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의 1초 인생 기린과 달팽이
말린 클링엔베리 지음, 산나 만데르 그림, 기영인 옮김 / 창비교육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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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의 1초 인생 』을 읽고 쓴 한줄 평

누구든, 어디에 있든, 웃음을 주고 떠나는 외로운 1초 인생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슬픈 존재이지만

그 '나타난다'는 곳이 어디인지, 누구에게 인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함 속에 놓여있다.

방귀의 시간은 1초이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리다 갈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방귀의 시간도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초반에는 방귀가 등장하는 여러 장소에 대해 나온다.

어느 곳에서든 방귀가 등장할 수 있다, 는 것은 방귀는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입장에 대한 시선을 약간 틀면 이러한 재미있는 방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산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바닷가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우주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은 방귀는 어디든 잠깐이지만 행운처럼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 잠시 머물다 가는 방귀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끼고 사라진다. 그러니 방귀를 부른 당신도 지금 당신이 있는 주변과 순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긱 하길.

중반 이후에는 방귀를 끼는 여러 사람에 대해 나온다.

제 아무리 교양있고 고상한 사람도 방귀를 피할순 없다는 것.

안뀐 척 모르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방귀는 사람을 가라지 않고 공평하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주변 사람들의 겉모습과 배경에 사로잡혀 편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길.

약간의 풍자적인 시선이 서려있는 듯한 몇몇 페이지는

역시 그림책도 어른이 쓴 책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아이들도, 이를 눈치 챌 수 있으려나.


방귀는 다음 방귀를 뀌기 전에 사라져 버려

그래서 방귀는 거의 친구를 사귈 수 없지

멈칫 하고 공감했던 장면

이야, 이젠 방귀한테도 감정이입을 하는구나.

이런 입장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동화의 힘인것 같다.

이러한 연유로 제일 첫페이지에 '방귀는 외롭고 슬픈 존재'라고 설명한 모양이다. 머물다 간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함께 할 이가 없기에.

누구나 방귀 소리에 미소를 짓지

제일 좋아했던 페이지.

맞어, 어렸을때는 똥, 방귀, 트름, 코딱지 같은 분비물에 꺄르르 웃어대며 무조건 좋아했었지. 방귀탄이라는 놀잇감도 있었을 분더러 가짜 방귀 소리가 나는 아이템에도 '아이 냄새나' 이러면서 불쾌함 보다는 유쾌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건 성인도 마찬가지다.

친구들끼리 있다가, 운동을 하다가, 웃다가, 조용한 곳에서, 격식있는 자리에서 등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방귀소리는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 앞에 '웃음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라는 단서가 웃프게 들려온다.

방귀소리에 함께 웃고 떠들 수 없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웃음을 짓지 못한 다는 것.

'신선하진 못해도 상쾌하게 한다'는 표현이 참 좋았다.

키가 크든 작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나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둘다 아니든

누구나 (배와 엉덩이만 있다면) 같다

말린 클링엔베리, 산나 만데르 『방귀의 1초 인생』

책의 마무리이자, 이책이 결국 말하고 싶었던 마지막 페이지.

방귀는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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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이라는 해답 - 과학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김태호 지음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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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 문명 연구소 교수인 김태호 작가님의 『근 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 『과학 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에 이어 새로운 책이 나왔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과학 기술이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시 키워드임을 알리고픈 작가의 오답이라는 해답의 바탕이 된 연재 원고들은 『구석구석 과학사』라는 제목이였는데, 편집자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오답이라는 해답』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왜 구석구석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는지는 책의 서문에도 나와있다.

역사에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수천년에 걸쳐 한줌씩 보낸 흙이 없었다면 과학이라는 산이 지금처럼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위대함, 위대한 평범함을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다.

잘 알려진 굵직한 사건이 아닌, 구석구석에서 끄집어 낸 이야깃거리,

소소하지만 우리 생활과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소재들이야 말로

과학이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책 한권이 나오는 과정 역시 수많은 이들의 위대한 평범함이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사람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오답이라는 해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中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몇몇 슈퍼스타들(뉴턴, 아인슈타인, 갈릴레오 등 정답을 찾은 사람들)이 아닌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인물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고, 그래서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인물들을 발견했고, 그렇다면 그 인물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답'을 알기위해 중간에 어떤 시행착오들이 있었는지, 지금은 '오답'이라고 얘기하지만 한때는 '해답'이였던 그 시행착오들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답의 머리만 뚝뚝 따서 앉고 가는 것보다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자.

