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구슬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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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혹 사람에게 있어 '국가'라고 하면 제일먼저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이에 나는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서 생각해보자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인 시각으로 보았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땅'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인종과 사회가 그 뒤를 따르며

,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해당 국가의 여러 시스템과 환경이 그 뒤를 이

를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렇기에 다른 많은 문학작품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나름 쉽게 드러나

는 부분이 있다.   예를들어 미국인에게는 고향의 드넓은 옥수수밭이 이른바 향수와 '소속감'

을 자극하듯이 분명 한반도의 사람들도 고향의 산과 강 그리고 사계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나는 한국인이다. 라는 사실을 가볍게 인식하고 또 받아들이게 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가는 그러한 감성적인 것과는 다른 실질적인 조건을 '국민'에게 강요한

다.   그렇기에 사람은 어느덧 사회적 교육을 통하여 국민이 되고, 또 그것에 준하는 소속감을

강요받게되는데,  이에 한국은 여느 다른 국가에 비하여 나름 독특한 기준을 강요하니, 그것은

바로 '정치사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분명 '한국인'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저 현실이자,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

계를 표현한 글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프랑스인이기에, 그 외국인의 눈높이를 통하여

표현한 한국사회의 모습은 분명 수 많은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만들어진 모순과 그 속

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슬픈나라이다.


실제로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본에서 반평생을 보낸 제일조선인

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 본인 스스로는 성공한 음악가 부모를 둔 스위스인이기에,  이 둘의

연관성은 그저 한국계라는 것 뿐 결국 노부부가 니지고 있는 과거는 그저 그들만이 가지고 있

는 지난 기억에 불과하다.     허나 저자는 그 기억을 소설을 통하여 이끌어내려 했다.


한국전쟁을 피해서 일본으로 도망친 부부 그리고 전쟁이 끝난후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이 부

부에게 일본정부는 되묻는다.


"북이요? 아니면 남이요?" 라고 말이다.


이렇게 이들은 분단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고국은 고향이요, 추억이요 '조선'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이였다. 그러나 더이상 한반도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누구이냐?  북

이냐 남이냐?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 이렇게 반으로 나뉘어진 고국은 선택을 강요하고, 결

국 이들은 그 선택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노부부는 일본인이자 일본인이 아닌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한정된 장소, 한정된

오락거리를 위안삼아 머지않은 황혼을 담담이 맞이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노부부에게 '한국

여행'을 제안했을때, 정작 노부부가 보여준  모습은 분명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모습이 결

코 아니다.    꿈에 그리던 조국에 간다는 행복, 흥분,눈물의 이야기 따위는 이소설 어디에도 드

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노부부는 주인공의 친절에 되묻는다.  "이 여행 안가면 안되나?"

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담담하다.   그저 한국여행을 떠나는 노부부, 그리고 그를 배웅하는 주인공...

이렇게 감수성이 빠진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그야말로 반대로 나의 상식이 진리가 아닌 학습

된 결과에서 드러난 지식의 범위에 있었다는것을 깨닫게 한다.    노부부는 일상을 살고싶어

한다.   한국행보다는 단골 파친코에 가고, 장을 보고, 산책을 나가고 싶어한다.  그렇기에 일

부 독자는 이 '애국심 없는' 부부에게 다소 당황스러운 감상을 품을 수 있을것 같다.

조국의 의미를 잃어버린 노부부, 그들에게 조국이란 분단된 한반도에 있는 것이 아

니라, 흔한 마트에서 파는 한국 국수와 설탕빠진 꽈배기빵 속에 녹아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부부의 모든것이 이해가 된다.

그들도 조국을 바란것이다.    오늘날 그곳에 있는 조국이 아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조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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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페이지 요리책
듀자미 지음 / 렛츠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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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서 알게된 '냉동기술과 유통혁명'   그러나 이는 단순히 지식의 범위에 존재하는 것

이 아니라,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발견 할 수 있는 사회.개인의 삶에 깊숙히 침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오래전부터 언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통조림, 냉

장고, 냉동운반수단을 통하여 현대인들은 어느덧 '주방'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

는 특권을 손에 넣었다.     이제는 더이상 스파게티를 만들겠다고 토마토퓌레를 만드는 수고

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그 조리시간도 대략 10~30분 정도로서, 과거와는 비교조차 불가능

한 시간절약이 가능해진지 오래이다.


