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원하는 것이란
데이브 배리 지음, 정유미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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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리 세상이 변화하였다 하여도, 남편 아니 가장이라는 명함을 가진 남자의 역활은 거의 변

화가 없는것이 사실이다.  한 가정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일하는 존재, 즉 "여우같은 아내와 토

끼같은 자식들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존재" 가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가 해야 할 의무인 것

이다.   오로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 짐을 기꺼이 짊어진 남자.  그러나 "여우같이 교활한?

아내와 토끼굴에 숨어서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자식들?"은 그 자애와 사랑의 결정체를 보고도

별 고마워 하는 감정을 품지 않기에,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제나 외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쓰디 쓴 술 한잔을 기울이면서 말이다.) 
 
"가장은 힘들다." "가장은 외롭다."   이렇게 한국의 사회에 있어서도, 가장의 우울증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기에, 최근에는 외로운 가장에 대한 동정론을 주제로한 여러가지 책자

가 등장하고, 또 인생을 보다 긍정적으로 살게끔 유도하는 다양한 정신의학적 조언과, 프로그

램이 편성되어 운영될 정도로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움이 없이도, 그 나름대로 행복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미국인이

있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세상을 대상으로 우스운 코미디를 만들어 내는 사나이, '미국에

서 가장 웃기는 사나이이자, 칼럼니스트인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 성격의 주인공이다.  
 
그는 재미있고 엉뚱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남과 자신을 웃기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살아가

는 세상 뿐만이 아니라, 아내 . 자식에 이르는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는 것도 전혀 주저하지 않

는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다양한 일상의 코미디가 존재한다.  백화점 세일매장을 향해서 세

상 그 어느나라의 군대보다 월등한 돌파력? 전투력?을 보이는 아내, 끔찍하기 짝이 없는 저스

틴 비버 콘서트에서, 스스럼없이 폭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감히 내 딸을 홀리다니 보는눈이

없구나." 라며 적반하장의 결말을 내리는 저자.  남자보다 더 변태적이고, 격렬한 섹스를 원하

는 여자들의 은밀한 욕망과, 그를 증명하는 한 여류작가의 이야기, 세계문화유산의 보고이자, 

매력적인 나라에 관광을 왔으면서도 정작 '와이파이'가 터진다는 사실에 더 열광하는 대책없

는 관광객(저자의 가족을 포함하여) 과 같은 여러 상황을 비꼰 미국식 조크(joke)가 무엇보다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책이 주는 교훈과, 지식의 내용보다는 '오로지 웃으면서 시작하고, 웃으면서 끝

내는' 이 책의 분위기가 그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후회, 그림자, 보다는 번뜩이는 재치와

농담을 지지하고 생활화? 하는 사나이의 존재.  이 책은 세상에 이러한 사내가 있노라. 하는 자

시 선언만으로도 그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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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 왕 위의 여자 - 왕권을 뒤흔든 조선 최고의 여성 권력자 4인을 말하다
김수지 지음, 권태균 사진 / 인문서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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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틀 안에서는 어머니도 아들도 없나보다.   그도 그럴것이 과거 드라마 '이산' 에서 보여

졌던 것처럼, 정순황후와 정조의 이념 & 파벌싸움은 결국 피를 부르고, 최종적으로 임금인 정

조의 죽음을 불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나는 이 책의 띠지에 적혀있는 영화 '역린'은 보지 못

했지만, 역사를 배움에 있어서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는 사실쯤은 인지하고 있다.    과거 왕권을 받치기 위해서 추진했던 '정승청치'가 아이러니하

게도 왕권을 흔드는 '붕당정치로 변질되었으니... 자 과연 그 변화의 핵심에 있는 '권력 구도의

변화' 중에서, 과부이자, 왕의 어머니인 대비는 역사적으로 어떠한 역활을 하였을까?    이 책

은 그러한 대비의 역활에 대한 역사적 시점과 더불어, 조선시대 여성이 억압받았던 시대상

항한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아쉽게도 책에 등장하는 '대비'들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공헌하였다기 보다는, 자신의 자유

와 가문을 위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휘두른 부정적인 모습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에 "암

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라는 말처럼, 그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외척을 중흥시켰으며, 결국

안동김씨와 같은 나라안의 또다른 권력자를 낳게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적혀있