어느날 갑자기 모든것을 깨닫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세대가 어떤 질문을 했고 답을 내 놓으면, 그 다음 세대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앞세대의 질문과 답을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답과 질문이 생겨나게 되는 법. 그래서 '질문'과 '답'에 주목하면 그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시대들이 쌓여 지금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토크 중간에 작가는 이런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봉오리를 피우지 못한 꽃은 꽃이 아니라 외면할 것인가,

99%의 오답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김태호, 온라인 북토크 中

나는 그 말이 이책의 집필 이유를 확실히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도, 과학의 한계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 ,

지나보면 아쉬움의 메시지를 남긴것들은 그시대에는 해답이였을 수도 있었다는 것,

다음 세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제시했다는 것,

그것들이 쌓여간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의미한다.

과학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TMI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인지라, 작가가 염탐한 서평중에 '과학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역사책이더라'라는 문구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1. 과학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2. 과학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놓여있던 시대와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3. 과학은 반드시 실용적인 것인가,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들에 대한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싶었다. 가 이 책의 핵심


책의 목차는 이러하다.

1장, 과학의관념은 무엇인가

2장, 한국 과학의 인물들

3장, 한국 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4장, 화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목차만 살펴보아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과학사와 '사람'의 역사

작가는 과학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내용을 많이 담았고,

독자에게 해답을 내놓기 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형식의 글이 많았다.

이로써 이책이 과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어려움을 벗어 던지고, 편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결과가 아닌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폭넓게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책인가를 알 수 있다.




무지는 편견을 낳고, 편견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혐오하고 공격한다.만일 다른 문화, 인종, 젠더, 계층에 대해 공연한 거리감과 미움이 생겼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무엇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간 인간이 기울인 노력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한계를 넘어 다른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인류의 지적 여정을 위대하게 만든다.


오답이라는 해답, 과학의 관념은 필연인가 中



과학자의 초상은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아직 역사 속의 과학기술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본격적으로 논쟁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과학 기술 위인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흐릿한 바람을 안고 있을 뿐이지만,

그 바람은 결국 주체적 근대화에 대한 미련과 강박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인연은 한두가지 측면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좋았던 시절의 기술을 계승하면 그 의미도 계승할 수 있는 것일까? 기술의 역사적 의미란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팎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과학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만 존경과 흠모를 받을 수 있다는 구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용성이나 효용과 같은 낱말을 빼고 대신 즐거움이나 보람, 재미 같은 낱말을 넣어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과학의 인물들 中

과학자의 초상은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아직 역사 속의 과학기술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본격적으로 논쟁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과학 기술 위인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흐릿한 바람을 안고 있을 뿐이지만, 그 바람은 결국 주체적 근대화에 대한 미련과 강박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인연은

한두가지 측면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좋았던 시절의 기술을 계승하면 그 의미도 계승할 수 있는 것일까?

기술의 역사적 의미란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팎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과학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만

존경과 흠모를 받을 수 있다는 구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용성이나 효용과 같은 낱말을 빼고

대신 즐거움이나 보람, 재미 같은 낱말을 넣어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과학의 인물들 中

과학이 발전하다보면 산업과 경제에 이바지하는 일도 생기지만

과학이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즐기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한국에서 근대화나 부국강병과 같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역사적 배경은 그래서 뼈아프다.

숫자로 된 지표들만 놓고 보면 한국의 과학은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에 올라섰지만

과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라는 데 머물러 있다.

과학자와 과학 정책가들이 과학을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과학을 배우는 하생들도 과학을 진학과 취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배움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오려면,

먼저 과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 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中


끝으로 북토크 중에 소개된 몇가지를 담아본다.


1. 생활 실험/체험을 하면서 발견의 기쁨을 느끼고 과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작가님의 팟케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6205)


2.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은, 온도계를 들고 있을 때의 말(측정값)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그 온도계를 만들때는 100도라는 금을 어디다 어떻게 그었을까?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과학에서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측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으로 추천해 주신 책, 『온도계의 철학』


3. 그리고 작가의 다른책들과 바로 이책, 오답이라는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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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최진영 외 지음, 곽기영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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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푸른 숨결이 가득한 지구를 꿈꾸는 엮은이들의 숨결을 모은 단편 소설집, 창비교육의 00하는 소설 시리즈, 숨쉬는 소설이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책의 성격을 보여주는 문장 한 줄.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

지구의 내장 속에 플라스틱이 있다.

