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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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긴 겨울이 드디어 자취를 감추려는 듯 하다.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봄옷을 뒤져보니 입을 옷이 별로 없다. 참 신기한 건...매년 적지 않은 옷값을 지불하며 구입하는데 왜 항상 나가려면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느냐는 거다. ㅎㅎ 그 법칙은 올해도 어김없이 작용했고 나는 간만에 쇼핑을 위해 집을 나선다.

오늘은 좀 멀리~ 가기로 마음먹고 친구를 꼬득인다.

 

약 1시간 후 명동 롯데 백화점에서 만난 우리. 애비뉴엘이라 명명된 곳에 입점한 다양한 명품관들을 눈으로 훑어본다.

많은 명품들이 신상을 걸어놓고 여성들의 눈을 자극하는 그 곳. 항상 느끼는 거지만 갈 때마다 그냥 들어간 적이 없다. 항상 2,30분은 대기를 하고 있다가 들어가게 되는 불편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길게 늘어선 줄이 30분 정도로는 끝날 것 같지 않다. 대충 보아도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할 것처럼 보인다. 각자 한 손에는 또 다른 명품백들을 들고 서서 또 다른 명품을 기다리는 사람들... 무엇이 이 기다려야 하는 귀중한 시간도 아깝지 않게 하는 걸까? 루이비통이니 구찌니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 이길래 이 사람들에게는 황금 같은 주말 매장에 들어가는 데에만 30분 이상을 허비해도 상관없는 것일까? 명품녀니 된장녀니 하는 안 좋은 시선들과 사회적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그곳을 찾는 여성들은 ‘명품’을 자신의 또 다른 얼굴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미국판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로 상징되는 패션 미디어들은 그것을 “꿈”이라고 하고 돈을 다루는 경제학자들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판타지’라고 부르고 있다.

 

‘거의 완벽한 당신은 이제 이 구두 하나면 완벽해 질 수 있어요.

자, 어서! 이 명품 가방을 어서!‘

 

명품? 명품이라고? 그렇다. 완벽한 패션을 완성하기 위해선 명품이 필요하다고 요정은 말한다. 명품. 원래 영어로 된 이름은 럭셔리Luxury. 럭셔리는 국어사전에 ‘사치품’으로 나오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패션 미디어들은 럭셔리(사치재)라고 쓰고 ‘명품’이라고 읽는다. 단지 단어 하나의 해석을 바꾸었을 뿐이지만 하나의 영리한 작전이고 계획이다. 럭셔리를 파는 사람 쪽은 그 물건 뒤에 사치스럽다는 형용사가 연상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치스럽다는 얘긴, 물건 가치에 비해서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비난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런 뉘앙스가 있으면 물건을 파는 데엔 거치적거릴 뿐이다. 그래서 ‘사치스럽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느낌이 싹 빠진 ‘최고의 기술로 잘 만들었기 때문에, 내 취향에 맞아서 산다’는 느낌만 남은 ‘명품’이란 말을 만들어서 유행시켰다. [본문 19P.]

 

이 책은 우리가 열광하는 명품에 대한 저자만의 해석을 바탕으로 판타지와 결합한 명품의 허상을 살짝 비꼬는 감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제목처럼 명품 판타지에 대한 겉만 살짝 맛보았을 뿐 진짜 주제에 대한 부분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명품이라고는 하지만 샤넬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원래 샤넬의 디자이너 정신과 시대를 앞서간 멋진 생각의 전환, 그리고 여성 해방에도 영향을 끼쳤을 그녀의 대단함을 칭송한다. 게다가 결론 역시 다양성이 공존하는 패션계, 지금 이 시대의 샤넬 장군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이 책을 집었을 때 기대했던 명품과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에는 좀 미치치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명품과 패션을 언급하는 부분들도 많았고 미디어와 마케팅의 효과로 명품 판타지를 경험하는 소비자들이 현실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등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내용들이 많았다.

 

명품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일지 모른다. 나를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혹은 나 이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소리 없는 항변의 일부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허구와 허상에서 눈을 뜨면 현실은 그저 달기만 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허망한 만족감과 씁쓸한 현실을 작지 않은 댓가를 지불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그들만의 프라이드도 이해해주고 싶기는 하다.

세상은 변한다. 정말 빠르게 말이다.

분명 명품패션 또한 얼마 안가 그 얼굴을 달리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허상이 인간의 욕망을 두드릴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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