다고 내가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특별한 일인지 알았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니까, 살아내야만 하니까, 지금 이 순간을.’이라는 문장이 내 마음 한켠에 천천히, 꾹꾹 눌러 새겨지기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용기가 내게도 있다고, 그냥 지금을 살라고 스스로 덤덤하게 말한다.

★ 이 책은 뭉끄 6기 4월 활동을 위해 문학동네에서 받았습니다:)


#대훈씨는지금미래에대해생각하지않는다 #김성은글 #양양그림 #문학동네 #뭉끄6기4월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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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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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방법
: 이치훈 에세이, <명상하는 마음>(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ost <어른>은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어른>을 작사한 이치훈 작사가의 첫 에세이를 읽게 되다니 별 인연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명상하는 마음> 첵제목 아래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이라는 한 문장이 마음을 천천히 새겨졌다. 고요와 온전한 나, 빛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이질적이고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명상하는 마음>. 1장은 <그림자를 사랑하는 연습>, 2장은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1장은 이치훈 작사가가 아닌 ‘사람 이치훈‘의 이야기였다. 가장 숨기고 싶고 본인조차 본인에게서 도망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위한 삶을 산 상처와 아픔에 절여진 사람 이치훈이었다. 즉. 사람 이치훈의 지난날 고백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아파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각자 도망치고 싶고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상처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니까. 세상에 발표한 노래가 꽤 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작사가 이치훈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나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상처 받고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어서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사가가 명상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냥 유명세 입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얹어서 글 한 편 세상에 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다정함이 전혀 없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음 끝에는 부끄러움과 반성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명상이라는 주제로 흰 종이를 가득 채운 다른 도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르치려기 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명상에 관련한 책보다 더 신뢰가 가고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문장마다 이치훈 작사가의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명상으로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각자만의 고요에 닿길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내 안에 고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고요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처음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고요를 찾아서 내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내가 바라던 자유에 닿고 싶다.
2장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을 찾는다. 고요에 가닿는 길은 정말 고단했다. 이 길 끝에 진짜 고요가 있을지 의심이 들고,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이치훈 작사가도다 똑같이 말한다. 받아들이고, 이름을 붙이고, 멈춰보라고.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라고. 뻔한 말이지만 이치훈 작사가만의 특정한 톤이 똑같은 말에 진정성을 담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냥 얼버무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곱씹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받아들임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두 번 효과를 봤다. 출근길에 일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불안이라고 속으로 이름을 붙이니 한결 나아졌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나아진다는 것을 꾸준히 하지 않고서 계속 불안에만 떠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깨달았다. 
 주말에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분명 주말에 일이 아니라 쉬었는데도 짜증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누워서 쉬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계속 다음주에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등 쉬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니 당연히 몸도 편하지 않을 수밖에.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고 쉰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쉼은 몸이 먼저 멈추고, 몸 안에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음이 자리 잡으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몸과 마음이 묻는 안부에 답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답을 해줄 것이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쉼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니까.
