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이라는 해답 - 과학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김태호 지음 / 창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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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 문명 연구소 교수인 김태호 작가님의 『근 현대 한국 쌀의 사회사』, 『과학 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에 이어 새로운 책이 나왔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과학 기술이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시 키워드임을 알리고픈 작가의 오답이라는 해답의 바탕이 된 연재 원고들은 『구석구석 과학사』라는 제목이였는데, 편집자들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오답이라는 해답』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왜 구석구석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는지는 책의 서문에도 나와있다.

역사에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수천년에 걸쳐 한줌씩 보낸 흙이 없었다면 과학이라는 산이 지금처럼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위대함, 위대한 평범함을 이 책에 담아내고 싶었다.

잘 알려진 굵직한 사건이 아닌, 구석구석에서 끄집어 낸 이야깃거리,

소소하지만 우리 생활과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소재들이야 말로

과학이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책 한권이 나오는 과정 역시 수많은 이들의 위대한 평범함이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과학의 역사, 그리고 사람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오답이라는 해답,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中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몇몇 슈퍼스타들(뉴턴, 아인슈타인, 갈릴레오 등 정답을 찾은 사람들)이 아닌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인물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고, 그래서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인물들을 발견했고, 그렇다면 그 인물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답'을 알기위해 중간에 어떤 시행착오들이 있었는지, 지금은 '오답'이라고 얘기하지만 한때는 '해답'이였던 그 시행착오들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답의 머리만 뚝뚝 따서 앉고 가는 것보다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자.

어느날 갑자기 모든것을 깨닫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앞세대가 어떤 질문을 했고 답을 내 놓으면, 그 다음 세대는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앞세대의 질문과 답을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답과 질문이 생겨나게 되는 법. 그래서 '질문'과 '답'에 주목하면 그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고, 그 시대들이 쌓여 지금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토크 중간에 작가는 이런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봉오리를 피우지 못한 꽃은 꽃이 아니라 외면할 것인가,

99%의 오답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김태호, 온라인 북토크 中

나는 그 말이 이책의 집필 이유를 확실히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도, 과학의 한계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 ,

지나보면 아쉬움의 메시지를 남긴것들은 그시대에는 해답이였을 수도 있었다는 것,

다음 세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제시했다는 것,

그것들이 쌓여간다는 것은 곧 '역사'를 의미한다.

과학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TMI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인지라, 작가가 염탐한 서평중에 '과학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역사책이더라'라는 문구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1. 과학의 역사를 통해 사람의 역사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2. 과학을 발전시킨 사람들이 놓여있던 시대와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3. 과학은 반드시 실용적인 것인가,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들에 대한 경계를 흐릿하게 하고 싶었다. 가 이 책의 핵심


책의 목차는 이러하다.

1장, 과학의관념은 무엇인가

2장, 한국 과학의 인물들

3장, 한국 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4장, 화학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목차만 살펴보아도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과학사와 '사람'의 역사

작가는 과학을 바라보는 시점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내용을 많이 담았고,

독자에게 해답을 내놓기 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형식의 글이 많았다.

이로써 이책이 과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어려움을 벗어 던지고, 편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결과가 아닌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폭넓게 과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책인가를 알 수 있다.




무지는 편견을 낳고, 편견은 두려움을 낳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남을 혐오하고 공격한다.만일 다른 문화, 인종, 젠더, 계층에 대해 공연한 거리감과 미움이 생겼다면 그 이유는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모르고, 무엇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는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간 인간이 기울인 노력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생물학적, 사회적, 역사적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한계를 넘어 다른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을 남기고자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인류의 지적 여정을 위대하게 만든다.


오답이라는 해답, 과학의 관념은 필연인가 中



과학자의 초상은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아직 역사 속의 과학기술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본격적으로 논쟁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과학 기술 위인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흐릿한 바람을 안고 있을 뿐이지만,

그 바람은 결국 주체적 근대화에 대한 미련과 강박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인연은 한두가지 측면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좋았던 시절의 기술을 계승하면 그 의미도 계승할 수 있는 것일까? 기술의 역사적 의미란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팎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과학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만 존경과 흠모를 받을 수 있다는 구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용성이나 효용과 같은 낱말을 빼고 대신 즐거움이나 보람, 재미 같은 낱말을 넣어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과학의 인물들 中

과학자의 초상은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아직 역사 속의 과학기술인을 어떻게 이해할지

본격적으로 논쟁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과학 기술 위인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흐릿한 바람을 안고 있을 뿐이지만, 그 바람은 결국 주체적 근대화에 대한 미련과 강박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인연은

한두가지 측면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좋았던 시절의 기술을 계승하면 그 의미도 계승할 수 있는 것일까?

기술의 역사적 의미란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안팎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요소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과학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만

존경과 흠모를 받을 수 있다는 구도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용성이나 효용과 같은 낱말을 빼고

대신 즐거움이나 보람, 재미 같은 낱말을 넣어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과학의 인물들 中

과학이 발전하다보면 산업과 경제에 이바지하는 일도 생기지만

과학이 그런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즐기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한국에서 근대화나 부국강병과 같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역사적 배경은 그래서 뼈아프다.

숫자로 된 지표들만 놓고 보면 한국의 과학은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에 올라섰지만

과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라는 데 머물러 있다.

과학자와 과학 정책가들이 과학을 경제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과학을 배우는 하생들도 과학을 진학과 취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배움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오려면,

먼저 과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답이라는 해답, 한국 과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中


끝으로 북토크 중에 소개된 몇가지를 담아본다.


1. 생활 실험/체험을 하면서 발견의 기쁨을 느끼고 과학적 원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작가님의 팟케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6205)


2.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은, 온도계를 들고 있을 때의 말(측정값)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그 온도계를 만들때는 100도라는 금을 어디다 어떻게 그었을까?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과학에서 기준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측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으로 추천해 주신 책, 『온도계의 철학』


3. 그리고 작가의 다른책들과 바로 이책, 오답이라는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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