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흉가로 놀러 오세요
전건우 지음 / 시공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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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 👻
: 전건우 장편소설, 『우리 동네 흉가로 놀러오세요』 🏚️ (시공사)

공포 소설의 대가! 전건우 작가님의 작품을 또 읽게 되어 좋았다. 이번 이야기는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전건우 작가님의 나의 기대를 제대로 만족시켜줬다. 역시 믿고 읽는 전건우 작가님 작품이다.

“내가 만든 흉가 괴담이 현실이 되었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세훈이 어쩌다 동네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서 흉물스레 방치된 빈집에 그럴싸한 사연을 붙여 ‘흉가 체험‘을 만들어 파읍리 동네를 관광 명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회의에 참석한 어른들은 처음에 세훈의 의견에 시큰둥하더니 세훈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계획을 말하고 그럴듯한 사연을 만들어서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게 만드는 것을 보고, 세훈을 적극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세훈이가 만든 사연은 제법 그럴싸했다. 흉가 체험을 하는 이들, 흉가나 귀신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끌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만큼. SNS에 사연을 올리니 공유되면서 입소문 타는 건 순식간이다. 공포 체험 유튜버가 파읍리를 찾아와 세훈이 사연을 붙여 만든 흉가 체험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유튜버가 찾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방송국 작가한테까지 연락을 받게 된다.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세훈도 유튜버로 찾아보는 프로그램에서 파읍리 흉가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다더니 촬영까지 하게 된다. 문제는 촬영 당일에 생긴다. 세훈과 동네 사람들이 파읍리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도록 꾸민 사연을 가진 흉가에서 진짜 불길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세훈이 만든 흉가 괴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세훈에게 이곳으로 사람들을 부르면 안 된다면 주의를 준 무당이 떠오른다. 촬영 당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나서 무당이 저주라고 말한다. 무슨 저주일까. 도대체 이 흉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흉가에서 문제가 생기고 나서 세훈과 이장은 계획한 일을 그만 멈추기로 한다. 계속 이어가기에는 동네 사람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지 않나, 그리고 동네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들의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나. 세훈은 마을 흉가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길 바란다고 작가한테 연락하지만, 작가는 연락을 받지 않고 찍은 부분까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무당이 저주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한번 시작된 저주는 쉽게 끝나지 않을 텐데. 이미 저주는 시작되었다. 무당이 세훈에게 경고를 했을 때 가볍게 넘기지 말고 시작을 아예 하지 않았어야 했다. 파읍리에 진짜 저주가 내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 저주의 시작을 어쩌다 부추기게 된 입장이 된 세훈이니 저주의 끝도 세훈이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흉가 괴담을 만들었을 뿐인데 정말 현실이 되다니. 세훈은 현실이 된 흉가 괴담의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훈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도망온 파읍리에서 다시 서울로 도망갈 준비가 된 세훈이 뭘해야 할까?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세훈에게 이장이 찾아온다. 단체 관광객이 흉가 체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버섯 농사가 망해서 수입원이 아예 사라지더라도 그만뒀어야 했다. 혹해서 시작했으면 안됐다. 필국 아저씨가 죽을 뻔 했고, 마을 회관이 불에 타버렸다. 흉물스러운 빈집은 더이상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말고, 가까이 오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계속 경고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흉가 괴담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개입이 분명 있을 거라는 깨름칙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괴담을 만드는 사람이 괴담보다 더 무서울지 모른다. 뭐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부풀려지고 그러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흉가 괴담이 차라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벌어지기 보다 악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한 인간이 벌어진 짓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인간이 벌인 짓이라면 이 안타까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사실이 아닌 것에 구체화하여 살을 붙이니 사실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작한 탓에 일어난 일들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파읍리에서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근데 한번 시작된 저주는 쉽게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손끝에 전해진다. 사람이 죽을 거라고,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러게 왜 빈집을 비게 두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거냐고.