허나 그러한 혁명적인 변화도 이제는 나름 '옛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른바 외식문화

의 발전, 편의점과 같은 새로운 유통형태의 등장과 함께, "이제는 30분도 길다!" 라는 새로운 세

대의 요구에 맞추어 보다 빠르고 간편하며, 영양학적으로 합격인 신 요리의 형태가 세상에 등

장할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대표적으로 일본 작품 '하나씨의 간단요리' 가 생각이 난다.


요리하기 귀찮은 주부, 솜씨가 없어도 맛있는 집밥을 후딱차려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주부... 그렇게 주인공은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후딱해치울 수 있는 기묘한

요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거기에다 조리시간도 10분을 넘기지 않는 기적의 '게으름'  그

러나 어느덧 사회는 그러한 게으름을 똑똑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

러한 인식이 이 내용의 책을 출판하게 하지 않았나 한다. 


"요리는 더이상 과학?이 아니다"

"계량컵과 이별하라"


이렇게 나에게 다가온 '요리책'의 이미지는 분명 과거와는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이였다.   

이른바 '간단요리'를 추구하는 이 책의 요리들은 더이상 배합의 정밀함과 재료의 균일

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냥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자르고, 삶고, 구워서 대충 배합

하면 요리가 완성된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그렇기에 이 책은 혼자사는 사람, 빠른조리를 원하는 사람등 이른바 '혼밥'을 추구하는 사람들

의 필요성과 노하우를 섞은 요리책의 이단아 같은 위치에 있다.    때문에 이 책은 그 나름의 한

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이 책에는 튀김요리가 없다.   지금도 변함없이 튀김은 밑

준비가 필요하고, 시간이 걸리며, 무엇보다 솜씨가 맛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간

은 곧 돈이라는 믿음이 투철하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하자.   예를들면 마트 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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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문화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9
이케가미 쇼타 지음, 이은수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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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내용을 접했을때, 나는 눈에 띄게 '익숙한 정보'들이 쉽게 이해되고 또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중세에 익숙하다.    굳

이 교과서나 역사책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소설, 영화등의 컨텐츠들이 시각적으로 드러낸 정

보들, 그리고 그것을 접하고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분명 사람들은 생소함을 뛰어넘는 일종의

재미를 느껴왔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의 인식속에서, 중세는 매력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 절제된 기사도, 왕자님과 공주님이 드러내는 동화같은 이야기... 이처럼 환상속의 중세

는 마치 디즈니랜드속 불필요하게 화려한 그 성과 같은 이미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

에 이 책에서 배울수 있는 가치는 단 하나이다.   '과연 진짜 역사속의 중세는 어떠한 모습

이였나'  바로 이러한 사실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학습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역사와 환상

이 가지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분명히 중세는 두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암흑시대라는 이름에 걸맞는 퇴보와 야

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위 르네상스로 불리우는 인간사회 또는 문화의 부흥이라는 순기능

의 가치이다.     물론 이는 사람의 삶과 함께 '순리'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가치이지만, 

그래도 과거 이를 통하여 만들어지고, 또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중세만의 가치관은 단순히 옛것

을 떠나 실질적인 의미의 가치로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 많다.


때문에 이 책이 가지는 정보는 귀중하다.     분명 그들의 삶은 괴로움이 많았겠지만, 그 속에

서 그들은 단순히 복종만이 미덕인 시대를 뛰어넘었고, 또 보다 앞선 서양 민주주의의 태동을

이끌어냈다.   그렇기에 초기.중기.말기에 이르는 중세사회의 변화와 권력계층의 변화는 앞으

로의 미래, 즉 오늘날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하는 기초가 됨은 물론, 혹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몰락에 대비하는 나름의 지혜를 제공하는 의미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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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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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커다란 회중시계가 있다.   화려한 도금처리에 기계태엽으로 움직이는 나름 시대와 \

