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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아가
이해인 지음, 김진섭.유진 W. 자일펠더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 컬처블룸으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현재 부산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몸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하고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님. 그녀가 써온 수많은 시편들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며 감동을 전해왔고, 그런 그녀의 시들이 이번에는 영어 전문가에 의해 영미시 형태로 번역되어 소개된 아주 뜻깊은 시집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한글 시집을 영어로 옮긴 번역본이 아니라, 영어 영문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영미시의 구조와 운율, 감성을 살려 이해인 수녀의 시 세계를 영어로 재구성한 작품집이다. 시는 그 작가의 삶과 감정, 기쁨과 고통, 환희와 아쉬움, 우울함까지 모두 응축된 언어 예술의 결정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시를 타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해인 수녀님의 깊은 시 세계를 영어의 감성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면서도 원작의 정서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다.
책에 실린 시들은 자연, 사랑, 고독, 기도라는 네 가지 큰 테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테마 속에는 다양한 개별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시편들이 포함되어 있다:
겨울나무, 가을 저녁, 풀꽃의 노래, 물망초, 숲에서 쓰는 편지, 소녀들에게, 상사화, 파도의 말, 석류의 말, 찔레꽃, 진달래, 바람이여, 비 오는 날의 일기, 사르비아의 노래, 어느 조가비의 노래, 엉겅퀴의 기도, 제비꽃 연가, 눈꽃, 아가, 봄같이 꽃, 춘분 일기, 능소화 연가, 아침의 향기 등등.
이처럼 수녀님의 대표적인 시들뿐 아니라, 평소에 많이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영어 번역을 통해 새롭게 마주할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되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더 특별한 가치를 제공한다. 우리말로 쓰인 시가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되는지, 한글 특유의 정서와 여백의 미가 영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옮겨지는지를 직접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영국이나 미국 시인의 작품들을 읽으며 영미시를 접하고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국내 시인이 쓴 시가 영어로 어떻게 재탄생하는지를 반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더불어,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영미시의 구조와 운율, 함축된 의미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번역된 시의 문장과 표현을 공부하다 보면, 그런 겸손함 속에서도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언어 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들은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표현들이 많고, 등장하는 자연물과 정서적 요소들도 다양하다. 이런 다채로운 감성들이 영어로 옮겨질 때 어떤 표현 방식이 쓰이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눈꽃’이나 ‘아가’, ‘상사화’, ‘바람’ 같은 단어와 정서가 영어에서는 어떤 시적 이미지로 번역되고 전달되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일 자체가 곧 문학적 체험이 된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영어 학습의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한글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하며 해석하고 표현 방식의 차이를 느끼다 보면, 언어를 공부하는 데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특히 문장 구조, 시적 어휘, 은유 표현 등을 비교 분석해 보면 언어 감각을 훨씬 풍부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단순한 시집을 넘어서, 이해인 수녀님의 따뜻한 감성과 영적인 메시지를 다른 언어로도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귀한 창구 역할을 한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영어로 되새기며, 동시에 영어의 시적 감성과 표현 기법도 함께 익혀볼 수 있는 이 책은, 시와 언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매우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눈꽃, 아가”라는 제목에서부터 전해지는 맑고 순수한 정서처럼, 이 책은 마음의 여백을 채워주는 시와 더불어 영어 공부에의 동기까지도 함께 선물해 주는, 그야말로 감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시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