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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에 총이나 칼이 없어도 가능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타인을 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 수 있는 이 시대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재스퍼 존스라는 녀석이.
코리건이라는 작은 탄광마을에서 이 녀석은 “재스퍼 존스 = 문제아, 망나니,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경계대상 1호” 라는 공식이 성립된 지 오래다.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재스퍼 존스와 같이 있었니?’라는 질문이 먼저 시작되고, 그 대답에 예스라고 한다면 이 아이는 나쁜 녀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했다는 식으로 옹호되고 쉽사리 용서된다. 모든 잘못은 재스퍼 존스에게 떠넘기면 되니까.
그런데...문제는 뭐냐면, 정작 재스퍼 존스의 실체를 아는 이가 이 동네에선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그의 여자 친구 ‘로라’가 죽기 전까지는 재스퍼 존스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존재했을 테지만 이제 그녀의 존재도 사라져 버렸다.
아니, 그녀의 죽음에 범인으로 몰릴 처지에 놓인 재스퍼 존스, 그런 그가 실제 범인을 찾기 위해 도움을 청한 이는 다름 아닌 ‘찰리’였다. 찰리 또한 재스퍼 존스와는 다른 형태로 이 마을의 왕따였지만 왕따는 왕따를 알아본 걸까? 평소 친분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찰리지만 같은 아픔을 가졌기에 당연히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한 것인가?
그날 밤 두려움에 떨던 재스퍼 존스가 우연히 찰리 방의 불빛이 켜진 걸 보았다 하더라도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닌 찰리였기에 모든 사실을 털어 놓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그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 엄청난 사건에 관여하게 된 찰리는 재스퍼 존스에 대한 의심과 신뢰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그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또 그 시간들을 통해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점점 재스퍼 존스에게 이 마을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서운 곳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절친 제프리 루는 베트남계라는 이유로 그와 그의 가족이 이 마을의 또 다른 희생양임을 지켜보게 된다.
이렇게 비극적인 인물들과 왕따, 편견, 인종차별 등으로 얼룩진 이야기들이지만 찰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씁쓸한 위로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허풍과 만담같은 언어유희놀이, 독창적이고 희망적이기까지한 방법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그들만의 용기 속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세상을 배운다.
여기에 찰리의 순박하고 짜릿한 첫 사랑의 감정이 양념처럼 더해져서 소설의 읽는 맛은 한층 더 끌어올려진다.
이 책에서 재스퍼 존스가 문제라는 말은, 재스퍼 존스가 사는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으로 정작 재스퍼 존스의 악행은 찾아볼 수 없기에 더 우습기만 했다.
오히려 재스퍼 존스와 찰리, 재프리 루야말로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열정적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갔고 마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문제였던 거야’라고 소리치고 있었음에 나는 열광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악플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중 한명일 수 있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 역시 누군가의 악플러가 된 적이 있을 것이기에 결국은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럴싸하게 꾸며진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비겁하게 숨어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을 내 지난날의 오만함에 반성하면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무거운 주제를 안고 있는 이 소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일 수 있었던 데에는 저자가 순수한 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