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그 유명하다던 그의 전작 [퇴마록]도 읽어보지 않은 나는 이 바이퍼케이션 시리즈가 그와 조우한 첫 작품이 된다. 본래부터가 피가 난자하거나 폭력성이 다분한 영화와 매체들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 짙어서 그의 전작들은 나와 아예 인연이 없었던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하니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고 과연 마지막 3권까지 읽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좀 있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아니나 다를까, 1권의 몇 장을 읽지도 않았는데 엽기적이 살인 행각들을 묘사한 글들에서 울렁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지 못했던 건 작가의 지적 역량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기 때문에 뭔가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지적 즐거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이 그저 그런 엽기 호러판타지처럼 어떤 위대한 능력을 가진 악마의 파렴치한 행위만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추리물 형식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아마도 중간에 그냥 책을 덮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범죄심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신화적 해석을 곁들여 사건속에 녹여내는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작가 스스로가 그런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해리성 정체장애를 보이는 두 인격의 여자 헤라를 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내재해 있을지 모를 잠재력의 힘을 은근히 동경해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특수한 사건이나 상황에 닥치면 현재까지의 자아를 부정하기도 하고,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가공의 인물을 스스로가 만들어 내거나 일시 기억상실이라는 편리한 장치로써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는 다양한 심리적 반응들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소설에서 보여주는 헤라의 불가사의하고 엄청난 이상능력이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100% 허구라고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보통 무법자나 범죄자들은 법을 피하거나, 무시하려고 애쓰죠. 허나 그것도 법을 의식하고는 있어요. 그러나 괴물들은 법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없어요. 즉 선악의 구별이 없다는 거죠. 그게 가장 무서운 겁니다.” - p. 121

 

즉, 선과 악의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괴물과 온전한 인간들이 벌이는 사투는 어쩌면 진짜 인간 vs 인간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제는 각종 범죄들에서 제법 접하고 있는 사이코패스들이 바로 이런 감정을 지닌다고 알려졌는데 그들은 희생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고통이 심할까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다고 한다. 허나 이들은 그들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 할지라도 그들 자체가 인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 괴물 헤라, 그런 헤라에 쉽게 조종당하는 인간 가르시아 형사와 프로파일러 에이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판타지 소설을 통해 선과 악의 명확한 두 얼굴을 가진 우리 인간을 제대로 만나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