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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나는 어제와 다름없이 또 한 권의 책을 펼친다. 언제부턴가 삼시 세끼 밥을 챙겨먹듯이 책 읽기가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지금, 책이 주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 접한 책은 꽤나 충격적인 느낌을 주는 기묘한 책이었다.
사실도 아니지만 허구라고 간단하게 단정 짓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의 역사적 사건 혹은 실제 사실에서 많은 모티브를 따 왔기 때문이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소설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으나 뒤에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실제 이야기들을 언급하며 보충 설명되어진 곳을 읽으면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도 있겠구나 싶어 그때부터 더 바짝 정신 차리고 읽게 되는 이상한 책.^^
주요 키워드는 당연히 책과 도서관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나는 이미 유럽의 도서관 기행이나 금서 이야기 등 책과 도서관에 관련된 서적을 여러 권 읽었고 그때마다 인류와 함께 모진 시련을 거쳐 온 책의 내공(?)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감동보다는 재미를, 교훈보다는 지식을, 깨달음 보다는 놀라움을 주는 상당히 독특한 책이었는데 특히나 이야기 중 책의 적을 찾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즉, 정치적 이유에서 책을 불태운 진시황과 히틀러, 신앙을 이유로 도서관을 파괴한 테오필로스, 이민족 문화를 말살한 카라지치 이 네 사람을 피고인 석에 세워 각각의 고발인이 왜 이 중 누가 최악인지를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변호인들은 그들을 변호하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한다. 마치 모의재판을 진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명쾌했기 때문에 작가의 책에 대한 이해력이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웬만한 영화보다 더 재미난 10여개의 책 테마와 그 이야기들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독자들에게 잊지못할 책 여행을 안내한다.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저승의 도서관이야기부터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상동야화, 걸어다니는 책 대여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해 준 가시혼야 스토리 등 읽으면 읽을 수록 책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요즘엔 집중력이 떨어져 한 자리에 꼬박앉아 책을 읽는 일도 쉽지는 않았는데 이 책은 오랜만에 밥먹는 것도 잊고 책 읽기에 빠졌을 정도였다.
물론 각각의 주제를 달리하며 만들어진 소설부분도 그 재미가 상당하지만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책의 역사를 꿰뚫고 공부한 작가의 지적수준은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전문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책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배워왔다.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 위해서 많은 정복자들이 그들의 문화와 지식인을 탄압하고 책을 없애버린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인데, 문제는 그러한 일들이 현재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미국이 이라크의 도서관과 박물관을 파괴한 사례로 잘 알 수 있듯이) 책의 힘은 우리가 상상한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역사가 교묘히 결합하여 우리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함은 물론 읽는 재미도 빼먹지 않은 이 책.
애서가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