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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에게 가는 길 ㅣ 위픽
전삼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내가 만난 애도 중, 가장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 전삼혜, 『나름에게 가는 길』(위픽시리즈/위즈덤하우스)
어째서 이 글을 이제야 만난 걸까. 두고두고 꺼내볼 글을 만나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조금 더 일찍 만나면 어땠을까,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지.’와 같은 생각들이 충돌한다. 충돌 후, 부서진 생각들이 머리와 마음을 헤집는다.
‘나름’이 무엇이기에 없애야 하는 걸까. 계속 생각했다. 그대로 두어도 언젠가 사라질 것인데도 말이다. ‘나름‘에 대해 설명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름을 애초에 이해하려는 게 틀린 건지도 모르겠다. 나름은 이해될 수 없는 무언가로 그냥 ‘나름‘인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호흡을 다듬고 <작가의 말>을 읽기 전에 그렇게 마무리 지었다.
‘우주의 쓰레기 청소부와 애도’에서 출발된 『나름에게 가는 길』은 내가 만난 ‘애도’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았다(애도를 다룬 방식을 평범하면서도 색다르게 느꼈다. 우주라는 공간이 더 이상 미지의 세계거나 특별하지 않음이 한몫 한 것이다). 좋았다는 표현말고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애도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많은 방식 중, 전삼혜 작가가 들려주는 애도의 이야기는 내가 바라던 애도 방식과 비슷했다. 애도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는 점에서 나와 다르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애도 목적, 그러나 슬퍼하는 방식은 하늘 아래 같은 사람은 없듯이 정말 많다. 어떤 방식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처음으로 나의 ‘애도’ 방식을 떠올렸다. 솔직히 애도 방식을 떠올리는 게 낯설고, 처음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죽음의 경험은 키우던 강아지들의 죽음이다. 내 일상을 공유하고, 나와 추억이 많았기에 그들이 숨을 거뒀을 때 눈물이 흐르고 후회를 하긴 했으나 며칠뿐이었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내 마음대로-내 마음이 편하고자-강아지별에 가서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애도는 짧고 굵은 것 같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잘 모르겠다. 애도 할 일을 만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나’가 하는 일들이 매력적이면서도 따분하게 느껴진다. 없애는 일을 하는 것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외로움마저 치우는 게 ‘나’가 해야 할 일이라서 생각했다. 없애면서 ‘나’는 처리하는 존재로 남는 것 같달까. ‘나‘는 본인의 생활에 만족도, 불만족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인다. ’나’의 동생 아영이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아영이의 이야기는 ‘애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애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나’의 부모가 하는 애도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멈추길 바랐다. ‘나’가 아영이에게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더 이상 자신의 부모 역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하는데 그때의 ‘나’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을 그리워하고,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지만 아영의 부모가 택한 방식은 죽은 아영이를 힘들게 하고, ‘나’까지 힘들게 만들었다. 그 힘듦을 끝내러 ‘나’가 결국 찾으러 없애러 가니까. 아빠는 차라리 없애주길 바라서 ‘나’에게 좌표를 남긴 걸까.
그리움이 짙으면 삶이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삶이 흔들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동생이 그립다. 부모와 ‘나’의 애도 방식이 다르다. ‘나’는 현실적이다. 부모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이 의미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좌표를 입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있으면 싶다가도 없으면 싶고. 두 마음이 충돌하는 ‘나’는 찾고 없애기 위해 가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함으로써 알려줘야 하니까. 솔직히 의미 없다고, 그저 쓰레기만 더 만드는 것이라고. 어차피 내가 다 찾아서 없앤다고, 내가 없애지 않아도 사라진다고. 마음을 비우라고.
‘나’는 동생을 어떻게 애도했을까. 애도할 시간이나 있었을까. 나는 이번 한 달여간에 시간이 애도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을 제대로 떠나보내고, 부모님한테 아영이는 이미 떠나고 없음을 알려줄 기회이고 부모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 딸의 죽음을 이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가 해야 할 일은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떠난 사람은 잘 모르지만, 남은 사람은 아주 무겁고 시간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도 밝혀질 게 많은 바다가 아니라 ‘닿을 수 있는 우주’와 같다. 비워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시기를 놓치면 비워야 할 것들과 갖고 있어야 할 것이 뒤섞여 마음은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애도의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건강한 애도를 하는 것이 우리가 살면서 적지 않게 해야 할 일이다. 애도하는 방식이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거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마주한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애도를 찾아가는 거랄까. 애도는 각자 방식이 존재한다. 틀리거나 맞다고 할 수 없기에 ‘애도’는 조심스럽고 특별하다.
작가님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고 잊었던 사실을 잊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라고 했다. 이 글 자체가 위로면서 동시에 애도가 아닐까. ‘잊어야 한다와 잊지 말아야 한다’를 타인이 재단하기는 어렵다, 작가님 말대로. 근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잃었을 때 제대로 애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만으로도 위로되었다. 잊지 않기 위해 애쓰거나 잊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잊으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였다. 광활한 우주를 떠다니는 쓰레기 꼴이었다. ‘나’가 필요하다. 나의 우주 쓰레기 청소를 부탁하고 싶다. 미련이나 그리움은 계속 생겨난다. 그래서 계속 비워야 한다. 미련이나 그리움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을 청소라고 불러야겠다. 청소된 나의 우주라면 정말 잊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 삶이 계속 굴러가려면 마음 다잡고 대청소가 필요할 듯 보인다.
가방에 챙겨 외로울 때마다 뭔가 놓치거나 잊은 것 같을 때, ‘도망은 때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 꺼내 읽어야겠다. 서툴게 굴러가는 삶이라는 바퀴에 이것저것 다 달라붙어 무겁지만 그럼에도 굴러가는 이유가 있겠지?
★ 위픽시리즈 중, 처음으로 읽은 시리즈인데 너무 좋다. 위픽시리즈 한 권씩 모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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