숨 쉬는 소설 中







청년의 삶을 주제로 했던 땀흘리는 소설, 세대별 사랑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한 가슴 뛰는 소설에 이어, 자연 혹은 사회적 재난을 주제로 한 소설에 이어, 푸른 숨결과 생태 감수성이 가득한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소설집 『숨 쉬는 소설』

이 소설집은 바로 이전 '재난(팬데믹)'을 주제로 한 소설과 연결성이 짙다. 자연 환경의 파괴와 환경에 대한 불감증은 곧 우리 사회에 재난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억하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제대로 숨쉬며 온전한 생명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아름다운 지구의 숨결을 꿈꾸며 펼쳐지는 8편의 단편 소설은 다음과 같다.

최진영 ㆍ 돌담

김기창 ㆍ 약속의 땅

김중혁 ㆍ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김애란 ㆍ 노찬성과 에반

임솔아 ㆍ 신체 적출물

이상욱 ㆍ 어느 시인의 죽음

조시현 ㆍ 어스

배명훈 ㆍ 조개를 읽어요

이 소설들은 각기 다른 상황을 설정한 상상력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생명,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해법을 제안한다기 보다 생각을 넓히고 고민을 짚어내는 것은 이 전의 소설들의 목적과 같다.

생태와 환경문제가 인간의 삶에 깊숙히 가닿을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이 이야기에 대해 책에서 짧게 소개하고 있는 요약은 다음과 같다.

ㆍ 돌담 :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성 화학 물질을 쓰는 인간들의 갈등

ㆍ 약속의 땅 : 선택할 수 없는 범위에서 일어난 변화로 생존위기에 몰린 북극생명들

ㆍ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 썩는것과 썩지 않는 것의 경계를 배회하며 내장 속에 플라스틱을 들여놓고 사는 지구인

ㆍ 노찬성과 에반 : 곁에 둔 생명을 제대로 반려로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ㆍ 신체 적출물 : 인간의 몸이 지닌 가치 성찰

ㆍ 어느 시인의 죽음 : 다른 종족을 식량화하는 육식문화와 약육강식의 시스템 비판

ㆍ 어스 : 인간의 몸이 산업쓰레기로 분류되어 지구로부터 거부당하는 미래

ㆍ 조개를 읽어요 : 광활한 상상력으로 파도 하나까지 기억하는 조개

그리고 각 이야기들에 귀여운 일러스트가 삽입되어있어 이야기에 컬러를 더해준다.


제일 처음에 펼쳐지는 돌담 이야기는, 우리가 뉴스에서 봐왔던 기업윤리와 생활 속에 침투된 환경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로 이를 우리의 이웃과 나의 직업으로 가깝게 가져옴으로써 직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지게 한다. 주인공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는 곧 앞으로의 환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준다.

제일 첫 이야기라 그런지 제일 집중해서 읽었는데, 뭔가 한구절 한마디가 다 인상깊어서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소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허전하니까 담을 쌓은거라고 했다.

담을 다 쌓고 난 다음에는 익숙해 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섞여서 본래 마음에 가까워 지는 거지.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나쁜 짓이 아니라 사업 수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괜찮잖아. 아프지 않잖아.

몸에 쌓이겠지. 언젠가는 아프겠지.

..나를 병들게 하는게 어디 환경 호르몬 뿐인가?

그렇다.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병들 뿐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나쁜게 널렸는데. 나쁜걸 서로 조금씩 나누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데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저는 당당하게 일하고 싶은 겁니다.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버린 형편없는 어른.

숨 쉬는 소설, 돌담 中

앞서 소개된 재난을 주제로 한 『기억하는 소설』과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다.

괜찮겠지, 지금은 아니겠지,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으니 덮어두자 (다음 사람이, 혹은 누군가가 해결해 주겠지, 그게 내가 아닐 뿐)하는 안일한 마음, 혹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니 곧 잊어버리는 마음.

그것이 사회적 재난(환경 문제)이 되어 결국 나와 내 가까운 이웃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망각하면서 지내는 삶 이야기를 잘 담아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네가 낳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낳은 아이들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얼음이 녹을거야. 숨 쉬는 소설, 약속의 땅 中

언젠가는, 이라며 지금은 아닐꺼라는 안일함.


쓰레기(잘못된 데이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쓰레기를 넣었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가 생겨난 것이다. 자신 역시 이제 곧 지구의 쓰레기가 될 확률이 높았다. 숨쉬는 소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中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일회용이긴 하지.

부활이나 내세 같은게 없다는 거지.

