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 맥덕기자의 맥주, 어디까지 마셔봤니?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심현희 지음 / 넥서스BOOKS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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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있어서 맥주는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치킨과 맥주라는

궁합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가지며 생맥주를 들이키며, 심지어는 혼술을 핑계로 냉장고 한켠

을 캔맥주에 할애하기도 한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맥주 소비는 어마어마하다.   그

러나 반대로 맥주를 마시게 된 역사나,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사고방식'은 그 맥주소비량에 비

하여 너무나도 빈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모순된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히 한국은 전통적으로 보리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이집트를 포함한 비옥한 오리엔트문명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만들어

지고 계량된 맥주는, 크게 서양세계의 전통주로서 위치를 지킨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접목으

로 급속히 퍼져나간 맥주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어느덧 맥주는 세계인의 술이 되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이 맥주를 즐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도 와인과 달리 전통과 사고방식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술로서 말이다.


그렇기에 맥주는 넘기위한 문턱이 닞다.    그러나 일부는 스스로 그 문턱을 만듬으로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맥주를 만들어 가는데.   이에 이 책은 그러한 마니아들의 지식욕을 만족시켜주

는 그 나름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의 맥주는 맛이 없다라고 저평가

된다.    그러나 그 맛이없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떠한 맥주가

맛있는 맥주인가?    이에 독자는 저자의 질문에 하나하나 해답을 발견해야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맥주맛!  


이는 전통적인 맛을 추구하는가?  맥아? 첨가물? 보리의 순수한 맛을 느끼는 숙성맥주인가? 

아니면 대랑생산된 드라이맥주인가? 깨끗한맛, 묵직한맛, 톡득한맛에 이르는 정말로 방대한 맛

의 정보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화가 된 오늘날, 저자가 추천하는 맛의 맥주

는 비교적 손쉽게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는 천천히 자신의 맥수기호를 자리잡아가면 된다.

실제로 지친 나날을 보낸후의 음주는 분명 매력적이다.    바로 그러한때 정말로 자신을 위한

맥주가 함께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서민이 즐길수 있는 상급의 휴식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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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팀 -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마이카 젠코 지음, 강성실 옮김 / 스핑크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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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과 협력!   흔히 공동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요소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떠올릴 것이

다.    물론 실제로 이를 통하여 성장을 이루어낸 '성공신화'는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세상에

는 리더십, 대통합, 공감대라는 단어들이 강조되며,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 책의 '레드팀'은 어쩌면 그러한 가치에 대하여 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

겠다.     본문의 내용에 따르면 레드팀의 존재는 분명 단합의 가치에 반한다.    그 예로 그들

은 중세시대 '악마의 변호인'이라 불리우는 활동을 통하여, 속한 공동체에 끝임없는 제동을 걸

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행동은 '돌다리도 두들기는 신중함' 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최악'에 대비하는 것은 분명 나쁜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거국일치를 주장하며 폭

주한 일본의 예도 있지 않은가?   단합은 보다 큰 업무추진력을 만들어내지만, 이는 반대로 말

하자면 모두가 잘못된 길로 폭주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된다.


때문에 과거부터 중요시되었던 것은 이미 언급한 리더의 자질이였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과

경험에 의지한 비전은 분명히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되어있고, 무엇보다 점차 전문화되고, 거대

화되는 공동체에 대응하기에 큰 부담과 위험을 지우는 원인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레드팀이란 '예방팀'이 필요해졌다.   수뇌부의 비전을 검토하고, 제시된 목표를 검증하고, 인

재의 자질을 의심하며, 끝임없는 증명을 추구하는것!   이에 분명 대다수는 이들의 행동이 부담

스러울 것이나,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이는 분명 건장한 공동체를 이러가는데 있어 필요한 조직

이라는 생각도 드는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속 레드팀은 어떠한 모습일까?   정치의 여.야당의 존재?  기업의 법무팀?  아

니면 내사나 첩보를 주관하는 국가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것인가?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딱부러진 정의를 내리지는 못하겠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레드팀이란 공동체의 성장을 뒷

