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의 전쟁
캐시 케이서 지음, 황인호 그림, 김시경 옮김 / 스푼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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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세계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 속에서, '게토' (유대인 거주구역) 특히 테레진 수용소에 대한 것은 소위 홀로코스트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잘 알려진 것에 속한다.   실제로 독일 나치스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다른 하나의 민족 그 자체를 (속칭) 보다 효율적으로 학살한 그 사실은, 그야말로 당시 전쟁사와 함께 가장 처참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정의하자면, 이 책은 비교적 최근의 아이들(또는 청소년)에게 과거의 참상의 기억을 전달하는 것!  그야말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활을 담당하려한다.


그래서일까? 결국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과거의 기억을 더한 '진실된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실제로 저자가 이 이야기를 표현하게 된 이유 등을 마주해봐도 그 뒤에는 언제나 과거의 기억이 함께한다.  특히 전쟁 중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고 또 살아남은 부모를 두었기에, 아마도 저자는 어린시절부터 그 전쟁의 비극을 전해 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이에 그 개인적인 입장에 있어서, 혹여 저자가 무엇을 '계승'했는지는 지금의 나(독자)로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오롯이 피해자를 위한 연민,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강제한 나치스에 대한 비난의 메시지가 넘쳐나지만!   이에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소위 홀로코스트를 다룬 여느 기록들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내용에 가깝다.  이에 조금 저자의 입장을 변호하자면 나름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그 이상의 메시지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배경을 갈고 닦으며, 이에 더 나아가 역사를 마주하여, 스스로의 정의관을 구축하자... 그 옛날 독일3제국과 히틀러 정권이 만들어낸 전쟁범죄를 떠올리면서, 나중의 후손들은 그 점차 멀어져가는 역사의 사실과 기억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알고 또 계승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이 무슨 흔해빠진 주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역사란 그 단순한 교훈을 계승시키는데 있어서도, 의외로 큰 노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날까지 독일이 보여준 역사적인 속죄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유대인 학살에 대한 그 인식에 있어서도 큰 갈등과 논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나는 문득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실공방... 그리고 현상과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품 속 '대외선전'을 위해 (나치가) 테레진을 정비한 것과 같이... 본래 이 세상의 악이란 올곧은 절대악으로서 군림하지 않는다.   정비된 테레진, 밝은 표정의 유대인! 그 문화가 꽃 핀 거짓된 테레진이 그 한순간 '진실로서 받아들여진 사실'을 토대로 혹여 독일이 그 테레진의 일을 외곡하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혹 그러했다면 테레진은 역사의 과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그저 논란만이 넘쳐나는 역사의 한 갈등요소로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현대 이 나라에 자리잡은 어느 갈등과 같은 모습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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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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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화와 같은(또는 동화와 같은) '오락적 감각'으로서 이 책을 바라본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은 졸지에 거인이 되어버린 걸리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그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굳이 이 완역본을 접하지 않는다면, 현대! 특히 그 대중문화에 있어서도 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비평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그 비평의 가치관을 마주하면서, 비교적 리얼한 '시대상'을 마주했다.    그야말로 저자가 태어난 1667년부터, 이 책의 이야기를 완성한 1726년에 이르기까지... 그 저자의 성장과정 속에서, 영국(또는 아일랜드)과 또 외부의 유럽사회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  이에 적어도 나의 감상에 따르면 그 배경을 알고, 또 모르고에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본래 '풍자와 비평'이 큰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본래 그 사회에 있어서, 나름의 갈등이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사회 전반에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단트의 분리와 갈등이 결국 전쟁을 촉발시킨것과 같이, 당시 저자가 속한 아일랜드 영토에 있어서도 옛 30년 전쟁에 이어 영국내전이 그 뒤를 이으며, 과거의 국가체제와 권력구도... 