는 '여자가 정치의 한복판에서 당당하게 서있었다.' 라는 단어가 그다지 감동적으로 와 닿지 않

는다.   '대비' 그들은 충.효.예.지와 같은 유교 문화에 입각한 정신적 가치를 이용해서, 왕의 정

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결국 그 정치적 권력을 자신의 친족이나, 측근들을 위한 파벌형성

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다루기 까다롭고 성질머리 더러운 뒷방늙은이' 분명히 왕에게 있

어서, 대비라는 존재는 받들어야 할 대상이면서도,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다.  (로마의 네로와

아그리피나의 관계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자인 그들에게 있어서, 과연 '성모'가 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

길은 좁도도 험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현모양처인 신사임당이 인생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조선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여성이 조용히 안방마님의 역활을 수행하는 것이까.)    분명히 정

희황후와 같은 인수대비같은 여성들은 언문도 모를 정도로 학문에 취약하였고, 당시 여자의

삶이라는 것이, 젊어서는 오로지 남편과,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의무에 따라야 했던만큼, 그들

이 마음속에 품었던 '자유'와 '권력'의 갈망이 얼마나 깊고 절실한 것이였을지는 그 아무도 모

를 일이다.   
 
어쩌면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기위해서, 어머니라는 이름

을 단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비정해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나 그 비정함은 결국돌고 돌

아, 왕과 대비라는 권력구도 속에서,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권력자가 뭐

든것을 이루고 명
수 있는 '권력의 세상' 속에서, 과연 그 자유를 위해서 사는

자는 어떠한 길을 걸어야 하였을까. 
  이처럼 이 책 '대비'는 그러한 욕망을 이루려고 했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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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첩 클라우즈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7
애너벨 피처 지음, 한유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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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들의 사랑, 즉 청소년기의 사랑은 나름 순수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사랑을 하는 양쪽의 마음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안긴 체 끝나는 수도 있다.  (물론 요즘의 아이

들은 모르겠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사랑에 관여 하려고 하는 것일까?  자칫하면 미숙

함과, 사랑의 로망에 취해서... 소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끝장을 보려고 폭주하는 아이들의

다리에 속쇄라도 걸고 싶은것이 아마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일 테니까.
 
그러나, 그러한 어른들의 바램과는 반대로, 아이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꿈꾼다.    물론 사랑이

란 이 책의 주인공의 이야기 처럼 쉽게 자신이 꿈꾸던 형태로 오지는 않는 것이지만, 막상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면, 세상의 모든것이 눈에 보이지않고, 또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됨

은 물론,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즉 상대에게 알몸을 보여주는 것, 강제로 키스를

당 하는 것과 같은 에로스적인 망상?의 세계에 지배당해, 결국 도달할 최후의 행위? (각자 상

상 하시기를)에 대한 기대와 설래임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의 마법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정의하기 어렵고 또 성립하기도 어려운 정신적인 결합이며, 심지어 국가는

그 결합의 행위를 일부 제한하여, 남자와 여자 쉽게 말해 1:1의 합의에 의한 사랑을 강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최종적인 삼각관계나, 다수가 한사람을 사랑하는 변칙

적인 사랑은 늘 불행해 지기 마련이다.
 
'삼각관계' 그것이 이 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큰 갈등의 요소이자,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게 만든 요소 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녀, 그리고 그 소녀를 사

랑한 두 형제의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싸움은 결국 남.녀를 아우른 3명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

었음은 물론, 최종적으로 한명의 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물론 살아남은 주인공과 상대

는 법률적으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또 아무도 그 '사고'를 보지 못했다는 환경에 의해서, 그들은 위로받아 마땅한 피해자

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는데, 주인공은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했는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상대를 찾았고, 결국 그에게 이 이야기의 전말

을 고백한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고백. ​아마도 그의 고백의 편지를 받아든 '사형수' 해리스 아저씨는 자신

에게 도착하는 그 고백이 사뭇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영국 어딘가에 사는 '조이' 라

고 소개한 한 소녀, 그리고 그 소녀는 확실히 죽음을 앞둔 자신을 상대로 자신이 '살인범'임을

자백하며, 결국 조이와 해리스가 결국 같은 부류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일방적인 해석에

대해서, 과연 해리스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될까?   해리스 아저씨는 외도를 한 아내를 용서

