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테이프
전건우 지음 / &(앤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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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테이프는 도대체 어디에? 📼
: 전건우, <믹스 테이프> (앤드)

전건우 작가님과 출판사의 열일에 행복한 사람은 나처럼 전건우 작가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나 공포 소설에 찐인 독자들일 것이다. 샘플푹 <믹스 테이프>를 읽고 나서 앞으로 전건우 작가님이 쓸 작품이 더 기대되는 건 물론 <믹스 테이프> 정식 출간본을 꼭 구매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싶은 마음이 99프로라면 1프로는 99프로에 묻혀 보이지 않을 샘플북 뒤로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다. 당장 <믹스 테이프>를 주문해야겠다!

샘플북은 비매품이기 때문에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특별한 일이다. 정식 출간본과 함께 책꽂이에 꽂아둔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책에 진심이 나 같은 사람들은 책에 관려된 거라면 뭐든 특별하고, 내가 가진 순간부터 해서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 샘플북 <믹스 테이프>는 역시나 첫 페이지부터 시선을 빠르게 사로 잡고, 빠른 속도로 문장들을 읽도록 끌었다. 순식간에 몰입을 했고, 몰입 이후에는 이미 돌아가기에는 늦은 지점까지 닿아 있었다. <믹스 테이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던 샘플북을 펼치기 전의 내가 어리석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숨기고 있는 의도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등을 파악하려고 책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거나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님 작품 앞에서는 그러는 게 무의미했다. <믹스 테이프>를 읽는 동안에는 무얼 알아내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시작도 전에 실패했다. 궁금하지 않은 척, 놀라지 않은 척하려는 것마저 바로 들켜버렸다. 숨기려고 할수록 더 드러난 채 이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경찰을 하다가 그만두고 민간 조사원으로 지내는 나승우는 재벌 천부국 회장의 부름으로 ‘믹스 테이프‘를 찾는 여정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에게는 젊은 조수 지미소가 언제나 함께 한다. 둘은 서로 너무 다른 것 같은데 일할 때만큼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믹스 테이프 찾기. 믹스 테이프를 찾아 천부국 회장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 믹스 테이프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기 시작한다. 믹스 테이프는 죽은 자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로, 당시에는 검은 테이프로 불리며 이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나승우는 믹스 테이프를 찾아서 천부국 회장한테 전달하고 받기로 한 돈만 받으면 됐기 때문에 믹스 테이프에 얽힌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이동경 라디오 피디를 만나서 믹스 테이프에 대한 사전 조사를 자세히 하고, 지미소와 함께 대한오컬트협회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그러다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다고 하는 대한오컬트협회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인천으로 가는 것까지는 민간 조사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 뒤로 생긴다. 대한오컬트협회 협회장 김국남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모른다는 김국남은 나승우와 그의 조수 지미소가 보고 있는데서 목이 꺾여 죽고 만다. 샘플북의 마지막은 당시 대한오컬트협회장의 두눈으로 보기 힘든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뒤에 이어질 내용은 더 복잡하고 정신 없을 거라고 예상만 한다. 김국남이 대한오컬트협회를 만든 것은 자신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여동생이 정신 이상 반응을 보였고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았고, 동생의 죽음 이후 세상의 신비에 눈을 뜬 김국남은 미신이니 착가이니 혹은 사기니 하며 무시하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신비주의에 관한 것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체계화하기 위해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단체를 만든 것이다. 김국남이 자신의 여동생 죽음을 조현병으로 인한 자실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면, 이 단체를 만들어 단체에서 한자리씩 맡고 있는 이들의 자살도 믹스 테이프도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니었을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을 빌리면, 대한오컬트협회와 그들의 자살, 그리고 믹스 테이프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을까? 김국남의 죽음 뒤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생긴다. 믹스 테이프를 들으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제보를 하고, 제보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꼭 혼자서만 듣고, 그렇게 테이프를 들은 사람의 인적 사항과 이후 행적을 기록해서 보고‘하라고 한 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믹스 테이프를 들으면 죽을 걸 알면서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믹스 테이프의 시작은 어디일까? 누가 만든 것일까?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그 테이프를 들었다던 김국남은 어째서 바로 죽지 않고 나승우와 지미소가 찾아올 때까지 살아 있었을 수 있을까? 왜 하필 나승우와 지미소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대한오컬트협회와 믹스 테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들의 앞에서 목이 꺾인 채 죽은 걸까? 물음표에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다음 장을 넘기면서도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있었는데 샘플북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니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장이라고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아니, 당장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찾고 저주의 물건을 없애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주의 물건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믹스 테이프로 인해 죽게 된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지, 저주의 물건으로 실험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익명의 제보자까지. 파헤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믹스 테이프만 찾아서 주고 돈을 받기로 한 것뿐인데, 쉽게 빠져 나갈 수 없는 어쩌면 살아서 나가지 못하는 늪의 발을 들인 기분이다. 나승우와 지미소는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찾아서 천부국 회장한테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아니 살아 남을 수 있을지. 믹스 테이프라는 것이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나승우가 믹스 테이프의 정체를 안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불쾌하고 두려운 저주가 시작된 듯 보인다. 나승우와 지미소는 믹스 테이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믹스 테이프의 녹음된 여자 목소리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을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전건우 작가님께 감사하다. 이런 장르의 작품을 애정하는 독자로서 말이다. 앞으로 전건우 작가님의 열일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날이 많이 덥다. 팔다리에 닭살이 돋을 만큼 오싹한 이야기로 이 여름을 버텨야 할 것 같다. 오싹함이 주는 시원함으로 내게 붙은 여름의 열을 시원하게 날리고 싶다. 전건우 작가님의 열일은 곧 여름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감사하다.

