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꼬마 이야기
이보라 그림, 하하 하동훈 글, MBC 무한도전 원작 / 퍼머넌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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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아재가 하하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
: 하하, <키 작은 꼬마 이야기> (북뱅크)

그림책을 읽으면서 하하님이 듣고 싶었던 말을 책 한 권에 잘 담았구나 생각했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이 명료하게 담겨져 있으니까. 하하님 덕분에 순간 올라온 울컥함을 누르고 내 마음을 차분히 달래본 시간이었다. 울어도 좋지만, 지금 울면 눈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꾹 참았다. 아직은 내가 버틸 만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눈물을 참기 어려울 때는 하하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기대어 펑펑 울어볼 것이다. 눈물이 내 안에 쌓인 것들을 녹여서 흘려 보낼 줄 테니까.

키 작은 꼬마는 세상을 우러러볼 줄 안다. 키가 작아서 키가 큰 사람들은 보지 못 하는 것들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tv 프로그램에서 하하님을 자주 봤다. 땅꼬마라는 별명으로 화면 안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일을 하는 하하님 모습에서는 힘듦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내가 뭘 알았을까. 그 웃음 뒤에 불안과 걱정, 고민이 있었을 거라곤. 그저 하하님이 떽떽 소리지르거나 수줍게 웃거나, 멤버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어렸지만 재밌게 산다고 생각했다.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내가 예능을 재미로만 보는 게 아니라, 예능을 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질 때부터였다. 어느 순간, 화면 안에서 웃음을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손짓, 말투에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했고, 더이상 예능이 예능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하하님이 그동안 하하님이 만들어 낸 웃음 뒤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잘 버텨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제는 키 작은 꼬마 셋의 아빠가 되어 버린 하하님께 고생 많았다고, 긴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 내게 위로를 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초등학생 때는 조회를 할 때 뒤에 두 번째에 설 만큼 키가 컸다. 그 키에서 2-3cm 크고 나서 키가 더이상 크지 않았다. 생각보다 성장판이 너무 빨리 닫혔다. 키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은 적 없지만 하하님 이야기를 들으니 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는 키로 시작해서 삶을 받아들이고 들여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키 작은 꼬마가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무언가를 딛고 올라서서 보거나 아빠가 태워준 목마로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지만, 이런 도움 없이는 세상을 높고 넓게 보는 건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키 작은 꼬마는 세상을 높고 넓게 보려하기 보다는 우러러보고, 주변을 살피는 것을 선택했다. 의자를 밟고 일어서거나 아빠한테 목마를 태워달라고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세상은 참 넓고 높았다. 생각을 어떻게 하고, 태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세상은 모양과 깊이가 다양했다. 키 작은 꼬마는 그렇게 자신이 볼 수 있는 세상을 보면서 직접 깨닫거나 경험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주 넓은 세상을 만났다. 기어코 가장 넓은 세상을 만난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자신이 꿈꿨던 것을 닿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하님은 자신이 원하는 꿈을 하나 둘, 이뤘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는 것 같다. 하하님의 열정과 의지라면 이루지 못할 꿈은 없다. 하하님의 도전 정신과 열정, 의지, 포기를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부럽다. 솔직히 고백하면 하하님이 괜한 곳에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안일한 나의 생각이고 쓸데 없는 오지랖이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뭔가를 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면서 타인의 삶 아주 작은 일부를 보고 걱정이라니. 어리석고 한심한 내 모습을 깨닫고 나서, 하하님의 파이팅 있는 일상을 매체로 전해 들으면서 생각했다. 어떤 삶이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걷고 뛰는 이들을 본받아야겠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본받을 만한 존재가 되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아주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모든 문장이 기억에 남지만,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라는 문장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렇다.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서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랐던 걸까. 스스로 잘 알아주면 되는데 늘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든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의 수고는 내가 잘 알아주면 된다고. 이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다가도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불쑥- 고개를 쳐든다. 하하님과 진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라는 마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고 얼마나 마음이 많이 다쳤을까 생각했다. 이 말이 나에게 마법을 부리듯 받아들여지면 무겁던 하루가, 소란한 마음이 가벼워지고 차분해질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주문을 걸듯 속으로 되뇌인다.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나의 수고는 나만 알면 돼, 라고. 언젠가는 나의 수고를 내가 가장 잘 알아줄 날이 오지 않을까. 누군가의 인정이나 누군가와의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진 날이 너무 늦지 않게 오길, 그날을 너무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 그 누구도 아닌.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된다는 말도 마음을 적셨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하루하루가 무겁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어디서 생긴지 모를 힘이 생긴다. 생각과 말, 마음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그 힘은 자주 쉽게 잊어서 문제이지만. 인생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니 그동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고 먹었던 머리와 시선, 생각을 멀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믿어봐야겠다. 타인을 믿는 것 만큼 나를 믿고 타인에게 관대한 만큼 나에게 관대했더라면 나는 더 단단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하는 후회는 의미 없다. 이제부터 나를 믿고 나에게 관대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믿음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이왕이면 내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장 가까운 곳을 너무 멀리 돌아왔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 나를 믿고, 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포기 대신 쉬었다 다시 일어나 가는 것을 방법으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괜찮게 보낼 것이다. 삐그덕 거리는 하루가 있는가 하면 편안한 하루가 있지 않을까. 다양한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질 내 삶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은 내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초점에 맞춰 굴렸던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살 것이다. 내 삶을 되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왔다. 외로웠고 공허했고, 두려웠다. 이제 내가 경험할 외로움과 공허험, 두려움은 전과 다를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겪고 감당해야 할 감정들이다. 그 길이 쉽지 않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기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키 작은 꼬마를 생각하며 내가 닿을 세상을 선명하게 떠올리기를.

