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타운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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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소설 '파인스' 시리즈의 마지막권 -라스트 타운- 을 접한다. 

 

인류가 멸망한 세계, 그것을 예견한 한 학자(하슬러)는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파인즈'를 건설

했다.   그러나 그 파인즈를 위해서 선택된 사람들이 미래의 인류를 위해 스스로 결심한 사람들

이 아니라, 하슬러의 실험정신에 의해서 납치되는 등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동원된 사람들이

였다는 점, 또 그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슬러의 '통치'등은 결국 이 파인즈3권에 이

르러 가장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 사내의 호기심과 야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하슬러가 만들어

낸 '울타리' 속 웨이워드파인즈가 아니면 문명의 혜택 뿐 만이 아닌, 인류로서의 생존조차도 위

협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 놓여있다.   때문에 전편의 주인공은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순

간,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것을 버리려고 했다.   '자유'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그것을 내려놓

고, 하슬러가 강요한 꼭두각시로서, 그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순응하려고 했으며, 심지어 남은

인류의 번창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위선' 을 받아들여, 자신의 소중한 가족의 안전

을 최우선으로 보장받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자유의 가치속에서 살아온 '문명인'의 가치관,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무지'는 파인즈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

만의 싹을 심었고, 결국 주인공과 그 주민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창조주를 향해 창끝을 겨누

게 되는데...

 

이렇게 결과적으로 인류를 보존하려고 했던 하슬러박사는 파인즈의 주민들,그리고 주인공인

'에단'(보안관)에게 직접적인 도전을 받는다.   그의 시선에서 바라본 '파인즈'는 분명히 인류

의 종말을 막아준 방주였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하슬러는 주민들에게 인간의 삶을 결정지을

자유를 제한함으로서, 그리고 스스로 파인즈를 창조한 '신'으로서 군림하려는 오만함으로 인

하여 결국 파인즈는 방주가 아닌 감옥으로 기능하게 되어버렸다.     

 

때문에 주민들은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하슬러는 그것을 '배신'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방주에 구멍을 낸다.    결국 하슬러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았던 것이다.   그에 의해서, 방벽이 열리고, 또 파멸이 파인즈를 덮치며, 그가 꿈꾸었던 문명

은 하루아침에 그 끝을 고한다.      그렇게 하슬러에게 버림받은 주민들은 그제야 미래세계를

마주한다.    그러나 그 미래는 결코 주민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고, 결국 주인공은 '신?에게 버

림받은 피조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떠한 결심을 굳이고야 마는데, 과연 그 선택

은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인류'를 다시끔 구원 할 수 있을까?   그 결과는 분명

이 소설의 막장에 이르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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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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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질서와 도덕적 개념이 유지되는 '필수요소'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흔히 인간은 '

인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존귀한 인격체로서 다른 동물들보다 다른 차이점을 보이는

이유도, 인간이 지식과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인

간은 문명이라는 요소를 잃어버리면서, 결국 동물로 퇴보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진다. 배고픔

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위해, 무엇보다 살기위해서 잔인한 살육을 반복하게 된 인간, 다시

끔 야만이 지배하게 된 세상의 종말의 이야기... 그러나 저자는 그 세기 말에서, 인간(인류)을

위한 작은 씨앗의 존재를 그려 나아간다. 

 

상식적으로 '로드' 또한 그러한 세기말을 그리면서, 보다 잔인한 삶을 감내하는 많은 인간들이

등장한다.   인간을 버리고 짐승의 길을 선택한 많은 이들은 스스로를 위해서 인간을 죽이고,

또 인간을 식량으로 삼는 엽기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

에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남에

게 의지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 모든것을 해결하는 능력과, 비정함, 그리고 탐욕 또한 그 '약육

강식'의 세상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으로 이해 될 것이 분명하다.

 

허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부자' (父子) 특히 아들인 소년은 그 시대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

인간'으로서의 상식을 지닌 존재로 표현된다.   이미 문명이 소멸한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중요한 식량을 배고픈 타인에게 배풀고, 어려운 타인을 돌보려는 순수함을 그대로 지니

고 있다.   그는 '총'을 거부한다.  그리고 오로지 소년을 살리려고 노력하고 또 세상의 상식으

로 비정해진 '아버지'에게 양심과 자비를 주문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과연 생존만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이 소년의 상식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소년은 분명 문명인의 교육을 받지못한 세기말의 아이임이 분명하다.  허나 소년은 독자로 하

