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라운드 종결 이후 10년간, 노르웨이와 스위스의 농가소득 중 3분의 2 이상이 보조금에서 나왔으며, 일본 농가소득의 절반 이상이, 그리고 EU는 3분의 1 이상이 보조금에서 나왔다. 설탕과 쌀 같은 일부 작물의 경우 보조금은 농가소득의 80% 선까지 이른다. 미국, EU, 일본의 농업보조금 총액이(관개용수 등에 대한 보조금처럼 보이지 않는 보조금을 포함해), 실제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총수입을 초과하지는 않지만, 이 지역 소득의 최소 75%에 이르며, 이는 결국 아프리카 농가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유럽의 소는 하루 평균 2달러의 보조금을 받는다(세계은행의 빈곤측정 기준). 이에 반해 개발도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2달러 미만의 소득에 의존해 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유럽의 소가 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176~177쪽, 조지프 스티글리츠, 21세기북스
인간은 과연 존엄한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익과 가치가 개입되면, 이 존엄함의 절대성은 흔들린다. '존엄함을 지닌 대상'이라는 시각 대신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게 되면서, 노예제도라는 것이 생기고, 개발도상국의 국민보다 부유한 소가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한 발짝 더 나아가 보자. 그렇다면 인간 외의 다른 생물들은 존엄한가? 만약 존엄하다고 한다면, 인간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떤 생물은 다른 생물에 비해서 덜 존엄할 수 있는 것인가?
유가와 묵가의 논쟁 중, '겸애'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묵가는 모든 대상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말한다. 차별을 두는 것은 자연의 참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는 이에 반대한다. 어떤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까운 것을 더욱 사랑하고 먼 것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과연 어느 입장이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