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불평등 - 프레임에 갇힌 여자들
캐서린 매코맥 지음, 하지은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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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과 욕망, 섹슈얼리티를 바라보거나 여성의 몸을 미와 권력, 지위, 문화자본의 위계를 통해 바라보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라는 말은, 명확하게 보는 방법과 비판적으로 보는 방법,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1971년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란 에세이를 통해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의도적인 배제와 위대함이라는 미화된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이후 1989년 게릴라걸스는『여성이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는가?』라는 포스터로 미술관에서 여성 누드화가 85%나 차지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고 같은 해『여성미술가와 유색 인종 미술가의 시각을 배제한다면, 당신은 그림의 반도 못 보고 있는 것이다. 』라는 메세지를 이어갔다.

책의 목차는 이책의 성격과 '편향된'시점을 아주 명확하게 분류하여 제시한다.
1.'관능적인 '비너스'는 남성의 욕망의 틀로 바라본 여성.
2.온화하고 인내심 강한 '성모 마리아'는 종교적인 신성한 프레임 속에서 순결, 순정적, 이상적인 여성성의 전형인 '아내'이자 '어머니'.
3.젊은 여성들은 '순수함의 정수'로 순결하고 신비하면서도 매력적이라 남성들에 의해 망가질 수 있는 처녀.
4.자신의 욕망을 자유로이 좇는 여성은 괴물과 혐오의 대상인 메두사, 릴리스, 스핑크스 등 마녀.

여신이든, 성녀든, 마녀든 이중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처녀/창녀, 마리아/막달레나, 아프로디테/메두사 의 형태로 나타났고 이러한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 여성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방식, 성 정체성을 분류하는 방식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일정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거부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의 원형들이 미와 취향에 관한 생각뿐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 정치권력, 섹슈얼리티, 그리고 인간다움이라는 가치관을 형성하며 어떻게 현대 문화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은 시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역사, 문화, 인종, 성정체성 등의 문제를 앉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스며든다. 모든 사람이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주 광고, 앨범 표지, 패션 사진 등 대중문화 광고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이 여성 이미지가 어떻게 스며들어 영향력을 끼지고 있는지 문화적 파장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만나며 이미지, 영화, 연극, 문화적 작업들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보여지고, 재생산되었는지, 남성 관람자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생산된다는 '남성의 응시'개념과, 복합적 인간이 아니라 성적 매력으로만 기준화 시키는 '성적 대상화' 개념 등으로 만들어지진 않았는지,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어떤 기준으로 고정되어 왔는지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권한다.