여금 '절망 속에서 피어난 한줄기의 구원의 존재' 라는 감상을 품게하게 충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렇다, 그 아름다운 마음 때문에 이 소설이 기억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이

그 인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라는 그 자신만의 믿음을 이 책에 녹여 넣었다는 감상

도 함께 품을 수 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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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들의 도시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671
크리스틴 드 피장 지음, 이봉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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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세를 살았던 여성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물론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러 많은 여류

작가들이 등장하고 또 그만의 명성을 쌓아올렸기에, 이 글도 분명히 배울점이 큰 기록임이 분

명하다.   하지만 남.녀의 차별 등이 상당부분 해소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 여류작가들의 주

장은 과연 어떠한 감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혹시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는 '페미미

즘 사상의 참고자료로서, 소수자들의 바이블이라는 위치에 머무르지는 않을까?   아니면 다시

끔 여성이 차별받았다는 역사의 사실을 들추어 내는 '논란의 씨앗'에 불과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읽기 이전부터, 이러한 호기심을 가져보았다.   허나 이 책

은 여성의 슬픔, 여성의 굴욕, 여성의 차별, 여성의 한계... 이것들을 구슬피 노래

고, 또 원망했던 여느 작품들과는 조금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교육받

은 지적인 여성, 그러한 여성은 과연 그 시대의 여성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평가하고 있

는가?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한 여성의 머릿속을 산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중세의 여성은 과연 어떠한 지위를 가졌을까?   흔히 중세 궁정의 서정시인 민네, 그리고

중세의 장미 이야기 같은 기록을 살펴보면 여성은 귀중하게 보호받는 존재, 순결하고 고결한

정신의 존재로서,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반대로 당시 지식인

들과 종교인의 기록을 바라보면, 여성은 단순히 '이브의 후손' '죄악의 십자가를 진 존재'에

그 치는것이 일반적이다.   예로 같은 프랑스에서 기록된 '결혼의 열다섯가지 기쁨' 을 살펴보

면, 한 수도사가 여성에 대해서 상당히 편향된 상식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여성을 어리석은 존재, 재산을 탕진하는 존재, 아름다움속에 추악함이 묻어나는 존재,

어리광부리며 남성을 타락시키는 죄악의 존재로 치부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는 그러한 남

자들 즉 세상을 지배하는 남성 지식인과 교육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 듯하다.

 

물론 그녀의 의문은 정당하다.   그러나 남성의 시대였던 그 당시 이러한 의문을 주장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분명히 남 다른 각오가 필요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

의 주장을 위해서 하늘의 주인 '주님'의 이름을 빌린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 세상에 만들

어갈 '이상적인 국가' 를 꿈꾸며, 그녀 스스로 숙녀들이 추구하고 만들어 나아가야 할 '이

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은 분명 '성곽도시' 이라는 존재가 중요했던 중

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남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글쓴이 본인이다.   그녀는 남성들이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시선'

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 지적인 여성이다.  때문에 그녀는 주님에게 묻는다.  그리고 주님

은 그의 기도에 세명의 여신을 내려보내, 그를 위한 최고의 해답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우

선 주님의 세 딸은 '이성' '지혜' '정의'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 여신은

먼저 황량한 벌판, 탐욕스러운 상대방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유린당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

의 현실을 지적하며, 우선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성곽도시를 만들것을 명령한다.    여성들의

도시,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도시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존재만편의를 위해 만들어

지는 도시가 아니라는것이 흥미롭다.   안전하고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도시, 그 도시

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 그 도시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존

재가, 이성, 지혜, 정의에 대해서 바른 정신과 자질을 지녀야 한다.

 

그녀는 분명히 여성도 '신의 자존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그 주장을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존재 또한 그에 걸맞는 자격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도 분

명히 하고 있다.   여성의 운명에 순종하는자, 무식한자, 욕망에 물든자, 죄악 속에서 이익을 추

구하는자... 이들은 여성들의 도시를 위해 성벽을 쌓을 자격조차 없다.   그들은 황량한 벌판

에서 유린당하며,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다... 신의

심판을 받은 이브의 삶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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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 세트 - 전3권 - 응답하라1988 그 시집 - 1988년 전국 대학가 익명, 낙서, 서클 시 모음집 슬픈 우리 젊은 날 복각판
사회와 문학을 생각하는 모임 엮음 / 스타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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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88년 나는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혹 가족중 기억이 있다면, 가족을 만들고 또 나를

낳았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을 가장 반길 만한 세대 또한 내가 아니라, 아