무한도전 2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키 작은 꼬마 이야기>는 무도 키즈에게 반갑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무한도전은 우리의 기억에 남았지만 무한도전을 이끌어 가던 멤버들이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열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감사하다. 나의 어릴 적 영원한 재밌는 아저씨들의 열일이 어른이 된 지금 나의 열일에 힘을 보태어 주니까. 어렸을 때는 아저씨들이 툭툭, 던지던 어른들의 세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스치는 버스 같았는데, 이제는 그 버스를 타고 있다. 그래서 찾아보면서 웃고, ‘진짜 무도에는 없는 게 없네.‘라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웃는다. 이 시간마저 위로가 된다. 무도 멤버들이 먼저 걸어온 어른의 시간을 이제 내가 걷고 있는데, 그때 무도 멤버들이 이런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구나, 깨달을 때마다 웃프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위안이 된다.

<키 작은 꼬마 이야기>를 언젠가 내가 가정을 이루어 내 자식에게도 들려줄 날을 상상한다. 아주 먼 미래 같아서 어색하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하하님이 얼마나 대단한 슈퍼맨이었는지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하하님 덕분에 나 또한 슈퍼맨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왔다는 것을.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북뱅크에서 받았습니다:)

#키작은꼬마이야기 #하하 #북뱅크 #무한도전20주년기념출간 #알아주지않으면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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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선물
피터 레이놀즈 지음,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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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단어들,
: 피터 레이놀즈, 『단어의 선물』 👦🏻x🐶(문학동네)
: 뭉끄 6기 3월 그림책

단어 수집가인 제롬은 긍정적인 단어를 모으기 위해 반려견 에코와 눈 쌓인 거리로 나간다. 하지만 거리에는 제롬이 원하는 단어, 마음에 드는 단어가 없다. 긍정적인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거리는 삭막해보이기까지 한다. 세일, 금지, 폐업 등 거칠고 차가운 단어들이 가득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왠지 거칠고 차가워보인다. 거칠고 차가운 단어들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외로워 보이고,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신경질을 내는 것 같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제롬과 에코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필요하다, 이대로 두고 보고만 있을 순 없다.‘라고. 제롬은 단어를 모으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고, 고민을 하다가 방법을 찾아낸다! 제롬이 찾아낸 방법으로 세상은 전보다 다정하고 따스해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제롬은 에코와 함께 집으로 달려간다. 그동안 제롬이 모아둔 단어들을 챙겨 마을 공원으로 향한다. 제롬은 모두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를 만들자고 한다. 제롬의 부름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공원은 다정하고 따뜻한 단어들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그토록 원하던 세상에 닿기 시작한다. 다정하고 따뜻한 세상.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가 완성되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보니 내 기분이 좋다. 긍정 단어의 열매를 맺은 나무가 마을을, 마을 사람들을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 우리 마음에도 긍정 나무를 하나 만들어 열매가 잘 맺도록 물과 햇살을 주고, 다정한 말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게 좋은 것이다. 내게 좋은 것들은 분명 다시 세상에 긍정의 기운을 줄 것이다.