나는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로 시작했던 린다 노클린의 질문이 "여성 미술가 중에서'도' 위대한 사람들이 있었다"로 답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는 이 책의 방향성이 마음에 든다 . 남성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위대해 질 수 있는게 아니야, 우리 여성도 그림도 그리고 조각할수도 있고 위대해질 수도 있었는데 상황이 그러지 못했어, 라는 대결구도로 가지 않아서 좋았다.
'여성' 미술가 라는 단어로 분류하며 미술관에 따로 지정된 공간에 있는 '희귀한 외래종' 취급을 받아서도 안돼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 옹호론자'에게만 흥미로운 방식으로 특별 전시되거나 상품화 되는것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들의 신체, 재생산 선택권, 성폭력, 누가 아름다운가, 누구의 몸이 보여지는가, 누가 혹은 무엇이 훌륭하고 가치있는 가 등의 이미지 속 여성들에 관한 논의가 전부 여성들의 이슈나 억압과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여성만의 방식으로 여성의 경험들을 묘사한 이미지들 자체가 '남성' 문화에서 빗겨난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비주류' 문화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주류 문화 안으로 편입되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그렇게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야 다각도로 비교 평가 할 수 있는 본보기들이 마련이 되고 이는 다시 우리에게 제공되어 다양한 시선과 문화로 공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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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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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프롤로그에 이 책의 성격에 대해서 간결하게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 책의 주제는 '뉴욕'이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뉴욕이야기는 아니다. 어학연수 한번 다녀온적 없는 30대 후반 여성이 난생처음 해외에서 살며 뉴욕이라는 거친도시와, 스스로와 한판 붙으며 겪은 좌충우돌 견문록이다. 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리하여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 이래 가장 서툴고 낯설었던 1년간 위안이 되어 주었던 그림과 예술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그러면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관련된 두개의 그림을 소개한다.
하나는 『창가의 괴테』, 하나는 『포실리포 여행에서, 항구에서 바라본 나폴리만』이다. 여행자가 미지의 도시를 바라보는 풍경과 노을 지는 나무아래서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는 그림이다. 뉴욕을 '세계의 서울'이라고 생각했던 작가는 뉴욕에서 겪은 1년간 일들 중 낭만성과 쓸쓸함, 유익함과 괴로움 같은 것들의 정수만 뽑아내어 기억할 자신을 이 그림같은 것들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내왔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며 여행 후에 남게 된 것은 1년간 유에하고 있었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사실 뉴욕에서도 작가는 'Do not run away from who you are'이라는 질문을 계속 떠올려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나처럼 살지 않기 위해 뉴욕에 왔는데, 이 곳에서도 정말 나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단기 여행'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마냥 좋고 흥미롭지만, '장기 여행'으로 '거주(居住)'하게 되니 익숙한 것들이 좋고 '삶'의 '뿌리내림'을 필요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루틴(routine)을 찾게 되었다. 루틴에 매인 존재이면서도 일탈을 꿈꾸는 존재라니, 낯선 곳에 오니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가 한국에서 보다 훨씬 잘 보였던 것이다. 춤을 배우고, 미술사 수업을 듣고 아트 비지니스 세계를 배우고, 전시회뿐만 아니라 저렴한 학생티켓으로 틈이 날때마다 오페라며 발레며 클래식 공연을 자주 보러다녔다.

여행에서의 내가 '일탈'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지녔던 나의 발견이라면, 나답게 라는 말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것만은 아닐것이다. '또 다른 삶'이라는 말이 '나답지 않다'는 나의 행동과 태도가 아닐테니, 그것 역시 나였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은 타인과 자신으로부터 부여된'~답게 행동하는 것'에 갖히는 것이 아니라 '이것 또한 나'라는 것이 곧 가장 '나 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왜냐하면 우린 모두, 'They Sought a Better Life' 를 외치는 사람들이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This is me'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지금, 여기가 네 삶이 있는 곳이라는 걸 너도 언젠가는 깨닫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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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생수업 -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동섭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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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균형이 오롯이 한쪽으로만 기운 사람, 그리고 기운 쪽에 그림이 있었다. 그림이라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돈이 들지만, 팔리지 않는 그림이나 감상하지 않는 그림은 전적으로 무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질문한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이냐고. 원하는 삶을 살고있냐고.

죽어야만 끝나는 제몸의 징그러운 허기를 평생 달래느냐 사는 내내 애썼지만 자기 삶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빈센트는 아름다움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었고 영혼을 위로하는 그림을 완성했다. 아름다움은 '앎'과 '앓음'이라고 했던가. 많이 경험하고 한바탕 앓고 알아야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던가.

'평생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았고 찾은 후에는 그일에 목숨까지 걸어본적 있는가' , '열정적으로 살았고 열정의 그림자인 수난마저도 헤치고 넘은적이 있는가'

인생을 살면서 두가지 물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빈센트가 살던 시기에도 그림의 가치(효율성)과 가격(경제성)을 중시했고, 여전히 직업과 돈과 자아실현이 양립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라 순수 열정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누군가에게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야? 그러다가 몸 망가져"라는 말을 들어본적 있는가. 내게도 그런 시절이 3번정도 있었다. 그렇게 죽을만큼 노력했던 시절을 보내고나면 인생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는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된다. 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지언정 결코 그시절로 돌아갈생각이 없고 누군가 나의 노력에 가타부타한데도 큰 미동도 없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비슷하진 않겠지만 빈센트 역시 이 모든 도달했던 사람이었고 그것만으로도 빈센트를 사랑할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그의 친구이자 비평가인 알베르 오리에가 '과도함(격정), 과도한힘(강렬함), 과도한신경증, 표현의 폭력성'이란 특징으로 그를 칭찬하자 그는 과분하다며 '내가 현재나 미래에 받을 수있는 몫은 단언컨데 그다음이다'라고 말했다. 화가는 죽어서 미술관에 묻힌다. 그가 삶을 바쳐 그려낸 그림에 대한 평가는 뒤늦었다. 그가 죽고난 뒤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던 것 뿐이다.