★ 이 샘플북은 비매품으로 샘플북 서평단 활동을 위해 앤드에서 받았습니다:)

#믹스테이프 #전건우 #앤드 #공포소설추천 #샘플북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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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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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 테이프는 도대체 어디에? 📼
: 전건우, <믹스 테이프> (앤드)

전건우 작가님과 출판사의 열일에 행복한 사람은 나처럼 전건우 작가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나 공포 소설에 찐인 독자들일 것이다. 샘플푹 <믹스 테이프>를 읽고 나서 앞으로 전건우 작가님이 쓸 작품이 더 기대되는 건 물론 <믹스 테이프> 정식 출간본을 꼭 구매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싶은 마음이 99프로라면 1프로는 99프로에 묻혀 보이지 않을 샘플북 뒤로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다. 당장 <믹스 테이프>를 주문해야겠다!
샘플북은 비매품이기 때문에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특별한 일이다. 정식 출간본과 함께 책꽂이에 꽂아둔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책에 진심이 나 같은 사람들은 책에 관려된 거라면 뭐든 특별하고, 내가 가진 순간부터 해서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 샘플북 <믹스 테이프>는 역시나 첫 페이지부터 시선을 빠르게 사로 잡고, 빠른 속도로 문장들을 읽도록 끌었다. 순식간에 몰입을 했고, 몰입 이후에는 이미 돌아가기에는 늦은 지점까지 닿아 있었다. <믹스 테이프>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던 샘플북을 펼치기 전의 내가 어리석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숨기고 있는 의도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 등을 파악하려고 책이 주는 즐거움을 놓치거나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전건우 작가님 작품 앞에서는 그러는 게 무의미했다. <믹스 테이프>를 읽는 동안에는 무얼 알아내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시작도 전에 실패했다. 궁금하지 않은 척, 놀라지 않은 척하려는 것마저 바로 들켜버렸다. 숨기려고 할수록 더 드러난 채 이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경찰을 하다가 그만두고 민간 조사원으로 지내는 나승우는 재벌 천부국 회장의 부름으로 ‘믹스 테이프‘를 찾는 여정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에게는 젊은 조수 지미소가 언제나 함께 한다. 둘은 서로 너무 다른 것 같은데 일할 때만큼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그렇게 시작된 믹스 테이프 찾기. 믹스 테이프를 찾아 천부국 회장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 믹스 테이프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기 시작한다. 믹스 테이프는 죽은 자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는 테이프로, 당시에는 검은 테이프로 불리며 이 테이프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나승우는 믹스 테이프를 찾아서 천부국 회장한테 전달하고 받기로 한 돈만 받으면 됐기 때문에 믹스 테이프에 얽힌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 보인다. 이동경 라디오 피디를 만나서 믹스 테이프에 대한 사전 조사를 자세히 하고, 지미소와 함께 대한오컬트협회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그러다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었다고 하는 대한오컬트협회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인천으로 가는 것까지는 민간 조사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 뒤로 생긴다. 대한오컬트협회 협회장 김국남을 만나고 나서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모른다는 김국남은 나승우와 그의 조수 지미소가 보고 있는데서 목이 꺾여 죽고 만다. 샘플북의 마지막은 당시 대한오컬트협회장의 두눈으로 보기 힘든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뒤에 이어질 내용은 더 복잡하고 정신 없을 거라고 예상만 한다. 