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가제 독고다이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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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헛다리 짚었다.
가미가제라는 책 제목의 단어,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한 청년의 우울한 듯한 눈동자만 보고 난 이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비극적인 이야기일거라 또 제멋대로 해석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몇 장을 읽기도 전에 어라? 작가로부터 풍기는 글의 뉘앙스가 발랄하기 그지없었다. 인물들을 하나하나 묘사하는 필력도 섬세하면서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리얼하기 그지없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 역시 새로운 이야기꾼을 만난 것처럼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 연휴로 나는 이 책을 펼치기가 무섭게 읽기 시작해 결국 마지막장을 덮고서야 자리를 뜨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오랜만의 경험도 했다.

자, 그렇다면 ‘미실’이라는 전작으로 이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별아 작가가 이 책에서는 어떤 인물들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드러내 놓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먼저, 열혈청춘의 모던뽀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의 부(父) 백정의 아들 훕시가 있다. 돈이 최고라는 현실의 이치를 일찍이 깨닫고 물불 안 가리고 돈을 벌어들였고 마침내는 백정의 피를 숨기고 새로 족보를 사 진주 하씨(하계운)로 개명한다. 허나 이것도 부족했는지 완벽한 핏줄의 재탄생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몰락한 족보 있는 양반집 규수를 낚아채고 이 둘 사이에서 이 책의 주인공격인 하윤식이 태어난다. 물론 위로 형이 한 명 있었지만 그에게는 또 예기치 못한 탄생의 비화가 숨겨있었으니 아무튼 이 집 족보 참으로 더럽게 엉켜있는 게 분명했다.

때는 바야흐로 일제 강점기로 우리 민족에게 너무도 큰 아픔과 고난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올 시기였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그저 딴 세상 사람인양 호위호식하면서 청춘을 개망나니처럼 즐기고 살 수 있었다. 이는 그 아비의 완벽한 친일파 짓거리와 타고난 사업수완, 그리고 깡 덕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제강점기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녀석이 민족의 아픔을 너무 모른다 싶다. 이걸 순진하다고 하기에는 그 시절 진짜 순수했을 민중들에게 미안할 것 같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의 혜택을 당연한 듯 누리며 아비의 길을 따를 정도로 영악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사리분별을 정확히 할 줄 알았다면 앞뒤 재지 않고 순수함과 똘끼(?)로 형을 대신해 학도병에 지원하고 전쟁터로 끌려갈 일은 애당초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하는 여자를 형에게 부탁하고 떠나야만 하는 비통한 사랑의 아픔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그래도 이 모던뽀이는 멋진 ‘남자’로 남기로 결심했고,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 하윤식이라는 인물은 암울한 시대에도 고생 한 번 없이 편히 자란 행운아 같지만 또 한 편으로는 생각해보면, 그 시대의 가장 비극적인 희생물 중 하나가 바로 그가 아니겠는가? 있는 집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징집을 피하느라 바쁜데 그는 뼛속까지 속물인 아비를 둔 덕에 혹은 지나치게 단순무식함 때문인지 제 발로 목숨 내놓고 전쟁터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말이다.

 작가가 책에도 밝혔지만 이 비극 속에서 가장 희극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을 내세워 더욱 비극적으로 그려낸 주인공이 바로 이 모던뽀이 하윤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생이 시종일관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데도 나는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그가 내 뱉는 한 마디에 그리고 그가 세상을 대하는 지극히도 무덤덤한 태도에 픽픽 웃어 제꼈다.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의지가 생기는 법이고, 세상에 대해 쓰디쓴 욕지거리라도 해야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도 급기야 한 마디 내 뱉는다.

“ 왜 나야? 왜 내가 죽어야 해?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없이, 남의 나라, 남의 전쟁에서?” 라고.

그래도 약하다 약해. 나 같으면 앞에 “씨파~”라고 거칠게 한 마디 더 붙였을 텐데 말이지.

그래서 난 이 부분에서 급기야 울컥했다. 하~ 이놈이 진짜 시대의 피해자가 되는 구나 싶어서. 그 시대에서조차 호위호식하면서 자유를 누리던 놈이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 거지같이 세상에 버려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렇지만 끝까지 버텨라. 너도 제대로 한 세상 살아봐야 하지 않겠니? 가슴이 데일만큼 뜨거운 사랑도 다시 해보고 가와모토가 아닌 하윤식으로 당당하게 살아 주었으면 하고 나는 바랬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 하윤식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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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8: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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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0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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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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