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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끈기 있게 도전하면 성취할 수 있단 이 말은 마음이 맑을 때 들으면 용기가 샘솟는다. 마음이 곪았을 땐 용기가 아닌 고름이 터져 나온다. 마음은 마음먹기 나름이 아니다.
앞선 세대의 엄마, 아빠들은 먹고 사느라, 자식들 키우느라 자신을 위한 일들은 미루고 미루다 끝내는 잊고 마는 무색무취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난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 수없이 다짐했지만 보고 자란 게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는 건지 나 또한 엄마가 되고 점점 무색무취가 되어가고 있다. 부모 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자녀가 자라는 걸 보면서 부모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이미 글러(?) 먹었으니 자식이라도 번듯하게 키워보자.'라는 심산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리면서 자식과 나를 동일시하게 된다. 자식이 상을 타면 내가 상을 탄 것이고, 자식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인 것이다.
"우리 엄마는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형과 나의 시간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형과 나의 시간에 맞추어 째깍거렸다. 그리고 가끔 엄마의 시침은 어느 시간대에서 멈춘 후 그곳에서 우리의 침과 겹쳐지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몇 안 되는 짧은 시간을 위해 엄마는 평생을 기다렸다."
P.68

《엄마는 괜찮아》 속 엄마 또한 그랬다. 자식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리자 엄마도 병이 들고 만다. 아들의 우울증, 대인기피, 망상, 환청, 자살시도, 공황장애, 조현병은 결국 엄마의 우울증, 자살로 이어지고, 저자의 우울증으로 번져간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아들은 나았고, 엄마는 자살했다는 것이다. 엄마를 잃고 형의 지각에 어떤 변동이 있었던 건지 자세히 알 순 없지만 분명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니까. "언제나 존재는 부재를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하는 법이니까.
네 엄마…… 돌아가셨다.
뭐가 그리 아팠는지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p.19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싫어서 피하고 싶어 자살을 택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엄마의 자살은 조금 달라 보였다.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난 무기력이 그녀를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에너지를 가족에게 소진한 그녀에게는 더 이상 생을 이어갈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곁에서 기운을 북돋아줄 함께해주는 이도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행복이 없는 삶은 더 지속해봤자 아픔만 있을 뿐. 그녀는 무기력과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나는 종종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면 "다 그만하고 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죽고 싶다기보단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휴식이 필요하단 마음의 신호다. 죽는데 초점을 맞추거나, 더 깊게 파고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봤자 우울감만 더 커진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 자살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받게 되는 건 싫으니까. (이 책을 읽고 더 확고해졌다.)
한 개인의 자살은 한 사람만의 잘못, 선택으로 볼 수 없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어른이 살아가는데도 여럿의 정성이 필요하다. 가족, 지인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되짚어봐야 할 점은 사회가 그녀에게 다른 그러니까 더 나은, 더 행복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막아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탁에 의자가 세 개가 아니라 네 개가 있었다면.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들의 병에 차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녀의 생이 달라졌을까. 사랑은 늘 후회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