세상에는 참 많은 단어들이 있는데, 긍정 단어보다 부정 단어가 세상에서 유독 다른 의미의 빛을 내는 것 같다. 부정 언어가 비추는 빛에 많이 노출되어 다친 마음, 악해진 마음이 많다. 그 마음을 보살피고 치유하는 건 결국 긍정 언어인 것 같다. 제롬이 차갑고 거친 단어들 뿐인 거리에서 찾아낸 방법은 그동안 자신이 모아뒀던 긍정 단어를 이젠 세상에 선물해주는 거였다. 제롬이 생각해낸 방법은 세상에 변화를 가져다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게 받은 것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세상이 필요로 할 때 돌려줄 수 있는 제롬의 모습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동안 세상으로부터 모아둔 긍정 단어를 세상에게 선물로 주는 제롬의 마음은 어땠을까. 세상을,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롬은 세상을 사랑하기에 긍정 단어를 모았고, 모은 단어를 선물로 주며 세상이 따뜻하고 다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제롬의 바람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던 건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단어를 적어 나무에 거는 모습은 제롬이 선택한 방법이 거대한 긍정의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일이지만 그 누군가가 제롬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제롬은 단어 수집을 위해 나선 거리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긍정 단어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도 같다. 두려움 앞에서 보여준 제롬의 용기 있는 모습에 세상이 아직도 살만 한 이유는 제롬과 같은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제롬이 선물해준 긍정 단어가 세상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 그 숨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숨에 기대어 힘든 오늘을 버티고, 오늘보다 덜 버거운 내일을 살 거라고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더 나은 하루를 사는 이들이 있다.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은 익숙하다. 익숙하지만 상처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말로 생긴 상처는 유독 깊고, 아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물면 다행이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대부분이다. 거칠고 차가운 말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세상은 거칠고 차가운 말들이 지배하고 있고, 다정하고 따뜻한 말들은 금방 시들거나 밟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긍정의 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다친 마음을 안아주고 아물게 하는 것이 다정하고 따뜻한 말이고, 그 말들이 세상이 차갑고 거칠게 바뀌는 것을 온힘을 다해 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제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단어를 수집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롬을 보니 나태주 詩인님이 떠오른다.) 제롬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단어를 수집하는 일은 재밌고 흥미롭고 설레는 일이지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단어들을 만나기도 해서 극한 직업이기도 할 것이다. 단어를 수집하는 일이 즐거워 보이지만 제롬도 분명 마음이 불편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삭막한 거리에서 보기만 해도 불편한 간판이나 삭막한 대화를 듣고 있는 것과 같은. 앞으로 제롬에게 어떤 단어가 생길지, 제롬이 선물해준 단어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지만 전보다 조금은 봄바람이 불지 않을까 생각한다.(나의 바램이다.) 제롬과 에코가 꿈꾸는 세상이 곧 우리가 꿈꾸고 닿길 진심으로 바라는 세상이다. 제롬이 단어 수집가로 있는 동안은 세상에 모든 단어가 각자 자리에서 충분히 빛낼 것이다. 단어들도 누군가의 부름을 기다릴 것이다. 단어 수집을 즐기는 제롬과 같은 존재가 단어들에게는 아주 특별하고도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건 없다. 세상에 이유 없이 생긴 단어는 없다. 긍정 단어든 부정 단어든 제 역할이 있는 것이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며, 누군가에게 불리고 쓰이는 수많은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세상 단어들을 떠올리려니 머릿속이 좁다. 오늘도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했고, 다이어리에 내 마음을 끄적일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단어를 매일 수집하고 있다. 내가 수집한 단어들도 언젠가 필요한 곳에 좋은 마음으로 선물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지런히 단어를 모으면서 모두가 꿈꾸는 세상에 닿기 위해 힘찬 걸음을 내딛어야겠다. 제롬과 에코를 따라 걷는 거리가 다정하고 따뜻한 단어로 가득 차는 그날까지, 제롬의 단어 수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제롬을 따라 에코와 나도 세상 곳곳에 있는 단어들을 진심으로 대할 것이다. 다정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단어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그런 날이 머지 않았기를.