한번 넘기면 끝을 볼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전건우 작가님 작품! 요며칠 계속 날이 흐리고 중간에 세게 내리쬐는 햇살줄기 때문에 더웠는데, 전건우 작가님 작품 덕에 오싹함 제대로 느꼈다. 날이 덥고 습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방바닥에 누워 이 책을 꺼내 읽어도 좋다! 전건우 작가님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 덥고 습한 날씨는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시공사에서 받았습니다:)

#우리동네흉가로놀러오세요 #전건우 #공포소설 #시공사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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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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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살았던 그 같은 성이라는 것, 🏰
: 김희재 장편소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뭐라고 써야 할까. 책을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아니 책을 읽으면서 서평에 이런 내용을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주저했다.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지는 무거운 마음이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들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째서 이리도 고약한 상처를 품은 채 살아야 하는 건지, 사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어렵고 괴로운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당연하게도 소설은 답이 없었다. 이 책을 펼친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감당하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이야기를 담은 그릇도, 내가 겪어온 경험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이야기, 새 언니의 이야기, 이소의 이야기 모두 버거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뒤틀렸다. 답답했다. 짜증이 나고 미친 사람처럼 울고 싶었다. 외로웠다. 내가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느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라는 제목을 보고 많이 아플 거라고, 이 책을 펼친 순간 한번에 이 책을 다 읽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자주, 책을 읽다가 멈추고 책장을 덮을 줄 몰랐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분명 소설 속 이야기인데, 실제로 내가 또는 내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처럼 다가와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실과 혼동했다. 일하다가 또는 버스타고 이동하다가,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을 다 읽지 않고 쓰는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쓰기에는 이 책이 나에게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24쪽까지 읽었는데, 지금 읽은 페이지까지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 놓고, 읽고 나서 떠오른 것들을 덧붙일 생각이다. 그래서 앞뒤 문장이 어색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한 번 읽을 수 없고, 이 책을 펼친 이상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야 할 책임이 있고, 책을 읽은 이상 기록을 남겨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는 한 번쯤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갇힌다.”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기억이라는 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지 알기에 그렇다. 각자 갖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서 자신을 구해내는 것은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병원에 있는 나,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전 새 언니이자, 이소의 엄마, 나의 유일한 혈육 조카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폭력과 침묵,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다. 그들도 어쩌지 못 하는 그 성에서 외지인인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다.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익숙한 그들에게 독자인 나의 방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들의 텅 빈 눈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때면 오싹한 느낌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부분인 ‘외로움‘을 제대로 마주볼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나도 병원의 나, 이소의 엄마, 이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두렵다. 기억의 성에 잡아 먹힌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발버둥친다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 공포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불쾌하고 울컥하고, 하나뿐인 심장이 닳아질 만큼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소가 갇힌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이 가장 무서웠다. 이소 자신만의 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고모, 아빠, 엄마, 새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이소 엄마가 밤늦게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짐을 싸서 이소와 함께 바다로 향했던 날 이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잔인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들렸다. 이소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른척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너무 잘 알아서 자신 곁에 남은 사람이 엄마 뿐이기에 엄마만 괜찮아진다면 뭐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에 매달렸다. 이소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이소에게 엄마뿐이라는 사실이 참 잔인했다. 자신이 없는 엄마의 삶을, 자신 때문에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을 생각하게끔 만든 상황이 불쾌하고 안타까웠다. 이소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던 것이다. 혈육 고모인 ‘나’가 있었지만 엄마 장례식장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고모를 보고 이소는 새 아빠와 살 거라며 고모의 속내를 정확히 짚고 책임을 덜어줬다. 그 어린것이 어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 새 아빠와 있었던 일을 준에게 말하는 이소에 분노가 치밀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고, 바로 잡기에는 아주 먼길을 돌아가야 했고 돌아가더라고 시간과 기억의 바래짐에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은 이소의 의지와 상관없이 콘크리트를 여러 겹 덧댄 것처럼 단단해졌다. 덧댈수록 빛은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소가 숨을 쉴 수 있는 구멍도 사라졌다.

혼란스럽다. 지금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정신없이 몰아친다. 무서울 정도로. 지신영, 이소, 새언니(주연), 요양보호사 모두 비슷한 폭력에 노출되었고, 그 폭력으로 인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기억의 성이 만들어졌다. 기억의 성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한 줄기라도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며 단단해졌다. 기억의 성에서 고통받는 건 기억의 성을 원치 않았던, 생각지 못 한 기억의 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이다. 왜 하필 지신영이었을까, 왜 하필 이소였을까, 자꾸 왜 그들이어야 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기억의 성이 무너지는 건 곧 그들이 무너지는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무너진 그들이지만 기억의 성을 이루는 근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명의 여자가 겪어야 했던 시간이 너무 무겁다. 그 시간을 담고 있는 기억 또한 무겁다. ‘기억’이라는 영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기억이라는 것을 애초에 영역을 잡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기억은 광범위하다는 표현으로도 담지 못 하는 것이다. 그들이 기억의 성에 갇힌 모습에서 알았다. 기억의 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입구도 출구도 없다는 것을. 성에 기꺼이 갇히기로 한 것이 그녀들이라는 것도.

