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마감, 오늘도 씁니다 - 밑줄 긋는 시사 작가의 생계형 글쓰기
김현정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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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새벽 5시 반에 출근해서 생방송 원고를 썼다.'

이 한 줄은 내가 이 책을 피해 고개를 돌렸던 이유이기도 하고, 끝내 끌어 안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저 매일 글을 쓰는 것도 미칠 일인데 '10년, 새벽 5시 반, 생방송'이라니. 어느 정도의 쓴 맛은 예상했지만 '사방을 향해 총질하고 싶었던' 저자의 휘몰아치는 감정을 나누다 보면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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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저자에게 '총기 난사 위험기'를 제공하고, 이겨낼 수 있게 도운 것은 한 사람이다. 바로 그 이름 하나면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손석희 앵커다. 저자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950회를 이어간 <앵커브리핑>의 메인 작가이자 막내 작가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템 찾기와 구성안 짜기, 출연자 섭외까지 혼자 해냈다. 누가 뭐래도 그녀에게 가장 큰 벽은 손석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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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냈다 : 조금 수정했다. 수고했다.

고쳤다 : 많이 고쳤다. 정신 좀 차리자.

다 고쳤다 : 이걸 원고라고 썼냐. 너 오늘 대체 왜 이러냐.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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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끼니도 거르며 초안을 작성해서 보내면 손석희 앵커가 최종 원고를 작성해서 답신한다. 950회 동안 '보냈다'보다 '고쳤다'가 많았고 '고쳤다'보다는 '다 고쳤다'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다 큰 작가를 앉혀놓고 하나하나 가르쳐줄 여유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생방송 현장이었기에 왜 고쳤는지 주의 깊게 살펴 보라는 공자님 같은 손석희 앵커의 말에 저자의 자존심은 끝없이 추락한다. 원망, 짜증, 미움, 증오, 좌절, 야속함. 그 어떤 감정으로도 대표될 수 없는, 온 세상 부정적인 마음이 죄다 모인 잡탕같은 심정. 이를 모를 리 없는 손석희 앵커는 냉정했고, 단호했다. 곰곰이 씹어보면 틀린 지적이 아니었기에 더욱 서러웠으리라. 이런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지질함의 정점을 찍는 날에는 그와 마주 앉아 밥도 먹기 싫은 지경이 되어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도시락에 분풀이를 했단다.

하지만 저자의 자존감이 길바닥 껌딱지처럼 찰싹 내려앉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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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오늘 하루 쉬자.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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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지 말라. 이건 칭찬이 아니라 어떻게 고쳐도 답이 안 나오니, 오늘은 방송 못 내보낸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칼을 갈고 갈아온 저자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품 안 깊숙이 감춰둔 무기를 꺼내며 '다시 해 볼게요.'라고 내지른다. 생방송이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하늘을 찔렀고, 저자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손석희 앵커는 한결 같았다.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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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원고와의 싸움에서 졌고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패배의 순간마다 꽉 물었던 장한 나의 어금니. 마음만은 지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 때의 오기가 나를 조금이나마 성장시켰다.

연중 마감, 오늘도 씁니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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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재 어느 예술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학생들에게 '글 못 쓰는 작가'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학생들이 선생인 나보다 글을 더 잘 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저자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글 좀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매일 써왔기 때문이라고.