맞지않는 물건이였지만, 그래도 대학을 졸업해 첫 사회인으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나'스스로에

게 주는 나름의 선물의 의미 또한 포함되는 것이기에, 결국 그행위는 불편함을 감수 할 만한 나

름의 감성적인 구매?가 아니였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닌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충격

에 약하고, 번거롭고, 조심해야 하는 시계는 바쁘고 전투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의 삶에 전

혀 걸맞지 않은 물건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 교훈을 통하여, 이것을 당연하게 몸에 지니고

다녔던 '신사'에 대하여 보다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고상함과 품위, 그리고 멋진 맵시를 뽑

내는 신사 숙녀의 존재는 분명히 오늘날의 서민의 모습과 많이 다른 것들이 많다.


생산적 노동에서 자유로운 계층


이렇게 책의 본문에 드러난 유한계급의 제일 조건은 노동에서 자유로운 상태여야 한다는 것

이다.    과거 전사계급부터 시작하여, 중.근대의 귀족사회에 이르기까지.   분명 그들은 노동에

서 자유로운 위치를 점하고, 그 잉여시간을 이용해 '계급'의 독창성을 길러내였다.   그렇기에

독자는 노동을 정의하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노동인가? 하는 나름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

다.  이에 예를 들자면 저자 스스로는 이에 생산적 노동이라는 나름의 경계를 설정했다.    그렇

기에 초기 유한계급은 왕이나 귀족과 같이 '노동'에는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모든 제약에서 자

유로운 '자유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노동이 아닌 다른수단으로 부와 권력을 확보 


전쟁, 약탈, 노예... 이렇게 과거에는 야만적이고도 폭력적인 수단을 통하여 노동을 대신할 수

단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분명 달라졌으며, 심지어는 국가 스스로가 (대한

민국의 기준으로) '귀족'이라는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산계급은 결국 시대

의 흐름에 따라 그 역활과 모습을 바꾸어 왔다.      때문에 무엇이 유산계급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돌아오는데, 이에 나는 재벌 특히 보수주의자들을 유산계급의 대표적인 모습이

라 정의하고 싶다.


여느 방송등을 들여다 보면 그들의 '낭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십억원의 집에서 살고, 억단

위의 차를 몰며, 문득 이해되지 않는 미술작품을 취미이자 투자라며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받

는다.    그렇기에 다수의 시민들은 분명 그들을 바라보면서 '사는세계가 다르다' 라는 것을 느

끼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현대판 유산계급이 가지는 나름의 문화이자 가치의 존재가 아닐까

한다.  분명 그들은 보여주는 소비에 능하고, 노동에서도 나름 자유롭다.   게다가 세상에는 분

명 그들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명품'의 존재가 있으며, 또 그것들이 구매되고 또 소비되면서 만

들어지는 '시장의 순기능'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유산계급의 가치는 현대 민주주의 사상에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 지금의 시대는 내가 최고급 양복을 입고, 외제차를 탄다고 해서, '어디서 감히 주제넘게'

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는 아니다.   허나 한때 그들은 '계급'을 독점했다.   그리고 핏줄, 충성

심, 배경을 무기삼아 휘둘러온 역사의 무자비함은 분명 다수의 저항을 불러 왔고, 또 훗날 프롤

레타리아 계급과의 격렬한 충돌을 일으키는 기폭제의 역활을 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유산

계급은 과거와 달리 감히 넘볼 수 없는 지고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무엇보다 오늘날

은 누구나 '신사'가 될 수 있다.  개인이 그럴만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그는 분명 유산계급

이 가지는 과실을 맛보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단지 유산계급을 유지하는 조건을 만족시키

는데 있어서는 지금도 그 허들이 지나치게 높은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을수록 나는 혼란스럽다.


역사속에서 사람들은 그 허들을 극복하는 방법과 갈등 속에서 끝없는 줄다리기를 해왔다.  

보수와 진보, 부자와 서민, 그리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허락하는 권력과 부의

한계에 대하여... 이 한도 끝도 없는 힘겨루기 속에서 저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정의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사상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끝없는 갈등이 언제 끝날

지 그리고 그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무엇일지 지금의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 그에 대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에도 끝없는 질문과 해석이 반복되니,  나는 이만 이

글을 끝마치려 한다.  


