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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인류
이상희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평점 :

* 컬처블룸으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고인류학자 이상희 교수의 첫 번째 에세이로, 그녀의 전문성과 인간적인 시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상희 교수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미시간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일본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대표 저서인 『인류의 기원』은 무려 8개 국어로 번역 및 출간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학문적 성과를 가진 책으로, 이번 에세이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그녀의 깊은 인류학적 통찰과 따뜻한 일상적 시선을 함께 담고 있다.
이 책은 학문적인 인류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인류학자가 자신의 일상 속에서 발견한 인간과 삶의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산문집에 가깝다. 교수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회의에 가는 길, 일상 속에서 마주친 사소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떠오르는 인류학적 사유를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인류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글은 학문적이면서도 동시에 서정적이며,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는 시선이 따뜻하고 사려 깊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류학적 지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회의실로 향하는 길목, 학생들과의 대화, 낯선 도시에서의 산책 같은 일상의 단편들이 진화와 문화, 인간 행동의 기원으로 연결된다. 독자는 그런 글을 따라가며 “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이 이렇게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책은 결코 전문 용어나 학문적 이론에만 매몰된 어려운 인류학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의 편안한 이야기처럼 읽히며, 그 속에서 인류학의 핵심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감성적인 문장은 독자에게 마음이 힐링되는 듯한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내용적으로는 진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존재로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사회적 관계, 문화, 생활 방식이 어떤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깊이 탐구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현대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의 기원을 이해하게 되고, “왜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할 수 있다.
책의 표지 디자인 또한 책의 내용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이미지가 인상적이며, 표지의 재질은 부드럽고 맨들맨들한 촉감을 준다. 일반적인 종이 질감이 아닌 특유의 매끄러운 표면 덕분에,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감각적 만족감을 준다. 표지만으로도 독자는 “이 책은 뭔가 특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일상을 살아가는 인류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다. 전문적인 인류학의 지식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통찰이 담겨 있어 지적인 교양과 감성적 울림을 동시에 선사한다. 이상희 교수의 글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삶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태도”를 가르친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학문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지성의 산책기’라 할 수 있다. 인류학적 통찰, 인간에 대한 이해, 일상 속의 발견, 그리고 사유의 여운—이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인류학을 먼 학문으로 느끼지 않게 된다. 대신 그것이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따뜻한 시선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