좋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재능을 부러워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만의 끈기로 반짝이는 한 줄을 써봐야겠다. 장거리 달리기가 될 테니 운동화 끈부터 단단히 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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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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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책장 한 쪽에 <파이 이야기>라는 책이 꽂혀 있었다. 제목만으로는 그리 흥미를 끌만한 책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려 꺼내 보았다. 표지에 파란 바다와 하얗고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배 주위로는 상어와 물고기가 맴돌고 있었고, 선상에는 커다란 호랑이와 한 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누군가가 그려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읽어나간 이야기는 이랬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주인공 파이의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동물을 팔기 위해 대양을 건너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고 만다. 이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파이뿐이었고, 하이애나와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호랑이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후 태평양을 표류하는 가운데 약육강식에 따라 호랑이만 남아 파이와 생사의 기로를 함께하게 된다. 배고픈 뱅골호랑이와 단 둘이 작은 보트에 타고 있는 소년.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고, 끝내는 살려낸 것이 바로 '바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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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직업은 해양과학자이다. 그의 주된 활동처는 연구실이 아닌 '바다'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와, 바다다!"의 그 바다가 아니라 저 너머의 바다이다. 그 중에서도 이 책 <바다 위의 과학자>는 저자가 인도양에서 이사부호를 타고 탐사를 하던 도중 쓰여진 책이다. 길고 짧은 승선 조사 중에는 출퇴근이 따로 없다. 떄문에 항상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며 말 그대로 운명까지 같이 한다. 잠시도 멈춤이 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서로를 향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무장한 동지애가 얼마나 끈끈할 지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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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비치는 잔잔한 달빛의 잔상은 어찌나 환상적인지. 그 어떤 예술가가 와도 그 아름다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그려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눈에 잘 담아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갑판에 한참을 누워 있곤 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세상의 일들이 멀게 느껴지고, 나와 세상에 관대해지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만 같다.

바다 위의 과학자,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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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목숨이 위태로웠던 탐사 일지도 인상적이었지만 오직 배 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일들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2013년 저자가 독일 연구선 메테오어호에 승선했을 때의 일이다. 배가 한 번 출항하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다양한 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데 그때는 유럽의 여러 나라 연구원들과 함께였다. 그 중 독일팀의 학생 연구원인 S씨는 저자의 룸메이트였다. 저자보다 최소 20cm는 더 크고 매우 훤칠했던 이 청년이 승선 내내 가장 즐겼던 취미는 주갑판보다 두세 층이나 더 높이 위치해서 바람이 꽤 부는 상갑판에 올라가 기둥에 해먹을 걸어두고 수영복 차림으로 음악을 들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야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저자는, S씨를 보며 자신감을 얻어 연구선 주갑판의 중앙부에 있는 대형 수조에서 수영을 즐기게 되었다. 열대 대서양의 따사로운 햇살, 파도에 흔들리는 연구선과 풀장의 또 다른 파도를 타면서 하는 물놀이. 물놀이를 하다 지친 학자들이 큰 타올을 나무 갑판 바닥에 깔고 누워서 발끝에 걸리는 해와 바다를 내려보며 몸을 말리는 모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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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힐링에 진심인 유럽인들과의 일화는 더 있다. 그들은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만들어서까지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정도로 파티에 진심이었다고 한다.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독일 뮌헨에서는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 축제가 열린다. 이 기간 인도양의 어느 한 배 위에서도 축제가 한창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연상케 하는 작은 램프들로 까만 밤 선박 전체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갑판에 설치한 거대한 앰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 쪽에 차린 야외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은 맥주와 바비큐를 즐겼다. 열대 바다 위를 달리는 선상에서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해 질 녘 노을을 배경으로 각종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먹고 맥주를 마시는 즐거운 파티라니.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드레스와 신사복을 입고 댄스파티까지 벌였다는 부분에서는 당장 짐을 챙겨 배 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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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양학자니까 '인생사 모두 파도'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어울리겠다. 마루가 있으면 골이 있고, 폭풍이 치면 해일이 일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이보다 고요할 수가 없는 바다는, 널리 쓰이는 말처럼 인생을 닮았다.