부자가 끝없이 누리는 것을 방관하면 귀족이 부활하고 억압하면 레닌이 부활한다'  

이러니 답이 안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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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서사 - 우리가 사랑한 책들, 知의 현대사와 읽기의 풍경
천정환.정종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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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과거 한반도의 역사를 계승함에 있어 특히 문자와 독서에 대한 자부심을 상당히

부각시켜왔다. 그도 그럴것이 독자적인 한글의 등장부터 시작하여, 이른바 선비정신에 이르기

까지, 이른바 공부와 독서를 통하여 이룩해낸 그 독특한 문명의 색은 분명 오늘날의 한국사회

에 있어서도 나름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성리학적 사상과 윤

리가 가져온 '질서'로 인하여 생겨난 단점을 이유로 어느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이 '독서에 대한 역사'를 풀어가다 보니, 그러한 일부 시각과는 상관없이,

나름의 중립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앞서 나는 한국을 '공부하는(책을읽는) 민족'이라 표현했다.


물론 전체적인 흐름을 들여다보면 그 주장은 타당하다 할 수 있겠으나, 이와달리 너무나도 편

향된 정보전달 그리고 '과거와 오늘날의 정보단절' 이라는 부분을 생각하면 적어도 그 주장에

딴지를 걸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실제로 '나'또한 대한민국의 고서를 읽지 못

한다.    아니 심지어 1970년대의 서적을 접함에 있어서도 저절로 그 어려움에 난색을 표할 정

도이다.   한문과 한글이 뒤섞인 정체성이 희생된 책과 그 속의 정보... 이처럼 대한민국의 독서

사는 그 역사가 길고도 짧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과거 조선이 망하고 들어선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전쟁과 다른 무수한 사건들로 인하여 분명

출판.독서.정보의 전달에 대한 그많은 환경은 급변하고 또 변질되어 왔다.     때문에 출판물의

역사 또한 한문에서 한글로 또 세로줄에서 가로줄로변화하는 등 그 흐름의 역사가 선명하게 보

여진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이 아닌 독서에 대한 역사이다.    그렇기에 책은 과거와 오늘날

의 독자들이 어떠한 책을 읽어왔는지에 대하여 집중하고, 또 국가와 사회가 그러한 정보전달

을 통하여 어떠한 정국을 조성하고 또 만들려고 했는가? 하는 정치적인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독서사는 한국근대사와 매우 밀접하다.     일본의 패망으로 인하여 다시

한글과 민족성을 되찾았지만, 분명 한반도속의 정치.민중들은 우왕좌왕 그 중심을 잡아내지 못

한 현실, 그리고 뒤를 이은 분단, 전쟁, 쿠테타, 독재, 성장,자유의 갈망, 민주주의의 성장 등 

분명 그와 함께 등장한 책들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상장하는 중요한 증거물이자 발자취

역활을 해온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그 발자취에 대한 의미를 배우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나름 능력?이 된

다면 그 서적들을 직접 접해보는 등의 '읽는다'는 재미를 통하여 그 시대의 향기에 흠뻑취해보

는것도 나쁘지는 않다 여겨진다.  이 책의 서문에도 주장되는것이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은 너

무나도 책을 읽지 않는다.   또한 책을 읽는다 해도 스스로의 대들보(중심)가 없이 그저 주변의

화려한 광고와 유명새에만 휘둘리는 얄팍한독서를 한다.    유명작가, 베스트셀러, 추천된 책...

물론 이러한 독서가 아주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다 더 자신에게 맞추어 나아가는

인생의 책을 추구하지 않은 현실은 나 역시도 매우 아쉽게 느껴진다.


이제 현대인들은 '책'에 대한 것에 대하여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전자책, 인

터넷, 컴퓨터의 등장으로인하여 이제 더이상 두꺼운 백과사전이 필요가 없어졌듯이 이제 과

거 '문학소녀'풍의 독서를 떠나, '독서가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

한 나름의 답을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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