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 클라우즈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7
애너벨 피처 지음, 한유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들의 사랑, 즉 청소년기의 사랑은 나름 순수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사랑을 하는 양쪽의 마음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안긴 체 끝나는 수도 있다.  (물론 요즘의 아이

들은 모르겠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사랑에 관여 하려고 하는 것일까?  자칫하면 미숙

함과, 사랑의 로망에 취해서... 소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끝장을 보려고 폭주하는 아이들의

다리에 속쇄라도 걸고 싶은것이 아마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일 테니까.
 
그러나, 그러한 어른들의 바램과는 반대로, 아이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꿈꾼다.    물론 사랑이

란 이 책의 주인공의 이야기 처럼 쉽게 자신이 꿈꾸던 형태로 오지는 않는 것이지만, 막상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면, 세상의 모든것이 눈에 보이지않고, 또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됨

은 물론,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즉 상대에게 알몸을 보여주는 것, 강제로 키스를

당 하는 것과 같은 에로스적인 망상?의 세계에 지배당해, 결국 도달할 최후의 행위? (각자 상

상 하시기를)에 대한 기대와 설래임의 감정을 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의 마법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정의하기 어렵고 또 성립하기도 어려운 정신적인 결합이며, 심지어 국가는

그 결합의 행위를 일부 제한하여, 남자와 여자 쉽게 말해 1:1의 합의에 의한 사랑을 강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최종적인 삼각관계나, 다수가 한사람을 사랑하는 변칙

적인 사랑은 늘 불행해 지기 마련이다.
 
'삼각관계' 그것이 이 소설이 만들어낸 가장 큰 갈등의 요소이자,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게 만든 요소 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녀, 그리고 그 소녀를 사

랑한 두 형제의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싸움은 결국 남.녀를 아우른 3명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

었음은 물론, 최종적으로 한명의 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물론 살아남은 주인공과 상대

는 법률적으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그러나 아직

어리고, 또 아무도 그 '사고'를 보지 못했다는 환경에 의해서, 그들은 위로받아 마땅한 피해자

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는데, 주인공은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했는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할 상대를 찾았고, 결국 그에게 이 이야기의 전말

을 고백한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고백. ​아마도 그의 고백의 편지를 받아든 '사형수' 해리스 아저씨는 자신

에게 도착하는 그 고백이 사뭇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을 영국 어딘가에 사는 '조이' 라

고 소개한 한 소녀, 그리고 그 소녀는 확실히 죽음을 앞둔 자신을 상대로 자신이 '살인범'임을

자백하며, 결국 조이와 해리스가 결국 같은 부류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일방적인 해석에

대해서, 과연 해리스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될까?   해리스 아저씨는 외도를 한 아내를 용서

하지 못하고, 결국 살해한 책임을 물어 '국가'에게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렇기에 죽음을 앞

둔 상태에서, 한 소녀가 고백한 이러한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서 과거 저지른 사랑에 대한 '

폭주'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같은 형태의 사랑을 한 어린 소녀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는 죽는데, 상대는 멀쩡하게 돌아다닌다는 분노의 감정을 품을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든 해리스는 사형수이기에, 조이의 편지를 거절 할 수도 없고, 오로지

꾸준히 보내져 오는 그녀의 편지를 묵묵히 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조이

가 일장적으로 보내오는 양심의 편지와 내용을 안고서 결국 죽는다.   그는 결국 한 소녀의 상

처를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감춘 체, 저 너머로 사라지는 하나의 '유리병 편지'의 역활을 수행

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이 그리는 내용의 전말은 사랑의 미숙함과 순수함이 언제나 행복에 도달하

지는 않는다.
는 일부 삐뚤어진 시각이 전부이다.    흔히 아픈 사랑을 한 만큼 성숙해 진다고

하지않는가?  자신의 양심을 고백한 '조이'는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이 소설에는 표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상처입은 '버드 걸'(날으는 새)이 다시한번 창공을 날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