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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이 책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삶이 내게 주는 따스한 축복의 모습으로 그림들이 드러났고, 귀한 글은 한 글자마다 마음에 새기듯 읽게 되었다. 저자는 트라피스트 수녀회의 장 요세파 수녀님이다. 수도원의 담 안에서 세상으로 보내온, 그림에 대한 사색은 예술과 종교를 승화한 내면의 빛을 담고 있다. 책 표지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책의 내용이 표지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감은 듯이 내려뜬 눈 아래에 낡은 성경과 묵주가 손에 있다. 유난히 긴 초의 촛불은 사방으로 빛이 환하게 퍼지고, 긴 초는 수도자의 일생을 닮아있다. 오래고 긴 수련의 일생이 그처럼 불꽃을 태워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유리가 아닌, 창 너머에는 연두빛 정경에 초록잎이 보이는 생기로운 일상의 평화가 내게 느껴졌다. 표지의 제목은 Candlemas Day이다. 주의 봉헌 축일이라니! 정말 아름다운 나날이다.
‘그림, 영원을 향해 열린 창문’ 머리글에서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며, 그림은 신비의 세계를 열어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눈과 마음이 머물게 되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 종교적인 것을 표현하는 그림’이라고 하였다.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도 있고, 은둔의 묵상가들이 그린 이콘도 있는데, 처음 본 그림이 많아서 매우 호기심이 생겼다. 첫 그림과 저자의 사색은 단연 압도적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경과 경전에 있는 ‘돌아온 탕자’가 모티브가 된 그림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무심한 눈빛’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콘이다. 그림을 보면 사랑스런 모습의 아기가 아니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머니의 큰 두 손이 무척 자비롭고 깊은 포용을 드러내는데, 품에 안긴 아기는 수난 받는 아들의 모습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그 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으며 ‘수렴과 통합‘을 보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콘의 독특함과 심오함이 주는 의미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 속에 내재해 있는 신성의 크나큰 은총이고 축복이다.
‘유다의 배신, 우리는?’ 에서 유다의 얼굴이 매우 크게 묘사된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스승과 대비되면서 “지금 당장 당신의 왕국을 세워보시오.”라고 재촉하는 듯한 그 얼굴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욕심과 이기심이 커질 때 어떤 모습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최초의 수도자 안토니오 성인의 삶이 그려진 ‘성 안토니오의 유혹’과, 수난 받는 예수의 얼굴을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손수건을 꺼내어 닦은 일화로 유명한 베로니카의 ‘아름다운 얼굴’이 성화로 그려진 것을 보니까, 그림을 통해서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왔다.
온라인이 가속화되고 매일 세계의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꽤 많이 지났다. 매일 넘쳐나는 디지털 홍수 속에서 물질세계 위에 마음의 차원이 있다는 것을 시토회의 트라피스트 봉쇄 수도원에서 세상으로 보내온 선물, 독자의 손에 미술관을 보내준 저자에게 감사했다. “마음의 세계가 이토록 깊고 아름답습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감동으로 이 책을 읽었다. 한 그림마다 한 문장마다, 지나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차원으로 손짓하여서 오래도록 나의 ‘구도의 서’가 될 것 같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이 책을, 종교적 사색을 넘어 예술로서 공감하면서 읽었고, 저자는 수도자의 신분이지만,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세계를 살고 있는 분이었다. 21세기를 살면서 물질과 외면의 비중이 커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의 차원, 진정한 가치와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저자의 사색과 묵상이 담긴 이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마음 여정이었다. 이 책이 오래도록 독자들 곁에서 내면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 권의 책 속에 얼마나 큰 사랑과 치유가 담겨 있는지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표지의 사람이 긴 사색을 하듯 나도 그렇게 긴 사색으로 저자의 또 다른 그림과 사색 이야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