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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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첫 코로나환자 발생 이래, 2020년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주의' 단계로 전파가 시작되었다. 일주일만에 급속하게 전파되자 2020년 1월 27일 지역사회 전파로 보고 '경계'로 단계를 높였다. 다음달 신천지 집단감염이 시작되자 2020년2월23일에 전국적 확산인 '경계'단계에 이르며 2월29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언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3월 12일 세계적 대유행인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 WHO의 비상사태 해제발표 및 '심각'에서 '경계'단계로 하향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 흐른 2023년 6월 1일이었다.


한참 코로나 19의 확산세로 '사회적 거리두기' 라는 말이 생기고, '비대면' 이라는 말이 무성해졌던 2020년의 봄의 소리는, 손소독제로 손바닥을 비비는 소리로 기억되는 해이다.


자가 '격리', 영업장 '폐쇄',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인원 '제한' 등 전부 '단절'과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말들 뿐이다. 어쩔 수 없었다. '확산'을 막기위한 방법은 '끊어내기'뿐이었다. 그 수많은 끊어내기 속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벅뚜벅 걸어나와 지금에 이르렀다. 


" 횡단보도에서, 건물과 거리곳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칠때면

거기 있는 모두가 2020년을 겪고 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오늘에, 내일과 모레에,

이 소설의 못다한 이야기처럼 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주』 작가의 말 中 


소설은 2020년을 배경으로 우리가 겪은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그때는 처음이였을, 그래서 너무 당황하고 두려웠던,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 '지나온 시간들'을 담아 두었다. 이 모든게 지나고 나니 엄청나다.

그리고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게 놀랍다.


01 "그럴 수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 '이나리'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 해 기정시의 새경프라자 304호에서 캔들과 비누를 만드는 첫 상가 공방인 <나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방에는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친하게 지냈던 한 수강생이 코로나19의 67번 확진자가 되어 인근 시립병원으로 이송되고 만다.

정작 나리는 '잠복 결핵 보균자'라는 이유로 코로나19에 감염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신종 호흡기 바이러스로 정신이 없는 때에 생각지도 못한 결핵얘기를 듣게 된 나리는, 호흡이 불편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하고 나아가 공황장애 현상인 과호흡을 겪기도 한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의 늪에 빠지게 된 나리는 그동안의 관계와 앞으로의 관계를 다시 천천히 되짚어보게 된다. 기정시에서 살아온 남편 '오종수'를 만났고, 기정시에서 학원차량기사를 하며 살아온 '수미'도 만나 비슷한 시기에 마흔의 고비를 넘겨왔다. 13살 나리의 딸 '오은채'와 14살 수미의 딸 '김서하' 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으며, 무엇보다 결핵을 옮겼을거라 추정되는 '만조 아줌마'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재회한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이 바로 『마주』이다.


02 '치부가 다 까발려진 사람이 동네로 돌아왔을때, 우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보고를 하듯 매일 서로의 동선을 공유하던 안전 강박심이 안심되는 동시에 숨막혔던 시절'이었기에, 확진자를 향한 '분노'와 '적대', '경멸'과 '실소'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의 한 형태였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명명할 수 없는 울퉁불퉁한 감정들로 뒤섞여 우리의 관계망를 흔들었다.

때문에 완치된 뒤 복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방과후 교사, 학습지 방문교사, 학원기사 등 '집단'을 상대하는 직업은 더욱 그랬다. 수년을 같이 일해오며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과 더 이상 함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마음의 변화를 겪든 일자리를 잃는다는건 선택의 폭을 아주 많이 제한할 수 있었다. 이건 사회적인 부분이였다.

수미는 개인적으로도 자신에 딸에게 많은 제한을 두는 여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도 이제는 그녀에게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리가 우연한 계기로 수미와 서하의 관계를 알게되어 두 모녀를 '분리' 시키려 하자마자 수미가 코로나 감염으로 '격리'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단절'을 겪는다. 수미의 단절은 자신이 쌓아왔던 경력과 신뢰의 단절이자, 부모로서 자식과의 관계의 단절이었다.

나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수미는 '감각을 죽이고 사는 여자'였다. 의욕도 기력도 없어 언젠가부터 접어두어 잊고 사는 '생기'라는 것을 살다보니 죽여버리고 말았지만 다시 살릴 엄두가 나지 않는 여자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기분은 어때?'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사는 낙이 하나도 없다' 며 기진맥진한 채 아이에게 매달리며 '니가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의미니'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투사하며 숨통을 조이는 전형적인 부모였다. '아이의 부정적인 반응에 상심'하고 '아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해 하였기에 온전하게 아이를 지지해 주지 않는 부모였다.

"제발 나를 안심시켜줘,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줘" 라는 자신의 확장으로 자식을 생각했었기에, 자녀 역시 "내가 나로 있으면 엄마가 힘들어할거예요"라고 말하는 그 세상을 나리는 알고 있었다. 나리는 딸의 세상을 최선을 다해 좁게 만들어 온 여자의 면상을 쳐다봤다.

이 세상엔 여러 종류의 문제가 있듯이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상황과 조건 속으로 다시 자신을 기어코 밀어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미는 '단절'로 회복되지 않은것 같은 딸과의 관계가 어긋나자 딸과의 관계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대신 둘째를 낳아 새 관계를 그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마주하기보다,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어쩌면 많을지도 모른다. 나리는 수미를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사과밭으로 가자"

수미를 데리고 나리는 2020년 1단계의 가을을 마주하기로 했다. 


