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들과의 대화에서는 정치의 기본 원리가 주제였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하는가, 임금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임금이 신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나라를 망칠 수 있는가 등등.
  대신들과의 대화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주제로 삼는 일이 많았다. 인간에게서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품성의 사람을 고위직에 추천할 수 있는지, 임금의 조정에 적합한 사람과 귀족 가문의 가신 노릇에 적합한 사람의 차이 등등.
  무식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공자는 거만하거나 초연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누구에게도 우월감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가 무엇을 물어도 "천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성심으로 물으면, 나는 양쪽 끝을 다 두드리며 정상을 다하였다"고 한 데서 알아볼 수 있다. 권력자와 이야기할 때 공자는 애매한 말투를 썼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용솟음치는 말투를 썼다.
  기나긴 여행길 중에 그는 황벽한 곳에 파묻혀 지내는 은둔자들도 만나보았다. 정치적 음모에 너무나 환멸을 느끼고 세속적 이해관계에 너무나 진력이 난 나머지 깊은 산 소나무숲 속에 혼자 초막을 지어 인간 세상을 멀리하고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로부터 공자는 자기와 다른 관점을 배웠고, 이를 거울삼아 자기 관점을 다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놓고도 공자가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은 자공, 안회와 자로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었다. 주제가 너무 난해하거나 복잡할 때는 주제를 정리해주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자신이 소득을 얻을 때도 있었다.


<공자 평전> 30~31쪽, 안핑 친, 돌베개

  논어에 기록된 사람들의 면면과 그들과 나눈 대화들을 요약한다면, 위 글처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게 대화를 했었던 듯 하다. 제후는 사실상의 군왕이고, 군왕의 덕목인 통치가 나라와 백성을 평화롭게 하기 위한 자세를 주제로 삼았기에 제후들과의 대화가 저러했을 것이다. 공자는 대신을 중요하게 본 것 같다. 그들은 제후를 도와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이고, 그들 실무진에게 도덕적 품성은 상당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본 것이다.
  공자의 대화는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높은 신분부터 천한 사람까지, 자신의 수제자부터 자신의 반대자들까지. 그들과의 대화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진지하고 치열하지 않음이 없어 보인다. 이를 통해 공자는 계속해서 자신을 갈고 닦았고, 이 모습은 한 인간이 성인의 칭호를 받는 과정이 되었다.
  공자는 평범한 인간에서 출발하여 훗날 '세계 4대 성인'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이 수양의 과정은, 역시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말해주는 것이 참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티나 장군은 발표 중에 잠깐 이런 말을 했다. 조사 위원회에 속한 모든 사람은 일종의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 자신은 공군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 책임자였던 관계로 나사의 직원들과도 매우 가깝게 일을 했고 그래서 나사의 관리 문제에 대해서 곤란한 질문을 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한 샐리 라이드는 현재에도 나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코버트 씨는 엔진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는데 나사의 자문 역할을 했다는 등…….
  "나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 있는데 그게 내 약점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고 내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교수님만은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군에는 '여섯 시 방향을 조심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조종사가 비행 중이라고 합시다. 그는 모든 방향을 살피면서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적기가 후방에 나타나서(여섯 시 방향, 열두 시 방향은 전방) 피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비행기는 이렇게 격추됩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어딘가 교수님의 약점이 있을 터이니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여섯 시 방향을 조심하십시오."


<남이야 뭐라 하건!> 214쪽, 리처드 파인만, 사이언스북스

  타로 카드에서 '달(The Moon)'카드의 의미 중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 혹은 상황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라는 뜻이 있다. 흔히 '뒷통수 맞는다'라고도 말하는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믿었던 안전함은 믿음에 불과했을 뿐이었거나, 그 안전함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폭우로 많은 피해가 났다. 그 피해들은 왜 난 것일까? 특히 서울의 경우, 작년 추석 연휴 첫 날에 이와 비슷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한 번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두 번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혹시라도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빈도의 폭우'라는 수식어 때문에, 그런 일을 막 겪었기 때문에 다시 그런 일을 곧 겪지는 않을거라는 안도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은 아니길 바란다. 더불어 나 역시도 내가 생각해온 기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봐야겠다. 나의 믿음이 어느 순간 내린 폭우에 의해 쓸려내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확실히 오늘의 한국정치는 안락한 보수주의에 빠져 있다. 우리 정치가 이렇게 안락한 보수주의에 젖어 있는 한 발전은 힘들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다뤄야 할 정당과 이들로 구성된 정치적 대표체제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책임성을 보여 주지 않고 있다. 정치 엘리트들이 사회를 무시할 때 사회 역시 그들을 무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정치를 조롱하면서 이런 정치를 정당화하는 들러리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투표율의 하락은 대안이 억압되어 있는 유권자의 절망적 항의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44쪽, 최장집, 후마니타스

