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자네가 이런 문제를 낸 적이 있었지.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렵겠느냐고. 기억해?"
"기억하고말고. 내 대답은 문제를 만드는 쪽이 어렵다였어. 문제를 푸는 사람은 늘 출제자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럼. 그렇다면 P≠NP 문제는?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유가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시가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먼저 답을 제시했어. 다음은 남이 낸 답을 들어줄 차례야."
그렇게 말하고 이시가미는 유가와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305)

 특히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건, 놀라운 트릭이나 반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 할 곳에 슬쩍슬쩍 드러내는 솜씨하며 대립각에 있는 주인공들의 대사들을 직조해내는 작가의 능력 때문이었다. 동시에 간지러운 건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천재' 운운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에게 '천재'라 칭하는 - 물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독자의 눈에 그들은 정말 천재 같아 보인다 - 작가의 정신세계가 정말 궁금해. 나라면 그런 소설을 쓸 능력이 있어도 천재형의 등장인물은 만들지 못 할 것 같다. 낯부끄러워서. ㅎ

- 어쨌거나 이것은 사랑 이야기. 엔딩 부분 읽는데 눈물이 왈칵. 툭 끊기는 듯한 엔딩도 맘에 들었음.

- 제목 참 잘 지었다. 이 소설은 이미 초반에 살인사건과 범인을 알려준다. 그리고 제목의 용의자 X가 누구인지도. 그 때부터 엔딩까지 독자는 용의자 X가 어떻게 헌신했는가, 하는 것을 경찰과 조력자의 수사과정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는데 결론이 궁금해서 당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 주요 인물, 그러니까 이시가미 선생과 유가와 교수, 야스코와 구사나기 형사로 바톤터치하듯이 중심인물들이 전개에 따라 빠르게 전환되는데 - 마치 직전, 스트레이트로 컷 넘기듯 -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추리 소설이 원래 그런 건지, 하도 오랜만에 읽는지라 잘 모르겠지만서두... 시점 전환은 아니다. 어차피 전지적 시점이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주인공들의 시점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전환되는 식의 소설에 매료되어 왔다. 처음 접했던 그런 류의 소설은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였고, 밀란 쿤데라 작품 중에도 그런 게 있었는데 아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을 테지.

- 판타스틱에 실린 단/중편 소설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 추리도 있었지만 그리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물론 빌 밸린저의 <기나긴 순간>이 꽤 흥미롭긴 했지만.... 추리 소설에 그닥 열광하지 않는 건, 이미 짜여진 완벽한 설계도가 있는데 그걸 일부러 흐뜨러 놓고 다시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이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져서다. 그게 바로 추리 소설의 묘미일텐데, 그걸 즐기지 못 하니 열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 관심을 그닥 끌지 못 하는 장르가 연극과 만화다. 각설하고, <용의자 X의 헌신>은 이런 나로 하여금 추리 소설에 빠져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는 책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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