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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몇 해 전 지독한 사랑의 아픔을 잊고자 홀로 여행길에 올랐다.
낯선 풍경, 낯선 시간들을 헤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간 남미의 한 호텔에서
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무덤덤한 눈빛으로 작은 화면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코끝이 알싸해짐을 느꼈고,
외로움과 허무함에 엉엉 울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참 이상하다.
이 책을 읽었는데 그 날의 우울했던 모습이 예고 없이 떠오르고, 뇌 속 어딘가에 쳐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영화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끄집어져 나온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존재함에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짙은 외로움을 실컷 맛보게 해준 주인공들이 생각나서일까? 이 책의 주인공 슌페이와 교코처럼.
지구라는 별 안, 수많은 국가 중 일본, 그리고 도쿄라는 곳에서 두 남녀가 만난다.
어색한 듯 조심스럽게 다가간 인연을 계기로 그들은 다시 연애라는 걸 하게 되고,
슌페이와 교코는 서로에게 이질적인 상대방의 세계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언어’라는 일상적인 소통의 도구를 두고, ‘문자’로써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에게
서로에게 던지는 사랑의 진짜 언어는 어떤 것일까?
처음 이 책의 전반부를 읽어나갈 즈음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인가 싶어서 대충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았다.
장애와 비장애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오해하고...어차피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통속적인 새드스토리로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중반부를 지나다 보니 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대체 작가는 어떻게 스토리를 풀어갈까 싶어 점점 읽는데에 속도감이 붙었던 것 같다.
주인공들을 지켜보자니 오히려, 슌페이는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 본적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소통의 부재에 있었고.
교코와의 사랑이, 말로 아닌 마음으로 다가선 첫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그랬기에 사라져버린 교코를 쉽게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맨 것이고.
그러나 이미 늦은 후회라는 말처럼, 여전히 사랑이라는, 연인이라는 ‘관계’속에서만 다가가려는 슌페이는 교코에게 적지않은 상처를 주었고 교코는 평소처럼 조용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만약, 슌페이가 제대로 교코에게 ‘사랑해’라고 온 몸으로 표현했더라면,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소통하려는 시도를 했더라면 교코는 그의 곁을 쉽게 떠날 결심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코라는 세계를 만나기 위해 조금만 덜 주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래서 사랑은 항상 어렵다.
너와 내가 다르고, 너와 나의 세계가 다르니..
그럼, 우리,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부터 익혀 나가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