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에게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리게 했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구조가 되는 그 날까지 살아남기 위해 섬 곳곳을 탐험하듯 저자는 암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우리는 왜 죽는가.
사람은 왜 암으로 죽는가.
암은 도대체 어떤 병인가.
어떻게 암이라는 병이 생기는 것인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먼저 아버지의 죽음을 앗아간 '암'이라는 병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암으로 잃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다. 암을 증오했고, 정복하고 싶어했다. 의자의 방석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를 한 그는 아버지의 손길인지도 모를 운과 함께 의과대학에 합격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암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법을 찾아낼 준비가 됐다고 믿었다. 적어도 자신의 삶의 고통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2003년 3월 1일. 세상은 그에게 또 다른 카오스를 안겨주었다. 하루 전인 2월 28일까지만 해도 인턴이었던 그가 3월 1일 땡하는 순간 레지던트 1년 차가 된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콧줄과 소변줄을 꽂는 등 오더대로 움직였던 그가 환자의 목숨을 책임지는 주치의로 불리게 됐다. 관록 있는 간호사와 선배 의사들의 도움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겼으나, 레지던트의 첫 날 밤 그는 네 장의 사망진단서를 썼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자책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환자가 죽은 건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경험 많은 사람이 치료했으면 그 환자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은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날 새벽 4시, 다가올 아침에서부터 이어질 또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당직실에 쪼그려 누운 그의 귓가에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통곡 소리가 파고든다. 자신이 사망 선고를 내린 환자의 가족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 외침은 누군가를, 쪽잠을 자보겠다고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다음 주가 되고, 여전히 카오스가 지배하는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시간 앞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다. 악몽 같았던 3월을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텨낸 저자는 그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암 정복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암 완치율은 50% 언저리다. 이 말인즉슨 여전히 암에 걸리면 두 사람 중 한 사람 정도는 죽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