김국남이 대한오컬트협회를 만든 것은 자신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여동생이 정신 이상 반응을 보였고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았고, 동생의 죽음 이후 세상의 신비에 눈을 뜬 김국남은 미신이니 착가이니 혹은 사기니 하며 무시하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신비주의에 관한 것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체계화하기 위해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단체를 만든 것이다. 김국남이 자신의 여동생 죽음을 조현병으로 인한 자실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면, 이 단체를 만들어 단체에서 한자리씩 맡고 있는 이들의 자살도 믹스 테이프도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니었을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을 빌리면, 대한오컬트협회와 그들의 자살, 그리고 믹스 테이프는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을까? 김국남의 죽음 뒤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생긴다. 믹스 테이프를 들으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제보를 하고, 제보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누구든 꼭 혼자서만 듣고, 그렇게 테이프를 들은 사람의 인적 사항과 이후 행적을 기록해서 보고‘하라고 한 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믹스 테이프를 들으면 죽을 걸 알면서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믹스 테이프의 시작은 어디일까? 누가 만든 것일까?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그 테이프를 들었다던 김국남은 어째서 바로 죽지 않고 나승우와 지미소가 찾아올 때까지 살아 있었을 수 있을까? 왜 하필 나승우와 지미소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대한오컬트협회와 믹스 테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들의 앞에서 목이 꺾인 채 죽은 걸까? 물음표에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다음 장을 넘기면서도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있었는데 샘플북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니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장이라고 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아니, 당장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찾고 저주의 물건을 없애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주의 물건이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믹스 테이프로 인해 죽게 된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지, 저주의 물건으로 실험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익명의 제보자까지. 파헤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믹스 테이프만 찾아서 주고 돈을 받기로 한 것뿐인데, 쉽게 빠져 나갈 수 없는 어쩌면 살아서 나가지 못하는 늪의 발을 들인 기분이다. 나승우와 지미소는 믹스 테이프의 행방을 찾아서 천부국 회장한테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아니 살아 남을 수 있을지. 믹스 테이프라는 것이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나승우가 믹스 테이프의 정체를 안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불쾌하고 두려운 저주가 시작된 듯 보인다. 나승우와 지미소는 믹스 테이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믹스 테이프의 녹음된 여자 목소리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을지.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전건우 작가님께 감사하다. 이런 장르의 작품을 애정하는 독자로서 말이다. 앞으로 전건우 작가님의 열일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날이 많이 덥다. 팔다리에 닭살이 돋을 만큼 오싹한 이야기로 이 여름을 버텨야 할 것 같다. 오싹함이 주는 시원함으로 내게 붙은 여름의 열을 시원하게 날리고 싶다. 전건우 작가님의 열일은 곧 여름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감사하다.