미소와 자세와 호흡은 한 세트다. 미소를 지어보라기에 나는 타인에게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한숨부터 나왔다. 틀렸다. 나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미소는 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다. 나에게 미소 지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보여야 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거칠고 모질었다. 남한테 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했더라면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버티는 힘을, 나는 잘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족하지 않게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짠하게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반복하면 다정함과 친절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도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하다보니 요즘 짜증이 늘고 한숨으로 얼굴이 그늘져가고 있던 것을 느끼던 참이다. 그런데 짜증과 한숨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내가 참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내 속이 썩어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치훈 작사가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미소와 더불어 호흡과 자세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내 하루는 전과 다르게 밝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미소도 덧붙여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게 뭔하는 건가 싶고, 이걸로 변화가 생기기나 할지 의문이 들겠지만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자세와 호흡, 미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믿고 싶다. 나의 가벼운 하루하루를 위해서.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고통을 가장한 깨달음을 매순간 주는 것 같다. 한때는 신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만 있는 거냐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는데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며 원망하고 따지기도 했다(나의 원망이 신에게 가닿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이 불행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을 거라고 적어도 믿고 싶으니까.). 영원히 볼 일 없을 신을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신도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도 특별한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깨닫고 경험한 모든 것이 명상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각자만의 명상법을 매일 만들고 찾는 중이다. 아마 지구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상법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명상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이라면 자신에게 정답이다. 답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는 대신 나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발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삶은 이미 삶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쳐준 게 끝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이 가르쳐준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이 가르쳐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것 중에 몇 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였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내 이름을 건 이 지구별에서 단 하나뿐인 삶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된다.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이야기, 제안한 것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 시간들 너무 애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놓쳐버린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아주 잠깐 내 안에 머물다 바람타고 저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흰 종이에 수놓은 검은 글씨의 솔직한 다정함. 진심으로 각자의 고요에 가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이치훈 작사가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 마음을 그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함께 해준 웅진지식하우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한때 명상을 거창하고, 닿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명상은 세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명상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고, 어수선한 마음(안)이 차분해지면 감각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내가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배운 명상은 감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이다. 명상을 자주 해야겠다, 나의 고요에 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마 오랜 수행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오래 걸려도 좋다, 생각지 못 할 때 고요에 닿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명상하는마음 #이치훈에세이 #웅진지식하우스 #나의아저씨ost #명상 #어른 #내마음 #자세 #호흡 #미소 #있는그대로 #멈추기 #받아들임 #마음챙김 #서평 #책로그 #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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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마음 -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
이치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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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방법
: 이치훈 에세이, <명상하는 마음>(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웅진지식하우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진 않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ost <어른>은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들었던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어른>을 작사한 이치훈 작사가의 첫 에세이를 읽게 되다니 별 인연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명상하는 마음> 첵제목 아래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이라는 한 문장이 마음을 천천히 새겨졌다. 고요와 온전한 나, 빛나는 시간이라는 표현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에 이질적이고 상관 없이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3개의 챕터로 구성된 <명상하는 마음>. 1장은 <그림자를 사랑하는 연습>, 2장은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1장은 이치훈 작사가가 아닌 ‘사람 이치훈‘의 이야기였다. 가장 숨기고 싶고 본인조차 본인에게서 도망치고,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위한 삶을 산 상처와 아픔에 절여진 사람 이치훈이었다. 즉. 사람 이치훈의 지난날 고백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얼마나 아파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각자 도망치고 싶고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상처 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살아가니까. 세상에 발표한 노래가 꽤 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가 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 작사가 이치훈은 사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면서도 나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상처 받고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어서 스스로 역겨움을 느꼈다. <명상하는 마음>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작사가가 명상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냥 유명세 입어 그럴싸한 문장 몇 개 얹어서 글 한 편 세상에 내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다정함이 전혀 없는 부정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깨달음 끝에는 부끄러움과 반성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명상이라는 주제로 흰 종이를 가득 채운 다른 도서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르치려기 보다 이런 방법이 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명상에 관련한 책보다 더 신뢰가 가고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직접 경험했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문장마다 이치훈 작사가의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져서 이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명상으로 이 책을 읽을 모두가 각자만의 고요에 닿길 바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덕분에 내 안에 고요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 고요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처음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고요를 찾아서 내 고요 속에서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내가 바라던 자유에 닿고 싶다.