바다 위의 과학자,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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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해양학자로 살며 삶의 많은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낸 저자가 전하는 낭만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출항 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 졸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저자와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니 더욱 뭉클해졌다. 이에 저자는 멀리 떨어져 지내면서 오히려 애틋함이 커지고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우리가 육지에 발 디디고 종종거리며 사는 것도, 바다 위를 출렁거리며 떠다니는 사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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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경제교육 - 지금 당장 집에서 시작하는
성유미(원더깨비) 지음 / 잇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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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인 '돈'.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용돈'이 쟁점이 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는 아직 학원을 다니지 않아 하교 후에는 바로 집으로 오거나 나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용돈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경제 교육은 이를수록 좋다 하여 작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용돈을 지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기 전에 다음 날에 할 일을 미리 적어두고, 실제로 그 일을 스스로 실천했을 때 각 항목의 난이도에 따라 100원, 200원씩 당일 즉시 지급하는 방식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 등교 준비, 숙제, 책 읽기 등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다지는 항목이 대부분이다. 용돈 인상과 심신 안정을 위해 '엄마와 뽀뽀하기', '엄마와 안고 뒹굴기' 같은 항목을 넣어 서로 먼저 실천하겠다며 귀여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했을 시에는 500원의 보너스를, 반대로 벌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는 500원을 벌금으로 내고 있다. 물론 하하호호 잘 지켜지는 날도 있고, 울퉁불퉁 잘 지켜지지 않는 날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용돈이 너무 적다'는 아이들의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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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아이들에게 용돈을 얼마나 주는 것이 적당할까. <지금 당장 집에서 시작하는 엄마표 경제교육>의 저자는 아이의 나이보다 아이의 생활 패턴 고려해야 하고, 가정의 교육 방침에 따라야 말한다. 우선 아이의 하루 일과를 일주일별로 나열한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어디에서 얼마의 돈이 필요한 지 확인한다. 교통비, 간식비, 취미생활비 등을 따져 보면 아이마다 천차만별일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때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는데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의식주는 어느 범위까지 용돈으로 해결한 것인지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연예인은 중학생 딸에게 한 달에 30만원의 용돈을 준다고 한다. 대신 가족 외식을 할 때 더치페이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렇게 하면 음식을 주문할 때 자신의 용돈 사정에 따라 소비 조절을 할 수 있을 테니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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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내가 당장 실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바로 '용돈 계약서'이다. 용돈 지급일, 금액, 지급 방식, 용돈에 포함된 의무 사항, 특별 보너스 지급 조건, 벌금 부과 조건 등이 담긴 이 문서가 있으면 수시로 바뀌는 아이들의 마음과 자신에게 불리하면 나 몰라라 기억 안 난다고 버티는 아이들과의 실랑이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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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드리고 싶은 점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정액제로 용돈을 주실 때 기본 용돈은 조금 부족하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제한된 용돈을 어떻게 쓸 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용돈이 부족하지 않으면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지금 당장 집에서 시작하는 엄마표 경제 교육,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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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하신 말씀이다. 그 옛날 '내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대와 달리 요즘은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결핍을 느낄 상황이 원천 봉쇄된 환경에서 과연 어떤 경제 교육의 의미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부족함을 채워 나가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엄마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또 한 가지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경험을 해보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인 것 같다. 일단 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코쿠키를 크기 별로 준비하고, 빨래와 식사 준비를 정성껏 돕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다. 큰 쿠키를 먹고 싶은 자여, 생각하고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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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온다 리쿠 지음, 이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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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저러니 해도 봄이다. 길고 무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맞이한 온다리쿠의 <스프링>은 봄 기운을 맞이하기에 알맞았다. 먼저 겨우내 움츠려있던 생명들이 깨어나고 싹터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미지를 표현한 듯한 표지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붓의 터치를 따라가다 보니 '누군가'를 발견했다. 뒷모습의 그는 왼 손은 사선으로 아래쪽을, 오른손은 반대로 위쪽을 향해 뻗고 있다. 무엇을 하려던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일까,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빈약한 상상력을 나무라며 책장을 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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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에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만 안무가에게 춤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그에게는 우연찮게 춤이 수단이었을 뿐,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또 다른 수단이 되어 목적을 이룰 것이다.

스프링, 55쪽

요로즈 하루.