하지 못하고, 결국 살해한 책임을 물어 '국가'에게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렇기에 죽음을 앞

둔 상태에서, 한 소녀가 고백한 이러한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서 과거 저지른 사랑에 대한 '

폭주'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같은 형태의 사랑을 한 어린 소녀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는 죽는데, 상대는 멀쩡하게 돌아다닌다는 분노의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해리스는 사형수이기에, 조이의 편지를 거절 할 수도 없고, 오로지

꾸준히 보내져 오는 그녀의 편지를 묵묵히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조이

가 일장적으로 보내오는 양심의 편지와 내용을 안고서 결국 죽는다.   그는 결국 한 소녀의 상

처를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감춘 체, 저 너머로 사라지는 하나의 '유리병 편지'의 역활을 수행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이 그리는 내용의 전말은 사랑의 미숙함과 순수함이 언제나 행복에 도달하

지는 않는다.
는 일부 삐뚤어진 시각이 전부이다.    흔히 아픈 사랑을 한 만큼 성숙해 진다고

하지않는가?  자신의 양심을 고백한 '조이'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이 소설에는 표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상처입은 '버드 걸'(날으는 새)이 다시한번 창공을 날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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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 한국과 베트남의 비극적 만남과 위대한 반전
김연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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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각 국가들이 긴밀한 상호교류를 이끌어 나가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몇몇의 국가들이 '

진정한 독립과 자치를' 지켜 나갈까?   아쉽게도 많은 국가들이 이른바 '파워국가'의 그늘아래

서 진정한 자치의 가치를 위협받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예를들면 안정과 부유함을 부여받는

대신 국가간의 관계선택에 대한 자유를 제한받는 일본과 대한민국,  풍부한 지하자원에 대한

강대국의 탐욕에 의해서, 끝임없는 포화와 이데올로기에 희생되고 있는 중동의 국가들이 그러

한 파워국가들의 개념, 소위 '세계의 질서'라는 슬로건을 위해서 움직이는 피의 꼭두각시의 역

활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에서 보면 오늘날의 세상은 그저 노골적인 제국주의 시대에서, 은근한 뒷공작으로

움직이는 제국주의로 바뀐 것뿐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그 느낌을 뒷받침

하듯, 한국은 자신의 국가적. 외교적 상황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월남파병과 같은 '군사지원

활동'을 실행하여, 먼 훗날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행위에 대한 책임론&긍정론의 의견대립

이 격렬한데, 이는 분명히 공산주의의 확대를 저지한 활동, 한국 경제부흥의 시발점이라는 일

부 긍정적인 시각과 함께, 그저 강대국 미국의 요청에 의한 이념없는 군사작전, 한국군은 그저

이유없이 베트남에 가해진 횡포에 팔려간 용병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함께 두드러지게 하며,

한국사회의 양극화, 즉 세대의 견애차이,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게 하는 기준점이

되고있다.

 

실제로 이러한 논란은, 각자의 믿음에 의한 가치관의 차이이기 때문에, 도덕론적인 가치와는

다르게 깔끔한 선.악의 구분이 어렵다.   이 책의 저자가 '야누스'라는 제목을 통해서, 드러낸

바와 같이 세상에는 이유없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의 정의가 없는 역사가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한국 사회는 표면적으로 다문화 사회를 표명하면서도, 정작 그 속에서는

과거의 망령, 즉 사회주의는 나쁘다.  중국은 때놈, 베트남은 베트콩에 불과하다는 낡은 가치관

에 묶여 한국에 들어온 다문화를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들의

진정한 아픔을 모른다.   어째서 한국이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게 되었을까?  한국의 군인들

은 베트남에서 무엇을 하였을까?  그리고 그 군사적 활동을 통해서 베트남에게 어떠한 영향

을 미쳤을까?    과연 이러한 질문에 시원한 대답을 할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그건 아

무도 모를 일이다.  (정규 교육과정에는 이러한 역사의 내용이 없다.)

 

저자도 물론 그러한 현상을 보고, 그것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을 지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었고, 베트남은 베트남 나름대로의 정의가 있다.    그리고 우리들

이 과거 일본제국을 증오하고 그 잘못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듯이 베트남도 한국에 대해서 '

침략'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요구하는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도 단지 미국의 돈과, 북한

의 위협에서 안전을 보장하여주는 미국의 그늘이 아쉬웠기에 마지못해 군대를 움직인 모습도

있고, 전쟁 후유증이나, 미군의 고엽제와 같은 후천적인 피해에 고생하고 고통받는 파병군인들

의 문제를 안고있기에, 그 나름대로의 변명거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파병군인은 그들에게 "너

희들의 활동은 잘못된 것이였다" 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것도 어찌보면 잔인한 일이다.   