03 " 코로나가 언제 끝나는데? "

나리는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자주 있는 13살 사춘기의 딸을 데리고 있는 40대 중반의 '엌마'(딸은 엄마를 이렇게 저장하고 있었다)였고, 제 3자처럼 적당한 해결책만을 내놓으며 '무슨 말만 하면 내탓이냐'고 말하는 남편을 둔 '아내'였고, 9년만에 홈에서 상가로 옮겨 공방을 연 자랑스런 '양초공예협회의 지도사 자격증 소지자'이자, 공방에 확진자가 나오며 민폐를 끼쳐 조심스러우면서도 코로나의 여파로 임대료 및 생계가 걱정이 되는 '자영업자'였다. 쏟아지던 관심에 '결핵 보균자'라는 걸 알았고, 과호흡으로 인한 '공황'증세까지 얻었다.

" '공황 장애' 단절이 일어날 때 나타납니다. 내 안의 미해결된 감정과 단절될 때, 내가 나한테 벽을 쳐버릴때, 몸으로 그게 나타나는 거예요.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질환이죠. 당신은 그걸 찾아야 될 거예요."

사람은 큰 공포를 겪으면 모든 일상은 다시는 그런 상황을 겪지 않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게 되어 있다. 밝고 오지랖 넓던 성격은 움추러 들었고 모든 공공장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미용실, 영화관은 물론이고 엘레베이터나 계단 통로, 그리고 운전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사가 조심스러워 매사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나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여파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9년만에 연 10평남짓한 공간의 문을 매일 여는 것이 지금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예약이 없어도, 제작 주문이 없어도 꾸역꾸역 열었다. 두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소를 확보하는것, 그것이 가장 절박했다. 공방은 그렇게 이어나갔다.

가깝게 지냈던 '수미'와 딸 '서하'를 보며 자격 없는 엄마인 수미를 경멸했고 엄마의 굴레 속의 서하에 감정이입했다. 관계는 공방만큼 이어나가는게 힘겨웠다.

단절. 미해결. 자신과의 관계의 재정립.

그래서 가게되었다. 명절 귀향길에 싸운 부부처럼 고개를 돌리고 날이선 상태로라도 몰입할 다른 것을 찾아서, 순간적 해방감을 찾아서, 만조 아줌마에게.

"엄마는 잘 계시니?"

"코로나가 다 끝나면 오래요. 추석때도 오지 말라고 해서 못갔어요."

엄마보다도 먼저, 이 가을, 사과 수확 일을 도우러 수미와 사과 밭으로 간다.


04 " 그 많던 사과는 어디로 갔을까? "

나리는 어릴적 반 이상이 산비탈에 걸쳐져 있는 사과밭을 운영하느냐 바빴던 부모님 집에서 자랐다. 만조아줌마는 여안 일대에서 과수원일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도와주던 팀중에 하나였는데, 이웃해 산다는 심리적 가까움 때문인지 부모님은 만조아줌마에게 많은 의지를 하며 자주 맡겨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맡겨지다가 언젠가 부터 그만두어 떠나게 되어서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만조 아줌마가 사과를 발효하던 모습, 나누던 대화, 닭간을 챙기던 것, 예초기보다 민들레를 심자고 말하던 아줌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비탈사과민들레밭 의 가장 최근 사진을 보았을때, 삼십년전 만조 아줌마가 2020년 여름을 살면서 자신처럼 지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항상 나도 모르는 나를 알아봐줄 누군가를 계속 갈구하고, 친밀감에 목이 말라 있었던 나리였다. 어릴적엔 만조아줌마가 곁에 있었고, 자라서는 남편이 곁에 있어줬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누구를 남겨 두었던가. 딸인가. 친구인가. ...공방인가.

"지하에 뭐가 있어요?" "증류실이 있지, 숙성실도 있고"

"딴산은 어디에 있어요?" "충청남도 여안군에 있지"

"누가 사는데요?" "밭일을 제대로 하는 일꾼들(만조아줌마의 팀)이 살지"

"결핵은 누구한테 옮았어요?"

딴산은 결핵 환자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병원에서 병상부족을 이유로 강제 퇴원당한 결핵 환자들이 모였고, 조금씩 그와 비슷한 처지들의 수몰민들이 골짝으로 들어가 마을을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유추하거나 어떤 팔자였는지 묻이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이유건 서로 더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몸이 다할때까지 약초를 캐고, 가축도 기르고, 사과 농사도 지었다.

나리는 수미, 그리고 딴산 사람들과 밭일을 도우며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결국 여안 시장으로 가서 비즈를 꿰맨 마스크 크트랩을 만들고, 털 수세미를 만들고, 천연비누도 만들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몸 속에 잠복한 딴산발 결핵군의 원천지인 '그' 딴산 '안'으로 직접 들어간 것이다.

"그때 만조 아줌마가..." 미루고 미루던 것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린 시적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아 더이상 만조 아줌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여름을 기억했다. 지난 날의 자신의 기억을, 엄마의 눈치를 보며 몰래 음식을 먹던 아이가 가여워 '숨 좀 쉬라며' 기꺼이 돌보아 주려 손을 먼저 내밀었던 만조아줌마의 상냥함을,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아줌마에게 얼마나 큰 곤경을 빠뜨리게 했는지를. 미루고 치워두고 덮어두었던 마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05 "너를 그렇게 둬서 미안해"

나리는 자신의 실수 뒤의 만조 아줌마의 시간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때문에 만조 아줌마의 숙성실의 항아리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만조 아줌마가 농사와 양조에 쏟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찾고 있는 날짜들이 있지나 않을까 하면서 항아리 사이사이를 누비고 또 누빈다. 만조아줌마는 나리의 결혼식에 찾아와서 '적적할때 먹어라'면서 사과주를 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뒤론 만난 적이 없었지만, 은채를 출산 소식을 듣고는 술을 담가 숙성 날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나리는 12살 이후 삼십년간 마음 속 어딘가에 아줌마를 숨겨두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아니었다. 언제나 나리 편에서 나리를 마주하며 응원해주고 있던 것이다.