  사회의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걸맞는 책임성을 보여주는 것을 가리켜서 노블리주 오블리제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았으면 하는 덕목이자, 가장 보기 힘든 덕목이기도 하다. 최근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좌우를 막론하고, 그 품위라는 것은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 때문일까. 넷 문화에서 상대를 대하는 가장 품위없는 방식이 정치를 조롱하는 방식에도 쓰이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어차피 너도 나도,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품위없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 그 조롱 속에 담긴 것일까. 특정 웹사이트에서 흔히 말하는 조롱, '패드립', '고인드립'이 정치를 향해서도 횡행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까. 과연 이러한 '막돼먹은' 모습은 정치와 윗사람을 향한 절망적 항의일까. 상대방을 무작정 이유 없이 혐오하고 싫어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도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장을 위한 진단은 '구속적 제약조건'을 찾아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한 사고과정은 의사결정나무 모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모형은 정책결정 문제를 구조화하며,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도와준다.
  불충분한 투자수익률이 문제인가? 수익의 사적 전유성(專有性, appropriability)이 문제인가? 아니면 자금 공급 부족이 문제인가? 만약 투자수익률이 문제라면, 인적 자본이나 기간시설과 같은 생산 보조요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적절한 기술을 도입할 수 없기 때문인가? 만일 전유성이 문제라면, 높은 과세율, 재산권이나 계약의 법적 구속력의 문제, 노사 간의 갈등, 혹은 학습의 외부효과가 문제인가? 투자수익률이 아니라 자금공급이 원인이라면, 국내 금융시장과 해외 금융시장 중 어디가 문제인가?
  의사결정나무를 따라 다음 가지로 한 단계씩 이동하는 것은 구속적 제약조건의 후보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입안자는 이렇게 찾아낸 제약조건에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85~87쪽, 대니 로드릭, 북돋움

  일반적인 과학 실험에서 실패는 딱히 나쁜 것이 아니다. 실패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고, 그 정보는 성공을 위해서 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실험, 특히 국가 규모의 실험은 그럴 수 없다. 과학 실험은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회적 실험은 똑같은 상황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그 실험의 실패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더욱 크다. 특히 국가 규모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그런 신중한 정책 입안을 위해서, 즉 다시 말해 실패 없이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 글은 그러한 한 가지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책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각각의 요소 간의 관계를 파악한 뒤,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과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실패한 정책은 단기적이고 장기적으로 국가의 국민들에게, 심지어는 세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판단에 신념의 개입 여부이다. 어떤 것을 진리라고 확고하게 믿는 사고가 여기 개입했을 경우, 명확한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이러한 사고가 정책결정에 개입하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사고가 더 나아가서 '신념 이외의 상황'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경우, 문제가 생긴다. 사람의 일에서 가치 판단 영역을 떼어 놓을 수는 없지만, 이 가치 판단을 내리는 상황은 제한적이고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인류를 위해서 공익을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앞으로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숙지하고 신중하게 움직이고 확고하게 사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나의 옆얼굴을 보다 보니, 급수탑 언덕에 있는 하얀 아파트로 놀러 갔을 때 마룻바닥에서 잠들어버린 누나를 관찰하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의 일도 노트에 잘 기록해놓았지만 오늘의 일도 노트에 기록해둘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런 식으로 누나와 함께 지낸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누나와 함께 있는 건 누나와 함께 있는 걸 기억해내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게 아닐까. 누나와 함께 지금 이렇게 수영장 옆에 있고, 무척 덥고, 물소리와 사람소리가 시끄럽고, 그리고 하늘에 소프트크림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걸 올려다보고 있는 것과, 그것들을 노트에 기록한 문장을 나중에 읽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게 아닐까. 상당히 다를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 느낌은 잘 기록할 수 없었다. "헤이, 소년" 하고 누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가 펭귄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면 넌 더 이상 나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을 거니?"
  "내 연구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계속될 거에요."
  "왜?"
  "왜냐하면 누나는 무척 흥미로운 사람이니까요."


<펭귄 하이웨이> 266~267쪽, 모리미 토미히코(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정신

  나는 기억에 유난히 서툴다. 5년 전에 한 달 내내 고생을 했던 장소를 지나치면서도, 그때의 막연한 느낌만이 남아 있는 경험을 오늘 했다. 만약 거기서 내 고생을 지켜본 사람들을 다시 본다 해도, 나는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척 슬픈 일이다. 내 기억 속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얼굴이 어느 순간 느낌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조차 없어지고, 막연한 '아'라는 감탄사 하나로만 남게 되면, 그때는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연구를 계속한다. 소중한 사람이 언제나 계속 소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마도 나의 잃어버린 마음은 그 연구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