그는 말했다.
언젠가 날 괴팍한사람, 아무것도 아닌사람이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내작품을통해 그런 그의 가슴에 가지고 있는것을 보여주겠다고. 그러니까 계속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일을 찾았는가.
무엇이 내 행복을 막았는가.
내 행복을 위해 자기의 삶을 살았는가.
그리하여 나는 앓고 알아 아름다움에 다가갔는가.
인생이 묻고, 반고흐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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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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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을 포함한 7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 중에는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소설도 실려있다. 이 소설에 영감받아 다시금 스위치에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연작소설로 연재하며 다시금 「크리스마스에는」으로 마무리되는 김금희 작가의 신작 『크리스마스타일』

아픔과 이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의 치유, 화해, 성장의 이야기를 아주 잘 이끌어가는 작가이기에 이 책에서도 과거의 회상과 현재의 나를 연결하며 결국 화해하는 과정을 따뜻하고 산뜻하게 보여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인 옴니버스 에피소드 구성형식으로 일곱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전편에서 나온 인물의 이름이 다음편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 다음편에서는 주변부로 등장하면서 "아, 그친구가 누나였구나, 아 이친구가 그 전남친이구나. 아 그때 그사람이 이사람 선배구나." 하면서. 시점이 바뀌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시점이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점이 바뀌면 세상이 달리보이듯이.


모두의 겨울이 다르듯이, 각자가 완성한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이 다르겠지만, '크리스마스 타일처럼 이어붙인 우리들의 마음'만은 그 각자의 이유로 가치있게 사랑받길 원한다는 작가의 말을 새겨본다.



세상은 내키는 대로 낙서해도 되는 백지장이 아니지만

이미 낙서된 부분들을 하얗게 지우거나 덮을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내가 그러고 싶다면, 나를 알리고 싶다면 반대로 일일이 설명해도 된다.


대게 살아가면서 얻는 교훈들은 실천되지 않기에 우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누군가에겐 상처로,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상한 사람'으로 곁에 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살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하면서 보냈다.

그것은 시절일 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고 과거의 나일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보냈던 시절이 반짝였다 한들 다시 한데 모아 반짝이게 할 순 없고,

그 중 많은 이들도 떠나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또 다른 사람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날중에 하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더욱이 눈내리는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다.


이 겨울에 맞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이지만, 비단 우리가 채우고 맞춰가야 할 타일이 '크리스마스 타일' 뿐이겠는가. "어떤 용서도, 구원도, 수거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흔한 날" 중에 하나일지라도 일년 내내 쌓아온 일상의 타일들이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기에 더 꿋꿋하고 힘차게 채워질 뿐이다.

내리는 새햐얀 눈은 소복히 쌓이며 세상을 환히 밝히는 듯 보여주지만 곧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그 시절을 보내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추억을 남기기도 한 우리의 함께도 영원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흩날리고 쌓였던 그 눈과 한사람의 자리는 새로운 사람이 똑같이 채워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비는 박애주의자처럼 매년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라며 'I'm dreaming of a white chistmas'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외친다.

진심으로. 여느때와 같은 일상이지만 늘 수고해왔고 애써왔던 당신에게 그 어떤것들과 화해하고 잠시라도 구원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모두가 미리 Merry Christmas하길 바란다.

