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평점 :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 미소 짓는 법정스님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한 번도 만나 뵌 적은 없지만, 몇 편의 수필집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불일암 사계’라는 부제가 적힌 이 책은 법정스님의 수행처였던 불일암을 배경으로 최순희님이 찍은 사진과, 법정 스님의 수필 중의 일부를 발췌한 글이 담겨있다. 이미 20여 년 전에 출판 되었으나 다시 새로운 제목으로 사계절을 묵상하기에 좋은 책으로 재출간되었다.
최순희님은 사진 속에서 불일암의 변화하는 자연만을 담았다. 법정스님조차 사진에 담지 않았고, 주변인의 사진은 배제하고 오로지 암자와 숲과 꽃과 나무와 사계절과 하늘을 담고 있는데, 사진 속에는 바람도 있고, 최순희님의 고뇌와 해탈도 담겨져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고요한 행적을 통해 자연을 사랑했던 이름 없는 수행자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전쟁을 겪고 자식을 북한에 남겨둔 개인적인 역경을 이겨내고자, 법정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올라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불일암의 자연이 베풀어준 자비였는지도 모른다.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으면 차가운 서릿발 같은 문장 속에 따스한 향기가 배여 있음을 느낀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법정스님의 글은 마음에 맑은 옹달샘처럼 차올라오는 것 같았다. 최순희님의 손길이 닿은 사진들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지만, 두 분이 책 속에서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그 사진속의 불일암 풍경들이 바로 법정스님이고, 최순희님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나무와 꽃들, 암자와 정결한 방, 스님이 손수 만든 의자와 탁자, 보이지 않는 구름과 바람까지 법정스님이 평소 자연들에 인사 나누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손길이 머문 것이란 생각이 들자 사진들을 소중하게 보게 되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를 통해, 가난한 여인의 정성어린 등불처럼 오래오래 타면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는 삶을 살았던 최순희님의 일생을 알게 되었다. 서정적인 불일암 풍경 사진은 독자들로 하여금 불일암이라는 암자와, 그 곳에서 수행했던 법정 스님의 생애를 새롭게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책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치 불일암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봄이면 흙을 만지고, 여름이면 바람 안에 머물며, 가을엔 햇빛 속을 거닐고, 겨울엔 눈을 밟으며, 사계절의 향기가 가득한 불일암을 언젠가 가보고 싶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두고두고 가까이 두면서 내면의 고요와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