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완성 초등 글쓰기 워크북 - 문해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40일 글쓰기 여행
박은주 지음 / 시대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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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어벤저스에 빠져 있는 둘째 아이와 '칭찬 약속'을 했다. 40일 동안 <초등 글쓰기 워크북>을 꾸준히 하면 '타노스 피규어'를 선물로 주기로. 첫 날은 마치 국가 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야 말겠다는 결연함으로 가득찼다. 얼마나 가나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몰래, 혹은 허락을 받아 아이의 글쓰기를 읽어보는 영광을 누려보았다. 아이는 이 책을 마치 일기장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갖고 싶은 장난감도 적고, 먹고 싶은 음식도 적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못다 전한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칭찬 약속의 힘도 있겠지만, 아이는 이 글쓰기를 과제라기보다 놀이로 대하는 듯 보여 엄마로서 그저 뿌듯하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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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는 어떤 마트에서 선물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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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을 넣어 문장 완성하기'

[보기]안에 있는 40개의 단어 중 3개를 골라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아이가 고른 단어는 할아버지, 선물, 마트. 그래서 완성된 문장은 '산타 할아버지는 어떤 마트에서 선물을 살까?'이다. 그러게. 어디서 그 많은 선물을 사시는 거지? 나는 왜 그 선물들의 출처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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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이는 질문하여 낱말 쓰기, 생각과 느낌 쓰기, 칭찬 쪽지 쓰기, 부탁하는 글쓰기, 색깔로 글쓰기, 오감 표현 글쓰기, 과학 글쓰기, 등장 인물에게 칭찬 상장 주기, 관찰기록문과 기행문, 일기와 편지, 그리고 논설문 쓰기 등 웬만한 종류의 글쓰기는 모두 맛보았다. 그 중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모든 기록을 경신해나가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가 고등학생 시절에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글쓰기와 일명 마인드맵이라는 형식의 글쓰기는 아주 반가웠다. 오타니는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탈, 스피드 160km/h, 인간성, 운, 변화구'라는 하위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다시 그 아래에 각각 8개의 세부 사항을 적었다. '인간성'을 예로 들면 '감성, 사랑받는 사람, 계획성, 배려, 감사, 예의, 신뢰받는 사람, 지속력', '변화구'에는 '카운트볼 늘리기, 포크볼 완성, 슬라이더 구위, 늦게 낙차가 있는 커브, 좌타자 결정구, 직구와 같은 폼으로 던지기, 스트라이크 볼을 던질 때 제구, 거리를 상상하기'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가 고등학생 때, 정확히 말하자면 1학년 때 한 글쓰기이다.

약 2주 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둘째 아이의 목표는 '헐크'이다. 헐크가 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고, 용감해져야 하고, 초록색 피부를 가져야 하며, 결정적으로 분노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의 생각이다. 이럴 때 '현명한 엄마 되기'가 목표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저 입을 꽉 닫는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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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는다. 현재 아이는 총 40일의 글쓰기 중 13일차를 마쳤다. 겨울 방학이 44일쯤 남았으니 개학 전에는 이 책 <초등 글쓰기 워크북>을 끝낼 수 있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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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편의점 1 : 돈과 신용 - 어린이 경제 교육 동화 ㅣ 자본주의 편의점 1
정지은.이효선 지음, 김미연 그림, 이성환 감수 / 가나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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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커가면서 생활 속에서 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얼마의 용돈을 가지고 등교하는 부러운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저 나도 '돈'이 있었으면, 그걸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간식도 사먹고 장난감도 사 봤으면 하는 아이들에게 돈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연습시킬지는 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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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정지은은 EBS의 PD였다. 나도 어릴 때 보며 자란 <딩동댕 유치원>을 비롯해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다큐프라임> 등을 거치며 10여 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 중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로 한국방송대상 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이후 출간한 동명의 경제 경영서 <자본주의>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제 기본서로 불리며 경제 분야에서 손꼽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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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제 지식을 알려주는 교육을

