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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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의지

김지호 에세이,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은행나무)

 

언어치료사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열한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어치료사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펼친 이 책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읽는 동안 미소를 짓기도 하고, 마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물컹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볍게 책장을 넘긴 나에 대한 이 책의 울림 있는 복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런 아이들을 침묵하고 숨어버리게 만드는 세상에 관한 김지호 언어치료사의 이야기는 생각에 긴 꼬리를 물어다 줬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 옆을 지키는 보호자들도 마찬가지다. 말의 문턱 앞에서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그 옆에서 넘어진 아이를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는 보호자들의 꾸밈 없는 이야기에 세상을 향한 원망 그리고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면 또는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의 부모였다면, 그리고 말의 문턱에 걸린 나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을 어땠을지 등 를 대입하여 수많은 가정을 세웠다.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몸을 웅크리고 어둠이 되어 영원히 사라지길 바랐다.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쉴 새 없이 뒤쫓고,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사라지길 바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모습 그대로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함이 더 컸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나는 쉽게 흔들리고 약하니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면 왜 저러지?’와 같은 질문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머릿속에 물음으로 떠오르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읽는 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타인에게 시선을 받을 행동과 말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계산 끝에 출력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이 틀리게느껴진다. 핑계지만, 이 부분이 장애를 향한 나의 부끄러운 편견을 갖게 하는 데 작용했다. 장애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잊고 산다. 장애 가진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는 게 상황에 좋을 것 같아서 의지대로 말을 안 한 적은 많지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아이들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자신의 이야기를 지저귀는 새들처럼 하루 종일 하고 싶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언어치료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아이의 의지와 보호자의 책임이 필수적이고 중요한지도. 이 책에 등장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맑고 푸르렀다. 내가 생각했던 장애와는 전혀 달랐다(장애에 대한 나의 편견이 아주 심했구나, 또 깨닫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본인만의 세계를, 본인의 자리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세계와 자리를 위협하는 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하는 보호자와 동정과 안타까움, 불편함을 담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선에 굴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몸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고 단단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고, 그 마음을 만져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건 어른의 몫이다. 답답함에 어른이 개입하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성장과 회복을 막아버리게 된다. 아이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며 지지하는,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을 원한다. 아이들은 각각 제 속도대로 오늘도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더딘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 만큼 상처가 많고 덧났겠지만, 상처 위에 굳은살이 생겨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을 향한 믿음과 기다림이다. 아이들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어른들 또한 성장할 것이다. 아이만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어른 또한 아이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니까.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함께 하는 보호자와 언어치료사에게 힘찬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한 걸음씩 단단하게 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에게도!


 

김지호 언어치료사님!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아닌 척 숨겨둔 저의 모습에 부끄러웠고, 반성했습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의 이야기는 봄날 같았어요. 아프기도 했고, 퍽 다정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언어를 찾아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그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언어치료사의 역할과 일하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기분,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받은 선물들을 알 수 있어서 의미 있고 따뜻한 시간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마음을알아주는마음 #김지호 #언어치료사 #에세이 #은행나무 #아이 #언어 ##보호자 #어른 #아이들의_세계 #치료 #회복 #믿음 #기다림 #의지 #성장 #책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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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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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건 태양의 아이들덕분이야.

한요나 장편소설, 태양의 아이들(앤드)(SF소설)

 


태양의 아이들은 넥서스 제2회 경장편 작가상을 수상한 한요나 작가의 청소년 SF소설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작품이지만, SF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망설임 없이 책장을 넘겨도 좋다!

좋은 햇빛이 곧 권력과 부가 되는 세상에서 사는 하루와 주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SF소설이라고 해서 내가 이미 접하거나 알고 있는 스토리에 인물과 배경, 인물 간 갈등 등에서 진부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좋은 햇빛이 권력과 부가 된다는 설정부터 호기심을 끌었다. 언젠가 지금 당연하게 매일 쬐고 있는 햇빛이 정말 권력과 부가 되는 세상을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서늘하기도 했다.