나리는 남모르게 엄마의 눈치를 보며 자라던 억눌린 시절의 자신을 수미의 딸 서하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이입했었다. 그시절 만조 아줌마가 예전에 자신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것 처럼, 지금의 서하에게도 그런 시간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경멸부터 분노까지 알수 없었던 감정에 휩쓸려 수미를 차단하고, 다시 푸르고, 휘젓던 수미와도 마주한다. 수미의 시선이 닿는곳에 같이 시선을 마주한다. 그렇기에 후에 수미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을때 어쩌면 살짝 웃었는지도 모른다.


06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바길 바랐다"

코로나 19가 확산된 봄이 지나, 재확산된 겨울이 되었다. 여전히 위험했고, 이전히 더 긴 시간을 집에 머물며 그간 쌓여왔떤 서로간의 문제들을 다시 겪게된다.

수미와 서하는 지난 십년간의 시간이 서로의 면전에서 차곡차곡 펼쳐지며 사실은 그동안에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전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상처주었던 말들은 어떤 날은 마음이 아팠다가 또 어떤 날은 화가 나면서 자책, 자기혐오의 연장선상에서 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은 결국 당사자들이 겪고 넘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코로나처럼, 지난 봄처럼, 수십년전의 사과밭의 기억처럼 말이다.


사람은 초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굳기를 기다린다 해도 단단해 지지 않는다.

잊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니 생경히 살아있기도 하고,

지웠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알고보면 지워지지 않았다.

태울지, 태우지 않을것인지를 골라 심지의 깊이를 선택하는 일을 초만이 가능했다.

우리는 그 심지가 자신을 이유 없이 답답하게 하고 얼마나 괴롭히게 할지 그러다 또 언젠가 어떠한 계기로 타오를지 언제 꺼질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알 지 못한채로 묻어두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미는 언젠가 나리공방에서 만들어진 '두꺼비 소주잔'에 만든 캔들을 선물 받는다. 그리고 수미와 나리는 11월에 수확해 긴 겨울을 나눠 먹을 수 있는 부사보다 수확 시기가 늦은 만생종 사과를 로컬 푸드 직매장에서 발견한다. 품종명은 '아삭'이, 생산자 라벨에는 박만조가 적혀 있었다.

무엇이든 온전히 감각해 본 순간을 거치고 나서야 용기 낼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뒤에 알게 된다.


건너왔으나 온전히 건너오지 못한 시절,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서로를 의심하고 소외 시키는고 스스로 고립되는며 단절되는 것이 당연했던 '거리두기의 시대' 건너온 우리들에게 넌지시 그 마음을 보다듬어 주는 시간을 선사한다. "마음이 수없이 헤집어지더라도 서로를 충분히 겪길 바랐다. 두려움을 껴안고서라도 마주 보길 바랐다." 며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게 하게 하고,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을 이겨냈을때 비로소 타인에게 가까이 마주하며 가닿을 수 있음을 확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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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위로 사전 - 나를 들여다보는 100가지 단어
박성우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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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마음 사전』 시리즈를 통해 아이들의 ‘마음 박사’로 등극한 저자가 이번에는 『마흔살 위로 사전』을 통해 청장년층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해주는 단어들로 또 하나의 ‘사전’을 편찬했다.
ㄱ의 '가득차다'부터 ㅎ의 '힘차다'까지 100개의 단어를 골라 직장인의 삶, 가정 내의 삶, 혹은 일상에서 한번쯤 마주 했을만한 상황들이 예시와 비유를 들어가며 가득 담아 놓았다.

처음 책을 펼쳤을때 목차를 보며 책을 읽기 전 그 단어에 대한 나만의 뜻과 표현을 찾아 적어보고 싶어서 쭉 적어본 뒤에야 책을 읽었다.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책은 사전적 단어의 뜻풀이가 아닌, 상황적 단어로서 공감 갈만한 에피소드 몇개만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지친 마음을 들여다 보고 어루만저 주며 위로해줄 수 있는 글귀들로 장식하여 독자들의 '마음 정리'를 돕는다.

우리는 종종 몇가지 단어 뒤에 수많은 감정을 숨기거나 때때로 마음 속 감정을 드러낼만한 적절한 표현구를 찾지 못할때가 많다. 그런 어렴풋한 마음 마음들을 구체적인 표현들로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들로 드러내고 감싸준다.

독자들의 하루를 어루만지며 “위로와 격려와 사랑의 인생사전(정호승) ”으로, 어떤 단어가 머물다 가는지 같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관대하다, 끄떡없다, 단단하다, 서글프다, 괜찮다, 힘차다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다들 그런 단어들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듦을 알아주는 말, 다독이고 위로 해주는 말, 깨닫고 통찰하게 된 괜찮다, 힘차다는 말들로 이루어진 단어의 힘과 그 단어에 실린 자신의 마음가짐을 확인하고 싶다면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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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 창비아동문고 280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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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누적 판매 90만부를 기록 중인 어린이 장편 동화 『푸른사자 와니니』 시리즈.

어느새 100쇄 인쇄를 돌파한 1권을 이제야 읽어보았다.