2장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고요에 가닿는 길을 찾는다. 고요에 가닿는 길은 정말 고단했다. 이 길 끝에 진짜 고요가 있을지 의심이 들고, 자꾸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처럼 이치훈 작사가도다 똑같이 말한다. 받아들이고, 이름을 붙이고, 멈춰보라고. 자신에게 미소 짓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라고. 뻔한 말이지만 이치훈 작사가만의 특정한 톤이 똑같은 말에 진정성을 담는다.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냥 얼버무렸던 적이 여러 번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곱씹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는 여전히 받아들임과 잘 지내고 있지 못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두 번 효과를 봤다. 출근길에 일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었고, 내가 지금 느끼는 게 불안이라고 속으로 이름을 붙이니 한결 나아졌던 적이 여러 번 있다.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연습해야 나아진다는 것을 꾸준히 하지 않고서 계속 불안에만 떠는 나의 모습을 자각하면서 깨달았다. 
 주말에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분명 주말에 일이 아니라 쉬었는데도 짜증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몸은 누워서 쉬었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계속 다음주에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는 등 쉬지 못하게 했다. 마음이 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니 당연히 몸도 편하지 않을 수밖에. 이불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고 쉰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쉼은 몸이 먼저 멈추고, 몸 안에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마음이 자리 잡으면 안부를 묻는 것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몸과 마음이 묻는 안부에 답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언젠가 답을 해줄 것이고,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쉼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니까.
미소와 자세와 호흡은 한 세트다. 미소를 지어보라기에 나는 타인에게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한숨부터 나왔다. 틀렸다. 나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 미소는 나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다. 나에게 미소 지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보여야 했다. 나는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어색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다. 남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거칠고 모질었다. 남한테 했던 것의 절반이라도 나에게 했더라면 흔들림 속에서 단단히 버티는 힘을, 나는 잘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족하지 않게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가끔 짠하게 나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나에게 미소를 지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반복하면 다정함과 친절함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도 여유롭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박하다보니 요즘 짜증이 늘고 한숨으로 얼굴이 그늘져가고 있던 것을 느끼던 참이다. 그런데 짜증과 한숨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내가 참는 것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참으면 내 속이 썩어갈 것이 뻔하지만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치훈 작사가 덕분에 방법을 찾았다. 미소와 더불어 호흡과 자세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내 하루는 전과 다르게 밝아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미소도 덧붙여서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게 뭔하는 건가 싶고, 이걸로 변화가 생기기나 할지 의문이 들겠지만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치훈 작사가가 자세와 호흡, 미소만으로도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 믿고 싶다. 나의 가벼운 하루하루를 위해서.
3장은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고통만 준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고통을 가장한 깨달음을 매순간 주는 것 같다. 한때는 신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만 있는 거냐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는데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며 원망하고 따지기도 했다(나의 원망이 신에게 가닿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신이 불행한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리가 없을 거라고 적어도 믿고 싶으니까.). 영원히 볼 일 없을 신을 원망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신도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질러 놓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도 특별한 게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고 깨닫고 경험한 모든 것이 명상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사는 우리는 각자만의 명상법을 매일 만들고 찾는 중이다. 아마 지구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명상법은 각자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명상법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이라면 자신에게 정답이다. 답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 있겠지만, 오답이라고 하는 대신 나를 지켜주고 일으켜 세우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발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질 것이다. 삶은 이미 삶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르쳐준 게 끝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이 가르쳐준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죽기 직전까지 삶이 가르쳐준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것 중에 몇 개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받아들였다면 그걸로 만족하면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내 이름을 건 이 지구별에서 단 하나뿐인 삶을 본인만의 것으로 가득 채우면 된다. 