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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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일단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같은 환상의 공간.
그 세계와 연결된 자들의 슬픈 운명이 당신을 기다린다.' 

<바람의 도시>에는 '고도'라 불리는 신의 영역에 속한 세계가 현실세계와 병존한다. 12살 짜리 소년 하나가 일곱 살 때 우연히 들어갔던 고도의 기억을 떠올리곤 친구와 함께 들어갔다가 겪는 일들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오...... 재미있다.  

가상세계가 됐건 로봇이 됐건 뭐가 됐건, 그 세계를 작동하는 원리들, 금기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게 참 재밌단 말이야. <고도>의 소유물은 인간세계로 나갈 수 없다거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거나.. 아시모프의 로봇 제3원칙 같은 거. 매트릭스의 전화기 같은 거?  

일단 든 생각은, 일본 아이들은 참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재주가 있다는 것과 그게 가능한 역사/문화적인 배경이 있을텐데 그게 뭘까 궁금하다는 거. 난 일본 호러 소설이나 만화를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영화만 봐도 <링>이니 <검은 물 밑에서>, <기묘한 이야기> 같은 거 보면 참 그렇잖아? 뭐, <바람의 도시>의 병행세계와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그리고 저자 소개를 보니, 대학 졸업하고 프리터로 살다가 호주 오토바이 여행 좀 하고 알바 좀 해서 국내 오토바이 여행하고 그러다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 소설을 썼다 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본 여관에 장기투숙하면서 살사나 탱고 배우러 다니는 일본 아이들이 생각났다. 봉봉 언니가 일본의 '하류인생'은 우리나라에서 쓰듯 막장인생 같은 개념이 아니고, 부에노스의 아이들이나 사회에 편입되길 거부하고 프리터처럼 그런 삶을 선택하는 부류를 말하는 거라고 했다. 훔. 드는 생각은 많은데, 그냥 여기까지.  

아, 하나만 더. 병행세계라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계급에 따라서든 국적(보다는 사는 곳)에 따라서든, 사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상 그 외의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병행세계의 합이라는 말이다. 내 삶의 거죽을 들어내면, 모든 것이 고도의 삶일 터.  

'이것은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고 변화도 없고 극복도 하지 않는다.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영원한 이마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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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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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모든 어둠 속에서 괴물의 모습을 찾아낸다. 불쑥 내 머릿속에 그런 말이 떠올랐다. 어디서 읽은 구절일까? 육아 관련 책인가? 그래서 부모들은 애들이 뭔가를 두려워할 때 무시하고 웃어넘겨서는 안 된다.
그 가르침에 따른다면 혼자서 집을 보는 어린애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이 여자를 비웃어서는 안 된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나는 지푸라기다.-73쪽

우리는 모두 그렇지 않은가? 자기 혼자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필요하게 마련이다.-358쪽

비밀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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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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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자네가 이런 문제를 낸 적이 있었지.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렵겠느냐고. 기억해?"
"기억하고말고. 내 대답은 문제를 만드는 쪽이 어렵다였어. 문제를 푸는 사람은 늘 출제자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럼. 그렇다면 P≠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유가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시가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먼저 답을 제시했어. 다음은 남이 낸 답을 들어줄 차례야."
그렇게 말하고 이시가미는 유가와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305)

 특히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건, 놀라운 트릭이나 반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 할 곳에 슬쩍슬쩍 드러내는 솜씨하며 대립각에 있는 주인공들의 대사들을 직조해내는 작가의 능력 때문이었다. 동시에 간지러운 건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천재' 운운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에게 '천재'라 칭하는 - 물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독자의 눈에 그들은 정말 천재 같아 보인다 - 작가의 정신세계가 정말 궁금해. 나라면 그런 소설을 쓸 능력이 있어도 천재형의 등장인물은 만들지 못 할 것 같다. 낯부끄러워서. ㅎ

- 어쨌거나 이것은 사랑 이야기. 엔딩 부분 읽는데 눈물이 왈칵. 툭 끊기는 듯한 엔딩도 맘에 들었음.

- 제목 참 잘 지었다. 이 소설은 이미 초반에 살인사건과 범인을 알려준다. 그리고 제목의 용의자 X가 누구인지도. 그 때부터 엔딩까지 독자는 용의자 X가 어떻게 헌신했는가, 하는 것을 경찰과 조력자의 수사과정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데 결론이 궁금해서 당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 주요 인물, 그러니까 이시가미 선생과 유가와 교수, 야스코와 구사나기 형사로 바톤터치하듯이 중심인물들이 전개에 따라 빠르게 전환되는데 - 마치 직전, 스트레이트로 컷 넘기듯 -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추리 소설이 원래 그런 건지, 하도 오랜만에 읽는지라 잘 모르겠지만서두... 시점 전환은 아니다. 어차피 전지적 시점이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주인공들의 시점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전환되는 식의 소설에 매료되어 왔다. 처음 접했던 그런 류의 소설은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였고, 밀란 쿤데라 작품 중에도 그런 게 있었는데 아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을 테지.

- 판타스틱에 실린 단/중편 소설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 추리도 있었지만 그리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물론 빌 밸린저의 <기나긴 순간>이 꽤 흥미롭긴 했지만.... 추리 소설에 그닥 열광하지 않는 건, 이미 짜여진 완벽한 설계도가 있는데 그걸 일부러 흐뜨러 놓고 다시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이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져서다. 그게 바로 추리 소설의 묘미일텐데, 그걸 즐기지 못 하니 열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 관심을 그닥 끌지 못 하는 장르가 연극과 만화다. 각설하고, <용의자 X의 헌신>은 이런 나로 하여금 추리 소설에 빠져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는 책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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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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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멍이 들었다 -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내부에 엄청나게 거대한 큰 멍이 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 그리고 아무도 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66)

공포 그 자체. 매번 그들은 월경을 기다리다가 그것이 오면 한달간 처형 연기를 받는 거야. 하지만 그 여자들은 괴물을 낳을까봐 겁내지는 않았겠지. (88)

이 가족들의 생활 패턴이 정해졌다. 그리고 앞으로의 패턴도 정해졌다. (145)

두루두루 둘러봐. 만약 내가 그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면 그럼 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 (177)


완벽한 가정이 이루는 완벽한 행복의 꿈. 위태롭지만 하나씩 쌓아가던 그 꿈이 다섯째 아이의 잉태와 함께 시작된다. 어느 누구로부터 온전하게 이해받지 못 한 채 처음부터 고통받았던 어머니 해리엇은, 모두가 그 아이에 대해 죽음에 이르는 방치를 공모했을 때 홀로 아이를 위한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의 파멸이다. 아이와 자신의 관계까지 포함하여.
찌질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암담한 가족이야기는 많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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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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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 합리와 불합리는 아주 어우러진 형태로 공존한다. 영원히 교차할 길 없는 철길과도 같다. 우리는 그 양쪽에 바퀴를 얹고 달리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현실적이어야 할 정치가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현실을 초월해야 할 종교가가 세금을 안 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인텔리전트 빌딩을 지으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고사를 지낸다. 합리의 레일 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냉혈한이 되고, 불합리의 레일로 기울어지면 광신도가 된다. 그리고 결국 어느 지점에선가 탈선하게 되어있다.-72-73쪽

어쩌면 이 세상은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적은 인간과 인식한 위험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하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모양인지도 모른다.-107-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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