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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브렌다 매독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군가의 전 생애에 걸친 이야기를 듣는 일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그 인물 주변에서 그에게 끊임없이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을 또 다른 인물, 즉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역사 속에서 영영 묻혀버렸을지 모를 그 주변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것 또한 무척이나 흥분되고 즐거운 경험이 된다. 마치 어떤 이가 ‘제임스 조이스’를 아세요?라고 물으면, 아~ <율리시즈>의 작가요?하고 답하겠지만, ‘노라 바나클’을 아세요?라고 물으면 그녀를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것처럼.
오늘 읽은 이 책은 바로 이 여인 ‘노라 바나클’에 대한 빼곡한 인생이 적힌 전기(傳記)이다. 그녀는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했던 평생의 반려자였고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20세기 최고 영문소설로 뽑혔다는 <율리시즈>가 어떤 작품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사실...나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대로라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그 짧은 방학동안 이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려본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이 작품을 소화하기에 내 능력이 부족했었는지 얼마못가 책을 덮었던 기억이 스쳐간다. 만약 이 글이 율리시즈라는 작품과 제임스 조이스라는 천재작가를 이야기하려는 글이었다면 나는 이쯤에서 글쓰기를 멈추어야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작가대신 이 위대한 작가가 만들어지도록 했던 조력자 ‘노라’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그녀의 삶을 알아보고 자신과 가족,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어쩌면 이 책을 쓴 브랜다 매독스가 우리에게 요구한 건 노라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을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길 바랐는지도 모르니까.
노라 바나클은 1884년에 아일랜드의 골웨이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5살에 가족과 헤어진 후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고 13살에 학교를 떠나지만 항상 삶에 당당하고 사랑을 갈망하던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20살의 나이로 조이스를 만났을 땐 호텔의 하녀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그들은 만나자마자 불같이 뜨거운 연애를 시작한다.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갈망하고 함께 하고 싶어 했는지는 책에 소개된 그들의 연애편지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는데 성적 욕망과 동물적이다 싶은 구애행동은 조금은 충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이는 두 사람 모두 성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에 충실했던 것이고, 또한 불우한 환경과 성장배경이 성적욕망이라는 특별한 분화구를 만들어 분출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튼 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한 채(27년간의 긴 동거생활 후 결혼) 가족을 꾸려 평생을 함께 했지만 결국 그와 그녀는 결혼제도보다는 조이스가 집필한 작품으로서 둘이 아닌 하나였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녀의 삶이 활자로 조명되는 동안 우리의 관점은 점점 제임스 조이스로부터 노라 바나클에게로 옮겨가고 결국 한 여자가 한 남자의 인생에 얼마나 결정적이고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지를 서서히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하나씩 읽게 되는 순간 그 책 속에서 탄생된 여성들이 바로 노라였음을 발견하는 건 당연해지기 시작했으니까. 언젠가 내가 <율리시즈>나 <더블린 사람들> 그리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들을 읽게 될 그날, 책 속의 여성들에게 투영된 노라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오늘 읽었던 그녀의 삶을 기쁜 마음으로 떠올리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조이스의 살아있는 손자 스티븐 조이스 왈,
“할머니는 너무나 강했어요, 그녀는 바위였어요.
나는 감히 말하거니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 없이는 단 한권의 책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제임스 조이스와 노라 바나클의 관계는 엄청난 문학적 천재와
평범한 골웨이의 하녀 간의 지독한 잘못 짝짓기로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 전기가 브렌다 매독스의 매력적이요, 선구적인 전기의
활기찬 페이지들에서 그녀가 나타나듯, 노라 조이스는 엄청난 위트와 매력의
여인이요, 조이스의 모든 작품들에 영감을 준 뮤즈 여신, <율리시즈>의
유명한 여주인공인 몰리블룸을 위한 모델로서 이바지했던 아일랜드의
흑 미인(Dark Lady) 및 그의 인생 - 그리고 그의 예술-을 가능하게 했던
바위 같은 힘이었다.
-<책 소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