삶이 가르쳐준 명상법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깨닫고 받아들이고,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치훈 작사가가 들려준 이야기, 제안한 것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 시간들 너무 애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놓쳐버린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들은 아주 잠깐 내 안에 머물다 바람타고 저멀리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명상하는 마음>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흰 종이에 수놓은 검은 글씨의 솔직한 다정함. 진심으로 각자의 고요에 가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이치훈 작사가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 그 마음을 그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함께 해준 웅진지식하우스에 고마움을 전한다.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만의 명상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한때 명상을 거창하고, 닿지 못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명상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젠 명상은 세상에서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명상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고, 어수선한 마음(안)이 차분해지면 감각에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내가 <명상하는 마음>을 통해 배운 명상은 감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보는 것이다. 명상을 자주 해야겠다, 나의 고요에 닿아 온전한 나로 빛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아마 오랜 수행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오래 걸려도 좋다, 생각지 못 할 때 고요에 닿은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명상하는마음 #이치훈에세이 #웅진지식하우스 #나의아저씨ost #명상 #어른 #내마음 #자세 #호흡 #미소 #있는그대로 #멈추기 #받아들임 #마음챙김 #서평 #책로그 #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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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 뜨겁고 치열하게 달린 17년
송영인 지음 / 꿈꾸는인생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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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에 흠뻑 빠져버리다! 🇧🇪
: 송영인,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뜨겁고 치열하게 달린 17년) 🇧🇪 (꿈꾸는인생)

누군가의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삶이 무난하지 않고 바람 잘 날이 없어서 재밌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을 듣고 공감한다고 해도 내 삶이 아니기에 언제나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밖에 볼 수 없어서 느껴지는 재미인 것 같다. 만약 뜨겁고 치열하게 달린 17년이라는 시간의 주인공이 송영인이 아닌 나였다면 재미라는 단어 대신 거친 단어를 생각했을 것이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라는 제목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송영인이라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정말 노빠꾸 상여자다!’라고 생각했다. 노빠꾸와 상여자라는 단어가 둘 다 강해서 뭔가 적당한 선을 훨씬 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오히려 벨기에 생존기에 힘을 더 실어주고, 그녀의 삶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 송영인 작가, 그녀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쭌 꿈꾸는인생 출판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노빠꾸 상여자답게 바람 잘 날이 없는 벨기에 생존기는 정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부지런히 달려왔다. 송영인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앞으로 살면서 만날 일도 없지만 언젠가 만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주변에 송영인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송영인이라는 사람이 보여주는 집념과 의지, 생활력, 에너지 등을 보여주는 문장 하나하나가 숨을 쉬어 나에게 그 숨이 직접 닿는 느낌이다. 송영인이라는 사람한테 반했고, 더 알고 싶어졌다. 그녀의 이야기가 재밌으면서도 대단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기도 했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도 했다. 복합적인 감정과 마음으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걸었더니 읽어야 할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쉬움이 생겨서 일부러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을 며칠 사이로 나눠서 읽는 중이다. 사실은 누군가의 삶을 짧은 시간 안에 읽고 마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아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까지 지나와야 했을 시간을 감히 짐작해본 건데 송영인이라는 사람은 그 시간이 참 치열해서 빨리 읽고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
그녀가 벨기에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한 과정을 읽었을 때는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사람 인연은 갑작스럽게 생각지 못 하게 찾아오는구나, 생각했다. 조선 선비인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는 조금 숨이 막히긴 했지만 조선 선비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은 그녀에게도 보이는 조선 선비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살아온 그녀에게 벨기에 남자와의 결혼은 아버지의 말에 처음 반하는 거였다. 딸을 위하는 마음으로 딸에게 조선 선비의 모습으로 엄하게 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버지가 살던 시대와 그녀가 살고 있고 살아갈 시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버지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시대가 곧 그녀가 살고 있고 살아야 할 시대이다. 그녀가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벨기에 남자와의 결혼이었던 것 같다. 