★ 이 책은 뭉끄 6기 3월 활동을 위해 문학동네에서 받았습니다:D

#단어의선물 #피터레이놀즈 #뭉끄6기 #3월그림책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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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개나리 북멘토 그림책 35
오윤정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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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나봐!
: 오윤정 그림책, 『언제나 개나리』 💛 (북멘토)

개나리를 보면 봄이 왔나 싶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어렵지 않게 개나리를 볼 수 있다. 개나리가 피는 계절이라면 개나리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동안 노란색만 보면 ‘개나리 피었네.‘라고 했는데 그동안 개나리가 아닌 것에 개나리라고 생각하며 넘겼던 순간이 여러 번 있어서 괜히 개나리한테 이 그림책을 핑계 삼아 사과를 전한다. 내가 아는 노란색 꽃은 개나리 뿐이라는 걸 개나리가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을 때만 봤지 개나리가 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한 번도 본 적도, 궁금한 적도 없었다. 오윤정 작가님이 개나리를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해준 이 그림책 덕분에 개나리가 어떤 과정을 지나 활짝 피었는지 알게 되었다.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야 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분명 꽃마다 자기만의 특성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개나리만의 특성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봄에 피어나는 노란색 꽃이 개나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동안 개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개나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봄마다 만나게 될 노란색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라도 바쁘게 움직이던 발을 멈춰 노란색 꽃을 자세하게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거나 폰을 들어 잠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전한 인사가 내가 전하고자 하는 개나리에게 잘 전해졌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봄에 피어나는 꽃과 함께 만난 봄을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생명들을 간단하게 만나면서 계절마다 그 계절을 느끼게 해주는 자연의 특징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특징을, 너무 당연해서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다는 것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 가장 싱그럽고 생기가 도는 계절이 ‘봄‘이라고 생각했다. 봄을 가득 채운 자연의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봄의 기운을 받아서 한해를 또 잘 보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새학기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여서 봄이 반갑지 않았는데, 지금은 봄이 기다려진다. 봄이라는 첫 단추를 잘 꿰어 놓으면 여름 가을 겨울은 순순히 잘 꿰어지는 것 같다. 중간에 덜커덩거리더라도 봄이 준 힘과 기운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윤정 작가님 덕분에 개나리와 봄에 잠깐이라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종이를 가득 채운 작가님의 그림과 글이 다가오는 봄과 그 봄을 마중갈 준비를 하는 내게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페이지마다 작가님의 마음과 시간, 정성이 느껴져서 넘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소란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며 넘기면서 봄이 오고 있음을,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말고도 많다는 것을, 기다린 봄이니만큼 봄을 즐길 준비를 하는 세상 곳곳에서 들리는 설렘 가득한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그동안 굳어 있던 감각으로 느꼈다. 잠자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일은 늘 계절이 하는 것 같은데, 봄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봄이 깨워준 나의 감각으로 봄을 마음껏 느껴야겠다. 봄이 준 선물, 이 순간이 지나면 내가 느끼고 가지지 못할 것들.
오늘 하늘 참 맑고 푸르다. 봄을 느끼기에, 봄과 같이 산책하기에 좋은 날이다. 봄이 속닥속닥, 내게 그동안 하지 못 한 말들을 하기에도 좋은 날인 걸 봄도 아는 모양이다.
봄을 마중 나갈 때 함께 할, <언제나 개나리>를 만나게 되어 좋다. 봄하면 <언제나 개나리>가 펼쳐질 것이다. 내가 어디있는 이 그림책을 펼치면 개나리에 둘러싸인 채 봄을 제대로 느끼며 행복할 내가 그려진다.

