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 싸부님 1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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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글자가 묻는 것보다 텅빈 여백이 묻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더 어렵고, 맛깔난 문장보다 하나의 둥그런 점이 나를 더 감동시킨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고등학교 때 [벽오금학도]라는 책을 처음 접한 후 나는 이외수라는 소설가에게 푹 빠졌었다. 도인같은 모습의 아우라에서 나오는 속세에 대한 성찰과 비웃음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어렵디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도 그의 책은 여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부님 싸부님 1,2]은 이외수 최초의 우화소설로 1983년에 첫 출간된 후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호응으로 계속 개정판을 출간하였는데 오늘 내가 읽은 것은 가장 최근에 나온 해냄출판사의 개정판이다. 27년이 지났음에도 책의 내용은 여전히 우리에게 굵직한 메시지를 날카롭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게 느껴진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만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가 전혀 변한 것이 없이 여전히 썩어가고 있다는 뜻이라는 생각에.

돌연변이로 태어난 하얀 올챙이가 물 속에서 펼치는 철학의 향연은 책을 읽는 내내 많은 괴로움과 즐거움, 혹은 옳거니 하는 깨달음을 안겨준다. 그를 쫒아 다니는 꼬마 올챙이는 어느 순간 바로 내가 되어 하얀 올챙이의 모습을 한 도사님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주저리 주저리 도는 무엇이고, 삶은 무엇이며, 인간은 이러이러한 동물이라며 설교를 하지 않는다. 단지 몇 줄의 단순명쾌한 문답법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짤막한 대화속에 그가 하고 싶었던 혹은 내가 듣고 싶었던 모든 철학이 다 담겨있으니 이런 글을 쓰는 저자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놀라울 따름이다.
닥쳐, 놀고 있네, 멍청이 같은 직설적인 화법은 가끔씩 통쾌함마저 선사하고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말투가 오히려 더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훌륭한 식탁이란 설탕과 참기름과 미원만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쓰고 맵고 짜고 신맛을 내는 것들도 섞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빛과 웃음만의 인생이란 그 누구에게도 존재할 수가 없다.
어둠과 눈물도 항시 켵에 붙어 다닌다. [사부님 싸부님 1 본문 p 298중]

이렇게 한바탕의 정신없고 유쾌 통쾌한 올챙이와 물속 여행을 마치면 공허한 웃음과 덧없는 세상에 대한 탐욕스런 집착과 미련에 낯이 뜨거워진다. 인간은 본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결합체이고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이라 했는데 나는 어느 한 부분의 치우침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의심에 끝에서 나는 이외수 싸부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짜 세상에 도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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