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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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죽음에 대한 책을 연달아 여럿 읽었다. 이 책 또한 그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다르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이 책은 저자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고, 사망자는 그의 아버지였다. 저자가 중학교 2학년 때 폐암에 걸렸던 아버지는 "애들은 몰라도 된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숨긴 채 아들에게 학업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아들의 사춘기와 아버지의 투병기를 지나며 부자 사이는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 저자의 아버지는 몇 년후 쉰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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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죽고 나면 한 집안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생생하게 겪었다. 핏줄도 핏줄 나름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돈이 없으면 가족도 해체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없는 가난한 고등학생을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는지도 깨달았다. 모두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이 모든 게 아버지의 죽음 때문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지만 않으셨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으셨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비참해지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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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에게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했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구조가 되는 그 날까지 살아남기 위해 섬 곳곳을 탐험하듯 저자는 암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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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는가.

사람은 왜 암으로 죽는가.

암은 도대체 어떤 병인가.

어떻게 암이라는 병이 생기는 것인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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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먼저 아버지의 죽음을 앗아간 '암'이라는 병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암으로 잃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다. 암을 증오했고, 정복하고 싶어했다. 의자의 방석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를 한 그는 아버지의 손길인지도 모를 운과 함께 의과대학에 합격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암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법을 찾아낼 준비가 됐다고 믿었다. 적어도 자신의 삶의 고통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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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1일. 세상은 그에게 또 다른 카오스를 안겨주었다. 하루 전인 2월 28일까지만 해도 인턴이었던 그가 3월 1일 땡하는 순간 레지던트 1년 차가 된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콧줄과 소변줄을 꽂는 등 오더대로 움직였던 그가 환자의 목숨을 책임지는 주치의로 불리게 됐다. 관록 있는 간호사와 선배 의사들의 도움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겼으나, 레지던트의 첫 날 밤 그는 네 장의 사망진단서를 썼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자책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환자가 죽은 건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경험 많은 사람이 치료했으면 그 환자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은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날 새벽 4시, 다가올 아침에서부터 이어질 또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당직실에 쪼그려 누운 그의 귓가에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통곡 소리가 파고든다. 자신이 사망 선고를 내린 환자의 가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 외침은 누군가를, 쪽잠을 자보겠다고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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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고, 여전히 카오스가 지배하는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시간 앞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다. 악몽 같았던 3월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텨낸 저자는 그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암 정복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암 완치율은 50% 언저리다. 이 말인즉슨 여전히 암에 걸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 정도는 죽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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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연구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암이 어떤 생물학적 원인과 조건에 따라서 발생하고 진행한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암에 대해 분노한다고 해서 암이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나의 무고한 환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마다 여전히 슬프고 화가 난다. 나의 슬픔이나 분노는 암의 진행과 무관한데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처럼 질병은 가치 중립적이며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없는데도 말이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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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말미에 그는 고백한다. 10대 후반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이 돌아왔지만,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끝에서 출발해 시작으로 돌아온 여정은 아직도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죽음이라 또는 삶이라 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삼 되짚어 본다. 무인도에 갇힌 지 28년 만에 탈출하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과연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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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저자
김범석
출판
흐름출판
발매
202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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