(한 인간의 젊은날, 아니 삶의 일부분을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한국

과 베트남 그 두 국가는 지금도 과거의 일에대한 매듭과 갈등의 골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저 하

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시간이 모든것을 해결하여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믿고 있다면 대한민국 또한 일본과 무엇하나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다.) 

 

다행스럽게도 베트남은 대한민국과의 국교를 맺은 1992년을 시작으로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

이 표명한 사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 이제 대한민국과 베트남 이 두 국가

는 과거를 뛰어넘어 진정한 협력자로서, 손을 맞잡고 날만이 남은 것인데, 과연 국가론을 뛰어

넘어 그 속의 국민들은 진정으로 서로가 손을 맞잡고 협력의 길을 내딛을 수 있을까?   물론 그

답은 그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오랜기간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박은 단일민족이라는 사고와,

공산주의 베트콩 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을 버리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 뻔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의 저자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나도 그러한 미래

를 보기를 꿈꾼다.      진정한 협력자로서의 한.베의 시대와 더불어, 진정으로 누구의 눈치를

보지않고 외교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과 그 속의 국민들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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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통 - 한국 최초 미대륙 횡단 자전거 레이스에 도전하다
김기중 지음 / 글로세움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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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고행'의 이야기.   이것은 소위 중세의 수도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

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하나의 장르로서, 자신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부여하는 희망의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

용 뿐 만이 아니라, 마약중독을 극복하고자 미국 북부를 횡단한 어느 미국여성의 이야기부터,

나이를 극복하고 원하는 일자리를 부여잡은 어느 한국여성의 이야기까지의 많은 에세이를 접

했고, 또 그 내용에 대해서 많은 감동을 느꼈는데, 그중 이 저자는 자신의 낸 책의 수익금을 전

부 나눔으로 기부한다는 포부를 보임으로서,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장사도구' 로 사용했던 여

느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것은 결국 내가 이 책을 긍정적으로, 또 가장 기억

에 남는 에세이로 남아있게 했다.

 

그러나 그 긍정적인 느낌과는 반대로, 나는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실제로 느

끼고 행동했던 많은 행위에 대해서 완벽히 공감하지는 못한다.    원래부터가 운동과는 인연을

두지 않았고, 또 일반적으로 철인 삼종경기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는 극한의 자전거 레이스를 

스스로 선택한 저자의 무모함에도 "과연 이렇게 까지 해야 했는가?" 라는 의문의 마음을 품은

게 나로 나라는 인물이였다.    그렇기에 남들은 이 저자의 이야기에서, 땀과 노력이 인정받

고, 뚱보에서 스포츠맨으로 탈바꿈한 저자의 성공적인 변신기에 공감 할지도 모르겠지

만, 나는 그것에서 조금 삐뚤어진 내용, 즉 링거를 맞으면서 달리고, 교통사고를 당하면서도 달

리고, 엉덩이 살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달리는 저자의 라이딩에 대한 내용에 더 주

목했고, 또 그가 신세를 지고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과 후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중요

하게 읽음으로서, "아무리 그가 노력했다 해도 모두의 도움이 있었다면 과연 그의 라이딩이 성

공했을까?" 하는 일종의 꼬인 감상?에 더 주목했다. 

 

결국 나는 말하자면, 지금껏 읽어온 에세이의 내용을 비교하며 "어느 사람이 더 힘든 고행을 하

였는가?" 라는 순위를 멋대로 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나 자신은 무엇하나 완성하지 못했으면

서, 무엇하나 스스로의 의지로 실행한 것이 없으면서 나는 오만하게도 남의 성공과 업적을 시

기하고 또 측정하고 순위를 매겼다.    순수하게 "굉장하다." "놀랍다" "감동적이다" 라도 느끼

고 칭찬하면 좋았으련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어가는건 빈정거리고 자기 변명에만 급

급한 고집스런 늙은이?와 같은 몹쓸 성격 뿐이다.   (조금은 반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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