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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없을 뿐 ㅣ 인생그림책 50
이수연 지음 / 길벗어린이 / 2026년 6월
평점 :
사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이수연, <용기가 없을 뿐> (길벗어린이)
개 사원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면서 나의 하루하루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뿐만 아니라,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이 곧 개 사원의 하루하루였다. 개 사원의 하루에 공감했지만 위로 받지 못 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것도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와 같은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을 하다가 이내 짜증과 답답함이 뒤섞인 한숨을 여러 번 내뱉는 것으로 마지막장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개 사원이 안쓰러우면서도 우리 모두 이렇게 사는 거고, 그게 우리 삶 아닌가 덤덤하고 냉정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다.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모두의 하루를 응원하면서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앞으로 더 나은 날들이 기다릴 거라고 희망을 품으며 덮고 내 마음에 품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 함께 힘들게 산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던 건 위로받을 힘조차 있을 때였다. 지금의 나는, 영업사원으로 주말 없이 매일 일에 치여 사는 개 사원의 하루는 나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어 내 안에 쌓였다. 개 사원의 하루가 나의 하루와 다른 듯 하지만 꼭 닮아 있어서 개 사원에게 어떤 위로도 응원도 해주지 못 했다. 그저 머리를 헝클이고 한숨을 쉬며, 피곤에 찌든 눈으로 개 사원의 하루를 따라가는 것밖에 하지 못 했다. 그게 내 최선이었다.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내가 위로받을 힘이 있을 때, 그때는 개 사원에게 위로와 응원의 말을 진심으로 전해줄 수 있지도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구에게 위로와 응원을 하겠나, 그냥 침묵을 하는 게 낫다. 실은 할 말이 없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같은 처지에 있는 서로에게 가장 큰 위로와 응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일하면서 말을 줄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엔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일하면서 말 거는 동료에게 아주 간단한 답만 하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알게 되었다.간단한 답하는 것조차 큰힘이 들어갈 정도로 내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매일 매순간 깨닫는 중이다. 그럼에도 어른인 나는 아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지친다는 말을 할 수 없으며 그냥 말수를 줄인 채 아무렇지 않게 내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쓸려 가듯 버티는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내가 그리던 삶을 살 줄 알았다. 어른이 된 내게 세상은 차갑고 째째하고 거칠게 대했다. 사람도 그랬다.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울타리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울타리 밖을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겁없이 들었던 어린날들이 한여름밤의 꿈 같다. 그 꿈이 그렇게 달고 안전하고, 다정한지 몰랐다. 뭐든 직접 부딪치고 지나쳐봐야 안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 매일 느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어른의 삶이라면 감히 어른이 빨리 되고 싶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어리석고 가벼운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안 했을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에게 멀어지려고 발버둥치며 어른이 되기를 미루고 또 미뤘을 것이다.
사는 건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요일 오후 개 사원이 지하철에서 들었던 한 청년의 말을 통해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저런 말을 큰 소리로 말하는 그 청년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안다고, 그게 뭔지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마음이 아프다니. 태어나서 처음 만났다. 모든 사람 앞에서 크게 저 문장을 외치는 사람을.’ 문장이 적힌 페이지에 개 사원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마음이 아팠다. 개 사원이 짠해서가 아니라 내가 짠해서. 아등바등 버텨야 하는 우리가 너무 너무 불쌍해서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기어코 참아냈다. 한 번 터진 눈물을 댐을 방류하듯 어마어마한 물을 뱉어내니까. “사람하고 말하는 게 진짜 좋아요. 너무 외로워요!”라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청년의 마음을 감히 짐작했다. 나도 청년처럼 목청껏 외치고 싶은 말들이 속에서 들끓고 휘저어 돌아다닐 때가 있으니까. 청년의 용기는 대단했다. 모두들 다 그렇게 산다고, 다들 속에 가둬두고 산 말들이 저 깊은 심해에서 몸집을 부풀려 아주 천천히 무게감 있게 헤엄치며 사는 물고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심해인데도 겁나서 감히 곁눈질로도 보지 못하고 발을 들이지 못한 채 그렇게. 누군가의 용기가 다수의 마음을 열 수 있고 메말라 있던 눈동자에 물을 뿌려줄 수도 있다. 개 사원의 메마른 눈에 물을 준 청년도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용기를 내준 청년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당신의 용기에 개 사원은, 나는 또다시 버텨볼 희망을 품었다고.