하루는 1구역 아이들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아닌 갈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고, 주하는 까만 머리카락과는 전혀 동떨어진 빨간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까만 머리카락은 선망의 대상인 반면, 빨간 머리카락은 오염이나 외계인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출신 구역 상관 없이 머리카락 색을 통해 계급을 나눈다. 주하는 빨간 머리 때문에 통합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괴롭힘을 당한다. 하루는 주하에게 동정이 아닌 진짜 친구로 다가가 주하의 보호자가 되길 자처하고, 후에는 주하가 마음을 놓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가 된다. 주하는 하루 같은 친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좋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그것을 알아채는 건 주하 본인이 아닌 빌리다. 빌리는 주하와 하루가 조금 더 진짜 친구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주하를 따라다닌 건 주하도 어느 정도 무슨 의미인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하는 빨간 머리 때문에 집에서, 학교에서, 연구소에서 끊임없이 의심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어쩌면 하루를 만나기 전에는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루는 주하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명쾌하고 능숙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주하는 그런 하루가 어른스럽고 능숙해 보여 신기하지만, 하루는 주하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시간에서 느꼈던 감정이라서 주하가 지금 감정이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알고 주하가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주하의 옆에 있는 하루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고, 주하의 말을 빌려 정말 태양의 아이로 태어났어도 멋지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을 것이다.

럭스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섹터와 럭스 장사꾼들이 어린아이들을 착취하고 있고, 구역이 낮거나 구역 경계에 있는 아이들일수록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주하는 당장이라도 고향이자, 할머니와 사촌 언니와 동생이 있는 5구역에 가려고 한다. 가족 안전의 걱정보다 어린아이들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결국 5구역에 가서 상황을 본 주하는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과 연구원들, 군인들 사이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아이들을 착취하면서 위험한 생활에 빠뜨린 섹터와 장사꾼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들이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기준에 따라 나눌 뿐이다. 그들도 사실은 럭스를 만들 줄 아는 태양의 아이들을 찾아 연구소로 데려가기 위해 아이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5구역에 넘어온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섹터와 럭스 장사꾼들과 뭐가 다를까?). 주하는 5구역에서 떠날 때까지 적극적인 개입이 없는 그들을 보고, 무력감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이 아이들을 구해내고 싶다는 의지를 키운다. 주하의 의지에 불을 붙인 건 언제나 주하의 편에서 함께 하는 하루다. 주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주하에게 하루의 말은 앞으로 주하가 가는 길, 마주할 상황에서 북두칠성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햇빛과 권력과 부, 그리고 럭스, 경제적인 이득이라는 키워드로 이 소설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책장을 덮고 나면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상눈부신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을 점령한다. 좋은 햇빛으로 계급이 정해지고, 머리카락이 선망의 대상 또는 괴롭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설정이 꼭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의 방황과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 갈색 머리의 하루는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는 빨간 머리의 주하를 전혀 개의치 않고 진짜 친구가 되고 원래 머리 색을 두고 파란색과 흰색으로 염색한 1구역의 아이들인 빌리와 레오니는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빨간 머리 주하는 튀는 머리 색 때문에 관심과 불편한 시선을 받고. 학창 시절 때, 나는 주하였던 것 같다.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치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나에게 하루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큰 위로와 더불어 조금 더 괜찮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울적하다. 하루와 주하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 시간을 외롭지 않게 함께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잿빛이 내려앉은 세상에서 하루와 주하가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며, 본인만의 세상을 되찾길 바란다. 하루와 주하의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하루와 주하가 세상 곳곳에 있을 테니까. 그들에게 희망이니까. 우리가 좋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건 태양의 아이들, 즉 앞으로 세상을 무지개 색깔로 물들일, 한창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는 청소년들 덕분이다(이 점으로 보면 좋은 햇빛이 권력과 부일 수도 있겠다). 예상치 못한 만남과 상황, 감정에서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하루와 주하를 통해 경험한 눈부신 성장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배움만큼 끝이 없는 눈부신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 책을 펼칠 청소년들의.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 앤드러블(&) 52회차 서브미션1(서평) 활동을 위해 넥서스로부터 받았습니다:D

