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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참 건조하고 시크한 소설이다. 뭐랄까, 기승전결이 없이 그냥 잔잔하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등장인물의 삶 속에는 예기치 않은 사건도 있고 갈등도 있지만 모든 과정들이 마치 정해진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듯 큰 무리 없이 전개되고 있어서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한 가족 내 여성들(엄마, 딸 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주인공은 극단 홍보 직원이자 작가인 장유안이다. 중년의 여배우로 살아가는 그녀의 엄마는 여배우라는 직업적 특성만 뺀다면 그냥 흔하디 흔한 우리네 어머니 모습이다. 아주 고전적이고 희생적인 엄마는 아니지만 적당히 가족을 위하고 또 적당히 자신의 삶도 챙길 줄 아는... 좀 유별난(?) 사랑의 방식과 대상이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장유안의 언니는 약간 페이크적 인물로 동성의 여자와 수상한 동거를 하면서 소설을 읽는 내내 동성애적인 성향을 물씬 풍기지만 정작 그녀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오히려 다른 인물이 당첨되었는데 뭐 낚였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하긴 그렇다고 동성애에 대한 정확한 의도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대충 감만 잡게 하는 상태로 열린 결말이라 해야 하나?
저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에게 깊숙하게 집중되질 못하고 계속 겉돌고만 있었다. 특별히 매력적인 인물도 없었고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맛도 별로 느끼지 못한 채 그렇게 마지막 장을 맞이하였다. 물론 요사이 내가 기막힌 반전과 강렬한 캐릭터, 탄탄한 스토리가 잘 짜여진 상업적인 성격의 책에 물들어있어서 그런것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권태롭고 시크하기만한 이 소설이 너무 밋밋해서라고도 말하고 싶다. 밀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랜 연인과의 지난한 사랑과 갑작스런 이별, 잠시 리얼한 인물로 액션을 취하는 유안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나 어렵디 어려운 연극인의 삶도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음직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지만 100% 섞일수 없는 인간 고유의 외로움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 또한 새삼스럽지도 않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체적인 여성상으로만 대한다면 대단히 만족스럽기는 하다. 악착같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신비스러운(?) 삶, 결국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배우 엄마와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행복한 일상을 향유하는 언니 재영, 그리고 답답하고 찌질한, 섹스만이 둘이 연인임을 지속적으로 연결해 주었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서 진짜 나의 삶으로 돌아와 준 유안 등 모든 여성들이 종국에는 각자의 삶을 자연스레 찾아가는 모습들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나에게 덜 매력적인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인 내가 소설 속 그녀들과 아직 암묵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점, 그녀들의 선택을 지지하더라도 100% 공감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제목만큼은 내용과 딱!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나를 생각해”라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