마지막 챕터에서 내가 이 책을 넘기기를 주저했던 이유를 알았다. 무서웠다. 내가 예상하고 생각했던대로일까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일까봐. 역시나 그랬다. 쌍둥이 여동생의 새언니이자 이소의 엄마인 주연이 언니에게 남긴 글과 그녀의 꿈은 비참했다.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안개가 갇힌 성을 멀리서 바라본 느낌이랄까. 주연의 글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를 받아들이는 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자신의 상처와 상대의 상처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며 감히 상대의 상처를 보듬고 감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상처가 상대의 상처로 덮히거나 상대의 상처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물 거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기꺼이 상처를 안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고. 주연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 살지 않아야 할 삶이 있을까 싶었지만, 주연의 삶이 살지 않아야 할 삶일지도 모르겠다. 주연처럼 살고자 한다면 살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나을 것이다. 주연의 선택으로 결국 혼자, 외로이 남은 건 딸 이소니까. 자신의 삶과 같은 삶만큼은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뒤늦은 계획하지 않은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더 만드는 것일뿐. 기억의 성에 사는 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남는 사람이니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아주 많았다. 나중에는 너무 고르는 것도 지쳐서 노란색 형광펜으로 다 그어 버렸다. 노란색을 입은 문장들이 내 시선을 잡고 놓지 않는다. 눈에, 머리에, 마음에 깊게 새겨진 문장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문장이 나를 꽉 쥐고 흔든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문장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거라고 확신한다. 책장을 덮고도 진정되지 않는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에 마음과 눈을 빼앗겨 버렸다. 이미 빼앗긴 걸 돌려주라고 할 수 없기에, 뺏긴 마음과 눈이 제자리로 알아서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마 이 기다림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기다림 끝에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 기억의 성에서 살고 있는데, 나의 기억의 성은 어떤가? 기억의 성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주연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기억의 성에 갇혔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계획도 지은 적도 없는 기억의 성은 어떻게 지어지고, 매일 단단해지는 건지. 어제에 베어 물리며 시작하는 오늘이 쉬운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의 성이 단단하게 쌓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기억의 성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의 성에서 제발로 나오거나 기억의 성을 완전히 부수기 어려울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에서 받았습니다:)

#우리는한때같은성에살았고 #김희재연작소설 #다산북스 #상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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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여자
선요 지음 / dodo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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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선요, <나무 여자> (도도그림책)

아침부터 <나무 여자>를 읽었더니 마음이 편안하다. 매일 아침에 꺼내 읽어야 할 책을 만났다. 이 만남이 나를 지키고 아끼는 방법을 알려줄 것만 같다. 상대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작가의 말이 꼭 나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말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책은 현재 나의 감정, 기분, 태도, 생각, 상황 등에 따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읽힐 수 있는데, 사랑하는 존재가 상대인 이 그림책과 달리 나는 사랑하는 존재가 나 자신으로 읽혔다. 이 책을 무겁게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펼친 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나무 여자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화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집으로 데려가서 화분을 애지중지해서 돌본다. 나무 여자의 사랑을 받은 화분은 처음에 잘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일상은 곧 화분의 일상이고 화분의 일상 또한 나무 여자의 일상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삶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사랑이 두려움과 집착이 되면서 화분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이다. 나무 여자는 화분을 살리기 위해 식물 병원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은 쉽다. 아니 쉽다고들 생각한다. 쉬워서 실수를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진 나머지 사랑하는 존재의 자유와 행복을 해치는 것이다. 그 해침은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정당한 것이 된다. 무서운 일이다. 사랑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이의 행복과 자유를 가린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랑하면서 누가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면서 하냐고 묻겠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적당한 거리를 둔다. 나는 아직 그 거리를 경험하지 못 했고, 사랑이라는 것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사랑을 하기에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은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조건을 아마 죽기 직전까지 충족하지 못할 것임으로 사랑 또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스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직접 경험한 후에 들려주는 말들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 하는데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늦은밤까지 화분의 곁에서 떠날 수 없던 그날밤, 나무 여자의 꿈에서 나무 여자는 안전하고 편해보이는 유리 상자에 갇히게 된다. 친구도 만날 수 없고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유리 상자 속에서 나무 여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숨이 막히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다. 다음날, 나무 여자는 화분을 지키겠다고 씌워둔 유리 상자를 열고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밖으로 화분을 꺼냈다. 나무 여자가 화분을 지키기 위해 버섯을 뽑고 벌레가 오지 못하도록 유리 상자를 씌운 그 마음은 화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이다. 사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상대가 시들어 간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다. 나무 여자가 너무 늦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무 여자는 종종 화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존재가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고 싶지만 살면서 해야 하는 경험이 있고, 모든 것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난 뒤 화분은 더 단단해지고 더 화사하게 자신을 뽐낼 것이라는 것을. 화분이 힘든 시간을 잘 버티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며, 화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진정한 사랑임을.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의 두려움과 집착으로 행복과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뭐든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원활하게 흐른다는 것을.