☁️ ˚₊· 💛 ˚₊· 🌼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북멘토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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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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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과 사랑, 역풍을 맞았지만
: 루이스 새커, 『호랑이성의 마법사』 (창비)

고전 동화를 읽은 느낌이라면 이런 걸까.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 모든 작품에서 부정하다가 결국 인정하고야 마는 사랑을 만나버린 것 같다.
1523년 르네상스, 에스콰베타 왕국은 몰락의 위기에 처해서 툴리아 공주를 옥사타니아 왕국의 나이 많은 달림플 왕자와 정략 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이 둘의 정략 결혼은 어렸을 때부터 정해졌다. 순탄하게 결혼까지 이어지면 굳이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툴리아 공주가 견습생 필경사 피토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호랑이성의 마법사 ‘아나톨‘에 의해 더 빠르고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 툴리아 공주와 피토의 관계를 알게 된 왕은 툴리아가 달림플 왕자와 무사히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물약을 만들도록 아나톨에게 지시하고, 피토를 감옥에 가두고, 달림플 왕자의 요구대로 피토를 처형할 것을 명령한다. 툴리아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고 알고 지내왔던 아나톨은 공주를 배신할 수 없다. 그래서 툴리아와 피토에게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물약을 만들어 마시게 만든다. 물약을 만들고 마시게 하는 과정에서 아나톨은 피토와 대화를 나누면서 피토가 죽게 내버려둘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나톨은 둘에게서 서로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해내고 만다. 그러나 상황은 아나톨과 툴리아, 피토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셋은 정치적 음모와 언제까지 쫓길지 알 수 없는 불안을 피해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에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건 그들이 언제 어디서 궁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어찌저찌 수도원에서 당분간 지내게 된 셋을 보면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봄이 오면 끊겼던 발걸음이 이어지니까- 로브 속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춘 그들이 가장 안전하게 느껴진다. 로브 밖에서는 여러 죄목에 뒤엉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죽게 되는 운명이니까. 왕을 속이고 정략 결혼을 파토내고, 탈출을 감행했으니.
셋의 위험하면서도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관계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놓을 수 없는 관계만큼 무겁고 잔인한 관계가 있을까. 툴리아와 피토는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둘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말이다. 공주와 필경사라니. 가장 처절하고 애달픈 사랑은 계급이 다른 이들의 사랑인 것 같다. 계급을 떼고 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들. 왕의 명령은 잔인하다. 감정은 가장 투명하고 변덕이 심한 것인데, 그것을 지우라니. 그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아나톨은 당황스럽고 슬펐을 것이다. 자신도 툴리아와 피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아나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둘을 지켜냈다.(적어도) 위대한 마법사 아나톨이 만든 물약을 만든다고 해도, 그 물약으로 서로를 품었던 기억이 지워졌다고 해도 감정만큼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나톨의 물약을 피해 숨은 감정이 두 사람 깊은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다가 기회를 엿보고 폭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바람이기도 하고, 아나톨이 이뤄졌으면 하는 반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나톨은 진짜 위대한 마법사다.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계산하여 둘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한 그 시대의 사랑꾼이었을지도 모르고.
삶과 사랑의 역풍을 맞은 공주 툴리아와 필사경 피토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를 아나톨의 시점으로 들을 수 있어서 더 와닿았다. 아나톨의 삶이 참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아나톨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독자에게 기억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아나톨은 가장 위대한 마법사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마법사라는 수식을 제대로 갖게 될 것이다. 툴리아와 피토가 아나톨과 헤어지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잘 지냈기를, 쫓김에서 자유로워져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해도 그 감정을 속이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청소년 작품의 작가인 루이스 새커를 <호랑이성의 마법사>를 통해 알게 되어 반갑다. 그가 낸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알지 못한 그의 세계에 천천히 발을 들일 것이다. 설레고도 긴장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그의 세계에서 찾아내어 사랑 하나 더해도 좋을 것 같다. 툴리아와 피토의 사랑만큼은 아니지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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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능력자 -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우수상 수상작 책깃노블
함설기 지음 / 책깃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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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설기 장편소설, 『이상능력자』 (가제본 서평단 / 창비)

