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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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의지

김지호 에세이,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은행나무)

 

언어치료사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열한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다. 언어치료사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펼친 이 책에 빠져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읽는 동안 미소를 짓기도 하고, 마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물컹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볍게 책장을 넘긴 나에 대한 이 책의 울림 있는 복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런 아이들을 침묵하고 숨어버리게 만드는 세상에 관한 김지호 언어치료사의 이야기는 생각에 긴 꼬리를 물어다 줬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 옆을 지키는 보호자들도 마찬가지다. 말의 문턱 앞에서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그 옆에서 넘어진 아이를 찢어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하는 보호자들의 꾸밈 없는 이야기에 세상을 향한 원망 그리고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가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면 또는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의 부모였다면, 그리고 말의 문턱에 걸린 나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을 어땠을지 등 를 대입하여 수많은 가정을 세웠다.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몸을 웅크리고 어둠이 되어 영원히 사라지길 바랐다.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쉴 새 없이 뒤쫓고, 스스로 존재를 부정하고 사라지길 바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모습 그대로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함이 더 컸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 나는 쉽게 흔들리고 약하니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면 왜 저러지?’와 같은 질문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머릿속에 물음으로 떠오르던 몇몇 순간들이 떠올랐다. 읽는 동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타인에게 시선을 받을 행동과 말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계산 끝에 출력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이 틀리게느껴진다. 핑계지만, 이 부분이 장애를 향한 나의 부끄러운 편견을 갖게 하는 데 작용했다. 장애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잊고 산다. 장애 가진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은 무엇일까? 말하지 않는 게 상황에 좋을 것 같아서 의지대로 말을 안 한 적은 많지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아이들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걸, 자신의 이야기를 지저귀는 새들처럼 하루 종일 하고 싶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언어치료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아이의 의지와 보호자의 책임이 필수적이고 중요한지도. 이 책에 등장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맑고 푸르렀다. 내가 생각했던 장애와는 전혀 달랐다(장애에 대한 나의 편견이 아주 심했구나, 또 깨닫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본인만의 세계를, 본인의 자리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세계와 자리를 위협하는 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하는 보호자와 동정과 안타까움, 불편함을 담은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선에 굴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몸에 힘이 세게 들어갔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고 단단했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채고, 그 마음을 만져줄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건 어른의 몫이다. 답답함에 어른이 개입하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성장과 회복을 막아버리게 된다. 아이들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자신을 믿고 기다리며 지지하는,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어른을 원한다. 아이들은 각각 제 속도대로 오늘도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더딘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은 수많은 좌절을 경험한 만큼 상처가 많고 덧났겠지만, 상처 위에 굳은살이 생겨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을 향한 믿음과 기다림이다. 아이들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 보내면서 어른들 또한 성장할 것이다. 아이만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어른 또한 아이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니까.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함께 하는 보호자와 언어치료사에게 힘찬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한 걸음씩 단단하게 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에게도!


 

김지호 언어치료사님! 잘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아닌 척 숨겨둔 저의 모습에 부끄러웠고, 반성했습니다. 말의 문턱에 걸려 넘어진 아이들과 보호자의 이야기는 봄날 같았어요. 아프기도 했고, 퍽 다정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언어를 찾아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는 그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언어치료사의 역할과 일하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과 기분,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받은 선물들을 알 수 있어서 의미 있고 따뜻한 시간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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