★ 이 샘플북은 비매품으로 샘플북 서평단 활동을 위해 앤드에서 받았습니다:)

#믹스테이프 #전건우 #앤드 #공포소설추천 #샘플북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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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흉가로 놀러 오세요
전건우 지음 / 시공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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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 현실이 되는 순간, 👻
: 전건우 장편소설, 『우리 동네 흉가로 놀러오세요』 🏚️ (시공사)

공포 소설의 대가! 전건우 작가님의 작품을 또 읽게 되어 좋았다. 이번 이야기는 얼마나 재밌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전건우 작가님의 나의 기대를 제대로 만족시켜줬다. 역시 믿고 읽는 전건우 작가님 작품이다.

“내가 만든 흉가 괴담이 현실이 되었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세훈이 어쩌다 동네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서 흉물스레 방치된 빈집에 그럴싸한 사연을 붙여 ‘흉가 체험‘을 만들어 파읍리 동네를 관광 명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회의에 참석한 어른들은 처음에 세훈의 의견에 시큰둥하더니 세훈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계획을 말하고 그럴듯한 사연을 만들어서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게 만드는 것을 보고, 세훈을 적극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세훈이가 만든 사연은 제법 그럴싸했다. 흉가 체험을 하는 이들, 흉가나 귀신 이야기 등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끌고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만큼. SNS에 사연을 올리니 공유되면서 입소문 타는 건 순식간이다. 공포 체험 유튜버가 파읍리를 찾아와 세훈이 사연을 붙여 만든 흉가 체험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유튜버가 찾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방송국 작가한테까지 연락을 받게 된다.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세훈도 유튜버로 찾아보는 프로그램에서 파읍리 흉가를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다더니 촬영까지 하게 된다. 문제는 촬영 당일에 생긴다. 세훈과 동네 사람들이 파읍리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오도록 꾸민 사연을 가진 흉가에서 진짜 불길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세훈이 만든 흉가 괴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세훈에게 이곳으로 사람들을 부르면 안 된다면 주의를 준 무당이 떠오른다. 촬영 당일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나서 무당이 저주라고 말한다. 무슨 저주일까. 도대체 이 흉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흉가에서 문제가 생기고 나서 세훈과 이장은 계획한 일을 그만 멈추기로 한다. 계속 이어가기에는 동네 사람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지 않나, 그리고 동네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들의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나. 세훈은 마을 흉가를 방송에 내보내지 않길 바란다고 작가한테 연락하지만, 작가는 연락을 받지 않고 찍은 부분까지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무당이 저주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한번 시작된 저주는 쉽게 끝나지 않을 텐데. 이미 저주는 시작되었다. 무당이 세훈에게 경고를 했을 때 가볍게 넘기지 말고 시작을 아예 하지 않았어야 했다. 파읍리에 진짜 저주가 내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 저주의 시작을 어쩌다 부추기게 된 입장이 된 세훈이니 저주의 끝도 세훈이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흉가 괴담을 만들었을 뿐인데 정말 현실이 되다니. 세훈은 현실이 된 흉가 괴담의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훈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도망온 파읍리에서 다시 서울로 도망갈 준비가 된 세훈이 뭘해야 할까?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세훈에게 이장이 찾아온다. 단체 관광객이 흉가 체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고. 버섯 농사가 망해서 수입원이 아예 사라지더라도 그만뒀어야 했다. 혹해서 시작했으면 안됐다. 필국 아저씨가 죽을 뻔 했고, 마을 회관이 불에 타버렸다. 흉물스러운 빈집은 더이상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말고, 가까이 오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계속 경고를 했던 건지도 모른다.

흉가 괴담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개입이 분명 있을 거라는 깨름칙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괴담을 만드는 사람이 괴담보다 더 무서울지 모른다. 뭐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부풀려지고 그러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사실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흉가 괴담이 차라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벌어지기 보다 악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한 인간이 벌어진 짓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인간이 벌인 짓이라면 이 안타까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던가, 사실이 아닌 것에 구체화하여 살을 붙이니 사실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작한 탓에 일어난 일들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파읍리에서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근데 한번 시작된 저주는 쉽게 끝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불길한 예감이 손끝에 전해진다. 사람이 죽을 거라고,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러게 왜 빈집을 비게 두지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거냐고.