죽으면 끝나는 거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까.

숨쉬는 소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中

잘못된 데이터(경각심과 반성 없는 태도)의 지속이니, 더욱더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지구에서 정작 일회용은 무엇이고 쓰레기는 무엇으로 남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


할며니, 용서가 뭐야?

없었던 일로 하자는 거야? 아님, 잊어 달라는 거야?

-

그냥 한 번 봐 달라는 거야.

숨 쉬는 이야기, 노찬성과 에반 中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고 나서야 지구와 그들의 관계를 되짚어 보았다. 당연한 기대. 당연한 믿음.

늘 이번만-, 다음에는-, 을 달고 사는 우리에게 일침을 날리는 소설.


'무서움'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손해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는 욕망

'애원'도 욕망의 일종이었다.

각자의 애원은 각자의 것을 지키려는 욕망

애원은 각자의 내부에서만 공명할 것이다.

숨 쉬는 소설, 신체 적출물 中

미래를, 다음에 올 것을 생각해야 했다.

매번, 쉴틈없이, 생활을 애썼고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와 '함께' 살아가게 될 '미래'였기 때문에, 정말이지 열심히 했어.

숨 쉬는 이야기, 어스 이야기 中

한편 한편의 이야기들에 깃들여져 있는 환경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상상력들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마냥 뉴스속 이야기도 아닌 것이, 마냥 SF소설도 아닌 것이, 이것은 어쩌면 정말로 내 바로 옆에서 일어 날지도 모르는 우리의 삶(생활)과 지구의 이야기.


인간들은 아주 많은 기회를 그냥 흘러보냈음을 깨달았다. 미래에 대해 말하고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순간이 전부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숨 쉬는 소설 책 표지 中

다시 지구를 숨 쉬게 하고 싶은 당신과 나눌 여덟가지 이야기,『 숨 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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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강영숙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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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책을 관통하는 문장 한 줄.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하나 구하지 못했구나

기억하는 소설 中

청년의 삶을 주제로 했던 땀흘리는 소설, 세대별 사랑에 대한 주제를 이야기 한 가슴뛰는 소설에 이어, 자연 혹은 사회적 재난을 주제로 한 소설집『 기억하는 소설』

재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재난의 시대(팬데믹)에 우리의 안전하고 행복한 내일을 고민하는 시간을 선사하는 8편의 단편 소설은 다음과 같다.

강영숙 ㆍ 재해지역투어버스

김숨 ㆍ 구덩이

임성순 ㆍ 몰:mall:沒

최은영 ㆍ 미카엘라

조해진 ㆍ 하나의 숨

강화길 ㆍ 방

박민규 ㆍ 슬(膝)

최진영 ㆍ 어느 날(feat. 돌멩이)

이 소설들은 재난 속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이는 소설 속 주인공만의 재난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재난으로 느끼게 하는 "재난의 당사자성"을 경험하게 해준다. 경험 그대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러한 무비판적인 상황속에서는 스스로가 피해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난을 통해 무언가 배우지 못한다면 다음, 다음 재난의 연속으로 이어지고만다는 것을. 그러지 않기위해서, 적어도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재난을 더욱더 기억해야 한다.


반복되는 재난을 겪으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나아지지 않을까요?

기억하는 소설 中

기억은 세상을 바꾸는 토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 망각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잊을만 하면 잊지말라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는 역할을 해내야한다. 그렇게 오늘을 잊지않음으로써 더 오래 지속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 그 역할을 하기 위한 책이 바로 『 기억하는 소설』이다.


소설 선택의 기준, 소설의 나열 순서, 이 책의 영향력(현실에 대한 실망과 절망을 주게될 것인가 새로운 질문을 던저 사회적 안정망이 작동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줄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두는데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ㆍ 재해지역투어버스

미국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후일담으로 자연재해가 사회적 재난으로 확장되는 보편적 재해 모습을 담고 있다.

ㆍ 구덩이

자연재해인지 인간이 낸 사회적 재난인지 알수없는 동물 전염병에 대한 얘기로 모르는척 덮으려 할수록 여러문제가 나타나는 임시방편식 대응방식을 비판적으로 담고 있다.

ㆍ 몰:mall:沒

침몰의 몰, 망각했으므로 다시 반복되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미카엘라

피해자들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ㆍ 하나의 숨

개인적 사고가 아닌 사회적 약자인 실습생의 죽음으로 산업재해도 재난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를 담고 있다.