나는 고통과 슬픔을 대신 감당해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 나에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주 버겁고 무겁고 무서운 일이다. 애초에 책임지지 못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하게 넘길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다. <나무 여자>는 부드럽고 다정하면서도 그 안에 뾰족한 가시가 서 있는 이야기다. 그 가시에 찔리지 않았지만 언제든 찔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도 사랑이란 것이 생각지 못 한 때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찾아온 사랑을 밀어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 쳐들어온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로 봐서는 나도 사랑에 웃고 우는 경험을 할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고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부터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아끼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나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렇게.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는 일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준비와 애씀이 필요할 듯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깨달았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올까 기대를 품는다. 찾아오는 사랑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사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도그림책‘에서 받았습니다:)



#나무여자 #선요 #도도그림책 #사랑 #있는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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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보늬 라임 청소년 문학 69
설재인 지음 / 라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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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드러나는 일
: 설재인 장편소설, <진실과 보늬> (라임)


설재인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만남인 것 같다. 설재인 작가가 내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안 읽을 수가 없었고, 꼭 읽고 싶은 마음으로 신청한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보늬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넘기다 보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늬 이야기가 지어진 이야기가 아니며,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관심 받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참교육>이 떠오른 건 왜일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어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무섭고 무겁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행복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야 할 공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무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왕따는 전부터 학교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문제지만 지금까지도 사라지거나 나아지지 않는다. 여전히 한 사람을 정해서 때리고 욕하는 등 괴롭힘을 멈추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 만한 했다는 이유, 촉법 소년이라서 솜방이 처벌일 거라는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말들을 생각없이 떠들어 댄다. 가해자들의 부모를 보면 자식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식들은 야단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싸고 돌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며 다음부터 이러지 않을 거라는 피해자를 여러 번 죽이는 말과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보면서 내 일이 아니지만 속을 가득 채운 분노에 여러 번 마음을 데이곤 했다. 피해자들만큼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피해자들을 돕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도와야 할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학교, 학창시절을 담은 소설을 읽을 때면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보늬를 보고 나의 학창시절 몇몇 순간이 떠올랐다. 혼자 밥 먹을까봐 두려워하고 같이 어울리면서도 뭔가 겉도는 느낌을 받고, 언제라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부러 반응을 크게 하면서 마음을 졸이며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을 보낼 때는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이 나중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모른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어른이 되어도 쫓아와 선명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속 편한 사람들이 아무렇게 지껄이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틀린말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학교에서, 학창 시절로부터 멀어지고 그렇게 받았던 상처와 생긴 트라우마로부터 멀어질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놓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보늬에게는 보늬의 지금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어디서나 계급은 존재한다. 계급이 눈에 잘 보인다. 학교에서 학생들 안에서도 계급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무리가 지어지면 그 안에 우두머리가 생긴다. 무리도 많지만 무리에도 급이 정해진다. 학교, 반이라는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힘 있는 무리에 속해야 함을 <진실과 보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나의 학창시절에도 무리는 있었지만 무리가 고만고만 했고, 계급일 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빠르게 변한 만큼 계급 차이가 명확해졌고, 다양한 조건으로 무리가 만들어지는데 무리 밖, 안으로 계급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보늬가 민서정이 우두머리인 무리에 속하기 전까지는 왕따였다. 왕따로 사는 삶이 얼마나 괴롭고 외롭고 아픈지 어느 정도 안다. 함께 있어도 느끼는 외로움이 혼자 있을 때는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외롭지만 무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면 정말 혼자니까, 그림자로라도 한 자리 잡고 있으면 무리의 시선을 받고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보늬가 무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불안감, 그리고 민서정 무리를 향한 불신 등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해서라도 무리에 속해야 하는 보늬가 얼마나 힘들지. 그런데 보늬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다. 박유리 죽음의 진실, 제물 그리고 재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최보늬 자신이 살기 위해서.