벨기에 남자와의 결혼은 아마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엄격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조금은 자유롭게 살아도 좋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자유를 갖는 건 당연하지만 자유를 누리는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는 것을,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조선 선비인 아버지보다 더 엄격하다는 것을 그녀는 벨기에에서 지내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그녀의 벨기에의 생활이 낭만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에서 며칠이라도 좋으니 지내는 게 꿈인 나에게는 그녀의 벨기에행이 부러웠다. 그런데 내가 놓친 것은 그녀가 여행이 아닌 이민을 간다는 것이다. 여행과 이민은 완전히 다르다. 여행은 집을 떠나 며칠 다른 곳을 즐기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민은 자신이 그동안 지내고 만든 공간 등을 모두 두고 떠나서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버지와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벨기에행 비행기를 탄 그녀는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고 했다. 그 눈물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지만 당사자가 아니라서 20%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비행기에서 흘린 눈물은 눈물도 아니었다. 벨기에에 적응하고 생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하게 되기까지 그녀가 흘린 눈물로 바다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릴 때는 후회와 분노, 답답함 등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위에 떠있는 부서진 뗏목 조각 같았겠지만, 그 폭풍우를 지나고 나서 그때를 떠올리면 그럼에도 잘 버텨온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바람 잘 날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인생이란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나쁜 일은 작정을 하고 괴롭히는 것처럼 굴비 엮듯이 계속 일어나며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성취하게 된다는 것. 직접 부딪쳐야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아직은 인생이라고 부를 만큼 살지 않은 내가 그녀의 치열한 벨기에 생존기를 통해 배웠다. 그녀의 생존기는 자극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 열심히 치엻하게 살아왔지만 소꿉 장난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살자고 했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다 쓰지 않고 힘 빼면서 사는 게 나에게 마냥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끔은 치열하게 사는 것도 좋고, 내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뽐내면서 힘을 주고 사는 순간이 있으면 훗날 내가 딛는 땅에 밑거름이 되고 단단한 받침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했다. 언어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인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모두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 등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그녀의 삶이 대단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그녀가 뭐라고 답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살아야 하니까 그러지 않았을까. 제자리에 앉아서 편한 일을 하기 보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남들에게 도움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진심이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그녀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는 것이 삶을 끌고 가는 힘인데, 그녀에게는 그 힘이 강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치는 그녀는 강철로봇보다 더 강했다. 그녀의 강한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위로도 되고, 나도 해보자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삶을 위해서.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뒤는 뭐라도 될 것이다. 그녀의 빠꾸 없는 모습은 아마 위험 요인을 따지고 보느라 때를 놓치고, 안정성을 중시해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내게 새로운 자극이고, 힘찬 응원이다. 노빠꾸 상여자의 이야기는 의미 있고 재미있고 다채로운 삶은 본인이 만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벨기에 생존을 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빠꾸 상여자는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객관적으로 득과 손실을 따졌다. 그녀의 솔직한 모습은 오히려 내가 그녀를 안타깝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다채롭게 끌고 나가고 있고, 그 삶을 세상에 들려주면서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도전과 변화, 끊임없는 노력이 주는 삶의 열매가 얼마나 달달한지 간접적으로 맛보게 해줬다. 이제는 내가 내 삶의 열매를 맺어 그 달달한 열매를 맛볼 차례다. 열매가 언제 맺힐지, 익지 않아서 쓰기도 하겠지만 부단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 나에 대해 알아가고 결국 내가 원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녀는 벨기에 생존기라면 나는 하루 생존기다. 오늘부터 어떤 하루를 보내야 할지, 내가 꿈꾸는 삶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겠다. 위험 요소나 손해볼 것은 뒤로 미뤄두고 일단은 생각하고 시작해보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벨기에라는 낯선 곳에서 언어를 배우고 적응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해내는 모습은 치열한 만큼 아름답고 단단했다. 그녀가 경험한 모든 일들,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은 지금의 그녀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살다가 삐거덕거리고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녀의 벨기에 생존기를 떠올리거나 이 책을 다시 펼쳐 위로 받을 것이다. 위로는 돌고 돌아 나에게, 이 책을 세상에 펼친 그녀에게 닿을 것이다. 벨기에 생존기가 그녀에게도 언젠가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녀의 당당하고 거침없고 솔직한 모습에 반했다. 특히, 한국사람의 특징(?)을 보여준 쎈 모습은. ‘언니!’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팬클럽을 만들고 싶을 만큼 박력있었다. 한국사람은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다는 한국의 매운맛을 경험한 벨기에인들을 뜻깊은(?) 경험을 한 것이다(하하!). 책장을 덮어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생각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재밌게 풀어낸 송영인 작가님에게, 그리고 이 책을 만나게 해준 꿈꾸는인생 출판사에 다시 한 번 더 감사하다.
