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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조지오웰이 1043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네 달에 걸쳐 완성한 이 소설은 세상에 나오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작품 구상에만 6년이라는 긴 시간이 담겼음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결국 한 출판사에서 가격을 맺기는 한다.
단, 영국 정보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를 걸고.
그러나 이 출판사 역시 며칠 뒤 거절의 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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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우화가 일반적인 독재자와 독재정권을 다루었다면 출판해도 괜찮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그 두 독재자의 행보를 완전히 따르고 있어 오직 러시아에만 들어맞고 다른 독재정권들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만약 우화에 묘사한 지배계급이 돼지가 아니었더라면 덜 거슬렸을 것입니다. 돼지를 지배계급으로 선택한 것이 많은 사람들, 특히 러시아 사람들처럼 조금 과민한 사람에게 틀림없이 불쾌감을 줄 것입니다.”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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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들의 이익 말고는 어떤 동물의 이익도 챙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투쟁을 위해 우리 동물은 철저하게 단결하고 철저하게 대동해야 하지요. 모든 인간은 적입니다. 모든 동물은 동무입니다." [본문 p.18]
줄거리는 오히려 복잡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작가가 통찰해낸 무서운 인간의 속성과 사회비판은 동물들의 입을 통해 소름끼치도록 날카롭게 전달된다. 평범하게 인간의 착취 속에서 살아가던 농장의 동물들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주인을 쫒아내고 농장을 차지하게 된다. 이전의 생활에서 불평등을 느끼고 있었던 차 동물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모든 질서를 바꾸려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또 다시 권력과 지배계급, 피지배계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억압된 자유와 강제된 노동의 기억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동물들 스스로 권력구조를 용인하고 복종을 반복한다. 급기야는 옳고 그름조차도, 기억에 근거한 실제 사실마저도 부정하게 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소름끼쳤던 부분은 인간만큼이나 악랄하고 교활한 모습을 보인 지배계급의 탄생, 그리고 아무런 비판 없이 그 지배계급의 부당한 권력을 받아들이는 피지배계급의 모습이었다. 우리 인간세계의 조그만 축소판처럼 재현된 그들의 세상이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그래서 조지오웰의 저력이 그토록 대단한 것인가보다.
동물들을 통해 교묘하게 인간세상을 치가 떨리도록 똑같이 그려냈으니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전 세계의 독자들이 수십년에 걸쳐 이 책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꾸준히 읽는 다는 건...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이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부당한 착취와 권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p.s.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저자의 다른 작품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을 함께 읽어 나갔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조지 오웰의 문체와 또 다른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도롱뇽과의 전쟁은 이 동물농장과 닮은 듯 다르게 비교되는 맛이 있어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독서시간이었던 듯.
아무튼 책을 통한 ‘사고의 확장’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 지 다시금 확인한 좋은 경험을 한 기회였다고나 할까?!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세상에 일찍 드러나기가 힘들었다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 출판 에피소드와 관련해 더 웃긴 건 안드레라는 편집자가 이 원고의 검토를 요청한 조지오웰에게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여서 위험 부담을 안길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점이다.
아~ 정말 눈물나도록 웃어제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중학생이었던가? 그때는 소비에트가 어쩌고 공산주의가 어쩌고 하는 이데올로기는 전혀 몰랐었다. 그저 인간의 모습을 복사한 듯한 동물우화라는 설정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것뿐. 그 외에 지금 생각해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이번에 다시 읽고, 역자의 상세한 설명과 주석을 함께 보면서 몇 번이나 감탄을 했었던지...
1945년에 출간된 이래 전 세계 68개국 언어로 출판되고 지금까지 절판된 적이 없다는 명성이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책 중간에 부연설명을 위해 달아놓은 주석들이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아 잘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이 책만큼은 오히려 주석들 때문에 더 집중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