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입양을 아이가 직접 부모를 면접하여 선택하는 '미래'시대를 그린 『페인트』로 좋은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육체의 나와 영혼의 나로 '분리'된 '나'를 그린 『나나』 로 진정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 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이희영의 신작이 나왔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의 이번 소설에서는 자신의 '보여지는 면'과 '감춘 면'으로 타인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라는 사람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혹은

친근하게 여기는 프레임, 사회적 위치,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가 된다.


누군가의 '부모와 자식'으로 누군가의 '선생과 학생'으로 누군가의 '상사나 동료'로 각기 달리 기억되는건 비단 사회적 '역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어떤 모습에는 '시대'도 한 몫을 하고 '상대방'이라는 사람도 한몫을 하고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혹은 그가 스스로 어떤 이유나 계기로 인해 변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문에 '평생'에 걸쳐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변화에 대해 우리는 '성장·성숙'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표정·태도·가치관' 의 변화에 따라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고 때때로 자신이 알고 있던 범주에서 벗어났을 경우 '의외의 면'이라며 반전매력이라던가, 갭(gab:차이)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니까.

타인이 보여주는 모습을 '존중'하되,

그것이 전부라 '단정'짓지 않으면 된다.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수도, 그 반대일 수도 없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선의의 행동을 했을때 그 주변인들에게 '그는 평소 어떤 사람이였습니까' 라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조용했어요, 착했어요' 등으로 통상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사를 항상 먼저 하는 인사성이 밝은 친구였어요.' 등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의 예를 들면서 이런 모습으로 보아 그는 어떤 사람인것 같다며 자세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다.

한 인간을 만나 한 부분을 같이 지냈을때 각기 달리 기억하는 이유가 수천가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연'도 한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벚꽃은 봄의 상징, 은행나무는 가을의 표상이 된 건

바라보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사람'에게 서로 다른 추억과 이미지가 덧 씌워지듯이


상대방과 당사자 사이의 경험, 그것이 기억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개개인과 모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순 없기 때문이고, 설령 비슷한 경험을 했다하더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비록 오래전에게 세상을 떠났지만 나에게도 형이 있었다.

형과 나는 십삼년 차이 쌍둥이라고 불렀다.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죽은 형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라는 전제로 하기에 '죽은 사람' 을 다루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설은 여태 많았다.

대부분의 '회상'이라는 것은 사건-추억-기억의 시간 순에 따라 이루어지고, '기억'하는 방식, 모습, 대부분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리고 '기억' 하는 것도 서서히 기억에서 '지워' 지는 것도 모두 남은 사람의 몫인것이다.

이 책 역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형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터울이 큰 남동생이, 죽은 형의 나이가 되어서야 형을 기억하려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차 기억법'인 것이다.


17살의 형이 죽었을 무렵, 동생은 겨우 5살이였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형에 대한 기억도 너무 어릴때라 거의 없다.

'함께 나눈 기억이 없으니 추억도 없다. 그리움도 불가능했다.'

'형의 기억은 사라진 공룡과도 같은 것' 이라며 곁에 머물다 사라진 존재라는 것은 알지만 어렴풋한 기억밖에 없어서 '화석'이나 '뼛조각'을 이어 붙여 복원시켜봤자 '상상의 산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존재가 형이였다.

그러나 형이 죽은 나이만큼 자라자, 그때의 형의 모습과 꼭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 시절의 형'과 같다는 말은 묘했다. 살아있었다면 형의 모습은 '미래의 나'가 된다는 말이였다. 자꾸 그런 말들을 들으니 문득 형이 궁금해졌다.

동생의 기억법에는 '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것과 함께, '그런 형과 함께 자라서 형이 만약 지금 서른이 되었다면, 어떤 모습이였을까'로 나아갔고, 십삼년차 쌍둥이라는 말을 들은 나에게 '형'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미래'의 사람이 된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지점이 기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기억법의 특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해서 동생이 과감하게 닫혀있던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흔적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형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어?" 모두에게 물었지만 모두의 대답은 달랐다.