한번 넘기면 끝을 볼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전건우 작가님 작품! 요며칠 계속 날이 흐리고 중간에 세게 내리쬐는 햇살줄기 때문에 더웠는데, 전건우 작가님 작품 덕에 오싹함 제대로 느꼈다. 날이 덥고 습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방바닥에 누워 이 책을 꺼내 읽어도 좋다! 전건우 작가님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 덥고 습한 날씨는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시공사에서 받았습니다:)

#우리동네흉가로놀러오세요 #전건우 #공포소설 #시공사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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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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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살았던 그 같은 성이라는 것, 🏰
: 김희재 장편소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뭐라고 써야 할까. 책을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아니 책을 읽으면서 서평에 이런 내용을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주저했다.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지는 무거운 마음이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들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째서 이리도 고약한 상처를 품은 채 살아야 하는 건지, 사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어렵고 괴로운 건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당연하게도 소설은 답이 없었다. 이 책을 펼친 독자의 몫이라는 듯이.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감당하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했다. 이야기를 담은 그릇도, 내가 겪어온 경험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이야기, 새 언니의 이야기, 이소의 이야기 모두 버거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뒤틀렸다. 답답했다. 짜증이 나고 미친 사람처럼 울고 싶었다. 외로웠다. 내가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느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라는 제목을 보고 많이 아플 거라고, 이 책을 펼친 순간 한번에 이 책을 다 읽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자주, 책을 읽다가 멈추고 책장을 덮을 줄 몰랐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다. 분명 소설 속 이야기인데, 실제로 내가 또는 내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처럼 다가와서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실과 혼동했다. 일하다가 또는 버스타고 이동하다가,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힘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을 다 읽지 않고 쓰는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쓰기에는 이 책이 나에게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24쪽까지 읽었는데, 지금 읽은 페이지까지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적어 놓고, 읽고 나서 떠오른 것들을 덧붙일 생각이다. 그래서 앞뒤 문장이 어색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한 번 읽을 수 없고, 이 책을 펼친 이상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야 할 책임이 있고, 책을 읽은 이상 기록을 남겨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는 한 번쯤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갇힌다.”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기억이라는 성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지 알기에 그렇다. 각자 갖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서 자신을 구해내는 것은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병원에 있는 나,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전 새 언니이자, 이소의 엄마, 나의 유일한 혈육 조카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폭력과 침묵,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다. 그들도 어쩌지 못 하는 그 성에서 외지인인 나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다.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 익숙한 그들에게 독자인 나의 방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들의 텅 빈 눈을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때면 오싹한 느낌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부분인 ‘외로움‘을 제대로 마주볼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나도 병원의 나, 이소의 엄마, 이소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두렵다. 기억의 성에 잡아 먹힌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거부한다고 해서, 발버둥친다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움, 공포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불쾌하고 울컥하고, 하나뿐인 심장이 닳아질 만큼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소가 갇힌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이 가장 무서웠다. 이소 자신만의 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고모, 아빠, 엄마, 새 아빠가 있기 때문이다. 이소 엄마가 밤늦게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짐을 싸서 이소와 함께 바다로 향했던 날 이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의 말이 잔인하면서도 무책임하게 들렸다. 이소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모른척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너무 잘 알아서 자신 곁에 남은 사람이 엄마 뿐이기에 엄마만 괜찮아진다면 뭐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림에 매달렸다. 이소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었다. 이소에게 엄마뿐이라는 사실이 참 잔인했다. 자신이 없는 엄마의 삶을, 자신 때문에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을 생각하게끔 만든 상황이 불쾌하고 안타까웠다. 이소 곁에는 정말 아무도 없던 것이다. 혈육 고모인 ‘나’가 있었지만 엄마 장례식장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고모를 보고 이소는 새 아빠와 살 거라며 고모의 속내를 정확히 짚고 책임을 덜어줬다. 그 어린것이 어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았고,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나서 새 아빠와 있었던 일을 준에게 말하는 이소에 분노가 치밀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고, 바로 잡기에는 아주 먼길을 돌아가야 했고 돌아가더라고 시간과 기억의 바래짐에 바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소의 고통스러운 기억의 성은 이소의 의지와 상관없이 콘크리트를 여러 겹 덧댄 것처럼 단단해졌다. 덧댈수록 빛은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이소가 숨을 쉴 수 있는 구멍도 사라졌다.

