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본질은 바로 선택에 있다. 즉 대안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정책은 일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대신 또다른 일부 그룹(외국자본가 등)에게는 이익을 주며, 일부 그룹(노동자 등)에게 위험부담을 지우는 정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원하는 정부의 역할을 선택해야 한다.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가?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해야만 하는가? 정부는 인센티브를 부여해서 특정 산업을 부양해야만 하는가? 노동자, 소비자,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규제를 도입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균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마련이며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20쪽, 조지프 스티글리츠, 21세기북스
1등의 공부 비법을 따라하기만 한다면 1등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1등과 나의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대조한 뒤, 그에 맞춰서 1등의 공부 비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 것이다. 이는 공부만의 비법이 아니다. 경제학과 국가 정치에서도 적용될 수 있으며, 문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고전 문학의 창작론 중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이 바로 이러한 이야기이다. 군사 역시 마찬가지다. 똑같은 병법도 그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전개해야 이길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과연 여기서는 옛 법을 따라야 하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가? 이건 나의 생각이 옳은가, 다른 이의 의견이 타당한가? 이런 다양한 선택지가 제시된다는 것은, 일단 그 자체로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지 없는 막힘없는 길은, 오히려 의심을 해 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야 할 방향성이 확고하기에 선택지 앞에서도 확고하다면 그것은 옳은 길일 것이다. 그러나 선택지가 나오지 않는 계속된 전진은, 뭔가 큰 오류가 있기 때문에, 혹은 선택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닥쳐올 여러 문제에 많은 갈등을 하고 그 갈등에 괴로워하기를 바란다. 가는 길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