좀 더 일찍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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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무식한 아줌마 PD였던 저자는 살다 보니 경제를 알아야만 하는 순간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10여 년 간 1천 권의 경제학 서적을 읽으며 답답함이 더해갔다. 그래서 본인처럼 경제를 하나도 모르는 생초보도 쉽고 재미있게 경제를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다짐했다. 다큐멘터리가 성공리에 방영된 후 좀 더 알기 쉽게 정리하고, 영상에 담기 어려웠던 내용까지 담은 책이 바로 <자본주의>다. 그리고 바로 이 책 <자본주의 편의점 1>은 그것을 기초로 한 초등학생용 경제 교육 동화이다. 저자의 대학생 아들이 말했듯 초등학생용이지만 저자는 어른이 봐도 충분할 정도의 지식을 아주 쉽게 풀어나갔다. 그러기 위해 약 2년동안 집필했다고 하니 '금융 문맹'을 구제하려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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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천 원만 빌려 주라. 내일 꼭 갚을게."하는 애들이 있었다. 일단 쓰고 나중에 갚는다는 개념이 맞지 않아 신용 카드를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나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고금리는 통도 크게 친구에게 무려 5만원이나 빌린다. 다음 날 갚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빌린 돈으로 무얼 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경제 관념이 없는 금리는 반 아이들이 다 보는 데서 당장 빌린 돈을 갚으라며 소리치는 오동동에게 "친구 사이에 돈 좀 안 갚았다고 저러다니 너무 쩨쩨하네. 그치, 얘들아?"하며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1달러의 사나이, 조지 워싱턴' 할아버지의 자본주의 편의점을 통해 20년 후로 떠난 시간 여행에서 '약속'에 대한 큰 가르침을 얻는다. 미래에서 만난 동동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머니와의 작은 약속을 꾸준히 지키며 꾸준히 돈을 모은 결과 한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수백억대의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부러움도 잠시, 20년 만에 반창회를 하러 모인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미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던 금리는 땅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신용도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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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는 안 불렀지?"

"당연하지. 아마 불렀어도 또 약속 안 지키고 늦었을 걸? 걔는 약속 어기는 걸 미안해하지 않잖아."

"고금리가 약속 어긴 적이 어디 한두 번이야? 초등학교 때부터 돈 벌리고 안 갚고 그랬잖아."

"중학교 때는 조별 과제에서 자기가 하기로 한 거 하나도 안 해서 우리 조 전부 최하점 받았어."

"맞아. 걔는 믿을 수 없어. 신용 제로!"

자본주의 편의점 1,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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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온 금리는 미래와 돈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현재의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거라는 조지 워싱턴 할아버지의 말을 깊이 새긴다. 그리고 앞으로는 물건을 살 때 꼭 가격을 먼저 확인할 것이며, 동동이에게 빌린 돈의 일부는 당장 전재산을 털어 갚고, 모자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갚을 것을 맹세한다.

