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2
토머스 하디 지음, 유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남편을 하늘로 여기고 칠거지악이라는 터무니없는 개념으로 본처를 내동댕이쳐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 여성 하대(下待)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여성에게 희생과 복종은 자아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리고 이를 수용해줄 여성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지금도 이슬람이나 아프리카의 몇 몇 국가에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성적억압과 엄청난 굴레를 씌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을 반영한 문학 은 우리가 이러한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매개체로 작품 속 여성 또한 시대를 거쳐 변화하며 사회상을 반영해 왔는데, 이번에 읽은 ‘더버빌가의 테스’는 여주인공 테스를 통해 19세기 영국의 여성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미혼모이자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테스를 주인공으로 해 출간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자 토마스 하디는 ‘A Pure Woman(순결한 여성)’이라는 부제를 붙여 당대 영국 사회를 풍자하고 자신이 형상화한 인물 ‘테스’를 독자들의 가슴에 쾅!하고 강렬하게 새겨 넣는데 성공하였다. 한때는 위세등등한 명문가였지만 지금은 가난에 허덕이는 더버빌가. 테스는 그 허울 좋은 가문의 장녀로 태어났고 예나 지금이나 어디 빌붙어볼 친척이라도 있으면 눈 씻고 찾아보는 것이 법도인양 테스의 부모 역시 엄청난 부자친척을 찾아내어 테스를 막무가내로 보내버린다. 왠지 꺼림칙하지만 현실의 고통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곳에서 망나니 알렉에게 겁탈을 당하고 졸지에 미혼모가 되어 죄인처럼 살아가는 비운의 삶을 맞이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힘없는 피해자였다. 그런데 테스는 오히려 은둔자처럼 숨어 지내야 했고 마을 사람들은 강간당한 것마저도 테스의 잘못으로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일이 닥친 건 애시당초 테스가 너무 ‘예쁘기 때문’이라며 못생긴 여자들은 ‘교회’처럼 안전하다는 농담마저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그러고 보니 작년인가 이탈리아 총리도 이탈리아 여성이 너무 예뻐서 강간이나 성범죄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했는데 시대가 바뀐 지금까지도 여성을 남성에게 성적으로 종속된 존재라고 치부하는 가부장적 사고는 여전히 그 전통이 유지되어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만 보더라도 테스의 비극적인 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예쁜 여자의 삶은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언제든지 농락되고 파멸될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삶으로 말이다. 그러나 테스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깨어짐으로써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자신의 삶을.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 하고 그곳에서 만난 에인절을 통해 진짜 사랑의 감정을 뜨겁게 배워나갔다.
허나 에인절은 사랑의 감정보다는 관습과 사회적 통념,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 하는 어쩔 수 없는 사내였는지라 결혼을 하자마자 브라질로 떠나버린다.
아~ 가련한 여인, 테스. 어머니의 말씀처럼 절대로 과거를 말하지 말았어야지, 결국 이렇게 사랑에 배신당하고 마는구나.
  

그러나 누가 테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테스야 말로 진정 순결한 여성이었음을 책을 읽은 독자라면 알 수 있다. 테스는 외적으로는 순결하지 못한 여성이었지만 내적으로는 순결 이상의 가치를 지닌 존재였음을 나는 깨달았고 살인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 증명해보인 그녀야말로 진실한 사랑의 상징이었다.
단지 그녀의 죄라면 가난 앞에서는 죄가 되어버리는 순수한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토마스 하디의 다른 작품 ‘이름 없는 주드’도 그랬지만 사회의 불합리한 모순에 저항하기위해 십자가를 맨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가난한 삶에 KO패 당하기만 해서 그의 이야기들은 한없이 처량하고 슬프기만 하다. 이는 그렇게 희망 없는 나락으로까지 밀어내고 존재를 소멸시킨 후에야 비로소 뭔가 부당하다는 걸 깨우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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