벨기에하면 ‘와플‘ 말고 아는 게 없었는데 벨기에인의 일상을 그녀의 생존기를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엿보면서 사람 사는 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벨기에인과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지만-그러나 사람 일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벨기에인과는 나는 가재는 게 편도, 개미와 베짱이도 되지 못 할 거라고 확신했다 ! 벨기에인과 벨기에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한국에서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꿈꾸는인생‘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꿈꾸는인생 : 서평 등록이 너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들을 수 있는 건 참 귀하고 특별한 일입니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는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서 제가 힘들 때 많이 위로가 되고, 덤덤해서 다정한 응원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노빠꾸상여자의벨기에생존기 #송영인 #꿈꾸는인생 #벨기에 #뜨겁고치열하게달린17년 #책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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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꼬마 이야기
이보라 그림, 하하 하동훈 글, MBC 무한도전 원작 / 퍼머넌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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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아재가 하하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
: 하하, <키 작은 꼬마 이야기> (북뱅크)

그림책을 읽으면서 하하님이 듣고 싶었던 말을 책 한 권에 잘 담았구나 생각했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 명료하게 담겨져 있으니까. 하하님 덕분에 순간 올라온 울컥함을 누르고 내 마음을 차분히 달래본 시간이었다. 울어도 좋지만, 지금 울면 눈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꾹 참았다. 아직은 내가 버틸 만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눈물을 참기 어려울 때는 하하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기대어 펑펑 울어볼 것이다. 눈물이 내 안에 쌓인 것들을 녹여서 흘려 보낼 줄 테니까.

키 작은 꼬마는 세상을 우러러볼 줄 안다. 키가 작아서 키가 큰 사람들은 보지 못 하는 것들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tv 프로그램에서 하하님을 자주 봤다. 땅꼬마라는 별명으로 화면 안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하는 하하님 모습에서는 힘듦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내가 뭘 알았을까. 그 웃음 뒤에 불안과 걱정, 고민이 있었을 거라곤. 그저 하하님이 떽떽 소리지르거나 수줍게 웃거나, 멤버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어렸지만 재밌게 산다고 생각했다.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예능을 재미로만 보는 게 아니라, 예능을 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질 때부터였다. 어느 순간, 화면 안에서 웃음을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손짓, 말투에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했고, 더이상 예능이 예능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하하님이 그동안 하하님이 만들어 낸 웃음 뒤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잘 버텨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제는 키 작은 꼬마 셋의 아빠가 되어 버린 하하님께 고생 많았다고, 긴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 내게 위로를 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초등학생 때는 조회를 할 때 뒤에 두 번째에 설 만큼 키가 컸다. 그 키에서 2-3cm 크고 나서 키가 더이상 크지 않았다. 생각보다 성장판이 너무 빨리 닫혔다. 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 없지만 하하님 이야기를 들으니 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는 키로 시작해서 삶을 받아들이고 들여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키 작은 꼬마가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무언가를 딛고 올라서서 보거나 아빠가 태워준 목마로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지만, 이런 도움 없이는 세상을 높고 넓게 보는 건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키 작은 꼬마는 세상을 높고 넓게 보려하기 보다는 우러러보고, 주변을 살피는 것을 선택했다. 의자를 밟고 일어서거나 아빠한테 목마를 태워달라고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세상은 참 넓고 높았다. 생각을 어떻게 하고, 태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세상은 모양과 깊이가 다양했다. 키 작은 꼬마는 그렇게 자신이 볼 수 있는 세상을 보면서 직접 깨닫거나 경험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주 넓은 세상을 만났다. 기어코 가장 넓은 세상을 만난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자신이 꿈꿨던 것을 닿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하님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하나 둘, 이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것 같다. 하하님의 열정과 의지라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하하님의 도전 정신과 열정, 의지, 포기를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부럽다. 솔직히 고백하면 하하님이 괜한 곳에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안일한 나의 생각이고 쓸데 없는 오지랖이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뭔가를 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 아주 작은 일부를 보고 걱정이라니. 