와니니는 은가레강 구역에서 버팔로를 주로 사냥하는 암사자 '마디바'의 무리였다. 암사자들은 누가 낳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무리의 아이들을 함께 키웠기에 모든 아이들의 엄마였다. 치밀한 작전과 풍부한 경험, 무엇보다 자식을 굶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사냥해왔다. '공격조'가 사냥감을 쫓으면 숨어있던 '매복조'가 뒤처진 사냥감을 기습하는 것이 암사자의 사냥법이였다. 사냥보다 세상구경에 마음이 끌렸던 아기 와니니는 겨우 한살이었다. 잡아다 준 먹이도 형제 자매들에 밀려 스스로 챙겨 먹지 못하던 힘이 약한 아이였지만 마디바 무리에 속해있는 암사자임에 자랑스러워 했고 반드시 멋진 사자로 자라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초원이 우기를 지나 초식동물 사냥감이 줄어든 건기가 되자 암사자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와니니는 '제대로 된 사냥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아이' 로 '제 몫을 해내지 않는 아이까지 돌볼 순 없다'는 이유로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암사자가 사는 법은 몇가지 룰이 있었고 그 룰은 절대적이었다.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를 것(우두머리는 무리를 위해 냉정해져야 할때가 있다)'

'사자는 혼자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사자는 여럿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다)'

'갈기가 자란 수사자는 무리를 떠날 것(이후 수사자의 방문은 공격으로 여긴다)'

'물러서거나 겁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그것이 암사자가 수사자를 제압하는 방법이다)'

'이미 대가를 치른 일에 대해서는 다시 죄를 묻지 않고,

이미 지난 죽음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을 것(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는건 당연한 일이다)'

'오늘 내가 할일을 할 것 (그러면 내일이 온다)'

와니니는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다른 엄마들은 '무리를 떠나는 순간, 어른이 되는 것'이라며 와니니는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며 응원했다. 무리에서 떠나게 된 와니니는 사자에게 가장 무서운 '혼자가 되는 벌' 을 받으며 떠돌이 신세가 된다.


혼자가 된 와니니는 '무리는 며칠에 한번씩 이동했지만, 외톨이는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조금씩 몸으로 하나하나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쳐 갔다.

개인적으로 이말이 왜그렇게 아프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혼자가 된다는건 더는 온전히 그리고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는 이말이, 매일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이'의 신세를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달을보고 해를 보면, 오늘을 열심히 보내자 비로소 오늘이 온다는 말을 실감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 다시 오늘이 지나면 내일,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해는 꼴딱꼴딱 잘도 기울었고 다시 떠올랐다.


외톨이로 지내기 힘겨워 하던 어느날, 그저 '지독하게 운이 나빴을 뿐'이라며 다들 와니니처럼 저마다의 딱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던 또 다른 떠돌이 사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사자에게는 친구가 필요해, 그동안 혼자 다니면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어?'라며 비록 수사자와 암사자 사이지만 사냥할 줄 모르는 와니니에게, 그리고 절름발이 여섯살 아산테 아저씨와 두살 애송이 잠보에겐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였다. 그리고 와니니는 무리를 떠난 뒤 처음으로 편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와니니는 자기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 할 친구들이 있다는것 만으로도 기운이 났다. 마디바의 아이로 돌아갈 순 없지만 외톨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새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문제는 사냥을 배울 나이인 한살 반이 되기도 전에 쫓겨났으니 아직 사냥을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원 어디에도 목숨을 쉽게 내 놓는 상대'는 없었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사냥에 서투른 떠돌이들에게도 만만한 사냥감'은 언제든지 많았고 결국 '우연한 행운' 같은 첫 사냥에 성공한다. 그리고 '초원에서 가장 운 좋은 사자들에게나 찾아오는 행운' 같은 두번째 사냥에도 성공한다.


'외톨이' 이자 '떠돌이'였던 와니니는 '영토'나 '먹이'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던 '무투'나 먹이를 가지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수사자에게도 경고했다. 해치거나 빼앗지 말자고.


사냥에 성공도 하고 새로운 무리도 만들고, 예전의 무리였던 말라이카도 다시 만났다. 그러자 사냥을 못해 '쓸모 없던' 와니니도 꿈을 꾸기 시작한다.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지내는 꿈을. 약해빠진 아이도 자상하게 돌봐주고, 경솔한 아이도 너그럽게 감싸주고, 쓸모없는 아이도 따뜻하게 품어주고 싶었다.


'혼자 둘수 없다'며 '와니니 무리'라고 칭해준 일행들과 여행의 행선지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정했다. '지금까진 열심히 노력하면서만 살아왔지만 그곳에 가면 해가 지는 시간까지 마음 높고 자고, 마음껏 포효하며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을 상상하며 해가 뜨는 곳으로 쉬지 않고 걸었다.


초원도 그랬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하찮은 사냥감, 바닥을 드러낸 웅덩이, 썩은 나뭇등결, 역겨운 풀, 다치고 지친 떠돌이 사자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껏 와니니를 살려주고 지켜주고 길러주었다. 쓸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서로를 돌봐줄 거란 믿음이 있다면 초원을 누리고,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초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와니니는 친구들과 완전한 한 무리가 되었다. 비록 강하거나 용맹하진 않지만 약하고 부족하기에 더욱더 서로가 힘들고 지칠때 서로 도우며 함께 하는 친구들이었다. 초원의 끝에서 함께 돌아온 친구들이었으며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함께할꺼라 믿었다.

때문에 무투의 침략을 감지하고 마디바 할머니를 만나러 다시 돌아가던 길에서도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마디바를 만난 와니니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는 복종하지 않겠다는 뜻이였다. 그리고 똑바로 말한다. '마디바'의 무리가 아니라 '와니니' 무리가 되었다고.