혼란스럽다. 지금 내가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정신없이 몰아친다. 무서울 정도로. 지신영, 이소, 새언니(주연), 요양보호사 모두 비슷한 폭력에 노출되었고, 그 폭력으로 인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기억의 성이 만들어졌다. 기억의 성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한 줄기라도 안으로 들여보낼 생각이 없다며 단단해졌다. 기억의 성에서 고통받는 건 기억의 성을 원치 않았던, 생각지 못 한 기억의 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이다. 왜 하필 지신영이었을까, 왜 하필 이소였을까, 자꾸 왜 그들이어야 했는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기억의 성이 무너지는 건 곧 그들이 무너지는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무너진 그들이지만 기억의 성을 이루는 근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네 명의 여자가 겪어야 했던 시간이 너무 무겁다. 그 시간을 담고 있는 기억 또한 무겁다. ‘기억’이라는 영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생각했다. 기억이라는 것을 애초에 영역을 잡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었다. 기억은 광범위하다는 표현으로도 담지 못 하는 것이다. 그들이 기억의 성에 갇힌 모습에서 알았다. 기억의 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입구도 출구도 없다는 것을. 성에 기꺼이 갇히기로 한 것이 그녀들이라는 것도.

마지막 챕터에서 내가 이 책을 넘기기를 주저했던 이유를 알았다. 무서웠다. 내가 예상하고 생각했던대로일까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일까봐. 역시나 그랬다. 쌍둥이 여동생의 새언니이자 이소의 엄마인 주연이 언니에게 남긴 글과 그녀의 꿈은 비참했다.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안개가 갇힌 성을 멀리서 바라본 느낌이랄까. 주연의 글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를 받아들이는 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자신의 상처와 상대의 상처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며 감히 상대의 상처를 보듬고 감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상처가 상대의 상처로 덮히거나 상대의 상처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물 거라고 함부로 생각하고 기꺼이 상처를 안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고. 주연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 살지 않아야 할 삶이 있을까 싶었지만, 주연의 삶이 살지 않아야 할 삶일지도 모르겠다. 주연처럼 살고자 한다면 살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모두에게 나을 것이다. 주연의 선택으로 결국 혼자, 외로이 남은 건 딸 이소니까. 자신의 삶과 같은 삶만큼은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으로는, 뒤늦은 계획하지 않은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상처를 더 만드는 것일뿐. 기억의 성에 사는 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남는 사람이니까.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아주 많았다. 나중에는 너무 고르는 것도 지쳐서 노란색 형광펜으로 다 그어 버렸다. 노란색을 입은 문장들이 내 시선을 잡고 놓지 않는다. 눈에, 머리에, 마음에 깊게 새겨진 문장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 문장이 나를 꽉 쥐고 흔든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 문장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릴 거라고 확신한다. 책장을 덮고도 진정되지 않는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에 마음과 눈을 빼앗겨 버렸다. 이미 빼앗긴 걸 돌려주라고 할 수 없기에, 뺏긴 마음과 눈이 제자리로 알아서 찾아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마 이 기다림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기다림 끝에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각자 기억의 성에서 살고 있는데, 나의 기억의 성은 어떤가? 기억의 성에서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주연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기억의 성에 갇혔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도대체 계획도 지은 적도 없는 기억의 성은 어떻게 지어지고, 매일 단단해지는 건지. 어제에 베어 물리며 시작하는 오늘이 쉬운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의 성이 단단하게 쌓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기억의 성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기억의 성에서 제발로 나오거나 기억의 성을 완전히 부수기 어려울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에서 받았습니다:)