‘이상능력자‘라는 표현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초능력자의 깊은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초능력자를 격리해야 한다고, 초능력자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수안이 초능력자가 되었다. 생각지 못 한 상황에 놓인 수안은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전에 자신의 능력을 쓰는 상황에 여러 번 놓이게 되고, 엄마 죽음의 진실에 다가간다. 수안이가 초능력자를 멀리하고 격리해야 한다고 외치며,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잘 알겠다. 초능력자의 폭발로 엄마가 죽었다면, 나라도 초능력자를 세상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외치고 다녔을 것이다. 초능력자의 인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이들의 인권이 있는 것 자체를 비웃을 것이다. 초능력자가 된 수안은 피해자면서도 동시에 잠재적인 가해자가 된다. 초능력자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초능력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어떻게 초능력자가 되는지 초능력자가 되기 전에 보이는 조짐은 무엇인지 등등 초능력자에 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초능력자를 극혐하고, 거리를 두는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초능력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과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데, 그 삶이 참 안타깝다. 국가에서 초능력자와 시민들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보다 초능력자의 격리를 제시했고, 격리로 인해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격리가 방법이 되지 않자, 초능력자를 다시 사회로 보냈다. 보냈기보다는 나 몰라라한 것이다. 휴양림 참사에서 많은 초능력자와 그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격리로 폭발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정부에 초능력자임을 등록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강요적인 등록제를 실시한다. 휴양림 참사로 초능력자가 전원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능력으로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그곳을 빠져나온 초능력자들이 적지 않다. 그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 지내다가 정부가 전원 사망이라고 낸 소식 이후 진짜 정체를 숨기고, 사회 속으로 숨어 들어 지내기 시작했다. 휴양림 참사로 많은 초능력자가 죽었지만 초능력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초능력자는 따가운 시선과 날 선 말들을 들어야 했고, 가장 괴로운 건 가해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초능력자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하루 아침에 가해자, 살인자로 불리며 살아가야 할 운명을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본인이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수안은 자신이 초능력자가 되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초능력자를 증오했지만 이젠 본인이 초능력자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니, 수안은 막막하고 억울하기까지 할 것이다. 어쩌면 수안은 초능력자로 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초능력자로 살기 시작한 수안의 처음은 위태롭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초능력자로 살아가야 하는 수안은 초능력자의 편에 서서 수안을 편 들어준 염정우와 수안처럼 초능력자인 텔레포트 남예리(남민하 팀장 동생)와 함께 여러 사건을 겪고, 숨겨져 있던 진실에 다가간다. 그 진실이 수안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 알 수 없지만, 이제와서 진실을 파헤치길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너무 깊이 들어왔고, 수안의 엄마가 말한 ‘공존’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공존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공존이 이루어진다면 폭발로 인한 죽음과 자살로 인한 죽음이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감히 바란다.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걸 알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책임이고 몫이다. 수안이가 초능력자로 살아가게 된 삶도.
넘겨야 할 페이지를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생각했다. 수안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사실을 금방 받아들였다고. 짧게 느껴질 만큼 수안에게 순식간에 많은 일이 벌어지긴 했다. 수안이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초능력자 격리와 혐오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일으킨 일들은 앞으로 수안이 초능력자로 살면서 수없이 겪을 일이면서 동시에 초능력자들이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엄마가 죽었던 장소에 가게 된 수안. 진실에 다가설수록 위험이 따랐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헐, 설마? 진심? 아니야.‘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와 허공에 잠깐 떴다가 금방 사라졌다. 발 묶여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하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를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형사를 사칭해서 숨겼던, 앞으로도 숨기고 싶은 진실을 숨기기 위해 수안 엄마를 죽인 진범이 수안까지 죽이려고 한 장면에서 ‘그럼 그렇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수안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했지만 또다시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과거에 저지른 일과 같은 일을 또 저질러 버린 진범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진범은 42를 지키기 위해 저질렀던 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질렀던 일, 그리고 수안을 죽이려고 한 일까지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진범이 할 수 있는 최선이 타인의 죽음뿐이었을까? 자신이 휴양림 참사에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또다시 끌려가 어딘가에 갇힌 채 지내야 하는 등 자유롭지 않고 괴로운 생활을 할 거라는 두려움이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게 만든 걸 안다.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진범은 합리화한 것뿐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최선이었다고 핑계대는 것이다. 수안 말대로 방법은 있다. 