" 와니니 무리는 앞으로도 잘해나갈거야.

서로를 돌봐 줄 테니까.

그럴거라고 서로 믿으니까. "


비록 무투와 그 아들에 맞서 싸우다 아산테 아저씨를 잃게 되었지만 아저씨는 웃으면서 이 또한 '초원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품위있는 동물답게 마음껏 게으른 삶을 살기를 꿈꿨지만, 품위있는 동물답게 죽은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겠다고 말하며 초원의 왕 아산테는 사자가 이별하는 범에 따라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떠난다.


"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해. "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사자들의 '무리'의 모습은 각기 달랐다.

강한 아이만 살아남겨 곁에 두는 마디바 무리가 있었고, 자립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무리 속에서 다른 무리를 염탐하는 무투무리도 있었고, 약하고 부족하지만 홀로 있음을 경험해 보았기에, 두번다시 홀로 두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보다듬고 도우며 의지하는 와니니 무리가 있었다.

사자의 삶 뿐만이 아니었다. 이 초원 위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다 저마다의 법칙과 생존방식으로 적대적으로, 때로는 친밀하게, 때로는 교류하면서 그렇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벌어진 일에대해선 탓하지 않으며, 도움 받은 것은 갚아주고, 그렇게 공생하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에겐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의 사연만큼 저답게 열심히 살며 다른 모습을 보여줄 뿐 틀린 삶은 없다는 것을 이 초원위의 동물들은 하나같이 말해주고 있다. 같은 것을 그리고 꿈꾸는 무리들과 뜻을 함께 할 뿐, 그 어떤 무리도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었다.

와니니는 와니니 답게, 사자답게, 왕답게 초원을 달릴 뿐이다.

'와니니 무리'들이 푸른 들판을 달리며 함께 사는 용기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책, 『푸른 사자 와니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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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어린이 2023.가을 - 통권 82호, 창간 20주년 기념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지난 여름에 창비 계간지 200호(50주년)를 맞이했다면, 이번 가을은 창비 어린이 82호(20주년)를 맞이했다.


어쩌다보니 최근 몇년은 창비에서 출판한 어린이 그림책과 청소년 시집, 청소년 소설을 많이 읽게 되었다. 부쩍 청소년 소설이 많아진것도 사실이나, SF 장르나 영어덜트라는 장르 속에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는 그 경계성이 모호해진 것을 느껴왔다.


그렇게 '요즘 청소년 문학'의 트랜드를 반영하고 이 시기를 대표하고 있는, 백온유, 곽유진, 길상효, 단요, 이희영, 최상희, 현호정의 창작 청소년 소설 특집 단편글을 읽으며 청소년 문학을 이해하고 사유하는 폭이 넓어지게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창작

이번 가을호는, 청소년 소설 특집으로 일곱편의 청소년 소설이 실려있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부터 , 판타지, 사소하지만 세밀한 일상의 이야기 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일상의 풍경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따뜻한 유대관계로 넓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다.

  • 곽유진 - 뇌를 빼고 그림을 그려도 미대에 가고 싶습니다

'왕남뽑을 가리켜 뇌를 빼고 쓴 소설이라는 얘기가 많았죠. 사실 입시보다도 뇌를 많이 쓰면서 쓴 소설인데 말이죠.'라는 작가의 말이 서글프게 다가온건 결론을 못읽어서 인지 그런 날카로운 댓글들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쓰는 내가 재미있어야지 읽어주는 사람들도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의 원칙도 재능있는 사람들의 거짓말 같았다.

지금 입시미술에 시달려 있는 내 입장과 다를게 없었다. 내가 잘그린 그림이라고 남들도 잘 그렸다고 생각해주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왕남뽑의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글도 그냥 뇌를 빼고 쓴 것처럼 가벼워 보였지만 인기가 많았던 것 처럼, 숙고하여 그린 그림이나 그냥 뇌를 빼고 그려서라도 입시 미술에서 뽑히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암기화된 입시미술로 체득된 테크닉은 신체가 기억하게 놔두고,

그 다음엔 뇌를 뺀 후에 자신만의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보면 되는거야.

하지만 결국 문학이 아닌것 같은 왕남뽑을 쓰기 위해서 조차도 작가가 중세사와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했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대 입시가 비록 예술 작품이 아닌것 같은 암기 미술을 하고 있지만 그 기초를 닦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미대 진학 후에 (지금까지의 암기 미술의 기억인) 뇌를 빼고 자신만의 작업을 하라는 선생님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작품은 엉덩이로'라는 고되고 긴 고민의 시간과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뒷받침과 '일단 내가 마음에 들어야 대중의 마음도 사로잡는다'라는 그럴싸한 그 유혹의 말과, '기본을 갖춰야 재능이 발휘된다'는 고전적인 말들이 모두 들어가 있어 꽤 공감이 되었던 글이다.

  • 길상호 - 다음 문장을 바르게 고치시오

국가 기관인 '내일 재활 센터'는 난치 질환으로 냉동되었다가 해동된 환자들이 시대적 차이를 극복하고 재사회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이곳에서 재활 도우미로 봉사활동 하고 있던 찰라, 백년 전에 냉동되었던 환자가 깨어났고 그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모국어를 잃고 시간에 떠밀려 온 난민이었다.'

냉동 치료 환자들은 치료를 위해 시간을 늦췄다. 깨어나보면 저마다의 상실을 발견한다. 치료된 자신의 병에 기뻐하기 보다 달라진 미래와 사라진 언어에 당황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뭘 그렇게 까지 했나 싶네..'