이후 금리의 2학년 남동생인 고이득에게도 자본주의 편의점을 통한 시간 여행 기회가 주어진다. 돈이 모자라 이런저린 궁리를 하던 이득은 아빠의 컬러 프린터를 떠올린다. 잠깐동안 이래도 되나 고민하던 이득은 진짜 돈과 똑같이 복사되어 나오는 가짜 돈을 보고는 순식간에 부자가 된 듯 짜릿함을 느낀다. 하지만 5만원 권 지폐가 발행되던 2009년 6월 23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이득은 우리나라 지폐에 숨어 있는 여러 위조 방지 보안 기술을 알게 된다. 또한 돈을 만드는 데 돈이 든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2023년 한 해동안 손상되어 폐기된 화폐의 가치가 무려 3조 8,803억이라고 하니 상상 초월이다. 요즘은 인식이 높아져 돈에 낙서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우리 모두 돈을 더욱 소중히 다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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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많은 책을 읽어오고 있다. 주된 이유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 교훈에 나의 실패와 좌절 경험까지 더해져 아이들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워킹맘인 저자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그런 바람을 이 책에 가볍게 담아주었다. 잔소리가 대신 타산지석할 수 있는 시간 여행 판타지를 통해서. 좋은 책은 아이와 엄마 모두를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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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나민애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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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새학년 교과서를 받아온 나는 국어 책부터 펼쳐 들고 앉았다. 표지에 있는 작은 글씨부터 그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글씨를 눈에 새기듯 꾹꾹 찍어 읽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모든 교과서의 글을 차근차근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음악 교과서에 있는 동요 가사까지. 그날 받은 교과서는 당시 우리집에 있던 몇 안 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작가의 유년 시절이었다. 소설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작가 한강은 어릴 때부터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어떤 지도도 받지 않았지만 운명인 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읽고 쓴 덕분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나의 두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의 저자인 나민애는 '풀꽃'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의 딸이다. 그녀 역시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시인이었다. 충남 공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 형편 덕분에 장난감 대신 원고지와 책을 벗 삼아 지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단어'라는 것은 정말 정말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가훈 삼아 자란 그녀는 국어라는 과목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줄 알았고,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까지 마쳤다. 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교과목을 맡고 있으니 나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책과 가까이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그녀를 알게 된다면 그녀가 지닌 타이틀에 비해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시원시원한 웃음, 감동적인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울어버리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심적으로 훅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녀가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거기다 이번 신간은 시, 소설, 고전 시가, 동화, 에세이, 실용 글쓰기, 비평문 쓰기에 제목 쓰기까지 넣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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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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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두 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그 책을 시작할 때와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된다. 내가 잘 아는 이야기는 잘 알아서 좋고, 내가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는 또 하나도 몰라서 좋다. 그런 면에서 '시'는 내게 드디어 알 것 같기도 하고, 영영 모를 것 같은 이야기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시'가 웬말이냐고. 하지만 나민애 쪽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시를 읽어야 한다고. 컵의 반쯤 차 있는 물을 보고, "반이나 남았네." 와 "반 밖에 없잖아."라는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건 당시 그 사람의 심경이다. 목이 말라 한 컵 가득한 물이 필요한 사람과 목이 마르지 않아 남아 있는 물을 양보할 수 있는 사람. 이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이다. 물 한 모금이 절실했던 사람이 남아 있는 물이 쏟아져도 개의치 않게 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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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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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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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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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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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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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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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살, 10살이 된 나의 아이들도 참 많이 울었었다. 겨우 겨우 잠이 든 것 같아 눕히려하면 등이 바닥에 닿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울었다. 그런 아이를 안았다가 업었다가하며 가느다란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집 안을 서성이며 보내던 그 수많은 밤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으스러져버릴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그때 이 시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왜 그래, 도대체 나한테 어쩌라는 거야!"가 아닌 "괜찮아, 괜찮아. 우리 모두 괜찮아."였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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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선비에게 문방사우가 있다면 시인에게는 무용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백은 달을 노래했고,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을, 김춘수 시인은 <꽃>을, 마종기 시인은 <바람의 말>을 썼다.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순간적으로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무용한 것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게 된다. 찰나의 머무름이라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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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만났던 나의 첫 번째 국어 교과서에는 '첫사랑'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얼만큼인지도 모르면서 몽땅 다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흔 살이 넘어서 만나게 된 나의 두 번째 국어 교과서는, 글쎄 어떤 제목이 좋을까. 좀 더 많이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시험과 숙제에서 해방된 흥미진진한 두 번째 국어 수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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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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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죽음에 대한 책을 연달아 여럿 읽었다. 이 책 또한 그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다르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이 책은 저자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고, 사망자는 그의 아버지였다. 저자가 중학교 2학년 때 폐암에 걸렸던 아버지는 "애들은 몰라도 된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숨긴 채 아들에게 학업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아들의 사춘기와 아버지의 투병기를 지나며 부자 사이는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 저자의 아버지는 몇 년후 쉰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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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죽고 나면 한 집안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생생하게 겪었다. 핏줄도 핏줄 나름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돈이 없으면 가족도 해체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없는 가난한 고등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는지도 깨달았다. 모두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게 아버지의 죽음 때문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지만 않으셨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으셨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지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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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에게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했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구조가 되는 그 날까지 살아남기 위해 섬 곳곳을 탐험하듯 저자는 암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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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는가.

사람은 왜 암으로 죽는가.

암은 도대체 어떤 병인가.

