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담당자나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를 언론 등에서 개인의 성향이나 정책 운용 방향에 따라 성장론자나 안정론자, 분배론자 등으로 구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때 성장론자란 통상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금리 인하나 유동성 확대, 재정지출 확대나 감세, 수출 증대를 위한 환율 인상(원화 가치 절하) 등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이를 가리킨다.
한편 안정론자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고, 물가 안정을 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안정론자는 대개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억제, 재정 건전성 유지, 환율 안정 등의 정책을 선호한다.
분배론자는 예컨대 GDP(국내총생산) 5% 성장, 10% 성장과 같은 단순한 양적 성장만으로는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우선시한다. 분배론자들은 주로 사회보험이나 공적 부조와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고, 누진세를 확대하며, 저소득층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강화할 것 등을 주장한다.
국민경제에서 성장, 안정, 분배는 각각 버릴 수 없는 가치와 역할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식의 논의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중에서 어느 색이 더 좋은가 하는 논쟁과 비슷하다. 특정 시점의 경제 상황에 따라 성장, 안정, 분배 중 어느 하나를 일시적으로 좀 더 강조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세 가지는 모두 중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미필적 고의> 15~16쪽, 정대영, 한울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쟁과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함'을 가리는 논쟁은 차이가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경우는 보통 선과 악의 분별이 생기고, 이것은 해야 하지만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확실한 선이 그어지는 경우가 많다.(물론 깊이 파고든다면 그 선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에 비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함을 가리는 경우는 선악의 분별보다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된다. 모두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된다. 이런 문제로는 가령 제약된 자원 속에서 가장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는 상황이라거나(경제학에 말하는 기회비용이다), 구조상의 모순이 있어 모든 것을 다 택할 수 없을 때(경제학에서 굳이 예를 들자면 '불가능의 삼각정리(impossible trinity)' 같은 걸 들 수 있을까?)가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가리는 경우에서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처한 상황'일 것이다. 당장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내가 선택하는 것은 달라진다. 가령 내가 당장 굶어죽기 직전에 만 원을 얻었다면 그 만 원은 밥을 먹는 데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막 밥을 먹고 배가 부른 상황에서 만 원을 얻었다면 그걸로 밥을 먹는 데 쓰는 것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 이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경우에는 '윤리관 혹은 이념 혹은 사상'이 가장 큰 선택기준이 되는 것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기준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두 가지 논쟁의 차이를 두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위의 성장, 안정, 분배에 대한 논의에서, 때로는 선과 악의 이분법을 들어 그것으로만 판단을 하려는 주장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에서 선과 악의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당장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선과 악의 이분법은, '송 양공의 올바른 전쟁'이 불러온 결과만 가져올 가능성이 무척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