받침하는데 있어 가장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그림자이지만, 그만큼 정책결정에 있어서 강대한 힘을 드러낼수도 있는 권력을 지

닐 수도 있다.   때문에 현대판 리더의 자질은 이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하고 공생하게 하는 저

울의 역활을 수행하는 것일 것이다.    어느쪽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그 맡은바 임무를 다하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만약 그러하다면 그 공동체는 가장 이상적인 성장이 보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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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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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인물은 개인

스스로 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에 있어서, 보다 강력한 권리를 행사 할 수 있는 능력

을 지니게 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엘리트'가 되기를 소망하고, 또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소위 명문대학이나, 대기업 입사와 같은 좁은문을 향해 돌진한다.


노력의 보상, 최상위 자아실현의 달콤한 열매!   그러나 그 성공의 뒷면에는 '특권계급의 형성'

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진다.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

울였다.    엘리트그룹의 형성, 격에 맞는 사교모임, 예절, 언어, 외모심지어는 혈연적 관계를

통한 되물림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특권을 지킨다는 것은 점차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다른성

격의 세계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되어진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이와 같은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조롱한다.   지나친 교양, 이해 할 수 없는

예절, 그리고 격한 자존심! 무엇보다 '나는 특별하다' 라는 우월성의 강조는 두말 할 필요도 없

이 서민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최고의 가치이다. 물론 소설속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챈스가 '가드너'씨로 변모하기까지, 그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권력자'들은 그들의 상

식과 눈을 통하여 챈스를 평가한다.   최고의 사업가, 정책입안자, 더할나위 없는 지성의 소

유자...   그러나 과연 챈스는 이러한 평가를 받을만한 위인인가?    이에 독자들은 전혀 생각지

도 못한 '어이없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챈스가 이루어낸 성과는 모두가 허상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원사로서

의 지식과 텔레비전을 통하여 마주한 '세상'밖에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나, 결과적으로 어느 '엘

리트의 눈에 든 순간부터' 그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비추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물

론 챈스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것은 챈스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다.         엘리트라는

자들이 무식쟁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행동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낸다.   


그야말로 백치를 천재라고 하는데 비웃지 않을수 있을까?


때문에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상의 평가, 그로 인하여 얻게되는 권력과 영향력을 주무

르는 인물과 매체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것,  그리고 격한 풍자를 통하여,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나쁜것'에 대하여, 독자들이 한번더 생각하게 하는것!  이처럼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

속에 숨어있는 삐에로'를 지적한 저자의 소설을 들여다보면서, 나 스스로의 신념에 대하여 보

다 더 생각하고 경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듣고싶은것만 듣는 행위'


이처럼 어리석고 무서운 것은 없다.    일상의 다이어트부터, 거대한 정치판에 이르기까지, 스

스로에 자신이없는 혼란의 때 찾아온 감미로운 헛소리에 취하고, 기댄 대가가 얼마나 큰 것

인가?    이에 여러분들은 스스로의 과거를 한번 돌아보도록 하자. (적어도 다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에 한번쯤 과식한 경험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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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나카 이치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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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는 그야말로 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하면 떠올렸던 가장 대표적인 문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판명이 되었기에, 단순히 역사성으로 따지

면 큰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 사회전반에 받아들여진 그 '의미'만큼은 그

거짓여부를 떠나, 지금도 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오늘날의 문명.사회는 과학만능주의로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

에 현대인들은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되었고, 또 계몽주의적 사상을 통하여,

보다 다양한 형태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과거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옛사람들의 경직성과 어리석음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이해가 된다.   아니!  그 종교재판이라는 것 자체가 서양역사

에 있어 가장 큰 오점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오로지 '성서' 라는 절대적 가치아래서, 사회,

문화,과학에 이르는 많은 가치가 억압을 받는다.    덕분에 당시 교황령과 그 아래의 종교기관

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물론 이 책이 표현하는 재판 또한 그 과정에 일어난 사건이

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때문에 그는 어떠한 상징성을 띈다.    물론 그가 이룩한 천문지식과 이론, 특히 지동설의 발견

은 그의 최고의 업적으로 이해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과학적 발견을

뛰어넘은 것! 바로 그가 과학실증주의의 선두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데 있다.    실제로 그

가 중얼거린 최후의 변론은 그야말로 거대한 핍박 속에서 건져낸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이다.  