56세인 그가 16살의 자원봉사자를 만나 반말을 듣고 억척같이 화냈던 것도 잠시, '그 시대엔 이런 말을 썼어' 라며 존댓말을 가르쳐 주다가 결국 '이 시대에 적응' 하는 쪽을 택한다.

"우리의 다정한 언어는 널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

언어 파괴, 기후 위기, 난민, 난치 질환 치료 개발을 위한 냉동 문제를 모두 겪어낸 미래의 이야기이가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주로 사용하던 '모국어' 를 잃는 것 또한 '난민'과 다를바 없다는 표현 또한 와닿는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와도 우리는 다정하게 너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따뜻했다.

'한국어' 에 세번의 파도가 왔듯, 시대는 계속해서 파도치며 변화한다. 변화하는 방향성에서 옳고 그름, 더 나아지고 있는지 등을 따지는 것은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일찍이 다윈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는 종족은 가장 강한 종족도 아니고, 가장 지적인 종족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족이다. "

  • 단요 - 세상의 이름은 기린

기린의 줄잡이였던 '나'는 가족을 모두 잃고 기린의 다리가 무너지면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가족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지키고 지켜지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유령기린은 우리를 지켜주지만, 우리가 없으면 유령 기린은 기린일 수 없다. 슬퍼도 내일을 위해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고, 낯선 기린을 찾아 익숙해 지는 것은 평생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였다. 그래서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때때로 빈자리가 원래의 마음을 대신하곤 한다.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다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마음이 이었던 자리는 그 모양 그대로 남곤 한다. 버려짐에 대해서 생각했다. 강물이 지나간 후 그 자리에 싹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밀려나는 무엇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세계가 한껏 역동하며 내달리는 것에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꿈꾸든 꿈꾸지 않든 '순환'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돌다 어느 순간 서로 다른 것의 마음이 기적처럼 맞닿아서 각자의 고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삶이란 숨결과 시간과 갈증과 열망이다. 삶이란 모든것이다. '

기린에 대한 이야기로 지켜짐과 지킴, 변화에 대한 슬픔과 적응, 만남과 괴로움, 배려와 용서, 다시 지켜짐과 지킴으로 순환되는 삶의 모든 숨결을 이야기 한다. 비유와 이입이 적절해서 눈길이 가는 소설이었다.

  • 백온유 - 냠냠

떡볶이집 딸로 똑부러진 반장이 은근 손을 많이 타는 한 친구를 관찰하고 챙겨주다가 정이 들어 버렸다는 청소년의 귀여운 썸타는 이야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냈다. 자존심을 지키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부분들을 어떻게 지켜내면서 또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지점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결식아동이라는 점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연민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보다, 오히려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 이미 인기있는 떡볶이 집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이제 차릴 생각인데 '시식'해 달라는 핑계로 음식을 권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갖는 둘만의 시간에서 짝남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빠진다. 이렇게 웃는구나, 이런 말투를 쓰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이를 보면서 함께 '식사'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만의 습관을 눈치채고 대화를 통해 알아가고 같이 보내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나는 그애가 먹는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고 소리에 귀 기울였다.

냠냠 소리를 내며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순간이 참 행복해 보였다.

먹을때 신기하게도 냠냠 하는 소리가 만화캐릭터처럼 났다.

이 예쁜걸 나만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떡볶이를 나눠 먹는 것도 좋았지만, 새로운 면을 알아간다는 것이 더 좋앗다.

말이없고, 소심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챙겨줘야 하고, 눈치 없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말이 많고, 웃기고, 똑부러지고, 신세시는 것을 싫어하고, 눈치도 있었다.

"너 먹을때 냠냠, 하면서 먹잖아. 그거 귀여워서 좀 보려고 했다. 그게 그렇게 불만이야?"

나는 내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지막에 두 아이는 마주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함께 웃으면서 식사한다는 것은 한층 더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한것 같다.

  • 이희영 - 꽃의 노래를 함께 부를래?

'너는 기억을 잃은 후에야 비로소 네 가치를 알게 된 것 같아'

기억을 잃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 기억에 없는 가족, 친구들을 만나고 낯선 거울 앞의 자신을 마주한 뉴라. 거추장스러웠던 앞머리를 자르고 초록색의 예쁜 눈동자를 드러내며 '나는 왜 내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던 거지?'라고 말하고, 방에서 발견한 자신이 그린것 같은 그림들을 보며 '나 그림을 잘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그것이 너만의 '가치' 라는 말을 듣는다.

"나랑 꽃의 노래를 부를래?"라고 여자가 파트너를 청해야만 남자는 수확 감사절 춤축제에 참여할 수 있다. 잔뜩 움츠렸던 꽃봉오리가 터지듯, 잃어버린 용기가 발현되듯, 기억 너머의 지워버린 어떤 마음을 전달하듯 비록 기억은 없지만 방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그림에 등장했던 남자 '드레'에게 서슴없이 청해본다.

'기억을 잃어버려서 원래 자신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알수 없으니까' 작은 장점에도 기뻐하고, 속이거나 억누를 필요 없이 감정에 충실하고, 계산적으로 굴것 없이 과감하게 행동한다. 그것이 때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동안 스스로는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걸까 되묻게 하는 지점이다.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야. 평소에는 꼭꼭 숨겨 놓거나 억눌렀떤 스스로가 나타난거지.

기억을 잃는다는 건 자신을 가둬 놓은 '방'에서 나오는 일이니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변하면서 익숙했던 관계와 알고 있던 나를 색다르게 볼 수 있다.

