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나민애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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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새학년 교과서를 받아온 나는 국어 책부터 펼쳐 들고 앉았다. 표지에 있는 작은 글씨부터 그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글씨를 눈에 새기듯 꾹꾹 찍어 읽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모든 교과서의 글을 차근차근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음악 교과서에 있는 동요 가사까지. 그날 받은 교과서는 당시 우리집에 있던 몇 안 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작가의 유년 시절이었다. 소설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작가 한강은 어릴 때부터 책 속에 파묻혀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어떤 지도도 받지 않았지만 운명인 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읽고 쓴 덕분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나의 두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의 저자인 나민애는 '풀꽃'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의 딸이다. 그녀 역시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시인이었다. 충남 공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 형편 덕분에 장난감 대신 원고지와 책을 벗 삼아 지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단어'라는 것은 정말 정말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가훈 삼아 자란 그녀는 국어라는 과목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줄 알았고, 대학에서도 국어국문학을 전공해 석사와 박사까지 마쳤다. 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책 읽고 글 쓰는 교과목을 맡고 있으니 나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책과 가까이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그녀를 알게 된다면 그녀가 지닌 타이틀에 비해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시원시원한 웃음, 감동적인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울어버리는 모습까지 보고 나면 심적으로 훅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녀가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거기다 이번 신간은 시, 소설, 고전 시가, 동화, 에세이, 실용 글쓰기, 비평문 쓰기에 제목 쓰기까지 넣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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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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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두 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그 책을 시작할 때와 달라진 나를 만나게 된다. 내가 잘 아는 이야기는 잘 알아서 좋고, 내가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는 또 하나도 몰라서 좋다. 그런 면에서 '시'는 내게 드디어 알 것 같기도 하고, 영영 모를 것 같은 이야기다.

혹자는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시'가 웬말이냐고. 하지만 나민애 쪽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시를 읽어야 한다고. 컵의 반쯤 차 있는 물을 보고, "반이나 남았네." 와 "반 밖에 없잖아."라는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건 당시 그 사람의 심경이다. 목이 말라 한 컵 가득한 물이 필요한 사람과 목이 마르지 않아 남아 있는 물을 양보할 수 있는 사람. 이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시인이다. 물 한 모금이 절실했던 사람이 남아 있는 물이 쏟아져도 개의치 않게 되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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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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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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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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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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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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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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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살, 10살이 된 나의 아이들도 참 많이 울었었다. 겨우 겨우 잠이 든 것 같아 눕히려하면 등이 바닥에 닿자마자 눈을 번쩍 뜨고 울었다. 그런 아이를 안았다가 업었다가하며 가느다란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집 안을 서성이며 보내던 그 수많은 밤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으스러져버릴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그때 이 시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왜 그래, 도대체 나한테 어쩌라는 거야!"가 아닌 "괜찮아, 괜찮아. 우리 모두 괜찮아."였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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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선비에게 문방사우가 있다면 시인에게는 무용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이백은 달을 노래했고,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을, 김춘수 시인은 <꽃>을, 마종기 시인은 <바람의 말>을 썼다.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순간적으로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무용한 것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게 된다. 찰나의 머무름이라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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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만났던 나의 첫 번째 국어 교과서에는 '첫사랑'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 함께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얼만큼인지도 모르면서 몽땅 다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흔 살이 넘어서 만나게 된 나의 두 번째 국어 교과서는, 글쎄 어떤 제목이 좋을까. 좀 더 많이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시험과 숙제에서 해방된 흥미진진한 두 번째 국어 수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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