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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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과거 지금껏 보아왔던 수 많은 작품 속에서, 소위 '인류 붕괴의 세계관'은 저마다 그 이유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비밀실험에서 유출된 변종 바이러스에서, 자연파괴로 폭발된 거대한 재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인간의 과오가 불러온 참상은 결국 문명을 붕괴시켰고, 인간은 과거 문명 속에서 자행한 잘못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멸망의 이야기와는 달리 보다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 듯 하다. 예를 들어 먼저 주인공이 마주한 거대한 검은 구체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또는 무엇 때문에 인간을 습격하는가? 에 대한 그 어떠한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구체는 사람들을 흡수하고 또 분열하여 수를 늘려 가며, 무엇보다 인류의 그 어떠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은 구체를 배제할 방법은 없다는 사실만이 표현되어 결국 인간은 해당 미지의 위협에 그저 도망갈 수 밖에 없다.

주인공 또한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위협을 피하고 또한 떨어진 가족과 만난다는 일념으로 도주하고 또 이동한다. 그리나 점차 붕괴 되어가는 (국가)공동체의 결속이 결국 인간의 내면에 잠자는 절망.... 또는 이기심과 야만을 깨우게 되었을때, 결국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은 생존의 이름 하에 강도, 살인자, 범죄자의 단어에 걸맞는 존재가 되어 주인공과 다른 수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후 그 절망적인 위협이 제거되었을때... 말하자면 모두가 서로의 추악함을 깨닫고 폭주했던 절망의 시간의 대부분을 기억하고 있는 와중 다시끔 과거의 일상을 되찾는 현실을 마주했을떄, 이에 과연 그들은 다시 한번 과거의 일상을 누리며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과거 범죄 피해자 한 두명의 이야기가 아닌 거의 일만, 천만에 가까운 수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오랜 시간 검은 구체의 공격에 습격당하는 기억, 그 와중 약탈과 같은 약육강식의 야만을 겪으면서 인간의 추악함을 직접 겪은 트라우마를 공유했다. 그러나 이에 인류 스스로가 저항한 결과가 아닌 그저 강제로 주어진 평화는 과연 다시끔 그 과거의 기억을 지워줄 진정한 평화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미지의 현상은 끝내 인간들에게 공포를 드리웠다. 이제 이웃은 믿을 수 없으며, 미지에 희생된 사람들은 그 허무한 죽음에 저마다의 가치를 찾지 못한다. 그야말로 떠도는 분노와 허망함 또는 절망이 감도는 평화... 그 가운데 과연 주인공은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지 이에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마주하기를 권한다.

많은 나라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지만 (...) 정말 안정을 찾았는지 의아했다. 남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분노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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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한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었다 - 아우렐리우스편 세계철학전집 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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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로마 역사중 5현제의 명칭에 어울리는 지식인! 그리고 유명한 명상록으로 역사에 남은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의 또 다른 내면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먼저 그는 과거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에 입각한 정신론적 의미를 통해서 '인간은 물질론적 만족보다 이데아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속의 그릇을 다듬는 수양의 만족을 추구하여야 마땅하다.' 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신이 부여한 운명 (사회 속에서 부여된 의무와 임무도 포함된다.)을 기꺼히 따르고, 또한 신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그 날까지 마음속의 감성에 반하는 인생을 살지말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로마제국은 현제가 주장했던 청빈과 의무를 떠나, 타락과 욕심의 혼란 속에서 그 끝을 맺게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현자들의 주장이 빛을 잃어야만 하는가... 적어도 오늘날의 사람들 또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사고를 던진다.

"철학이 요구하는 삶은 소박함과 겸양이다. 철학은 결코 나를 유혹해 나태하고 거만하게 살게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그가 사고하고 탐구하는 철학의 깊이는 단순히 학문의 완성이나 자신의 내면의 품격을 갈고 닦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행동하고 선택하는 삶의 가운데서 자신 스스로를 지키는 방패를 만드는데 더 역활이 있다 생각한다..

현대의 사람들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단어에 숨은 수 많은 가치에 내리눌릴때가 있다. 타인의 평가에 상처입고, 모두의 유행에 동조하며, 대화 가운데서도 스스로가 어떠한 위치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스스로 자신의 자위 또한 멋대로 정한다.