별볼일 없던 내가 대단해지고, 새롭게 도전할 용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진다.

최근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신간을 낸 이희영 작가의 따끈한 단편이다. 어린 나무가 첫 겨울을 맞이하는것 처럼 이제 성인이 되는 기로에 놓이는 17살이 된 기념으로 '기억의 오두막'에 들어가 '기억을 잃는 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 마을에서 이번엔 '뉴라'의 차례였다. 우리가 흔히 '자신만의 방'이라고 부르는 동굴은, 힘들때 숨으러 들어가는 혹은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런 방의 존재가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잠시 '숨쉬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방에 자신의 가치를 '숨기게 한다' 는 발상에서 이 소설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잃으면 자아를 잃게 된것이라 보통 두려움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데, 이 소설에서는 두려울 필요가 없으며 차분히그리고 새롭게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며 '가치'와 '관계'를 발견하자는 이야기로 쓰인 점이 좋았다. 일주일 정도 '기억을 잃을 자신'이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상상해 보시라.

  • 최상희 - 앤

'굿 시스터'는 다른 행성에서 이모님을 채용해 가정에 매치해 주는 정부 지원사업으로 보육과 가사를 담당할 노동력의 원활한 보급으로 가정의 행복도를 높이고 열악한 환경의 행성 사람들을 돕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13세 이하의 아동들을 어른 없이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수요와 공급이 맞았다. 기후 변화로 두꺼운 얼음과 눈으로 덮여 혹독한 추위와 밤이 계속되던 헤카테 행성에서 온 '앤'은 상당히 앳되보였지만 일머리가 있어 노트를 들고 다니며 일을 속도가 빠르게 배웠고 곧잘했다.

이곳에 달리 집도 가족도 없는 앤은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이모님이었다.

'통역기'를 통해 각기 다른 행성의 말을 교환하면서 앤이 알아야 할 건 우리의 요구사항 뿐이었고, 우리도 언제고 떠날수 있는 시스터 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진 않았다. 때문에 앤에게도 이곳이 아닌 저곳에는 가족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했다. 앤의 돌봄을 받는 동생 래미는 23번의 이모들과의 잦은 이별에 익숙한 아이였고 '야생 동물의 눈과 코' 로 자신에게 진심으로 대해주는 지를 쉽게 파악할 줄 알았다. 앤을 잘 따라왔고, 직감적으로 앤의 변화도 누구보다 빨리 파악했다. 래미는 앤이 찾지 못하게 꼭꼭 숨는 숨바꼭질을 시도했다. 한껏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와 꼭 안아주길 바라며 멀리멀리 달아났고, 길을 잃었다. 그리고 앤 역시도 대게 이모님들이 작별인사 없이 떠났듯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 언젠가 들려주었던 헤카테 행성의 자장가만을 남겨둔채.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이 '통역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요구사항'에 필요 충분하며 지내는 이 설정 속에서도, 가족, 유대, 진심, 사랑 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놓을 수 있는 것을 보며 청소년 소설의 힘을 느낀다.

  • 현호정 - 가렌웰의 주방

전쟁 전에도 이미 삶이 전쟁같았음으로, 진짜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삶이 크게 변하거나 나빠지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낡아 빠진 여관의 화덕에서 스프를 끓여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해 왔다. 남편도 잃고 딸도 잃은 이후 가렌웰은 쪽잠조차 자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으니 하루가 온통 잠이 됐다. 시작도 끝도 없는, 전쟁보다 나쁜 것이 되었다.

남편과 딸의 사라짐이 죽음인지 실종인지 알 수 없다.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슬픈건지 화난건지 감정이 담기지 않는지 오래다.

'희망이란 무엇일까' 가렌웰과 여관 사람들은 앵무새의 외운말 같기도, 잠꼬대 같기도, 그러나 거지말 같지않은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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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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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아이가 직접 부모를 면접하여 선택하는 '미래'시대를 그린 『페인트』로 좋은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육체의 나와 영혼의 나로 '분리'된 '나'를 그린 『나나』 로 진정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이희영의 신작이 나왔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이번 소설에서는 자신의 '보여지는 면'과 '감춘 면'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라는 사람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혹은

친근하게 여기는 프레임, 사회적 위치,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가 된다.


누군가의 '부모와 자식'으로 누군가의 '선생과 학생'으로 누군가의 '상사나 동료'로 각기 달리 기억되는건 비단 사회적 '역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어떤 모습에는 '시대'도 한 몫을 하고 '상대방'이라는 사람도 한몫을 하고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혹은 그가 스스로 어떤 이유나 계기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평생'에 걸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변화에 대해 우리는 '성장·성숙'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표정·태도·가치관' 의 변화에 따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고 때때로 자신이 알고 있던 범주에서 벗어났을 경우 '의외의 면'이라며 반전매력이라던가, 갭(gab:차이)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니까.

타인이 보여주는 모습을 '존중'하되,

그것이 전부라 '단정'짓지 않으면 된다.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수도, 그 반대일 수도 없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선의의 행동을 했을때 그 주변인들에게 '그는 평소 어떤 사람이였습니까' 라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용했어요, 착했어요' 등으로 통상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사를 항상 먼저 하는 인사성이 밝은 친구였어요.' 등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예를 들면서 이런 모습으로 보아 그는 어떤 사람인것 같다며 자세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한 인간을 만나 한 부분을 같이 지냈을때 각기 달리 기억하는 이유가 수천가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연'도 한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벚꽃은 봄의 상징, 은행나무는 가을의 표상이 된 건

바라보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사람'에게 서로 다른 추억과 이미지가 덧 씌워지듯이


상대방과 당사자 사이의 경험, 그것이 기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개개인과 모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순 없기 때문이고, 설령 비슷한 경험을 했다하더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오래전에게 세상을 떠났지만 나에게도 형이 있었다.