특히 신민들의 삶에 있어서도 나름 그 커다란 변화가 다가오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이래 그 전쟁이후 생겨난 변화 등이 결과적으로 민중의 삶에 있어서, 보다 나은 영향을 미치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하는 일이다.  실제로 격렬한 내전이후 소위 '영국'은 왕을 처형했고, 곧이어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의 새로운 독재를 맞이해, 다시 한번 체제는 명예혁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약해진 정치.지배기반과 또 그로인해서 생겨나는 혼란!!   이처럼 그 현실을 마주하고, 느끼고, 성찰하며 만들어낸 '풍자'가 그 어찌 (당시 시대에 있어) 신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로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많은 계층과 등장인물들의 행동 그 모두를 관찰해 보면, 바로 그 당시 저자가 느낀 '문제의식'이 곧잘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성적인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소인국의 임금님, 또는 천공의 섬 '라퓨타' 가 다른 대지의 영토를 지배하는 수단 등의 그 많은 부분을 마주하면서, 과연 나는 이에 오롯이 가상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니... 안타깝게도 나는 그 많은 것에 대하여, 그 옛 시대의 잔재를 마주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야말로 권력을 독점하고, 또 힘을 휘두르면서 지켜온 '신성한 통치권력'이라는 것은 이미 현대사회에 있어서, 국민에게 있어 버림받은 구시대의 가치에 불과하다.    바로! 그러한 결과를 생각했을때,  비록 혼란한 시기였지만 그래도 유럽사회 전반에 '왕권'이 건재한 그 시대에 있어, 이를 비평하고 또 풍자한 사실은 그 나름 시사와 사회의  측면에 있어서, 큰 용기의 발현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걸리버의 모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대신 툭하면 표류하는 이 불쌍한 주인공이 보고 들은 그 나름의 시선등에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에 분명 독자는 이제껏 알려진 걸리버와는 다른 보다 더 심층적인 걸리버를 만날 수 있다는 기회를 맞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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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크테에서의 만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9
귄터 그라스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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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이처럼 저자 스스로가 독일의 30년전쟁과 (그 스스로가 직접 겪었던) 세계 2차대전을 동일시했던 이유 등을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그 점접에는 '심각하게 회손된 인간성'에 대한 저자의 강렬한 비난의 시선이 묻어 있는 것 같은 감상을 받게 된다.   실제로 작품 속 세계에서, 그 각각의 문학가와 시인들은 처참하게 분열되고 파괴된 독일의영토 속에서도 나름의 모임을 위하여 텔크테라는 마을의 여관에 집결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여흥을 위한 모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혼란하기 그지없는 국.내외의 현실을 성토하고, 또 그 해결책을 요구하는 이른바 '시국선언'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처럼 세상의 '시인'과 '문학가' 라고 한다면, 흔히 현실과는 다른 보다 고귀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존재로서도 표현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백면서생들의 이상이 역사에 있어서, 급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었는가?  하는 질문에 다다르게 되면... 결국 그 해답은 보다 부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실제로 그 텔크테라는 마을에 도달하기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집결지를 빼앗은 주둔군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요구한 경우에 있어서도, 결국 그들의 이성은 소위 비이성의 장벽에 가로막혀 무력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말로 전쟁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역사 속 30년 전쟁에서 보여지듯이 전쟁이란 단순히 영토의 분열이 아닌 타국의 개입, 무분별한 살육, 약탈, 강간 등을 이 세상에 정착시킨 최대의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때! 결국 (개인의)인간이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 정착된 무질서와 비이성에 굴복에, 그저 힘의 논리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텔크테 여관 여주인과 같이, 그녀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자에게 굴복하고 협력하는 선택을 했다.   이에 결과적으로 그녀는 배신, 뻔뻔함, 그리고 절제하지 않는 악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이에 과연 그 난잡한 여자를 세상에 내놓은 진정한 원인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결국 많은 것을 생각하면... 역시 이 전쟁은 보다 빠른 시일에 끝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소설 뿐만이 아니라, 제3제국을 표방한 요상한? 