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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균형 ㅣ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자의든 타의든 알려고 하지도 않는, 혹은 알려지지 않는 사실과 진실들에 조금씩 다가설 때마다 이제는 두려움부터 앞선다. 대체로 이런 진실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음지의 이야기이기에 그것이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먼저 거부감이 들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에는 용기를 내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나 시사고발 프로는 물론 해외의 유명한 방송물들까지 일부러 찾아서 시청하고 경악을 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자 처음의 분노는 좌절로 바뀌고 나중에는 이런 현실도 있다는 것에 은근슬쩍 타협하게 되고(왜?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더 이상은 또 다른 세계들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돌아가고 이를 소수의 지식인들이 목숨과 맞바꾸며 변화를 꿈꿔도 그 결과는 미비할 뿐이라는 데에 생각이 멈추고 만다.
이런 찰나 또 하나의 음침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마주하자니 참으로 심경이 불편하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랬다.
이 책에서 펼쳐진 인도라는 세상은.... 나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럼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때에도 어둡고 슬픈 인도의 슬럼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제발 영화 속 이야기이기를 기도했지만 그건 나만의 바램이었다는 것을 계속되는 인도와 그들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900여 페이지에 근접하는 묵직한 책 속에 이 책의 저자는 인도의 한 축소판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짐작하건데 더하거나 빼지도 않은 그곳의 역사가 그 본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었고, 이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은 아마 이 글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나처럼.
스스로 정하지 않은 사회규범과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고 짖이겨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 쓰는 이 책의 인물들이 처음에는 불쌍하고 가엽게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짓밟히고 깨져도 버텨내는 힘. 그것이 바로 삶을 이겨내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보여 졌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는 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이것이 한계라고 느꼈을 즈음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서는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의지는 경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근원적인 의지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곳 없는 밑바닥의 인생일지라도 그 나름대로의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런지.
“그러면 희망이 없다는 건가요?” 그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희망이야 항상 있죠.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끝장이죠.” - 본문 P. 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