방법을 찾기까지 오래 걸리고 변수가 발생하고, 최악으로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다. 더 최악인 것은 어렵게 찾거나 만든 방법이 역할을 해내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지 않고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세상일이다. 진범에게 최선이지만, 오히려 초능력자에 대한 격리와 혐오만 늘어났다. 수안 엄마와 남민하 팀장처럼 초능력자를 생각하고 위하는 사람들이 분명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진범이 감정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가족을 잃어 초능력자를 혐오하며 긴 시간을 보내고 초능력자가 되어서야 그들의 삶을 살면서 느낀 것들에 지난날의 자신을 한심해 하는 수안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동안 짊어졌던 죄책감을 조금 덜어보고자 용기를 냈지만 결국 죽었고 누군가의 깊고 무거운 원망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을 42번도 없었을 것이다. 진범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알지만 나는 그를 탓한다. 언젠간 밝혀질 일이 두려워서 저지른 일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다. 본인이 수안을 먼저 불러낸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수안이 자신처럼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라는 것을 모르고 불러내 일을 저지른 진범이 맞이할 최후는 그동안 부단히 노력해서 지켜온 자신의 비밀이 까발려지고, 누군가의 가슴에 평생 고통스러운 상처일 것이다. 진범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때 격리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초능력자 격리와 혐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진짜 없었을까?‘와 같은 지난날을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든다. 초능력자들이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것들은 상상한다고 이해되는 것도 아니어서 감히 상상하길 멈췄다. 초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누군가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쓰일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은 초능력자가 아닌 이들의 두려움과 분노, 원망 등으로 만들어져 굳어진 시선과 마음, 그리고 시민과 초능력자의 공존이 아닌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에 휩쓸려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키운 정부의 형편없는 대응을 꼬집어야 한다. 늦었지만 바로 잡아야 한다. 초능력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늘어나고, 완벽하게 시민과 초능력자를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공존’의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공존만이 함께 살 길이다. 초능력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이다. 초능력자의 능력이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시민의 위험 부담이 더 큰 건 사실이나, 초능력자가 악의로 해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공존에 닿기까지 실수와 문제 등이 발생하겠지만 시민과 초능력자가 서로를 적으로 두지 않고 함께 안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부딪치는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공존을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지만,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희생이라고 하겠다. 희생으로 서로를 향한 반감이 더 날설 확률이 높지만 현재나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다.
수안이가 초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를 찾고, 능력을 어떻게 쓸지 선택하는 건 수안 본인 몫이다. 수안이 폭발하고 모든 세상이 달라졌다. 초능력자의 폭발로 인해 엄마를 잃게 되어 그들을 격리해야 한다고 외치고 혐오한 수안이는 초능력자가 되어 자신이 그들에게 했던 언행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었다. 시민과 초능력자의 삶을 모두 살아본 수안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엄마를 잃고 이모의 보살핌 아래 지내고 있는 수안은 자신의 투정을 받아줄 품 넉넉한 어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새벽 일찍 나가 밤 늦게 일하고 들어오는 이모한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 우정과 예리를 만나기 전에는 이대로 있다가 죽어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우정과 예리를 만나면서, 초능력자가 되어 짧은 시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수안에게 변화가 생긴다.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진범의 밀침에 수안이 밖으로 떨어질 때, 우정과 예리를 떠올리고 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수안이 폭발로 초능력을 갖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 걸렸을 깨달음이다. 그토록 혐오했던 초능력이 수안을 살린 것이다. 수안에게 초능력과 초능력자는 지독한 애증의 대상이다. 앞으로 초능력자로 어떤 삶을 살지 수안이 스스로 선택할 것이다. 위험 부담이 큰 능력을 어떻게 쓸지도.
초능력을 소재로 스토리를 구상한 작품은 아주 많아서 특별하지 않았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오래전부터 신성함을 잃었다. 신선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선을 사로잡는 히든카드가 있어야 한다. <이상능력자>에서 히든카드를 ‘수안‘이라고 생각했다. 시민과 초능력자로 모두 살아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실. 그녀가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할 수 있는 거짓없는 현실.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설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신선함을 끌어올리는데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진실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다가가는 수안처럼 함설기 작가가 수안의 설정을 통해 자칫 진부하고 유치한 스토리로 전락할 수 있는 <이상능력자>를 나누고 생각하할 거리가 많은 스토리로 만들었다. <이상능력자>를 읽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는지’ 등 생각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만약 내가 폭발한다면? 만약 누군가의 폭발로 가족을 잃게 되면? 등등. 수많은 물음표 앞에서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시민의 삶, 초능력자의 삶 그 어떤 삶에 대해서도.

★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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