이이 낮아지고 상처입은 자존감은 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만든다. 이에 철학은 자신이 스스로 버티고 곧게 설 수 있게하는 가장 훌륭한 버팀목이다. 이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위로하고 보호하는 가장 튼튼한 아군 또한 건강한 자아와 철학적 잣대를 지닌 '나' 라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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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 (특별 양장본) - 최고의 비즈니스를 위한 성공 메시지
엘버트 허버드 지음, 하이브로 무사시 해설, 박순규 옮김 / 새로운제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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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사람? 아니면 사회생활 정말 잘하는 사람... 이것이 개인적으로 이 책을 마주하며 생각한 가장 내용에 부합하는 '인간상'이다. 그 밖에도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인터뷰 한 영상을 보게 되면 의외로 '잔인하다' 할 정도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그들은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라고 조언한다. 더욱이 그 스스로의 가치를 갈고 닦는 행동 역시도 그 의미를 성공의 밑거름이기 이전에,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조건에 해당한다고 정의한다.

이 책의 첫 장에서 보이는 예시 또한 그러하다. 어느 사령관(장군)이 "가르시아 장군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라" 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이에 명령의 수행자로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르시아 장군이 누구인가?" 하는 당연한 궁금증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상관에게 그가 누구인지 되묻는다면? 이에 이 책은 그가 지닌 궁금증과 태도에 대한 비난의 내용을 드러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이 원하는 태도는 '스스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권위적이고 불친절한 명령 또한 '꼰대'의 영역에 포함시키지만 조금 그 표현을 달리하여, 한 명의 병사까지도 해당 작전과 행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스스로 그 목표를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과 그들의 공동체가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수 많은 전쟁 지도자들이 원했던 이상적인 군대이자 병사가 아닐까 한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전선에 배치된 러시아병사 대부분이 이 책의 러시아 판을 가지고 있었다. (...) 병사들에게도 읽을 것을 권장하였다.

36쪽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지어진 미국 밖 '타국에서' 적극 '읽도록 권장되어진' 국가는 과거 러시아제국의 군대였다. 다만 오늘날 현대의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자면 오래전 가장 권위적이고 상하 수직의 경직된 명령이 횡횡했던 군대 공동체이기에... 실제로 그들이 목표를 위하여 유연하고 또 끝 없는 책임감을 중요시 하는 이 책의 내용을 권장했다는 내용에는 그 나름의 의외성과 (사실의) 신선함을 느꼈다.

급변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과제'에 도전해, 작고 미미한 '결과' 이뤄내, 본인 스스로 세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야말로 가르시아 장군에게 편지를 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머리말

각설하고 결국 군인이거나 노동자 또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오래도록 이 책을 통해 권장되었던 것은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경고이다. 비록 가르시아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맡은 힘없는 병사의 입장에서, 그는 당연하게도 받은 임무의 불합리함 또는 명령자의 무책임한 (명령 또는 정보의) 모호함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이 지어진 세상에서는 "가르시아 장군은 누구고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되묻는 사람보다 보다 유연한 대책과 사고를 바탕으로 '명령을 내린 사령관과 정보를 공유 할 수 있는 지위의 가르시아 장군(영관 급의)의 존재와 그 위치를 파악 할 수 있는' 인사과를 찾아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임무를 완수 할 수 있는 사람을 더 권장한다.

물론 그러한 사고와 행동이 오늘날 그 개인의 어떠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를 부리는 상관이나 사업주에게 있어서, 그의 창의와 적극성이 그 얼마만큼 매력적인 가치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노동자로서 가치관을 가지고, 먹고 살려고 주어진 일만 수행하는 수동적인 사람보다. 이 책이 권장하는 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분명 그 어느 정도의 갈림길에서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하고 나아갈 것이라는 의견에는 크게 공감한다.

이 세상은 아직 아둔한 우직함보다는 팔망미인에게 더 큰 호감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항상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고 타인의 도움만을 바라며 세상을 사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금세 외면당할 것이다. (...) 일이나 인생을 통해 세상에 봉사하는 마음의 필요성은 (...) 일관되게 강요하는 것 중 하나다. (...)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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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세계 15개국 헌법으로 본 민주주의의 얼굴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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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세계대전은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의 전쟁을 치룬 역사라 볼 수 있다. 때문에 체제 전쟁에서 승리한 민주주의는 오늘날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체제로 받아들여져 이른바 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자연스럽게 배책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사회 전반의 민심이 아닌, 엘리트주의로 무장한 자칭 권력의 자리에서부터 파시즘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실제로 언론 등에서 보여지는 계몽령은 단순히 대통령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하여 생겨난 단어가 아니라, 이를 추종하는 세력과 더불어 사회적 약속과 법령, 모두의 건전한 가치를 망각하고 비정의를 옹호하는 급진적이고 나름 세력을 결속시키는 슬로건으로서 작용하기에 현대의 가치에서 변질된 파시즘의 태동으로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법과 가치는 변화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오늘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에 흔히 '나라의 법'은 공동체의 안정과, 그 속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위하여 존재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간히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의하여 생겨난 '사건'으로 인하여,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또한 점차 법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그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순간을 마주 했을수도 있겠다. 때문에 결국 '법'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매우 엄격하고도 낮선 것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동정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결국 법의 저울 위에서 드러난 것은 잔인하리만치 엄격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힘과 이해관계속에서 중심을 잃은 민심과 동떨어진 판결이 드러나기 일쑤인 것이다.