어떻게 암이라는 병이 생기는 것인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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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먼저 아버지의 죽음을 앗아간 '암'이라는 병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암으로 잃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다. 암을 증오했고, 정복하고 싶어했다. 의자의 방석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를 한 그는 아버지의 손길인지도 모를 운과 함께 의과대학에 합격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암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법을 찾아낼 준비가 됐다고 믿었다. 적어도 자신의 삶의 고통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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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1일. 세상은 그에게 또 다른 카오스를 안겨주었다. 하루 전인 2월 28일까지만 해도 인턴이었던 그가 3월 1일 땡하는 순간 레지던트 1년 차가 된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콧줄과 소변줄을 꽂는 등 오더대로 움직였던 그가 환자의 목숨을 책임지는 주치의로 불리게 됐다. 관록 있는 간호사와 선배 의사들의 도움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겼으나, 레지던트의 첫 날 밤 그는 네 장의 사망진단서를 썼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자책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환자가 죽은 건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경험 많은 사람이 치료했으면 그 환자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은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날 새벽 4시, 다가올 아침에서부터 이어질 또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당직실에 쪼그려 누운 그의 귓가에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통곡 소리가 파고든다. 자신이 사망 선고를 내린 환자의 가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 외침은 누군가를, 쪽잠을 자보겠다고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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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고, 여전히 카오스가 지배하는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시간 앞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다. 악몽 같았던 3월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텨낸 저자는 그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암 정복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암 완치율은 50% 언저리다. 이 말인즉슨 여전히 암에 걸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 정도는 죽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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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연구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암이 어떤 생물학적 원인과 조건에 따라서 발생하고 진행한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암에 대해 분노한다고 해서 암이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나의 무고한 환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마다 여전히 슬프고 화가 난다. 나의 슬픔이나 분노는 암의 진행과 무관한데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처럼 질병은 가치 중립적이며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없는데도 말이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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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말미에 그는 고백한다. 10대 후반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이 돌아왔지만,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끝에서 출발해 시작으로 돌아온 여정은 아직도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죽음이라 또는 삶이라 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 되짚어 본다. 무인도에 갇힌 지 28년 만에 탈출하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과연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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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저자
김범석
출판
흐름출판
발매
20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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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 재단 :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하라 - 비일상 미스터리 그래픽 노블 ㅣ SCP 재단 그래픽 노블
올드스테어즈 편집부 지음 / oldstairs(올드스테어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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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치킨 타올 좀 줄래?"

누군가 순간 헷갈려서 이렇게 말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킥킥 웃으며 '치킨' 타올이 아닌 '키친' 타올을 건네곤 한다. 이 같은 헤프닝을 포착해 진짜 '치킨 타올'이라는 상표를 내놓은 회사도 있으니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이 책, <SCP 재단>이 내게는 '치킨 타올'같은 존재다. 머리로는 'SCP, SCP' 하는데 어째서 자꾸 입에서는 'SPC, SPC'가 나오는 건지. 하지만 "얘들아, 엄마 SPC 좀 줄래?"해도 두 아이 모두 지적 하나없이 <SCP 재단>을 가져다 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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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 재단>은 제목만큼이나 내용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발하고도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40년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상상의 생명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입도 아닌데 그들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숙지해야 할 5가지 등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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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유클리드

케테르

타우미엘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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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 개체들은 격리 조건이나 관리의 용이함 여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일련번호가 매겨진다. 그 중 아이들과 나의 최애는 간지럼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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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 번호 : SCP - 999

격리등급 : 안전

타 입 : 생물

코드명 : 간지럼 괴물(The Tickle Monster)

설 명 :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젤리 형태의 생물체.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 같은 성격이다. 999와 접촉한 재단 인원들 은 행복감에 빠졌으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큰 효과를 보였다. 달콤한 초콜릿, 과자 등을 주로 먹는다.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하라 SCP 재단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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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으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오렌지색 유성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간지럼 괴물은 크기와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999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일명 '간지럼 레슬링'을 통해 매우 기쁜 마음을 표현한다. 간지럼 레슬링이란, 미끄러지듯 다가가 다가온 사람을 껴안으며 간지럽히는 행위다. 이때 옹알옹알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간지럼 괴물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다. 식사 후에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그의 주식이 과자, 사탕, 초콜릿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999에게서는 늘 달콤한 냄새가 난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SCP재단은 직원들을 위해 '껴안기 놀이'라는 복지 시스템을 마련했다.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오렌지색 생명체와 손 끝만 톡하고 닿아도 볼이 발그레해지며 "우와아아앙~!" 행복의 탄성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해도 간지럼 괴물의 매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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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으며 암시와 텔레파시와 같은 초능력을 사용하는 변신하는 인간형 생물체, 놀라운 재생 능력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 신체의 87%가 파괴된 상태에서도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는 죽을 수 없는 파충류, 외계문명의 것으로 보이는 살아입는 갑옷을 입고 있는 붉은 군대 제22기갑보병사단 소속 알렉세이 벨리트로프 소령, 그리고 당분을 함유한 음식을 먹지 못하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인간 여성인 달콤 양 등이 색다른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은 무려 10만부 판매 돌파 기념으로 캐릭터 주인공 설명집 증보판이다. 평범한 상상력을 가진 나에게는 그저 놀라움과 경이로움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기발한 소재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아이들은 또 어떤 기막힌 상상을 하게 될 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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