ㆍ 방

태안 앞바다의 원유유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등의 사건 복구에 투입되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 즉 재난 복구 과정에서 영웅심에 의해서가 아닌 희생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슬(膝)

코끼리(다쓰러져가는 국가, 공동체)를 개인이 이길 수 없다. 국가 도움 없이 개인(어쩔 수 없이 남겨진 소외된 자)의 힘만으로 재난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ㆍ 어느 날(feat. 돌멩이)

운석으로 지구가 멸망한 이야기로 광기속의 디스토피아, 혼란속의 인간애(휴머니즘)를 다루며 피할 수 없는 재난을 함께 극복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1.6.13일 반영되었던 알쓸범잡에서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8개월을 두고 반복적으로 벌어졌던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반복되는 것에 있어 기억해야 할 의무(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위령탑'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과의 연결성을 느꼈다.



굉장히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건이 하나 있을 때, 같은 이유로 작은 규모의 사건이 29건 있고, 아주 경미한 사건이 300건 발생한다.


우리 사회 깊숙이 있던 안전불감증, 위험한걸 알지만, 어떤일이 벌어질것 같지만, 오늘은 아니겠지, 나와는 상관없겠지. 라는 안일한 사람들의 시선과, 재난과 관련된 하인리히 법칙(1:29:300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깊다. 모든 사고들은 당시로서는 작을 수 있는 이거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인 것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겠다는 말만 하고 고치지 않고 있는 병든 사회.


우리가 잊는다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망각했으므로 반복해서 누군가를 희생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일인가. 그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는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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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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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11년만의 신작 #아버지에게갔었어 를 받아 읽어보게 되었다.


"아버지, 저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에 대해 쓸일이 뭐가있어...내가 무엇을 했다고"

"그런말 마셔요,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그저, 살아냈을 뿐이야.."


1933년생, J시에서 태어나고 살아낸, 아버지에게 간 딸의 이야기.


(1) 책 표지 이야기, 포르투갈 리스본의 사진

당연히 일러스트일거라고 생각했던 책 표지는 사진이였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의 한 집과 초원과 하늘이 어울어진 진짜 사진.

어딘가 그립고, 어쩐지 푸르르고, 한없이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오롯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 아버지를 닮았다.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한 평생, 일생을 집을 떠나지 못하고 집(가정)을 지키고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표지로는, 집 뒤의 넓은 하늘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 사진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2) 책 제목 이야기, 딸이 아버지에게 간 내용을 그대로 적은 제목

제목은 뜻 그대로 딸이 아버지에게 가게된 내용이라 처음부터 이 제목을 쓸 생각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작가의 말에도 적혀있지만, 『엄마를 부탁해』를 집필한 뒤에 그러면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쓸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어느샌가 결국 쓰게된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라는 글을 쓸 당시, 어머니라고 적던 글이 잘 풀리지 않자, 엄마라는 단어로 쓰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만큼 모두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애틋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그런데 왜 이번에는 아빠가 아닌 아버지일까. 일단 신경숙 작가 본인이 아버지에게 아빠라고 불러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에 비해 아빠에게 느끼는 어떤 본능적인 거리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다고. '엄마'라는 단어처럼 오히려 '아버지'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로 끝나는 엄마에 대한 소설

'아버지가 울었어'로 시작해

'살어 냈어야,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 냈어야'로 끝나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

둘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 하면서도 결국 결이 같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장 만만한 존재이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에 둘 지 모를때 쉽게 응석부리기 쉽고, 안풀리는 것들에 대해 쏟아부으며 화풀이 같은 짜증을 쏟아내기 쉽다. 그리고 늘 엄마는 엄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함부로 전부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엄마는 가여운 사람도 아니고 내가 다 알고 있는 존재도 아니고 늘 그곳에 있어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다음에야 너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의 내부에 무진장 쌓여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엄마의 일상, 엄마가 곁에 있었을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엄마의 사소하고 어느 땐 보잘 것없는 것 같이 여기기도 한 엄마의 말들이 너의 마음속으로 해일을 일으키며 되살아났다. ( 『엄마를 부탁해』 27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세계 자체였다. ( 『엄마를 부탁해』 275p)'

그녀가 죽었을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를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ㄹ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그녀, 나의 어머니 ( 『아버지에게 갔었어』 126p)'