‘용‘의 진실, 보늬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보늬 이후에도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밝혀진 진실 앞에서 맥이 풀렸다. 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용의 존재가 만들어졌고, 수많은 피해자가 생겼다는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자기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미친짓을 저지르고 주도하는 부모의 행동에 할말을 잃었다. 자기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다른 아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구는 모습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이끄는 세상은 얼마나 역한 냄새를 풍길 거란 말인가. 배움의 즐거움을 알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기르고, 진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안전한 학교라는 공간이 어쩌다 진짜 사회보다 더 잔인한 곳이 되었을까. 무엇이 아이들을, 아이들의 부모를 괴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서슴없이 일어나는 뉴스를 듣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갈수록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고 길러 학교를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학교에서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을 수 있기는 한지, 학교가 세워진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고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학교의 진정한 근본을 찾을 수나 있을지 등등. 아이들을 괴물로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래서 어른들의 역할이 막중하다. 아이들이 삐뚤어지는 시기에 어른들이 제대로 잡아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방향을 잃게 된다. 어른들의 역할과 아이들의 역할은 정해져 있는데, 정해진 역할대로 움직이는 이들이 몇 되지 않는다. 질서와 규칙을 가르치는 학교에서조차.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학교라는 공간이 많이 무너졌고 많은 것을 잃었구나, 하고. 학생이 해야 하는 일은 학업에 충실하는 것이지만 성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어른들이 없다. 무조건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 하고, 쟤 보다 앞서야 한다고 쟤의 주춤거림과 방황이 너한테는 기회라고만 말한다. 그말을 듣고 크는 아이들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안다. 어쩌면 아이들의 길을 잃게 만드는 건 어른들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역할은 이래서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성적이 전부가 아니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성적, 결과만을 본다. 아이들은 제 나이때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는 대신 나중에 알았으면 하는 현실을 빠르게 알고 받아들인다. 어쩔 땐 회사에서 일하는 어른들보다 더 어른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세상이 뒤집힌 기분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하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공부 이외의 것들,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사회성, 관계, 예의, 소통 등 삶을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성적을 제외한 것들은 성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이 가볍게 넘겨지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 이외에 배우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진실과 보늬>를 통해 학교가 잃은 게 무엇인지, 학교가 되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생각할수록 여러 색의 실이 뒤엉킨 것처럼 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가위로 싹뚝, 잘라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작을 열어줄 계기가 일어날까. 어떤 계기라도 좋으니 잃어버린 학교를 되찾아야 할 때다. 늦었다. 더 늦기 전에 찾아야 한다. 이상적이라고만 생각하는 학교를.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이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와 보내고 있는 학창시절에 대해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학부모들이 읽어도 좋을 이야기라서 꼭 추천하고 싶다.

★ 이 가제본은 비매품이고, 서평단 활동을 위해 ‘라임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진실과보늬 #설재인장편소설 #라임 #가제본서평단 #청소년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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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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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특별한 세상이 되어준 둘, 언어는 달라도 같은 것을 보는 중이었다.
: 나혜림 장편소설, 『안녕, 미스터 타이거』 🐅 (창비)

나혜림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 만남이 특별했기에 작가님 신작 소식을 듣고 신청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나 두번째 만남도 아주 빠른 속도로 작품으로 작가님이 이끄는대로 끌려갔다.

계손향과 노월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조선시대에 실제 있을 법한 인물로 현실감을 제대로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계손향과 같은 인물이 있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희망과 바람을 품은 인물처럼 다가온다. 계손향과 같은 인물이 있기에는 위험하고 강압적이고 억압된 시대였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같은 하늘 아래 인간은 평등하다고 했는데, 신분이 존재하고 신분에 따른 삶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계손향이라는 인물을 더 깊이 알수록 계손향이 조선시대에 태어나 살게 된 것이 짠하고 답답하고, 억울하게까지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속이거나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 시대를, 자신에게 불리하고 강압적인 시대를 살아낸 계손향이 대단했다. 계손향 자체로 매력적이고 대단한 인물이지만, 푸른눈 노월과의 만남이 그녀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계손향과 함께 하는 푸른눈은 계손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서로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드는 과정이 계손향이 노월의 푸른눈을 보고 느낀 감정을 닮았다. 그대로 베껴 놓은 듯 하다. 계손향과 노월 사이에 흐르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이 잔잔하게 흘러 스토리의 흐름을 이끈다.