때문에 이미 지동설 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사이의 격차는 당시 갈릴레이의 시대와 비교해 그 차이가 크다.


종교가 가지는 역활을 축소시키려는 노력.


역사속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갈릴레이는 상당히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인

식 덕분에, 그의 인물됨을 비롯하여,  과학적 결실에 따른 평가가 이루어짐은 물론, 특히 그가

받았던 박해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려는 많은 노력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 따르면 그

에 가장 큰 역활을 한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이다.


만약에 그의 신념이나, 세상속 갈릴레이의 평가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재판의 '진실된 기록'

은 지금도 바티칸 서고 깊숙한 곳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역

사는 '진실의 발견'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매우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또한 역사적인 사

실을 접하고, 또 그와는 달리 '역사가 만들어낸 역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매우 바람직한 기회

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보다 드라마틱하고, 비장한 '만들어진 역사'를 받아들여 왔

다고 생각한다.    마라톤의 유래, 갈릴레이의 재판... 이 역사의 상식 속에서 많은 사람

들의 가슴에 박힌 '가짜'는 분명 그 사건과 위인에 대하여 놀라울 정도의 파급력을 발휘해 왔던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진실'을 마주하며, 그 건조함에 내심 실망했을수도 있을것이다.    허나

실망했다고해서 그 인물에 대한 의미가 저평가되거나, 격하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

다.   실제로 이 책이 드러내는 인물의 의의는 '서양 천문학'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인물

이다.   그런 인물이 세상의 상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지겠

는가?   실제로 여느 인물들의 살 붙이기는  그에 따른 무지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 많다.   그

렇기에 독자는 이 군더기 없는 인물을 보면서, 다시끔 그의 업적과 사실을 들여다보면서, 그

나름의 정리를 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물론 이 책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지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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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페미니즘이 뭐야? - 소녀답게 말고 나답게 걸라이징 1
마리아 무르나우 지음, 엘렌 소티요 그림, 성초림 옮김 / 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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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사회에 있어서 페미니즘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러나 과거 역사를 배우며, 접해온 페미니즘과, 현재 한국에서 주장되고 있는 페미에 대하여 '어

떻게 생각해?" 라고 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한국 페미는)'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말하겠습니다.   


실제로 현 시대의 페미는 안정적인 민주사회, 과학기술의 발전, 여성들의 높아진 지식수준이라

는 3가지의 가치 아래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과거의 남성주의 사회등에 분노

하고 있는것은 당연합니다.    그도그럴것이 현재 경제와 소비문화등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소위 '돈을 버는 시스템'에 나름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남성들이니까요.

 

때문에 이 책의 첫페이지에서도 위와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가부장제' 라는 제목아래, 여

성은 메이드복을 입은 존재, 그것도 상당히 굴욕적인 모습으로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

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은 주장합니다.  


세상은 아직 '여성에게 가혹하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내용을 접하다보면 현재 페미의 주장은 매우 명확합니다.  여성의 경제권을 보

장하고, 사회진출에 있어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남성들은 여성들을 더

이상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아닌, 라이벌이자 동반자로 보라고 주문합니다.    이에 곰곰히 생

각해보면 너무나도 '정의로운'주장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은 이 가치를 들고, 남성사

회와 싸워 많은것을 얻어낸 역사도 있습니다. 