어리석고 한심한 내 모습을 깨닫고 나서, 하하님의 파이팅 있는 일상을 매체로 전해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떤 삶이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걷고 뛰는 이들을 본받아야겠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본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아주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모든 문장이 기억에 남지만,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라는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렇다.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서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랐던 걸까. 스스로 잘 알아주면 되는데 늘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의 수고는 내가 잘 알아주면 된다고. 이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다가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불쑥- 고개를 쳐든다. 하하님과 진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라는 마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고 얼마나 마음이 많이 다쳤을까 생각했다. 이 말이 나에게 마법을 부리듯 받아들여지면 무겁던 하루가, 소란한 마음이 가벼워지고 차분해질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주문을 걸듯 속으로 되뇌인다.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나의 수고는 나만 알면 돼, 라고. 언젠가는 나의 수고를 내가 가장 잘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의 인정이나 누군가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진 날이 너무 늦지 않게 오길, 그날을 너무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 그 누구도 아닌.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된다는 말도 마음을 적셨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하루하루가 무겁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어디서 생긴지 모를 힘이 생긴다. 생각과 말, 마음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그 힘은 자주 쉽게 잊어서 문제이지만. 인생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니 그동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고 먹었던 머리와 시선, 생각을 멀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믿어봐야겠다. 타인을 믿는 것 만큼 나를 믿고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에게 관대했더라면 나는 더 단단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하는 후회는 의미 없다. 이제부터 나를 믿고 나에게 관대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믿음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이왕이면 내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곳을 너무 멀리 돌아왔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 나를 믿고, 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포기 대신 쉬었다 다시 일어나 가는 것을 방법으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괜찮게 보낼 것이다. 삐그덕 거리는 하루가 있는가 하면 편안한 하루가 있지 않을까. 다양한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질 내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은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초점에 맞춰 굴렸던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살 것이다. 내 삶을 되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왔다. 외로웠고 공허했고, 두려웠다. 이제 내가 경험할 외로움과 공허험, 두려움은 전과 다를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겪고 감당해야 할 감정들이다. 그 길이 쉽지 않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키 작은 꼬마를 생각하며 내가 닿을 세상을 선명하게 떠올리기를.

무한도전 2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키 작은 꼬마 이야기>는 무도 키즈에게 반갑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무한도전은 우리의 기억에 남았지만 무한도전을 이끌어 가던 멤버들이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열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감사하다. 나의 어릴 적 영원한 재밌는 아저씨들의 열일이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열일에 힘을 보태어 주니까. 어렸을 때는 아저씨들이 툭툭, 던지던 어른들의 세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스치는 버스 같았는데, 이제는 그 버스를 타고 있다. 그래서 찾아보면서 웃고, ‘진짜 무도에는 없는 게 없네.‘라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웃는다. 이 시간마저 위로가 된다. 무도 멤버들이 먼저 걸어온 어른의 시간을 이제 내가 걷고 있는데, 그때 무도 멤버들이 이런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구나, 깨달을 때마다 웃프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위안이 된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언젠가 내가 가정을 이루어 내 자식에게도 들려줄 날을 상상한다. 아주 먼 미래 같아서 어색하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하하님이 얼마나 대단한 슈퍼맨이었는지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하하님 덕분에 나 또한 슈퍼맨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왔다는 것을.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북뱅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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