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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진실’이라는 단어가 요즘처럼 두렵고 불편한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내 기억속의 ‘진실’은 당당하고 정의롭고 멋진 의미였던 것 같은데 ‘세상’에 조금씩 눈을 떠가면서 무서운 혹은 감춰진 이면들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진실이라는 말이 사용되고는 했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PD 수첩이 가장 강하게 각인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황우석’ 사건을 터트렸을 때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충격에 휩싸였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국민들 중 단지 2%만이 PD수첩의 손을 들었다면 난 당연히 98%쪽이었다. 그랬기에 PD 수첩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는 엄청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무엇이 진짜이고 거짓인지를 먼저 판단해야겠다는 이성이 눈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그동안 믿고 있었던 어떤 사실들에 누군가 태클을 걸었기에 자동적으로 강한 반발을 했었는데 PD수첩과 또 다른 언론들, 인터넷에서 마구 떠도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황우석 박사에 대한 실망은 꽤나 컸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기대감은 쉬이 걷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큰 업적을 성공시켜 이번에는 진짜 ‘과학자’로써 당당하게 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히 있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사건을 조사하고 방송을 결정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크게 보자면 이 황우석 사건과 최근의 미국산 소고기 사건이 PD수첩을 가장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존속마저 위태롭게 한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보면 이런 굵직한 사건이외에도 그동안 PD수첩을 거쳐 온 수많은 PD들이 얼마나 목숨(?)바쳐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는 상상 이상이었다.
PD자신에 대한 협박은 물론 3~4명의 경호원을 붙여가면서 가족마저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켜야 했던 일이 허다했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밝혀져야 할 진실의 무게가 얼마나 크길래 사람의 생명마저 위협당할 수 있을지, 또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런 댓가를 감내하면서도 포기하지를 않는지 책을 읽는 동안 참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PD들이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프로그램을 만들겠지만 이 PD수첩만큼은 어떤 소신과 용기가 없이는 쉽게 만들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몰랐던 대한민국의 어둡고도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누군가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거짓을 참으로 알고 살아갔을 그런 이야기들을 그들은 열심히 들려주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언제까지나 이 ‘PD수첩’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최후의 보루가 될지 모른다고 하면 너무 오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 프로그램은 그런 존재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말에 100% 신뢰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적어도 사회를 보는 눈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감추어진 진실은 언제든지 드러날 수 있다는 믿음이 전해져 오기에 그들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진실을 가장 먼저 접하는 PD수첩.
그들의 수첩엔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