시국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아마 저자는 그 전쟁의 수단, 그리고 전쟁의 과실에 대한 많은 주장들을 마주하며, 이에 보다 대중과는 다른 경각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성적인 소수파의 주장이란 결국 그 당시의 현실보다는 크게 시간이 흐른 나중에 이르러서야 보다 큰 울림을 지니게 되는 법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30년 전쟁이란 너무나도 먼 옛날에 있었던 독일의 내전(또는 한정된 국제 전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들은 세계2차대전이라는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정작 이에 다른 배경이라 하더라도, 저자가 주장한 전쟁의 참상에 대한 보다 큰 이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평화, 화합, 또한 예술의 융성... 아쉽지만 오늘날까지 이는 이른바 짧은 여유 속에서 피어난 '순간의 화려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불안하지만 사실상 풍요롭고 융성한 국가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에 한발짝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면? 결국 지금도 벨크테의 47그룹은 어전히 소수의 몽상가들에 불과하며, 그리고 바로 그런 현실이 나는 그 무엇보다 아쉽게만 느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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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비확장의 역사 (개정판) - 일본군의 팽창과 붕괴
야마다 아키라 지음, 윤현명 옮김 / 어문학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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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으로 인하여, 현재까지 일본국은 소위 '교전권'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무장과 행동)을 영구히 포기(사실상 박탈)했다.   물론! 그 이후 자위대가 창설되고, 또한 전수방위라는 개념을 확립하면서, 말장난 같겠지만, 일본은 군대가 아닌 군대, 그리고 오롯이 자국 방위만을 위한 재무장을 인정받으며, 어디까지나 '전쟁을 할 수 없는 국가'로서, 오늘날까지 그 모순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에, 오랜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그 스스로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며, 매우 다양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과연, 일본 그 스스로가 심각한 제약을 받는 '반쪽짜리 국가'인 것인가?  그리고 혹여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집요하게 추구하는 '평화 헌법개정'을 통하여, 현재의 일본은 그 어떤 가치를 되찾은 진짜 국가로서 거듭 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적어도 나의 생각을 드러내자면, 그 질문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접근법, 그리고 그 해답이 드러 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경제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보았을때, 일본은 사실상 '국방의 가치'를 제2선에 둠으로서 생겨나는 '여유'를 십분 활용했으며, 또한 그 결과 극동아시아의 '경제대국'이라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 있다.   또한 군사. 안보라는 입장에 있어서도 비록 '미국의 뒷바라지'의 역활에 머문다는 혹평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극동아시아 균형에 있어 그 일본이 가지는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실질적으로 일본은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스스로의 안전과 위상을 사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여지 또한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거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집요하게 '보통국가'를 꿈꾼다.   그리고 일본인에 의하여 기록된 이 책의 내용 또한 과거의 일본이 국가로서 행한 '무장'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어째서 일본이 군비를 확장하였는가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군대를 만들어가려 하였는가에 대한 그 나름의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가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과거 일본이 국가로서, 러시아와 미국 등을 '가상의 적국'으로 여기며 행한 군비의 확장... 그리고 그 전쟁의 이야기를 접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이는 한국인으로서, 그 모든 내용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 본질이 '열강의 질서유지, 또는 제국주의 국가간의 군비경쟁으로 이어진다는 그 '어리석은 폭주'의 진실을 마주하게된다면?  아마도 그 나름 독자 일부는 분명 이를 통한 혐오감 등을 보다 강하게 느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또한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 더 나아가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동안! 일본제국이 성장시킨 '군대'의 모습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째서 근대의 국가 일본이 '제국주의'에 물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일본제국군의 군대가 어째서 그리 '정신적인 가치'를 우선시하게 되었는지  대략 그 이유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물론! 그 많은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하게 이 책을 통해 접 할 수 있었더 것은? 그 단순한 (미국의) '포탄의 생산수'조차도 따라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제국 그 스스로가 군비확장을 통한 제국주의적 정책과 경쟁... 그리고 전쟁의 수단을 통해 얻어내려 했던 결과 등이 단순히 (대한민국 속) 대중사이에 퍼져있는 '탐욕'의 가치로 촉발된 것이 아니였다는 그 나름의 변명에 가까운 가치관이였다.