아버지라는 존재는 곤경에 처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리는 얼굴이다. 곁에 계시지 않아도 늘 영향을 주는 존재로 '아버지, 나 좀 구해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든든하게 의지하며 곁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서도 서로에게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계속 다른 곳이나 바라보며 못 들을 척 하는' 나와, '보고싶다'는 말을 '너 본지 오래다'라고 소리치는 앵무새로 알게하고, 어딘가 쭈구리고 앉아 혼자 감정을 추스리는 모습을 보게되고, 몇가지의 왜곡된 정보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서툰 자식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된다.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들로 이루어졌다.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 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62p)

나와 내 형제들이 이 집에서 묵게 될게 될 때마다 피로한 몸을 눕히고 잠에 들었던 방에 아버지가 있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72p)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믄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갔던 아버지. "붙들고 있지 말어라. 어디에도 고이지 않게 흘러가게 둬라. 내가 정신이 없어지먼 이 말을 안해준 것도 잊어버릴 것이라.." ( 『아버지에게 갔었어』 92p)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믄 그거는 하믄서 살라고 하는 것뿐여" ( 『아버지에게 갔었어』 142p)'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나는 아버지가 되어서 너의 힘이 돼지지 모타고 니 어깨만 무겁게 했지마는 너는 언지나 근사해따 너는 언지나 그래와떤 거처럼 니 자리에서 성실히 니 할 일을 해낼 거슬 나는 익히 안다, 나는 더 바랄거시 없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것으로 되었따, 아버지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170p)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말 속에 깃든 아버지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개념적인 아버지, 아버지는 이러해야 한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만을 알고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게 되면서 아버지의 나이 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서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서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 『아버지에게 갔었어』 197p)

아버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자 등을 기대고 있는 현관 문이 차갑게 느껴지고 생각지도 ㅁ소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238p)

그렇게 개념적이고 보편적인 아버지의 허물이 벗겨지고 아버지 개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그가 이렇 모습으로 자라왔겠구나, 그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누군가로 누군가에게 남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들을 '이제야' 하게 되면서, 늘 부모에 대해서는 '너무 늦게 이해하게 되는 마음'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하게 하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그리고 아버지에게 갔었어.

(3) 누군가에게 있을법한 고향, J시

작가의 고향이 정읍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당연히 J시를 보며 정읍을 떠올린다.

누구나 연고지가 있고 지내온 어린시절의 배경이 되는 곳이 있다. 그 곳을 특정 장소로 지칭헤서 묘사하기보다 자기만의 고향을 꺼낼 수 있도록 J시로 묘사했다.

누구에게나 푸르렀던 시절, 살아가며 푸른 잎을 남겨놓는 것, 그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푸르른 작별. 이는 아버지와 고향 모두에게 해당된다.

(4) '보편적이고 아름답고 한국적이고 힘이 센 이야기' 라는 서평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늘 해오던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의 아버지인것 같지만 모두의 아버지를 담고 있고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한국의 역사가 담긴 책이 되었다.

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의 묘사도 마찬가지이다. 직접 만났거나 아니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의 표현은 필히 경험에 근거할 것이고 이를 소설로 풀어내었다는 것은 그들을 녹여낸 관찰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인물들에게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박무릉'이라고 했다. 아버지 이야기 속에 아버지가 되지 못했던 사람이기에 이 이야기가 아버지만의 이야기는 아니게 될 수 있었다고.

(5) 4장에 실린 인터뷰 형식, 단편모음집 느낌의 그에 대해 말하기.

총 5장으로 구성된 글에서 4장만 따로 읽어도 한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3인칭 거리두기로 딸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묘사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제 3자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담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나에게는 항상 아버지이나 그 역시 아들이자,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한국의 역사를 체험하며 자라온 세대로 그 세대별 여러 아버지들을 담는 형식이 흥미롭다.

이런 마음들을 겪는거 보면 저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인가 봅니다.

( 『아버지에게 갔었어』 337p)

딸이 라는 한정적 시선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다각도로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은 앞서 말했던 개념적 아버지에서 개인적 아버지로 바뀌어 그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누구에게 들은 아버지인가, 내가 본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의 전부는 맞나, 아버지의 우는 모습은 본적이 있나, 어떤 친구들과 어떤 세대를 보냈나, 전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이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살아가는 시간 속엔 기습이 있지.

기습으로만 이루어진 인생도 있어.

왜 이런일이 내게 생기나 하늘에다 대고 땅에다 대고 가슴을 뜯어보이며 막말로 외치고 싶은데 말문이 막혀 한마디도 내뱉을 수도 없는..

그래도 살아내는게 인간 아닌가.. ( 『아버지에게 갔었어』 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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