그 시대에 계손향과 같은 인물이 얼마나 있었을까, 상상한다. 그리고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인물이었을지 상상한다. 변화가 무섭고 두려운 나는 계손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계손향을 부러워하며 속좁게 구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계손향을 친구로도 두지 못 하고 질투시기로 속좁게 군 탓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중에야 계손향에게 속좁게 군 것을 미안해하고, 늦었지만 질투시기 대신 배움의 열정을 갖고 실천한다면 다행이다.

계손향에게 노월은 세계 그 자체이다. 한번이라도 경험하기 어려운 그런. 노월에게 당연한 것들이 계손향에게는 법과 도리에 어긋나는 것들이니까. 노월은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 하는 계손향에게 틀에 가두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라고, 맞서라고 그녀 안에 있는 숨죽이고 있는 것들을 툭툭, 깨운다. 계손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당황스러워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노월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안녕, 미스터 타이거>의 탄생은 물론, 그녀 안에 숨죽여 있는 것들은 세상 빛과 공기를 쐬지도 못하고 시들어 산산이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노월이 그녀에게 해주는 말들(같은 세상을 보고 있다, 뭐든 할 수 있다, 맞서라 등등)은 그 시대에 사는 여자들 뿐만 아니라 편리함으로 무장한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도 필요하다. 세상은 아주 빠르게 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의 강요와 강압에 갇힌 채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이들이 많으니까. 혐오와 차별, 갈등이 세상 곳곳에서 차고 넘쳐 흐르니까. 푸른눈 노월은, 계손향보다 넓은 세상에 살던 그는 계손향이 숨기고자 한, 숨겨야 한다고 배워서 숨기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이야기를 눈만 보고 알아챘다. 언어는 알지 못해도 둘은 언어 이상의 것을 주고 받았다. 둘이 함께 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기운이 너무 좋다. 그 기운이 계손향이 더 넓고 깊은 세상을 경험하게 이끌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다.

계손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노월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에 느끼고 배운다. 배우고 느낀 것들이 그녀에게 낯설지만 분명 그녀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고, 여자에게는 절대 내보여서도 가져서도 안 되는 불꽃을 키우고 있다. 노월 말대로 지지 않고, 끝까지 맞섰으면 좋겠다. 계손향을 붙잡는 것들이 많지만 그녀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들에게 붙잡혀 한번 뿐인 인생을 자신이 아닌 이들을 위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어릴 때 아버지 손에 끌려 포도청으로 팔아 넘겨지면서 자신의 삶을 한번 잔인하게 잃었으니까. 노월이 계손향을 자신의 눈을 담은 푸른 바다 너머의 세상으로 이끌었으면 좋겠다. 계손향에게 노월이 기회이고, 좁은 세상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다리니까.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는데 많은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사랑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다. 삶 그 자체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둘을 따라 걷는 시간 동안 내게 주어진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이나마 생각했다. 나는 노월의 삶, 계손향의 삶 중 어떤 삶에 가까운지, 내가 계손향이라면 노월의 같이 가자는 말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노월에 대한 낯선 설레는 감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노월이라면 계손향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 건지 등등 생각할 것들이 아주 많다. 내가 질문을 생각하고 답한 말들로 소설 한 편은 만들 수 있을 만큼 『안녕, 미스터 타이거』가 품고 있는 것들이 많다.

계손향 본인의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녀는 조선의 기녀로만 삶을 살기에는 너무 아깝고 훌륭한 여자다. 여자라는 이유로 귀한 삶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 하는 건 진짜 말도 안 되고 억울하다. 계손향이라면 자신의 삶을 멋지고 찬란하게 꾸밀 수 있다. 계손향은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계손향은 더 넓고 깊은 세상에서 자유롭고 유영하듯 살아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계손향에게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이라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잊지 않고, 노월의 말을 빌려 끝까지 맞섰으면 좋겠다. 그녀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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