실제로 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많은 피해를 입고, 패전하여 나라 국민을 불행에 빠뜨리고 말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이는 일본이라는 영역 뿐만이 아닌, 세계라는 보다 큰 영역에 있어서도 결코 '비무장'과 '평화' 에 대한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전함 야마토, 전투기 제로센, 전차 치하... 그 병기가 가진 성능과 생산능력 등의 한계, 전쟁 수행의 한계, 전략&전술적 가치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오늘날 그 '역사'와 '지식'이 가져다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인가?   혹... 그것은 국가가 보다 더 첨단화&정예화가 진행된 군대를 지니고, 그것을 방패삼아 스스로의 자주.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옛 근대의 가치 그대로의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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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수기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39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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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산주의든, 혁명주의든...


과거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최근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속에서의 '러시아 문학'이란 (북미등 다른 국가에 비해서)그리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인식이 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 톨스토이 등을 토대로 생각하건데, 과거와 현재 그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문학의 성격 등을 생각해보면? 의외로 '자유'와 '사상'등에 밀접한 가치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그 이유에는 옛 제국의 체제속에서, (국가)러시아 스스로가 보다 오래도록 봉건주의에 가까운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해왔던 탓이 크게 작용 했을 것이다.   실제로 동시대의 유럽과 비교해보아도, 옛 러시아 제국의 성격과 함께, 그리고 그 속의 '신민'의 권리에 대한 여러가지 조건들을 마주해보았을때, 결국 그 신민의 삶이란 '노예와 같다' 생각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이처럼 굳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더라도, 과거 많은 사상가와 문학가들 사이에 있어서, 그 고질적인 '계층사회'모습은 일종의 부조리와 바꾸어야 할 낡은 것으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소개하는 '사냥꾼의 수기' 에서도 저자는 보다 담담하지만 확실한 문장으로서, 그 스스로가 살았던 '러시아의 본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러나 이를 마주한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나름 사상에 있어서의 그 어떠한 가치를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일종의 사실주의적 문학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물론 오늘날 현대적인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을 확립한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는 정말로 안타까움 그 자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유지와 귀족의 소유물로서 인식되고, 스스로의 자질과 의식에 앞서, 귀족이 명령한 삶의 모습으로서 살아가며, 그 무엇보다 자유보다 꾸준히 소작료를 바치는 삶을 선택하는 한 노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가다보면!   그야말로 러시아 속에 뿌리박힌 '굴복'(또는 노예근성)에 대한 가치가 그 얼마나 확고했는지, 저절로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허나, 이 모든 안타까움을 느끼고, 또 분노하게 하는 '설득의 힘'에 대하여, 분명 이 책은 여느 다른 책들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감상을 받는다.  여담이지만 혹 나 스스로가 '신분제'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책을 써내려간다면?  결국 그 책은 보다 정치.사장적이고, 또 독자의 마음을 충동질하는 약간의 선동의 가치가 녹아들게 되지 않을까?   그야말로 시대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금서'로서, 좀더 더 자극적인 성격을 띄게 되지는 않을까?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사냥꾼의 수기는 '한 관찰자'의 시선' 그리고 '정지된 한 시대'를 보여주는 내용에 머물러 버리고 만다.   다만! 단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많은 특권층과는 달리, 저자 스스로에게 있어서만큼은 그 주변의 농노들이 한 명의 생명이자, 인간으로서 인식되고, 또 접근되었다는 소위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그는 농노에게 '자유를 사라' 주문하기도 한다.   물론 앞서 농노는 거절했지만, 적어도 저자는 그의 삶이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또 그 방편의 하나로서, (당시)권력자로서의 '가치'를 넌지시 그에게 전달하려고도 했다.  


혹여 저자 스스로가 귀족의 마인드로서, '사냥꾼의 수기'를 적어 나갔다면?  그리고 작품 속 만났던 마부와 숲지기들을 그저 사냥개와 같은 존재로 인식했었다면? 적어도 그러했다면 이 책은 결코 지금처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사람을 사람답게' 인식하고 대우하는 시대와는 달리, 그 시대 그 국가 속에서의 저자의 인식이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만큼 인상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그 부분을 생각하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매력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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