형과 나는 십삼년 차이 쌍둥이라고 불렀다.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죽은 형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라는 전제로 하기에 '죽은 사람' 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은 여태 많았다.

대부분의 '회상'이라는 것은 사건-추억-기억의 시간 순에 따라 이루어지고, '기억'하는 방식, 모습, 대부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기억' 하는 것도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 지는 것도 모두 남은 사람의 몫인것이다.

이 책 역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터울이 큰 남동생이, 죽은 형의 나이가 되어서야 형을 기억하려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차 기억법'인 것이다.


17살의 형이 죽었을 무렵, 동생은 겨우 5살이였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형에 대한 기억도 너무 어릴때라 거의 없다.

'함께 나눈 기억이 없으니 추억도 없다. 그리움도 불가능했다.'

'형의 기억은 사라진 공룡과도 같은 것' 이라며 곁에 머물다 사라진 존재라는 것은 알지만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어서 '화석'이나 '뼛조각'을 이어 붙여 복원시켜봤자 '상상의 산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가 형이였다.

그러나 형이 죽은 나이만큼 자라자, 그때의 형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시절의 형'과 같다는 말은 묘했다. 살아있었다면 형의 모습은 '미래의 나'가 된다는 말이였다. 자꾸 그런 말들을 들으니 문득 형이 궁금해졌다.

동생의 기억법에는 '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것과 함께, '그런 형과 함께 자라서 형이 만약 지금 서른이 되었다면, 어떤 모습이였을까'로 나아갔고, 십삼년차 쌍둥이라는 말을 들은 나에게 '형'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사람이 된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지점이 기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억법의 특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해서 동생이 과감하게 닫혀있던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흔적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모두에게 물었지만 모두의 대답은 달랐다.

평범하게 조용했던 사람으로, 다정했던 사람으로, 우직했던 사람으로, 애교많던 사람으로, 그렇게 기억에 없던 형을 기억해본다.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추억만큼 "어떤 모습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랐지만, 그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의지보다, 기억되는 당사자가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보여주었냐"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저마다 사람을 대할때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드러내고 숨기고 있느냐에 대한 '관계방식'이란 이야기로 흘러간다.

'숨기고 싶은 면'이 있다면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고, '말하고 싶은 면'이 있었다면 마음 터놓고 얘기했을 것이다.


책에선 사람들의 다양한 '이면'을 설명하기 위해 '메타버스', '아바타', '가상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모든 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달의 뒷면'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감춰진 모습들은 대부분 인터넷 세상 속 익명성 속에서 발현되기 마련이었다. 가면을 쓰고 날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되려 속내를 털어놓는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역시도 거꾸로 활용한다.

'가상공간'을 이용해서 '아무나' 알리고 싶지 않는 내 공간을 따로 만들어 현살과는 다른 관계를 별도로 쌓는 식이다.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컴퓨터를 켜 형이 즐겨하던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11년만의 로그인한다. 거기에서 마주한 한사람. 형이 가꾸어 온 '가상현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공간이 그곳에 서있던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의 주인공인 그 한사람은 여전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형의 비밀스런 '가상 공간'도 알게되고, 형을 기억하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형에 대해 '질문'도 하고, 형의 정보로 형과의 '대화'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억에 없는 '형'을 쫓으며 되려 형과의 추억을 쌓게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 방식, 메타버스 속 아바타의 캐릭터, 현실의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맺어가느냐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맥락 속에 있었던 것이였다. 우리의 다양성과 익명성은 저마다의 어떤 '면', 저마다의 '비밀'과 '속사정'을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였다.


-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나도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줄 몰랐어.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다' 라는 말은 내가 보이는 나의 '이면'은 오롯이 나만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떤 점을 이끌어 내주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기에, 그 깊은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내가 이런줄 알았어'라는 스스로의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 또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나의 이면들이 곳곳이 드러난다는 얘기인데, 그 '관계'라는 것이 또 그렇게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저마다의 감추는 모습과 드러나는 모습들이 다른 것은, "사람들은 모두 애쓰면서 살기 때문", 그리고 그 부분들을 보면서 사람들도 저마다의 좋거나 나쁜 기억들로 잊거나 간직해둘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그래서 무언가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어떤 것은 '무모하게' 어떤것은 '무심하게' 해결해나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 '고작' 은 없다.


사는게 다 그러하다고.

세상에 수많은 성격과 가치관이 존재하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진실을 안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몇가지 눈에 보이는 사실 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한때 귤을 좋아했지만, 신맛이 가슴으로 퍼지는것 같아 싫어진 사람이 있다.

귤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봄귤은 달고, 여름의 귤도 맛있다.

이야기 초반부로 돌아가 계절에 대한 얘기와 기억에 대한 얘기를 다시 짚어본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계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는건 인간이라는 말, 봄의 상징은 벚꽃, 가을의 상징은 은행나무, 겨울은 귤.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어떤 '기억'은 그 계절을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계절을 싫어하게 만들기도 하겠지.

이건, 겨울의 귤을 좋아하던 사람에게 여름의 귤을 권하며 더는 귤을 싫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매일 귤빛 태양으로 물들이며 하루를 보내지만, 또 하루는 시작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내는 오늘과 다가올 내일에서 서로의 비밀과 이면을 발견하면서 조금씩은 특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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