#우리는한때같은성에살았고 #김희재연작소설 #다산북스 #상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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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여자
선요 지음 / dodo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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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선요, <나무 여자> (도도그림책)

아침부터 <나무 여자>를 읽었더니 마음이 편안하다. 매일 아침에 꺼내 읽어야 할 책을 만났다. 이 만남이 나를 지키고 아끼는 방법을 알려줄 것만 같다. 상대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작가의 말이 꼭 나를 위한 사랑을 하라는 말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책은 현재 나의 감정, 기분, 태도, 생각, 상황 등에 따라 여러가지 측면에서 읽힐 수 있는데, 사랑하는 존재가 상대인 이 그림책과 달리 나는 사랑하는 존재가 나 자신으로 읽혔다. 이 책을 무겁게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에 펼친 건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나무 여자는 새벽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화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집으로 데려가서 화분을 애지중지해서 돌본다. 나무 여자의 사랑을 받은 화분은 처음에 잘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일상은 곧 화분의 일상이고 화분의 일상 또한 나무 여자의 일상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삶이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무 여자의 사랑이 두려움과 집착이 되면서 화분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이다. 나무 여자는 화분을 살리기 위해 식물 병원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방법은 쉽다. 아니 쉽다고들 생각한다. 쉬워서 실수를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한다.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진 나머지 사랑하는 존재의 자유와 행복을 해치는 것이다. 그 해침은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정당한 것이 된다. 무서운 일이다. 사랑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틀렸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이의 행복과 자유를 가린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사랑하면서 누가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면서 하냐고 묻겠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적당한 거리를 둔다. 나는 아직 그 거리를 경험하지 못 했고, 사랑이라는 것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사랑을 하기에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하기 위한 조건은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조건을 아마 죽기 직전까지 충족하지 못할 것임으로 사랑 또한 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스스로부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직접 경험한 후에 들려주는 말들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 하는데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늦은밤까지 화분의 곁에서 떠날 수 없던 그날밤, 나무 여자의 꿈에서 나무 여자는 안전하고 편해보이는 유리 상자에 갇히게 된다. 친구도 만날 수 없고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유리 상자 속에서 나무 여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숨이 막히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다. 다음날, 나무 여자는 화분을 지키겠다고 씌워둔 유리 상자를 열고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밖으로 화분을 꺼냈다. 나무 여자가 화분을 지키기 위해 버섯을 뽑고 벌레가 오지 못하도록 유리 상자를 씌운 그 마음은 화분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것이다. 사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상대가 시들어 간다면 그건 더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다. 나무 여자가 너무 늦지 않게 그 사실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무 여자는 종종 화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존재가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고 싶지만 살면서 해야 하는 경험이 있고, 모든 것을 대신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슬픔과 고통을 경험하고 난 뒤 화분은 더 단단해지고 더 화사하게 자신을 뽐낼 것이라는 것을. 화분이 힘든 시간을 잘 버티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며, 화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진정한 사랑임을.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의 두려움과 집착으로 행복과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뭐든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원활하게 흐른다는 것을.

나는 고통과 슬픔을 대신 감당해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 나에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주 버겁고 무겁고 무서운 일이다. 애초에 책임지지 못하고 중간에 흐지부지하게 넘길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다. <나무 여자>는 부드럽고 다정하면서도 그 안에 뾰족한 가시가 서 있는 이야기다. 그 가시에 찔리지 않았지만 언제든 찔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도 사랑이란 것이 생각지 못 한 때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찾아온 사랑을 밀어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 쳐들어온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로 봐서는 나도 사랑에 웃고 우는 경험을 할지 모를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고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부터 사랑할 수 있길 바란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고 아끼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나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렇게.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나를 사랑하는 일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준비와 애씀이 필요할 듯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깨달았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찾아올까 기대를 품는다. 찾아오는 사랑을 지나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사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니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도그림책‘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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