버지와 삼촌의 나이때가 아닐까?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을 모른다. 물론 이 책에 적

혀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올바르게 마주할 자신도 없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은

본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가 아니라, 그저 표현했을 뿐인 '낙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

면, 조금이나마 책을 마주할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낙서를 모은다' 도데체 이 책은 무엇때문에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 책

이 당시 지식인이였던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욕구로 만들어졌다는 것부터 알아둘 필요

가 있을 것 같다.    책속의 대부분에는 지금은 생소한 많은 단어들이 들어가 있다.    '독재' '최

루탄' '탐욕' '권력' 억압' '전태일' '전두환' '혁명' '검열' '경찰'  등등 당시 군사정권에 대한 실

망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술' '담배' '음악' '여행' '여자' 연예' 등등 현실을 도피하

기 위한 새로운 자극, 아니면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싶은 열망이 담긴 이러한 단어를 추구하는 (

아니면 찬미하는) 센티멘탈적인 낭만의 시들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아니면 단순한 한풀

이?일지도 모르는 재미있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오늘날 1988년을 등장시킨 작품등을 보면, 그 대부분의 주제는 '낭만'으로 연결

이 된다.   국가.정치의 필요성에 의해서 강제된 억압,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얻어내

고 싶다' 추구했던 많은 낭만의 것들...  나는 이들이 말하는 '정의로운 세상' '자유로운 세상' '

연예하고 싶은 마음' '친구와 기울이는 한잔의 술' 등에 대한 당연한 열망에 대한 기록을 접하

면서, 오늘날 대학생들이 말하는 '취업' '불안한 미래' '스팩' '수저론'등으로 고심하는 현실이

얼마나 건조하고 재미없어졌는가?  그리고 인간이 고심하고 추구했던 여유나 풍류가 사라진

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해졌는가? 하는 개인적인 진단을 해 보기도 했지만, 이처럼 정의를 추구

했던 세대들이 만들어낸 오늘이 어째서 이리 살기 힘들어 졌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가져 보기

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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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2호선 - 2호선 역명으로 보는 한자, 그리고 이야기 지하철 한자 여행 2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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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변 위성도시와 그 중심지를 엮는 '지하철'  그러나 나에게 있어 지하철은 단순한 운송수

단일 뿐, 하물며 그 역에 위치해 있는 지명의 유례, 특징,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조차 없

었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과거 한자권에 속했던 과거, 그리고 그 '명칭'을

단순한 '고유명사'로 치부했던 현실의 '나'를 마주한다.   

 

허나 솔직히 말하면 '시대의 흐름'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자권 독립?'은 나름 범국가적인 움직

임이기도 했다.  주민등록증 부터 시작해, 신문과 서적에 이르는 출판물에도 점점 한자표기가

사라졌고, 그 틈에 순 한글 그리고 세계의 영향력 있는 언어 (영어)가 채워넣어져, 사람과 문화

등에 그대로 녹아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물론 그것은 세계화를 목표로 했던 사회

에 있어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였으나, 그 대가로 현대인들은 그만큼 과거와의 연결점

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이 저자 뿐 만이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느끼는 마음이 크다.

 

오늘날 각각의'역'을 지칭하는 이름의 유례는 과연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옛 시대

의 잔재인가?  단순한 고유명사인가? 아니면 이 책의 주제처럼 다시끔 돌아보아야 할 과거와

의 연결점인가?... 물론 그것은 개인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해답이 있을 것이다.  허

나 한자 속에 녹아있는 옛 조선의 지명과 그 뜻에는 이미 아스팔트와 철근 콘크리트로 덮여버

린 그 땅위에 위치했던 주막, 장터, 나루터, 광장, 연병장, 건물터, 왕궁과 같은 조선, 아니 그보

다 더 오랜시절 존재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기억이 녹아있기도 하다.

 

한자속 그 뜻과 기억을 다듬어 가면, 어느날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유의 전통이 눈

에 들어온다.   그리고 옛 역사의 화려함과 아픔, 그리고 일제에 의해서 난도질당한 '

지명'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나만의 감상을 얻어냈다.  이 책은 한자의 필요성이 아니라, 한자

에 의해서 막혀버린 과거와 오늘의 장벽을 조금이나마 녹여보려는 저자의 마램과 노력의 산물

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라는 말이 이처럼 효과적으로느껴진 때가 어디 있을까?   나

는 지금껏 답안지를 마주하면서도 그 답을 유추하지 못했던 바보?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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