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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느린 만화가게 - 생태환경만화모음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부 지음 / 작은것이아름답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
<김산하의 야생학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슴을 탁 쳤던 문장.
생태적인 삶에 관심을 갖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애쓰지만, 순간순간 갈등하며 흔들리는 나에게 용기를 주는 한 줄이었다. 일관되지는 못 하더라도 지구시민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기 위해 나는 생태환경문화 월간지 <작은것이 아름답다>를 구독한다. 하필이면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뭇생명에 대해 알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폐를 덜 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작은것이 아름답다>가 무려 창간 21주년!!을 맞아 출간한 <작고 느린 만화가게>에는, 열일곱 명의 만화가가 참여한 생태환경만화 서른여섯 편이 담겨 있다. 다양한 관점과 그림체로 풀어낸 이야기들이지만, 이것은 내 얘기가 아닌가, 싶을 만큼 나와 비슷한 결의 고민들이 작품마다 소곤소곤 들려와 정겹기도 하고 위안도 되었다. <생명을 품다>, <자연을 잇다>, <생활을 짓다>, <시간을 찾다>, <생각을 열다>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엮인 작품들 가운데 특히 황경택, 소복이, 김은성, 장차현실, 달군의 만화들이 기억에 남는다.
황경택 작가의 작품들은 만화가이면서도 숲연구가, 생태놀이 코디네이터로써 터득한 지혜를 독자에게 나누어준다. <숲속의 현자>에서는, 우리가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면, 나무를 닮으려 노력한다면, 경쟁에 찌든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한다. <새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멀리 가거나 비싼 장비를 소유할 필요 없이 ‘그냥 잠시 여유를 갖고 눈만 감으면’ 됨을 일러준다. 뭘 하려면 도구부터 마련하려 드는 나로써는 문득 부끄러워지면서도 고마운 충고다. <신 노아의 방주>에서는 ‘생물종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전쟁이나 지구온난화를 막는 것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필요함을 역설하는데, 백번천번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우리 지구가 여섯 번째 대멸종기에 들어섰다고 경고하는데, 지난 다섯 번의 경험과는 다르게 인간이 원인을 제공했으므로 이를 ‘인류세’로 부르고자 한단다. 결자해지라고, 원인을 제공한 것도 인간, 문제를 풀 실마리를 가진 것도 인간. 그러니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변화로부터 나오는 것일 터.
장차현실 작가의 작품들은, 생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 습관의 변화도 촉구한다. <내 인형 메리>에서는 플라스틱 문제를, <안 깔끔여사 살림일기>와 <청소>에서는 합성세제, 쓰레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유혹>에서는 현대인 우리 모두가 저지르는 잘못, 과소비에 대해 말한다. 가장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들이라 고개 끄덕이고 빙그레 웃으면서 읽은 작품들이다. 지구를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나만 해선 안 되는 일들. 쓸데없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물건들은 아껴쓰고 나눠쓰고, 환경에 해가 가는 물질들은 쓰지 않도록 하는 것. 아무래도 <작고 느린 만화가게>를 친구들과 같이 읽고 또 곁에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들여다 보고 심기일전 할 수 있을 테니까.
달군 작가의 작품들은, 그림체와 작가의 생각이 두루두루 사랑스러워서 예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겨울, 하루>에서 ‘숲에 있으면 나무들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어쩐지 혼잣말을 자꾸 하게 된다’며 나무들에게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께요’하는 장면이라든가, 겨울이면 보아뱀 신세로 사는 처지라든가, <산책할까?>에서 ‘나이 들어서 내 인생에 아무 것도 없을까봐’ 두려워하며 엉엉 우는 장면이라든가, 겨울산이 ‘보송보송 솜털 흩날리고 홍조를 띄더니, 부글부글 녹색으로 끓어’ 오르는 표현이라든가 하는 것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코 소복이 작가가 그린 <나는 도도새였다>의 한 장면을 꼽겠다. 도도새였다가, 돌고래였다가, 북극곰이었다가, 이제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된 주인공의 눈물.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도도의 눈물이 사람의 눈물로 옮겨가는 순간, 그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라진 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대로라면 우리의 순서가 머지 않았다는 두려움.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작고 느린 만화가게>에 들러 문득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보기를.
당신도 나도, 나무의 마음으로 도도새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