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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 차인표. 그를 이제 작가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첫 번째 작품 『잘가요, 언덕』을 읽었을 때만 해도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이야기는 무척 좋았으나 작가로서의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연예인의 책이라는 내 선입견이 작용한 점도 그렇고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책 [오늘예보]를 접하고는 그때의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기성작가의 유려한 문체를 그대로 답습한 것도 아니고 뭔가 묵직한 문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가장 진솔한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물씬 묻어났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게다가 코믹적인 요소 속에 묘하게 피어오르는 안타까움과 눈물겨운 ‘어떤 것’에 이르기까지 이만하면 세 번째, 네 번째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책은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3류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독자들에게 쓰디쓴 한숨을 절로 내뱉게 하는데 어쩐지 그들의 삶이 낯설지가 않다. 152cm의 키로 어린 시절부터 비웃음과 왕따의 제물이 되었던 나고단은 ‘고통은 짧게’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값이 무색할 만큼 성인이 되어도 고단한 삶이 지속될 뿐이다. 한때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돈도 벌고 남들 만큼 살기도 했지만 결국 되돌이표로 돌아온 그의 인생은 삶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를, 뜻대로 되지 않는 잔인한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한방인생 이보출. 누구나가 꿈꾸는 로또 같은 대박인생을 위해 전 재산을 홀라당 투자하지만 돌아오는 건 쪽박이요, 끔직하기만한 현실이다. 덕분에 사랑하는 아들과도 헤어져 홀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가장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특히 드라마 ‘보조출연’자로서의 삶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주어서 작가 차인표가 평소에 그런 보조출연자들에게도 얼마나 따뜻한 눈길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을까하고 지레 짐작도 해보았다. 항상 주인공으로만 브라운관에서 보여준 그였기에 수십명의 단역 중 한명일 뿐인 병사 1의 역할도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따내고 눈치를 보며 불평 한마디 없이 버텨야하는지를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은 요즘 드라마 속 지나가는 행인 1,2들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즉,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인물 하나하나가 살아서 팔딱이는 것이 리얼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 현실성이 가미되어 읽는 맛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울기도 웃기도 애매한 우리의 조폭보스 박대수. 전직조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참 인정 많고 소박한 그는 아픈 딸을 위해 뭐든지 해내야 하는 우리시대의 아버지였다. 그가 조직에서 손을 떼고 착실히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 늦둥이 딸이었지만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심어준 그 딸의 생명은 조금씩 꺼져가고 있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 됐다 싶은 순간 어김없이 헤비급 한 방을 던져주는 이 인생이란 놈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대적해야할지 난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막막하기만 하고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지만 내내 우울하고 암울하기만 하지는 않다. 이야기 행간 사이사이에서 버젓이 솟아오르는 작은 폭소들과 위트들은 이 글이 참 따뜻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그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지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푸시킨의 명언이 떠올랐고 머지않아 기쁨이 날이 올 것이라고 응원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달콤쌉싸름한 여운을 한 가득 안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