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 967일,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
김향미 외 지음 / 예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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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여행서적이 내 가슴에 불을 지펴놓고 사라져간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전세돈을 챙겨서는 지구별 곳곳에 자리를 편 아름다운 부부의 이야기가 참으로 멋드러진다.
대출이라도 받아 집을 사두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현실에 연연하지 않고 과감히 실행할 수 있는 용기도 그렇고, 총소리 들리는 곳에서 평화 콘서트를 즐기는 여유가 또 그렇고, 거짓없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정을 퍼주는 모습이 미치도록 부러워 진다.

이런 글들을 대하다 보면 가슴 한 켠에 꾹꾹 숨겨놓은 여행에 대한 로망이 활활 부활을 해 며칠 간 또 잠을 못자고 인터넷 속 여행 블로그를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소중하고 아름다웠을 순간이 그득그득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고, 음유시인 혹은 철학자가 되어 남긴 향기 나는 글들을 읽고 있으니 갈증만 더해간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내가 읽은 여행서적은 주로 한 두 나라나 혹은 유럽대륙, 남아메리카..이런 식으로 여행지가 한정되어 있었는데 장장 1000일에 가까운 날들 속에서 47개국을 거침없이 돌아다닌 무용담은 처음 접하다 보니 그 스케일에서 눈이 휘둥그래진다.
또한 유명한 관광지는 이런 루트로 가라느니, 딴 건 몰라도 여기선 꼭 밥을 먹고, 구경을 하고 이렇게 해야 값을 깍는다느니 하는 실용적인 정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그저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고, 밥 먹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 시간들에 의미를 두는 촌스런 낭만에 온 정신을 쏙 빼놓게 한 기특한 책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이곳 저곳 박아놓은 사진들 마저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미 어렴풋이 익숙해진 엽서 속 풍경이라기 보다는 진한 커피향처럼 오랜 잔상이 가슴에 남는 그런 사람냄새 그득한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면서 그가 겪은 에피소드가 생각나 후훗! 하고 웃다가도 한 번씩 보여주는 지구 반대편의 쓸쓸하고 암울한 모습들에선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퀘타의 모든 호텔에 전화를 했다는 일본 대사관의 이야기는 잊고 싶었던 지난날 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 역시도 외국에서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한 적이 있었는데 간신히 연락된 대사관에서 한 말이라고는 참….
매뉴얼대로 말했겠지만 까놓고 얘기 하면 “그래서 나보러 어쩌라고?”였다.
내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외국인이 오히려 화가 나서 “정말 그렇게 얘기했어?”라고 반문하며 눈을 치켜 뜨던 모습이 쓰리게 스쳐지나 간다.

그렇게 그가 간 길을 따라 그가 만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내 지난날의 여행기도 떠오르고, 가슴 아프게 안녕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생각나게 되었다. 옛날에는 그저 흥분되고 재미있고, 바닥의 맨홀 뚜껑마저도 신기하기만 했던 여행이 지금은 호텔은 어떻고, 경비는 어떻게 줄이고, 맛있는 식당은 어디고 하는 식으로 좀 변질되어 마음이 뜨끔해 지기는 했지만.
나도 그들처럼 정이나 퍼주고 마음이나 받아오면 좋으련만…

분명 오늘 밤도 나는 인터넷 세상에 뿌려진 여행기와 사진들에 클릭질을 하겠지만 허한 마음 이렇게 라도 위로 받을 생각에 오히려 즐거워 진다. 이름 모를 그들이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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