 

한요나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제목부터 표지, 내용까지 삼박자가 아주 딱, 맞는 소설이었습니다. 청소년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어른으로 읽는 청소년소설을 느낌이 색달라요.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괜히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진달까요. SF소설이라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게 잘 읽었고 하루와 주하, 그리고 아이들의 머리 색 등 소설에 등장하는 것들에 제가 생각하는 의미를 부여하여 생각하니 이 소설이 몇 번 다시 태어났어요! 다시 한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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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_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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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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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놓아 부르면, 닿으려나요.

조해진,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

 

올해의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따뜻했던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만났다. 조해진 작가와의 만남이 겨울을 지나가다여서, 올해가 끝나갈 때여서, 추울 때여서 좋다.

엄마라는 두 글자는 무슨 힘을 가지고 있길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고, 눈시울부터 붉어지는 걸까.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이다라는 책을 소개하는 강렬한 문장에 마음이 이상했는데, 책장을 펼쳐 조해진 작가가 그려놓은 세상에 들어가 보니 이상한 감정이 무엇인지 대충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엄마라는 두 글자에 목이 메는 이유와 책을 소개하는 한 문장에서 오는 수학 공식처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껏 서로를 위해 웃고 울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꼭 안아주면서 서로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임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잠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면,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수시로 내 눈과 마음에 물을 차게 만들었다.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싶다가도 나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 또한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어 생각하기를 멈췄다. 내 마음에 거칠게 이는 물결이 잔잔해지면, 엄마께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엄마를 향해 끄적였던 수많은 편지는 (진심이 담겼지만)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해 뻔한 말의 나열이 되었지만, 이 책에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엄마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담겨 있으니 작은 글씨가 엄마 눈을 괴롭혀도 꼭 끝까지 읽어달라고, 그러다 엄마의 마음을 쏙- 빼닮은 문장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색을 칠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132)의 문장을 만나기 위해 나는 정연과 함께 엄마를 떠나보내고, 추운 겨울을 아프면서도 따뜻하게 보냈다.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너무 아팠던 것 같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울고 웃었다. 마음 한곳이 자꾸 저릿한 게 엄마라는 단어가 너무 따뜻하면서도 아프게 느껴진 건 처음이라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숨기도 하고 도망도 다녔다. 고백하면, 엄마의 죽음에서 도망 다녔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되도록 아주 멀었으면 좋겠는(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두 눈 가득 물이 채워졌다. 엄마는 나의 세상이고 전부라는 사실을 책에 밑줄을 긋고 내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 이상으로 절감했다.

엄마를 보낸 후, 엄마의 집과 식당에서 엄마가 남겨둔 흔적으로 엄마 없는 삶을 사는 정연이를 보고 분명 추운데, 어디서 온 지 모를 온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고 느꼈다. 정연이가, 별이 된 엄마를 마음에 품은 딸들이 다시 살아가는 힘이 곧 그 온기이지 않을까.

엄마의 죽음이라는 것이 곧 빈 자리, 공허함 뿐인 자리라고 딱 끊어냈는데, '부재'를 언급하면서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질 사람들의 세계를 '확장'(연결)했고, 남는 사람들이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다정한 시간을 만들었다. 옷깃을 여며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읽은 나는 다정하고 귀한 시간을 선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책장을 펼치고 덮는 순간까지 엄마를 잊은 적 없으며, 갑작스럽지만 엄마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에 울컥을 내포한 분노로 목놓아 부르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었다. 소리 없이 엄마를 부르는 나를 엄마는 알 것이다. 엄마와 딸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드리운 햇살과 그늘을 알아내고 웃어주고 토닥여주는 존재이니까. 정말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가 아닐 수 없다. 세상 모든 엄마와 딸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은 작정단 11기 활동을 위해 6번째로 받은 책입니다:D

 

올해의 소설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은 작품을 만나게 해준 작가정신 출판사에,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를 써준 조해진 작가님에게 우주를 담아 고마움을 전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딸 중, 한 명으로서 감사히 작가님이 써준 헌사 잘 받았습니다.



