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옆얼굴을 보다 보니, 급수탑 언덕에 있는 하얀 아파트로 놀러 갔을 때 마룻바닥에서 잠들어버린 누나를 관찰하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날의 일도 노트에 잘 기록해놓았지만 오늘의 일도 노트에 기록해둘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런 식으로 누나와 함께 지낸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누나와 함께 있는 건 누나와 함께 있는 걸 기억해내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게 아닐까. 누나와 함께 지금 이렇게 수영장 옆에 있고, 무척 덥고, 물소리와 사람소리가 시끄럽고, 그리고 하늘에 소프트크림같은 뭉게구름이 떠 있는 걸 올려다보고 있는 것과, 그것들을 노트에 기록한 문장을 나중에 읽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게 아닐까. 상당히 다를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 느낌은 잘 기록할 수 없었다. "헤이, 소년" 하고 누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가 펭귄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면 넌 더 이상 나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을 거니?"
"내 연구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계속될 거에요."
"왜?"
"왜냐하면 누나는 무척 흥미로운 사람이니까요."
<펭귄 하이웨이> 266~267쪽, 모리미 토미히코(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정신
나는 기억에 유난히 서툴다. 5년 전에 한 달 내내 고생을 했던 장소를 지나치면서도, 그때의 막연한 느낌만이 남아 있는 경험을 오늘 했다. 만약 거기서 내 고생을 지켜본 사람들을 다시 본다 해도, 나는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척 슬픈 일이다. 내 기억 속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얼굴이 어느 순간 느낌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조차 없어지고, 막연한 '아'라는 감탄사 하나로만 남게 되면, 그때는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연구를 계속한다. 소중한 사람이 언제나 계속 소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마도 나의 잃어버린 마음은 그 연구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