개 사원 아버지의 돌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위험한 강을 헤엄치는 것도 모자라서 무거운 돌을 안은 채 강을 헤엄쳤다니. 정말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는 게 그런 거 아닌가. 살아갈수록 지켜야 하는 것이 늘어나고, 그것이 대부분 내가 지켜야 하고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들이다. 무겁지만 포기하고 내려 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무겁고 지치게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를 무너지지 않고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돌도 내가 딛고 일어서는 지지대가 되고 잠깐 쉴 수 있는 의자가 되고, 흔들림에 날아가지 않도록 나를 잡아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매번 같은 하루이지만 같은 하루는 없다. 우리는 저마다 어제와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을 오늘을, 그리고 오늘보다 나을 내일을 맞이할 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살고 있다. 버티기 위해 살기 위해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서 말이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벅찬데 용기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마음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마음 다치는 일에도 미움 받는 일에도, 마음을 전하는 일에도 용기내야 한다. 산다는 것에 용기가 이렇게 필요했던가. 부모님에 비하면 나는 아직 어린아이지만 젊은 내가 감히 젊은 부모님은 얼마나 지난하고 고된 삶을 사셨나 짐작해본다. 그 삶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지도 말이다.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무겁다. 어른이 되고 샇회생활을 하면서 어린날의 내가 봤던 부모님의 지친 얼굴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면 한두 번씩 어린 내가 눈치봤던 피곤에 찌든 부모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부모님처럼 인상 쓰지 않고 가볍게 살 거라고 다짐하고 뭐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자신했는데, 다짐은 진작에 무너졌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 못 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직접 부딪치고 나니 알았다. 매일 용기를 내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었다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하는지 두렵다. 용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조건 부딪치는 수밖에.
개 사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더 가라앉는다. 곳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개 사원들을 떠올린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매일 용기내어 살고 있다. 개 사원도 나도. 그러니까 용기내어 사는 우리에게 세상이 조금은 다정했으면 좋겠다. 다정함으로 용기는 물론 희망을 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용기가 필수조건인 세상에 발을 들인 우리는 늘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우리의 용기와 애씀을 세상이, 서로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 코가 석자라고 해도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은 혼자 살 수 없는 공동체 운명을 타고 난 것 아니겠나. 정힘들면 기대보고,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늑대 사원처럼 먼저 손을 내밀고 그렇게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차갑고 냉정하고 거친 세상을 함께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다. 더딘 것 같고 제자리인 것 같더라도 분명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나약하지만 분명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수 있는 단단함이 존재함을,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뭐든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적당히 즐기며 가볍게 살아봐도 좋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지루함과 반복함, 피곤으로 찌든 삶에 숨구멍을 스스로 만들어 하루의 즐거움과 개운함을 마음껏 느꼈으면 좋겠다. 단 하루라도, 그렇게 하루하루 늘려가면서 삶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꾸몄으면 좋겠다. 삶꾸! 우리는 삶을 꾸밀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고 있다. 삶을 꾸미는데도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낸 용기를 보면 분명 삶도 멋드러지게 자신만의 방식을 꾸밀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별거 없는 하루 같아 보여도 삶꾸를 하는 중이다. 자신이 보내는 시간, 가고 있는 길,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의심 대신 무조건적인 믿음과 칭찬을 쏟아붓자. 오늘도 열일하는 삶꾸인들, 모두에게 <용기가 없을 뿐>을 선물하고 싶다. 위로와 공감이 없어도 좋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읽고 나서 시원하게 울거나 쏟아내듯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책은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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