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96일 - 유괴, 감금, 노예생활 그리고 8년 만에 되찾은 자유
나타샤 캄푸쉬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실화’라는 단어는 항상 충격과 공포를 동반한다. 만약 이 단어 앞에 ‘감동적인’이라는 형용사가 붙었더라면 분위기는 180도 바뀌겠지만 아무런 설명이나 미사여구 없이 단독으로 이 단어가 쓰이면 나는 어느새 상상 가능한 최악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기 시작한다. 살인, 강간, 폭행...
이번엔 납치였다. 그것도 10살밖에 안된 연약한 어린아이를 8년간이나 감금했단다. 그런데 실화라고 하니 그냥 지나치려다 책 표지에 눈길이 아니 갈 수가 없다. 어딘지 연약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강인한 눈매로 독자들을 바라보는 표지의 여인이 심상치 않다. 알고 보니 그녀가 이 사건의 피해자인 그 소녀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끔찍했던 기억을 세상에 드러냈다고 한다. 타인의 입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서.
여기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닥쳤을 시련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동안 읽고 보았던 몇 편의 영화와 책들을 떠올려보지만 그녀의 심정을 1%라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는 10대의 시간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찬란한 인생의 한 시기가 송두리째 날아간 것이었고, 그 기억은 평생 끔찍하게 자신을 괴롭힐 것이기에 자유의 몸이 된 지금도 그녀는 자유가 아닐지 모른다.
8년의 시간. 누군가에게 노예로서 감금된 그 시간을 어떻게 글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 아픔을 표현할 말이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그럼에도 그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극적으로 탈출한 그녀에게 사람들은 처음에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대했다. 그러나 상처받은 어린 피해자로만 세상에 보여지기를 바랐던 그들의 예상과 빗나간 것이 화가 난 것인양 사람들은 씩씩하게 제 2의 인생을 견디는 그녀에게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다시 피해자가 되기를 요구했다. 자신은 탈출했고 그 범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소녀는 ‘용서’를 선택했다.(감히 용서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그녀가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면서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참 몹쓸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 시간동안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그 범인이었을테고 그랬기 때문에 꼭 살아서 탈출하리라는 꿈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는데, 그리하여 오랜 ‘관계’속에서 연민이라는 복잡 미묘한 인간의 감정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그녀의 고통을 1%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녀가 범인에게 느꼈을 그 인간적인 감정들은 왠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대가는 항상 값이 비싸다는 걸 증명하듯이 세상은 그녀를 다시 가두려 했다. 각종 오해와 편견이라는 형체 없는 창살을 만들어서.
그러나 그녀는 용감했다. 이제 피해자라는 과거를 버리고 평범한 한 여자로 살기위해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다. 자신의 부모나 가족들에게도 차마 밝히기 힘들었을 고통의 시간을 스스로 내보이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 그것은 바로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진짜 자유다. 이제는 진정한 자유를 찾았기를 희망하는 나의 깊은 바람이 그녀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감금생활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서서히 더 이상 그것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그것은 나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내가 경험하고 싶은 인생의 다양한 다른 면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