이 계절에 너무나 맞는 소설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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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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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의 시작은 매우 강렬하다. 신경숙이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 째다‘ 로 엄마의 이야기를 알렸던 것처럼, 정지아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다.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볐던 ‘전직 빨치산’으로 20년 감옥살이 뒤에 고향에 터를 잡은 아버지는 그 뒤로도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버지는 민중의 발걸음으로 한걸음 내디뎠지만 다만 거기,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의 3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조문실에서 맞이한 조문객들을 통해 아버지의 인간관계를 말하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해방 이후의 한국의 70년 현대사를 덩달아 훑게 된다. 전라남도 구례의 짙은 사투리로 주고받는 대화들은 정겹지만 서글프고, 웃기지만 안쓰럽다. 선택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기에 원치않게 평생을 ‘사회주의자의 딸’로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왔다고 생각해오던 딸은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까. 장례식장에서 딸은 아버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이를 정리해본다.


영정사진 앞에서 딸은 말한다.

영정 속 아버지를 봤다.

'영정' 속이라는 말이 이제 다시 실물로 볼 수 없다는 실감을 불러 일으켜

나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장례식의 초반이었다.

그리고 여러사람들을 만나며 사흘의 장례식이 끝나던 날이 온다.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영정사진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부재를 실감하지만 결국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은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부활'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추억으로 회자된 기억속에서는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죽음은, 끝이 아니구나.' 라고 딸은 생각한다.

자신과는 너무 달라 '수평선'을 걷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라고 딸은 생각하게 된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라며 '사회주의'의 아버지에서 벗어나게 된 딸.

그리고 아버지 역시 마침내, 유물론에서 벗어나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아버지의 '삶'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딸이 '이해'하고 있던 아버지에서의 '해방'이었다.


해방은 벗어난다는 것이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자유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소설 제목에서의 '해방'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빨치산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해방 이후의 이야기'라는 삶의 족적을 쫓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한 삶에서 이제 해방되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또한 딸이 그간 지니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미지)로부터의 벗어나(해방) 아버지를 보내드리는(역시 해방)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즉, 그동안 아버지의 '일부'만 '알고 있던' 자신의 아버지에서 '해방'되어 '모르고 있던' 아버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지 못할 사연들을 풀어내며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죽은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을까. ‘소학교 동창’이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던 시계방 박선생은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정치적 지향 차이로 계속 투닥일까. ‘담배친구’인 열일곱살의 샛노란 염색머리의 소녀는 죽은 아버지와도 여전히 허물없는 사이로 남게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게 될까.


누구와도 허물없으면서도 사상으로 대립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감화 시키는 웃긴 아버지. 그리고 나를 믿고 사랑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인연들을 만나고 그 에피소드들 속의 몰랐던 아버지도 함께 만났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해서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이념과 갈등속에서 많은 오해가 있었고 오해받기도 했다. ‘아버지의 동반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한참 울었던 딸은 유물론을 외치던 아버지를, 홍길동 처럼 사방팔방 다니며 사람과 어울리던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 다운 방식으로 보내기로 한다. 바람에, 황톳물인 강물에, 이곳 저곳 좋은 곳에 아버지를 보내어 아버지에게도 내게도 새 길이 열리기를 바라며.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들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도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마지막에 이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해 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라는 그저 그 말 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해 진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실수투성이의 삶은 돌이킬수록 잘 산 것 같지 않다. 부끄럽지만 통렬히 반성하면서 살아왔고 행복도 아름다움도 성장도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야만 거기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걸 이제 안다.


그건 니 사정이제, 라는 말을 자주 하며 '그놈의 사정'이야기를 자주 내뱉던 아버지.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라며 아버지의 입버릇 같았던 말을 되새겨보면 그 속에는 그놈의 사정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늘 뒷받침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받아들이고 보니 기본적으로 이해와 용서, 화해와 화합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단어 속에서 나는 사람 냄새를 이제는 맡을 수 있다. 그러고 나니 좀처럼 아름다워 보이지 않던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아버지가 그랬듯, 딸도, 그리고 그 시대의 딸들인 우리도, 계속해서 사람 냄새 넘치는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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