때문에 결국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들에 의하여 태어난 법' 또한 완벽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합의에 불과 하다는 것이며, 특히 이 책이 드러내는 많은 기록들 또한 이러한 결론을 보다 확고히 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로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결국 인류는 '법'이라는 원석을 갈고 닦아 오늘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의 흐름과 '인류가 이룬 성숙함' 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때, 이 많은 사건들은 그야말로 과정속에서 드러난 오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을 한 개인의 영역에 둔다면 어떠할까?

더욱이 이 세상에는 분명 법이 가지는 권력 아래서, 개인의 명예와 생명이 짖밟이며, 그 회복조차도 모호한 경우도 결코 적지않다. 때문에 결국 이 책을 통하여 얻어낼 수 있는것은 언제나 '법'을 경계하고, 또한 법이 본래의 존재가치를 온전히 지니도록 끝임없이 다듬어야 한다는 것인데, 허나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대중사회에 있어서, 여전히 법은 가깝지 않은 것이며, 심지어는 법을 이해하고 배워나아가는 '전문가'들이 때로 법이 가지는 권력을 '사익'을 위해 쓰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분명 과거 유례없는 '자유'와 '권리'의 가치를 성장시켰지만, 반대로 '권력욕'과 '부패'의 가치 또한 완벽하게 몰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또 다른 소크라테스나 드레퓌스 대위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기에, 결국 이를 위하여 국민은 스스로 에밀 졸라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와 믿음을 축척해야 한다. 그러니 (독자들은) 법에 대한 의견과 지적 등을 오롯이 '전문가'만이 향유하는 권리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본래 법 또한 완벽한 (사회적)척도가 될 수 없기에, 결국 이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국 아래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미래 또한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언제나 경계해야 마땅하다. 이에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과 같은것이 아닐까? 분명 이 세상에는 무늬만 자유의 가치를 내세운 중우정치와 독재가 판을 치는 나라,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러한 영향 아래 살기를 거부하고자 하기에 이처럼 위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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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고이즈미 야쿠모 작품집
고이즈미 야쿠모 지음, 김민화 옮김 / 보더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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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괴담 이야기.

이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는 분명 이국적인 이야기로 인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들을 마주하다보면 설녀를 포함하여 의외로 매우 친숙한 내용을 마주할 수 있어서, 결국 오늘날 많은 만화와 같은 타 매체들이 오랜 설화와 이야기를 계승하여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지에 대하여 조금 알 것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분류하면 이 책은 일본의 설화와 전승을 다룬 일본 민족문화의 일부를 마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작 저자는 일본인이 아니다. 어쩌면 과거 자포니즘의 영향이 미치는 것과 같이 나름 일본의 문화에 관심을 가진 열정을 토대로 저자는 낮선 문화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감상한 바를 표현하자면 이 책의 많은 내용은 저자의 지식과 인식에 의하여 일본의 문화가 외곡되기 보다는 보다 전통적인 색채를 보존한 괴담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공포를 느낀 것이 산군 (호랑이)라고 한다면, 이에 설화 또한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이 많은 것과 같이 일본의 괴담 또한 일본 나름의 정서와 종교 또는 문화가 혼합되어, 그 나름의 독특함을 가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실제로 저자의 '창조'는 근본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은 모두 일본 문화의 산물이며, 그저 그들이 어떠한 존재이고 또 무엇을 추구했는지는 저자의 능력에 따라 재현되었을 뿐이다. 마치 오늘날의 만화 등과 같이 과거에도 나름의 스토리를 각색한 괴담집이 등장하고 또 이를 통하여 일본의 이미지와 낭만을 창조하게 되는 과정... 그야말로 오늘날까지 서양세계가 일본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 이미지를 지니게 된 하나의 계기가 이 것과 같은 산물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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