조해진 소설, 『겨울을 지나가다』(작가정신)



조해진 작가님



< 차  례 >



너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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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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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문장을 따라 걸었더니,

노재희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작가정신)

 

노재희 작가님의 산문집을 읽게 된 건 작정단 115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아니, 서평단 활동은 핑계이고 노재희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작가님이 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났다(‘이라는 문을 통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산문집이라서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노재희라는 사람의 삶의 짙은 부분을 감사하게도 나눌 수 있었다. 작가님의 문장은 특별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에 색을 칠하고, 내 생각이나 경험 등을 내 필체로 덧붙이면서도 문장에 색이 있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노재희 작가님의 문장은 다양한 색이 존재했다. 그 중, 내가 느꼈던 색은 푸른색 계열이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던 중, 만났던 자연의 품에서 지낸 작가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여름님과 함께 있는 순간도 마찬가지다(‘여름씨라는 작가님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내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진 건 여름씨라는 이름이 갖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작가님과 여름님의 푸릇푸릇한 삶이 부럽기도 했다. 이곳저곳 이사를 다녀야 해서 힘들었겠지만, 그 순간을 기록한 작가님이 있고, 그 순간을 문장으로 만난 독자(나를 포함한 독자들)가 있으니 마냥 힘들었던 기억으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그러길 바란다, ).

작가님의 삶이 어떤지 연하게나마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군가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소중한 일상이 한곳에 모여 빛을 내는 듯한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은 삶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것을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다. 작가님이 나눠준 모든 이야기가 마음을 톡톡, 두들겼지만 병원에 있던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마음이 한동안 머물렀다. 내가 아픈 것 같았다.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터널 입구 앞에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어둠이 풍기는 싸늘함에 몸을 작게 말고 있는 기분이랄까. 작가님의 걸음을 따라 병원을 나와 본 세상은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다(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야 할 세상을 배웠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작가님과 동일 인물이 되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느끼기 시작했다. 느끼려고 하자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능했다. 항상 받아들이는 시간이 길고, 버거웠던 나에게 작가님은 하루하루 닿는 거리, 물건, 상황, 기분, 감정 등을 굳이 못 본 척 지나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이 말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무난한 하루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요즘, 노재희 작가님과의 만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내 앞에 나타나 말 대신 품에 넣어 토닥토닥, 안아주는 손길이었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도 그렇다고 이렇게 해보라는 조언도 없지만,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망설임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한 것 같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이 내 삶을 떠돌다 보면, 제법 괜찮은 삶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게 삶 아닐까. 정처 없이 책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노재희 작가님을 만났듯이.


이 책은 작정단 115번째 활동을 위해 작가정신에서 받았습니다:)

 

노재희 작가님과 여름님의 싱그러운 나날들을 응원합니다. 작가님의 문장에는 색이 있고, 저는 그 색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한 색, 잘 간직하겠습니다:)

 


노재희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작가정신)



노재희 작가님 :D



 < 차    례 > 



「에필로그」 239쪽

-

작가님의 문장을 따라 걸었더니

내가 보려고 하지 않은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마음 먹은 대로 달리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내 세계의 크기'를 이렇다 저렇다, 상상해보고 그려볼 용기조차 없었다.

상상하고 그려보는 것조차 실패라는 결과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내게 닿은 수많은 도전들을 얼마나 많이 밀어냈을까, 생각하니

이미 내 것이 아닌, 내가 밀어낸 도전에게 미안했다.