누군가는 그를 '할'이라 부른다. 또 누군가는 '알', '하루'라고도 부른다. 발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천재'라 칭할 것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 보통과는 다른 질감, 갸냘프지는 않고 굵은 뼈대로 낭창낭창하게 서 있는 하루의 모습은 스프링을 연상케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하루의 존재가 궁금했다. 여러 시선으로 그를 그려내고 있지만 특히 절친인 준의 시점이 더욱 아리송했다. 준 역시 말한다. 지금껏 하루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든 녀석을 말로 표현해 보려 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끙끙대며 생각에 빠져들고 만다고. 그래, 한 마디로 하루는 좀 이상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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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형태'를 찾는 하루는 분명 능력자다. 난다 긴다하는 유망주 사이에서도 그는 뾰족 튀어나왔다. 급기야 그는 그저 춤을 추는 것에 그치지 못하고 안무를 짜기 시작한다. 그것도 주인공에 딱 맞는,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안무를. 그렇게 시작된 것이 하루와 준의 <야누스>이다.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로마 신화 속 문의 수호신. 둘은 무대 위에서 등을 마주한 채 섰지만 한 번도 마주서는 일 없이 끝까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준은 <야누스>가 차후에도 공연이 되는 작품이 되길 바랐지만 하루는 달랐다. 초연으로 끝나도 좋으니 하루와 준 단 둘만의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열다섯 살 여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날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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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이치? 운명? 뭐라도 불러도 상관없어. 아마 너희들은 따로 따로라도 언젠가는 나타났겠지만, 둘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데 의미가 있지.

스프링, 116쪽

하루와 준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조차 그들의 관계를 딱 잘라 정의내리지 못한다. 분명 두 사람이 어디든 함께 있으면 서로가 의식하든 아니든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라이벌 의식이나 보완, 흔하디 흔한 운명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때마침 우연히 그 곳에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준의 말에 의하면 문자 그대로 서로를 본 것이다. 준은 하루를 찾아내어 보았고, 하루는 준을 찾아내어 보았다. 찾아내어 보지 않았다면 흥미를 가지는 일도 없었을 테고, 하루가 준에게 '첫 안무'를 짜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다가 만났고, 접촉했고, 뛰어올랐다. 서로가 서로를 스프링보드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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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숙제처럼 이 책의 독후감을 쓴다면,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지 전에 나부터 누군가를 찾아내어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겠다.'라고 쓰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스프링보드를 밟고 뛰어올라 우리만의 무대에 서서 갈채와 환호성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주변부터 둘러봐야겠다. '그'는 이미 내 곁에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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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s 어원 365 ㅣ 김 원장’s 365
김수민 지음, 김민주 그림 / 윌북주니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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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학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단어 암기다. 하지만 아이든 어른이든 365개의 단어를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면 그 양에 압도되어 시작할 마음이 도망가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일 년동안 매일 조금씩 나눠서 외워보자고 하면 그 정도쯤이야 하며 도전할 배짱이 생긴다. 물론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있지만 한국말도 이해 불가한 말이 투성이인데 듣도 보도 못한 영어 단어를 매일 외워야 한다니.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영어 단어를 그냥 외우기보다 약간의 재미를 더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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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s 어원 365>는 이러한 엄마들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먼저 누가 봐도 혹할만큼 알록달록 귀여운 그림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하루에 외울 단어가 딱 두 세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단어가 무작위, 혹은 빈출도에 의한 것이 아닌 '어원'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어원이라는 말 자체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어원은 그 단어의 뿌리와도 같다고.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는 땅 속 뿌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되는 여러 단어들의 뜻을 유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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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uni'는 '하나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bi' 는 '둘', 'tri'는 '셋'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바퀴'를 가리키는 'cycle'을 더하면 각각 'unicycle(외발자전거), 'bicycle(두발자전거), tricycle(세발자전거)'가 된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어든 영어든 단어는 문장과 함께 봐야 더 잘 이해되고 암기도 수월해지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각각의 단어 아래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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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own rode a unicycle in the circus performance.

I love riding my bicycle in the park.

The little girl rode her tricycle around th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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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원을 다운받아 언제 어디서든 반복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언어는 결국 반복이다. 많이 듣고 계속 따라 하다 보면 낯설었던 것이 점점 익숙해지는 과정이 언어 학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원장's 어원 365>은 한동안 우리집 식탁 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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