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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들의 도시 - 발췌 ㅣ 지만지 고전선집 671
크리스틴 드 피장 지음, 이봉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은 중세를 살았던 여성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물론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러 많은 여류
작가들이 등장하고 또 그만의 명성을 쌓아올렸기에, 이 글도 분명히 배울점이 큰 기록임이 분
명하다. 하지만 남.녀의 차별 등이 상당부분 해소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이 여류작가들의 주
장은 과연 어떠한 감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혹시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는 '페미미
즘 사상의 참고자료로서, 소수자들의 바이블이라는 위치에 머무르지는 않을까? 아니면 다시
끔 여성이 차별받았다는 역사의 사실을 들추어 내는 '논란의 씨앗'에 불과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읽기 이전부터, 이러한 호기심을 가져보았다. 허나 이 책
은 여성의 슬픔, 여성의 굴욕, 여성의 차별, 여성의 한계... 이것들을 구슬피 노래하
고, 또 원망했던 여느 작품들과는 조금 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교육받
은 지적인 여성, 그러한 여성은 과연 그 시대의 여성의 지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평가하고 있
는가? 이 책은 바로 그러한 한 여성의 머릿속을 산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중세의 여성은 과연 어떠한 지위를 가졌을까? 흔히 중세 궁정의 서정시인 민네, 그리고
중세의 장미 이야기 같은 기록을 살펴보면 여성은 귀중하게 보호받는 존재, 순결하고 고결한
정신의 존재로서,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반대로 당시 지식인
들과 종교인의 기록을 바라보면, 여성은 단순히 '이브의 후손' '죄악의 십자가를 진 존재'에
그 치는것이 일반적이다. 예로 같은 프랑스에서 기록된 '결혼의 열다섯가지 기쁨' 을 살펴보
면, 한 수도사가 여성에 대해서 상당히 편향된 상식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여성을 어리석은 존재, 재산을 탕진하는 존재, 아름다움속에 추악함이 묻어나는 존재,
어리광부리며 남성을 타락시키는 죄악의 존재로 치부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는 그러한 남
자들 즉 세상을 지배하는 남성 지식인과 교육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 듯하다.
물론 그녀의 의문은 정당하다. 그러나 남성의 시대였던 그 당시 이러한 의문을 주장하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분명히 남 다른 각오가 필요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
의 주장을 위해서 하늘의 주인 '주님'의 이름을 빌린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이 세상에 만들
어갈 '이상적인 국가' 를 꿈꾸며, 그녀 스스로 숙녀들이 추구하고 만들어 나아가야 할 '이
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은 분명 '성곽도시' 이라는 존재가 중요했던 중
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남다른 매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글쓴이 본인이다. 그녀는 남성들이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시선'
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 지적인 여성이다. 때문에 그녀는 주님에게 묻는다. 그리고 주님
은 그의 기도에 세명의 여신을 내려보내, 그를 위한 최고의 해답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우
선 주님의 세 딸은 '이성' '지혜' '정의'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 여신은
먼저 황량한 벌판, 탐욕스러운 상대방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유린당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
의 현실을 지적하며, 우선적으로 여성들을 위한 성곽도시를 만들것을 명령한다. 여성들의
도시,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도시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존재만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지는 도시가 아니라는것이 흥미롭다. 안전하고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도시, 그 도시
에 들어가기 위해서, 또 그 도시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존
재가, 이성, 지혜, 정의에 대해서 바른 정신과 자질을 지녀야 한다.
그녀는 분명히 여성도 '신의 자존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에
더해 그 주장을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존재 또한 그에 걸맞는 자격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도 분
명히 하고 있다. 여성의 운명에 순종하는자, 무식한자, 욕망에 물든자, 죄악 속에서 이익을 추
구하는자... 이들은 여성들의 도시를 위해 성벽을 쌓을 자격조차 없다. 그들은 황량한 벌판
에서 유린당하며, 언제나 두려움 속에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다... 신의
심판을 받은 이브의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