평범하게 조용했던 사람으로, 다정했던 사람으로, 우직했던 사람으로, 애교많던 사람으로, 그렇게 기억에 없던 형을 기억해본다.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추억만큼 "어떤 모습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달랐지만, 그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의지보다, 기억되는 당사자가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보여주었냐"에 따라 다른 것이었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저마다 사람을 대할때 누군가에게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드러내고 숨기고 있느냐에 대한 '관계방식'이란 이야기로 흘러간다.

'숨기고 싶은 면'이 있다면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고, '말하고 싶은 면'이 있었다면 마음 터놓고 얘기했을 것이다.


책에선 사람들의 다양한 '이면'을 설명하기 위해 '메타버스', '아바타', '가상현실'을 소재로 삼았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모든 면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달의 뒷면'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감춰진 모습들은 대부분 인터넷 세상 속 익명성 속에서 발현되기 마련이었다. 가면을 쓰고 날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되려 속내를 털어놓는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역시도 거꾸로 활용한다.

'가상공간'을 이용해서 '아무나' 알리고 싶지 않는 내 공간을 따로 만들어 현살과는 다른 관계를 별도로 쌓는 식이다.

형의 방문을 열고 형의 컴퓨터를 켜 형이 즐겨하던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11년만의 로그인한다. 거기에서 마주한 한사람. 형이 가꾸어 온 '가상현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공간이 그곳에 서있던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한사람만을 위한 공간의 주인공인 그 한사람은 여전히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형의 비밀스런 '가상 공간'도 알게되고, 형을 기억하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형에 대해 '질문'도 하고, 형의 정보로 형과의 '대화'를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억에 없는 '형'을 쫓으며 되려 형과의 추억을 쌓게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 방식, 메타버스 속 아바타의 캐릭터, 현실의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맺어가느냐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맥락 속에 있었던 것이였다. 우리의 다양성과 익명성은 저마다의 어떤 '면', 저마다의 '비밀'과 '속사정'을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였다.


-너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나도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줄 몰랐어.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두는 일은, 타인이 아닌 낯선 스스로를 만나는 시간인 것 같다' 라는 말은 내가 보이는 나의 '이면'은 오롯이 나만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떤 점을 이끌어 내주기도 한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게 인간'이기에, 그 깊은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내가 이런줄 알았어'라는 스스로의 프레임을 벗겨내는 것 또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나의 이면들이 곳곳이 드러난다는 얘기인데, 그 '관계'라는 것이 또 그렇게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저마다의 감추는 모습과 드러나는 모습들이 다른 것은, "사람들은 모두 애쓰면서 살기 때문", 그리고 그 부분들을 보면서 사람들도 저마다의 좋거나 나쁜 기억들로 잊거나 간직해둘 것이다.


우리가 저마다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그래서 무언가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어떤 것은 '무모하게' 어떤것은 '무심하게' 해결해나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 '고작' 은 없다.


사는게 다 그러하다고.

세상에 수많은 성격과 가치관이 존재하니,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진실을 안다고 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몇가지 눈에 보이는 사실 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며, 저마다의 비밀을 지켜가면서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한때 귤을 좋아했지만, 신맛이 가슴으로 퍼지는것 같아 싫어진 사람이 있다.

귤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귤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봄귤은 달고, 여름의 귤도 맛있다.

이야기 초반부로 돌아가 계절에 대한 얘기와 기억에 대한 얘기를 다시 짚어본다. 자연은 그대로인데 계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는건 인간이라는 말, 봄의 상징은 벚꽃, 가을의 상징은 은행나무, 겨울은 귤.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어떤 '기억'은 그 계절을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계절을 싫어하게 만들기도 하겠지.

이건, 겨울의 귤을 좋아하던 사람에게 여름의 귤을 권하며 더는 귤을 싫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매일 귤빛 태양으로 물들이며 하루를 보내지만, 또 하루는 시작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보내는 오늘과 다가올 내일에서 서로의 비밀과 이면을 발견하면서 조금씩은 특별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