이제라도 내 세계의 크기를 가늠하며,

나답게 내 세계를 그런 대로 꾸며 가야겠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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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 - 그림책 작가 오소리 에세이
오소리 지음 / 아름드리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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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일기장을 펼쳐야겠다,

오소리,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아름드리미디어)

 

개인적으로 일기를 쓰는 행위를 좋아한다. 학창시절, 알림장 1번은 중요한 준비물이 아니라면 일기 쓰기를 항상 적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매일 써야 하는 일기가 귀찮았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하루를 기록하기보다 일기를 읽고 선생님이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도장과 그 밑에 짧게 달린 선생님의 댓글을 보기 위해 일기를 열심히 썼다. 일기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의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없던 어린 날의 나는 일기 쓰는 시간이 제법 즐거웠고, 빈 종이에 바른 글씨가 줄을 맞춰 한가득 채우고 나면 뿌듯해서 여러 번 펼쳐봤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 신경 쓰고, 내 글씨에 자부심을 가진 것이.

본가 책꽂이를 채우고 있는 일기장을 가끔 보게 되면, 마음이 이상하다. 내가 쓴 것인데, 내가 쓴 것 같지 않다. 책가방을 메고 엄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짧은 다리로 열심히 학교를 향했던 아이가 쓴 글은 하나같이 솔직했고, 그래서 자연스러웠다. 고학년이 될수록 선생님의 댓글은 짧아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댓글 없이 도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도장만 찍혀 있으면 내 일기가 선생님의 마음에 들지 못한 것 같아 더 신경 써서 일기를 쓰고 글씨를 더 예쁘게 쓰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도장만 있다는 건 선생님이 바쁘기도 하고, 댓글을 달아주지 않아도 일기를 잘 적는다는 칭찬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서 일기는 더 이상 숙제가 아니었다. 내가 쓰고 싶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쓰지 않는 것이다. 검사하는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일기를 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나는 알아서 일기를 썼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일기장에 모조리 털어놓았다. 짧게 혹은 길게 일기를 쓸 때마다 평범하게 보내는 나의 시간을 기록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시간이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걸 알려주기 위해 숙제를 내줬고 도장과 댓글, 야단으로 부지런히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일기 형식이 아닌 다양한 글의 형식으로 쓰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느낀 것들이 그렇다.

오소리 작가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의 일기장을 오랜만에 읽어본 것 같았다. 분명 다르지만 닮은 구석이 있어 내 일기장을 빼앗겼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주 가끔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펜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갈 때가 있다. 다음날 읽어보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악, 분노 등을 마주하는데,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이 또한 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종종 그런 류의 일기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나를 위한, 나만 보는 일기장에서만큼은 진실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하루가 꾸깃해질 때마다 펼치는 일기장은 개미만 한 글씨들이 그날 기분에 맞춰 각자 다른 리듬을 타고 줄 위에서 떠들고 있다. 시간과 공간 상관없이 언제든 나의 부름에 응해주는 일기장에게 새삼 고맙다.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책장을 보면 울컥한다. 나는 잊어야 내일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일기장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려고 하는데, 일기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바위보다 더 단단하고 든든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잊기 위해 쓰는 줄 알았던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던 것이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아름드리미디어 출판사로부터 받았습니다:)

 

오소리 작가님, 일기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일기장인데 어느새 제 일기장인 것처럼 저의 이야기를 많이 덧붙였습니다. 훗날 나의 일기도 한 편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오늘부터 일기를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오소리,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아름드리미디어)



오소리 작가님 소개 :D



길벗어린이 증정 :)



오소리 작가님! 잘 읽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잊히는 것이 싫어서 일기를 썼다』를 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읽다 보니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찌릿하기도 하고,

밑줄을 긋고 또 긋고 싶은 문장도 많았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정말.

앞으로도 작가님의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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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잊히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쓸 누군가에게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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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나에게 잊히지 않게 노력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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