세계1차대전, 소위 한 세대의 남성들이 소멸했을정도로 어리석은 전쟁을 벌이고 있을무렵, 사

회는 부족한 인원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성들에게 사회의 진출 '취업'의 기회를 열었습니

다.   이 덕분에 여성들은 보다 다양한 직업을 통하여 사회에 공헌 할 수 있었지요,  공장노동

자, 타이피니스트, 각 부처의 공무원... 그야말로 그들은 사회 시스템을 책임지는 존재로 급부

상했습니다.    때문에 전쟁이 끝나면서 사회는 예전에는 없었던 격렬한 저항을 맞아들이게 됩

니다.    여성들이 주장하는 '권리' 경제권, 투표권, 인권에 대한 다양한 권리주장에 대하여 사

회는 이제 이를 받아들이냐, 아니면 배척하느냐 하는 선택을 강요당합니다.


이에 결과적으로 사회는 '오랜 진통끝에' 이들의 요구들을 수용했습니다.  그야말로 초기 페미

니스트 들의 처절한 투쟁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여성 스스로가 사회의 의무를 수행하는 하나의 계층으로 성장했다는 것에 있을겁니다.


이에 페미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거 페미니스트들의 '대 선배'는 바로 시인

사포였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호메로스에 버금 가는 감성과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소위

남성주의의 사회에 짖눌려, 역사속에서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지요,   그러고 보면 너무나

도 많지 않습니까?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여성'  '남성사회의 그림자에 눈물흘린 뛰어난

여성의 이야기'  그렇기에 초창기 페미들은 남성주의를 혐오했습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여

성들을 상대로 한 '계몽운동'을 벌였지요, 물론 그 주장은 상당히 다양했습니다만, 소위 핵심만

을 말하자면 이런겁니다. 


여성은 남성을 대신하여 '사회와 역사의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렇습니다.   페미의 본질은 여성주의입니다.  그들은 남성주의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그 '본질'을 빼앗겠다 선언한겁니다. 남자니까 우대받는다.  라는 가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이유는 그 오랜세월 남자

가 사회와 역사가운데서 '중심'의 역활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오랜세월 가장이자, 전

사로 살아왔습니다.  문명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통하여, 남자는 인류의 역사

에서 언제나 선두에선 성별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해왔습니다.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른 보상

또한 남자가 독식해왔다는것도 인정합니다.    뛰어난 여성이 멸시받고, 가문의 이익을 위한 상

품이되며, 심지어는 남자들의 전리품으로서 물건으로 취급되는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그렇기에 여성은 이리 주장 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만든 역사를 봐라"  라고 말입니다.   그

리고 그 어리석은? 남자들을 대신해 자신들이 역사를 만들겠다고 한 페미들의 주장 또한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장하기에 앞서, 이것만은 명심하세요!   권리는 정의와 주장이 아

닌, '의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현재 페미들의 일관된 주장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것으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오랜세월동안 페미니스트들은 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회

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서서히 여성의 사회진출을 늘리고,여성성을 약자라는 고

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한 정도에 머물지요,     그렇기에 소위 한국형페미는 이에 분노하고 있습

니다.   평등한 기회, 능력위주의 사회, 여성으로서의 자주... 이처럼 그들 스스로의 정의를 빨

아들이지 않는 이'느려터진' 사회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불공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감히 주장하겠습니다.  '세상은 원래 냉정합니다' 그리고 본래 '권리를 얻기위해서는 보

다 큰 의무의 짐을 지어야 합니다' 페미여러분 우선 남자못지 않은 활동을 보여주세요, 남자들

이 지고 있는 의무를 모두 나누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회인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스

스로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이자, 전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주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편견은 깨어집니다. 그리고 오로지 능력을 통하여 성장 할 수 있는 사회가 올 겁니다. 


옛 그리스 2등시민들은 '노잡이'(군역)를 통하여 1등시민들과 같은 권리를 얻어냈습니다.   

믿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원래 정의는 그런곳 에서 태어나는 법입니다.   그들이 그랬듯이

1등시민의 뒤에 서지 마세요,  진정한 페미라면 그누구보다 열외와 배려라는 가치를 혐오

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해주세요, 본래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현의 가치를 신봉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선두에 서는 사람이 되세요.  그래야 세상을 주무르는 주인공이 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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